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인합일(天人合一), 우주의 이치가 내 몸 안에
- 무유무(無有無),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 기능(機能)은 어디서 오는가? 천지만유(天地萬維)에서!
- 태양과 지구, 크기 비교를 통해 본 우주의 관점
- 비어 있는 것의 힘, 공간과 에너지 그리고 건강
- 밀(密)한 것과 허송(虛鬆)한 것, 건강과 지능의 비밀
- 곶감보다 무서운 호랑이? 옛이야기에 숨겨진 진실
- 꿀, 곶감, 찰떡은 바보를 만든다? 밀한 음식의 폐해
- 보리밥을 먹으면 머리가 좋아지는 이유, 허송의 지혜
국토교통부, 우주에서 본 국토 국민 곁으로 … 국토위성센터 누리집 개설
국토위성센터 누리집 메인화면 [경기연합신문 ]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은 4월 9일부터 국토위성에 대한 모든 정보를 한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국토위성센터 공식 누리집을 새롭게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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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鬆한 것을 먹어야 지혜로워진다
모든 학문의 뿌리는 천문학이다. 과학과 물리학, 수학, 생물학 같은 모든 학문이 천문학에서 비롯되었다. 해와 달과 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이치를 아는 것이 천문학이다. 의학(醫學)은 천문학과 가깝다. 의학을 공부하려면 먼저 천문과 지리를 알아야 한다. 우주의 이치를 알아야 사람의 몸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몸 역시 작은 우주이므로 큰 우주의 이치를 알아야 몸의 이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작은 우주이고 큰 우주를 움직이는 법칙이 사람의 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의 몸과 정신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물질들 역시 우주의 뭇 별에서 온 것이다. 이와 같은 이치를 일러 옛사람들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고 하였다.
무엇이든지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곧 무유무(無有無)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선생의 말대로 우주 어딘가에 있는 것을 완전히 없게 할 수 없고 없는 것을 있게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없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며 있는 것은 본래 있는 것이다. 없는 것을 있게 할 수 없고 있는 것을 없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 말 자체가 허망(虛妄)한 것이다.
본래 있는 것을 없앨 수도 없고 본래 없는 것을 있게 할 수는 없다. 다만 본래 있는 것을 흩어지거나 모이게 할 수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흩어져서 보이지 않으면 없어진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있는 것을 모으거나 흩어지게 할 수 있을 뿐 없는 것을 있게 할 수도 없고 있는 것을 없게 할 수도 없다.
의학의 뿌리는 천문학
그렇다면 모든 사람한테 있는 나름대로의 각기 다른 기능(機能)과 재능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어느 사람이 지닌 어느 한 기능이 부족하면 어디에선가 그 기능을 가져와서 보충해 주어야 기능을 얻을 수 있고 키울 수 있다. 보충하지 않은 기능이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다. 기능을 흩어버리거나 모을 수 있을 뿐, 본래 있는 것을 없애거나 있는 것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아무데도 없다.
솥에 물을 붓고 불을 때서 물을 끓이면 물은 증발하여 다 날아가서 없어져 버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물이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니라 수증기로 변해서 공중에 흩어져 버린 것일 뿐이다. 물이 기화하여 수증기가 되고 수증기가 모여서 구름이 되고 구름은 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내리게 되니 물은 결코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대로 있되 모이거나 흩어지거나 변화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기능, 재능(才能), 능력(能力), 힘, 효능(效能) 같은 것이 다 물과 같다. 취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으며 가게 하거나 오게 하거나 머물게 하거나 움직이게 할 수 있지만 결코 없앨 수는 없다.
이를테면 당분을 너무 많이 먹어서 몸에 탈이 났다면 몸에 있는 당분을 버려야 몸이 건강해질 수 있다. 몸 안에 쌓여 있는 당분을 버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달리기나 등산 같은 운동을 많이 해서 태워서 날려 보낼 수도 있고, 몸속에서 지방으로 바꾸어 저장할 수도 있으며, 쓴맛이 나는 음식을 먹어서 중화(中和)할 수도 있고, 다른 용도로 바꾸어 재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기능은 불량한 것을 선하게 할 수 있고 선한 것을 불량(不良)하게 할 수도 있다. 처녀를 아이 엄마로 만들 수도 있고 기생으로 만들 수도 있으며 학생으로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 기능이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기능을 오게 할 수도 있고 가게 할 수도 있으며 머물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능은 어디서 오는가?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는 기능들 곧 시력기능, 청력기능, 생각하는 능력, 흔히 재능이라고 하는 것들은 다 어디서 오는가? 기능(機能)은 유소유방(有所有方)이라 반드시 그 장소와 방향이 있다. 기능이 오는 곳은 과연 어디인가? 모든 기능은 천지만유(天地萬維)에서 오는 것이다. 온갖 유(維)자, 만유(萬維)에서 그 기능이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유는 무엇을 말하는가? 우주와 천체(天體)의 모든 만물(萬物)을 가리킨다. 모든 사람을 비롯하여 동물, 식물 등 뭇 생명체한테 주어지는 각각의 재능, 힘, 기술, 능력 등은 모두 광대무변한 우주의 해와 달과 별들에서 오는 것이다.
