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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자연·풍경 여행 및

한번은 가보자 ...프랑스 로카마두르 마을, 절벽위의 중세 성(城)들 ...

by 현상아 2006. 12. 22.
 



 

 


150미터나 되는 석회암 절벽에 빼곡히 들어찬 중세의 교회와 건물들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프랑스 로카마두르(Rocamadour) 여행은 우연하게 이뤄졌다.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으로 2년 가량 프랑스에서 체류했음에도 보르도를 보지 못해 나선 2003년 가을의 주말 여행길, 프랑스에 오래 산 지인으로부터 로카마두르에 들르란 얘기를 들었다. ‘로카마두르…’ 유럽의 많은 곳을 다녔지만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지명이었다.

프랑스 중남부의 로카마두르는 예상보다 멀었다. 파리에서 차를 몰아 도착한 게 오후 서너 시쯤 됐을까, 별다른 기대 없이 찾은 로카마두르의 절경에 입이 딱 벌어졌다. 알주(Alzou) 강이 흐르는 협곡의 오른 편 석회암 절벽에 고색창연한 중세가 펼쳐져 있었다. 150미터 가량 되는 절벽에는 12세기부터 지어진 교회와 건물들이 빼곡했다.

 

 





아는 사람만의 숨은 보석 같은 명소

유럽의 관광지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바글바글한 곳, 일본인만 보이는 곳, 한국인도 일본인도 찾아 볼 수 없는 곳. 뒤로 갈수록 덜 유명하지만, 숨은 보석 같은 곳이었다. 로카마두르는 세 번째에 속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로카마두르가 있는 페리고르 지역은 프랑스에서 첫손에 꼽히는 관광지다. 인류의 여명기를 밝힌 라스코 동굴, 지하에 환상적인 강이 흐르는 동굴인 구프르 드 파디락(Gouffre de Padirac),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세도시의 하나로 꼽히는 사를라(Sarlat)가 이 지역에 있다. 식도락으로도 빠지지 않는다. ‘검은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송로버섯(Truffe·트뤼프)과 거위 간 요리인 푸아그라(Fois gras)의 본고장이다.

 




로카마두르 절벽의 바위 틈에 꽂혀 있는 전설의 칼.
일설에는 샤를마뉴 대제의 12용사 중 한 사람이었던
롤랑(프랑스 서사시 ‘롤랑의 노래’의 주인공)의
칼이었다고 한다.

보르도 여행을 취소하고 협곡과 절벽의 중세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호텔을 잡았다. 노을이 휘감은 절벽을 바라보며 솜털처럼 부드러운 로카마두르 치즈(염소 치즈라는데 전혀 역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와 곁들인 와인은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자아냈다. 로카마두르라는 지명은 가톨릭 성자인 성 아마두르(Amadour)에서 따왔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러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갈 때 얼굴을 닦아 줬다는 성 베로니카의 남편인 그는 박해를 피해 이 곳까지 피신 왔다고 한다.

송로버섯·염소치즈로도 유명

그 때부터 이 곳에 성 아마두르의 유해를 모신 성소, 그가 깎았다는 목제의 ‘검은 성모(Vierge Noire)’를 모신 노트르담 교회 등 각종 교회와 순례자들을 위한 편의시설들이 지어졌다.

다음날 오전, 12세기부터 지어져 19세기까지 보수를 거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들을 통해 꼭대기까지 오르는 길은 가팔랐다. 당시 순례자들이 고행을 위해 온몸에 쇠사슬을 묶고 무릎으로 기어올랐다는 ‘순례자의 계단’ 216개를 밟으며 종교가, 아니 광신이 인간에게 강요하는 고통과 그 고통이 남긴 놀라운 아름다움의 기묘한 부조화를 생각해봤다.

꼬불꼬불, 건물들 속의 미로 같은 통로로 절벽 꼭대기의 성채까지 오르는 길은 또 다른 ‘중세로의 순례’였다.

<글-박제균 / 동아일보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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