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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다큐멘터리 및

박정희의 해진 혁대,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

by 하공별자함 2006. 12. 15.
조갑제 선생님은 박정희대통령을 대중화시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하신분입니다. 그동안 박정희대통령에 관한 많은 책들이 범람하였지만 조갑제선생님의 글처럼 대중의 마음을 흡입하는 마력은 없었다고 봅니다. 서민의 눈높이에 맞춘 쉽고 부담없는 서술로 서민들의 흥미를 촉발시켰습니다. 특정집단만이 향유하던 박정희대통령에 대한 추억을 서민속으로 되돌리셨고 박정희라는 미완의 주인공을 영웅으로 각인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는 역사학자 100명이 달라붙어도 해내지 못할 큰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모두가 인정해야 되는 엄연한 사실이고 필자가 조갑제선생님께 늘 감사한 마음으로 경의를 표하는 이유입니다.

(편집자주)
조갑제 
<여공들을 격려하는 박정희 대통령. 박대통령은 어린 나이에 배우지 못하고 일을 하는 여공들을 아슴아파 하며 많은 야간고등학교를 지어 이들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1979년10월26일 저녁 경복궁 앞 국군병원에서는 이미 시체가 된 박정희를 놓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필자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인용한다.
 
  <두 정보부 경비원 유성옥과 서영준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 권총을 일부러 보이면서 둘러선 군의관과 위생병들에게 “꼭 살려야 해요” 라고 위협조로 말했다. 정규형 대위는 이우철 일병에게 심장마사지를 하라고 지시했다. 이일병은 환자의 가슴 위로 올라가서 두 손을 포갠 뒤에 왼쪽 가슴을 몇 차례 강하게 눌렀다. 동시에 정 대위는 수동식 인공호흡 기 ‘암부’를 환자의 입과 코에 덮어씌워 놓고 공기주머니를 눌러 공기를 허파로 밀어보냈다.
 
  정 대위는 심장을 자극하여 박동하게 하는 강심제 에피네프린 20cc를 가슴에 주사했다. 심장마사지도 다시 했다. 한 20분간 응급소생법을 실시했으나 결과는 회생불능이었다.
 
  정 대위는 “도저히 안되겠습니다”라고 했다. 송계용 소령이 “돌아가 셨습니다”라고 곁에 버티고 있는 두 감시자에게 이야기했다.
 
  “이 사람이 누구십니까.”.
 
  송 소령의 물음에 두 감시자는 대답이 없었다. 며칠 뒤 군의관 정규 형 대위는 합수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얼굴을 보고도 왜 각하인줄 몰 랐는가”란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했다.
 
  “병원에 들어왔을 때는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고 감시자들이 응급 처지중에도 자꾸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시계가 평범한 세이코였고 넥타이 핀의 멕기가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도 해져 있었습니다.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약간 있어 50여세로 보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각하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한국의 좌파가 원수처럼 욕을 퍼붓고 있는 박정희는 죽을 때 ‘평범한 시계, 멕기가 벗겨진 넥타이 핀, 해진 혁대’를 차고 있었다. 그의 집무실과 침실 화장실 물통에는 벽돌 한장씩 들어 있었다.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의 집무실에는 선풍기와 파리채가 있었다. 기름 절약을 위해서 한여름에도 에어컨 사용을 통제했던 그는 문을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면서 더위를 견뎠다. 벌레가 들어오면 파리채로 잡았다.
 
  그가 죽을 때 입고 있던 바지는 허리 부분을 수선하여 늘린 것이었다.
 
  한국의 친북좌파들이 추종하는 김정일은 주민들을 굶겨죽이면서 곰발바닥 요리, 프랑스에서 공수해온 아이스크림,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폴레옹 코냑, 비행기로 매일 날라오는 수단 수박, 이탈리아 요리사를 초빙하여 만든 피자를 즐긴다. 누가 민족의 원수이고 누가 민족의 은인인가?
 
  월간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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