태양은 그 크기가 대략 지구의 130만 배쯤 된다고 한다. 쌀 80킬로그램 한 가마니의 값이 20만원 쯤 된다고 가정하면 80킬로그램을 20만원으로 나누면 쌀 1그램에 2원 50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쌀 1그램의 낱알 수를 세어 보면 평균 20톨이다. 20을 2.5로 나누면 8이다. 곧 돈 1원에 쌀알이 8개가 되는 셈이다. 8개를 80,000그램 곧 쌀 한 가마니로 곱하면 64만 개가 된다. 이렇게 계산하면 쌀 한가마니는 쌀알 64만 톨이다. 지구와 태양의 크기를 비교하면 지구가 쌀 한 톨 만하다고 하면 태양은 쌀 두가마니만한 크기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보면 조물주가 지구를 위해 태양을 만들었다는 말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양의 입장에서 보면 지구는 쌀 한 톨에 지나지 않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쌀 두 가마니를 가진 사람이 쌀 한두 톨 잃어버렸다고 해서 신경이나 쓰겠는가?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는 정말 하잘 것 없는 존재이고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 역시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수천 억인지 수천 조인지 알 수 없는 은하단과 은하군에서 보면 태양이나 지구도 미미하여 있으나마나 한 존재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여 보면 조물주가 이 지구를 위해 우주를 만들었다고는 할 수 없고 사람을 위해 지구를 만들었다고 할 수도 없다. 조물주가 사람을 위해 지구를 만들고 태양과 별과 달을 만들었다고 하는 기독교 세계관이 반드시 옳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비어 있는 것에서 에너지가 나온다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을 천체(天體)라고 한다. 그러나 우주에 있는 공간을 천체라고 하지 않는다. 곧 천체라고 하는 것은 그 몸체 곧 형상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형상이 없는 것을 체(體)라고 하지 않는다. 우주는 99.9퍼센트가 공간이다. 이 공간은 그 크기와 끝을 알 수 없다. 우주가 운행하는 것은 이 공간의 에너지로 인한 것이다. 이 공간이 있기 때문에 우주가 일정한 질서를 갖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서양 유물론에서는 공(空) 곧 비어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물질을 탐구하는 것이 서양 학문이다. 그러나 이 비어 있는 것, 곧 우리가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이야말로 모든 형체 있는 것들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흔히 살이 찐 사람을 두고 속이 좁다고 한다. 대개 뚱뚱한 사람은 소견이 좁다. 이미 속이 꽉 차 있어서 다른 것이 들어갈 공간이 없기 때문에 생각이 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속이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는 공간이 많다. 비어 있는 곳에 참되고 올바른 것이 들어갈 수 있다. 뚱뚱한 사람보다는 마른 사람이 속이 넓은 것은 비어 있는 곳이 많아서 에너지를 담아 둘 수 있는 그릇이 더 크기 때문이다.
도라지를 예로 들면 산도라지는 나이가 많아도 크기가 작고 가볍고 속이 비어 있다. 그러나 집에서 거름과 비료를 많이 주면서 키운 집도라지는 나이가 작아도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며 속이 치밀하고 엿처럼 노란 황장(黃藏)이 들어 있다. 거름기가 많은 땅에서 영양분을 많이 먹고 자란 도라지는 과식을 해서 영양물질이 몸 속에 가득 쌓여서 속이 꽉 차 있고 그 때문에 수명이 짧고 벌레가 잘 먹고 병에 잘 걸린다. 거름기 성분 곧 영양성분은 몸통을 빨리 키우지만 그 대신 몸통을 빨리 썩게 만든다. 그래서 면역력이 약하여 병에 잘 걸리고 잘 썩고 벌레도 잘 먹는다.
높은 산에서 자라는 산도라지는 수백 년이나 수천 년을 살 수 있다. 심지어 7천 년을 넘은 것도 있다. 산도라지는 뿌리를 벌레가 파먹어도 썩지 않는다. 면역력이 강하여 병이 들지도 않는다. 아무리 추워도 얼어 죽는 일도 없다. 그러나 비료와 거름을 주고 키운 집도라지는 3년에서 5년 정도 밖에 살지 못한다. 사람이 밭에서 재배한 도라지 뿌리는 세 근을 말리면 한 근이 되지만 높은 산꼭대기 바위 틈에서 자란 산도라지는 열 다섯 근을 말려야 겨우 한 근이 나온다. 그런데 도라지의 기능 곧 약초로서의 효능은 집도라지 천 근이 산도라지 한 뿌리의 약효를 당할 수 없다. 인삼 천 근의 효능이 산삼 한 뿌리의 효능을 당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꼭 같은 종자에서 나온 것인데 어째서 이처럼 차이가 나는가? 산도라지의 약효와 기능이 집도라지보다 뛰어난 것은 속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속이 허송(虛鬆)하기 때문에 생명력, 곧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에너지인 생명력을 한껏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밭에 키우는 도라지보다 높은 산꼭대기에서 자라는 야생 도라지가 오래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으로 치면 하루 세 끼 먹을 것을 한 끼만 먹기 때문이다. 곧 영양분이 별로 없는 척박(瘠薄)한 땅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사람이 재배하는 도라지는 산도라지보다 영양분을 몇 배나 더 많이 먹으므로 영양과잉으로 인해서 그 영양분이 독이 되어 뿌리가 썩어 죽는 것이다.
잔대도 그렇다. 산에서 자란 야생 잔대는 속이 허송하다. 조직이 치밀하지 못하고 속이 퍼석퍼석하여 비어 있는 공간이 많다. 야생 산잔대 날 것을 캐서 말려 보면 열 다섯 근을 말려야 한 근이 나온다. 그러나 밭에서 키운 잔대는 세 근을 말리면 한 근이 된다. 산잔대는 속이 비어 있는 곳이 많다. 야생 잔대는 수명이 몹시 길어서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을 예사로 산다. 속이 비어 있어서 곧 허송하기 때문에 수명이 긴 것이다. 허송하기 때문에 건강하고 병이 없으며 오래 산다.
허송한 그릇에 생명력을 담는다
빈 병이라야 물을 담을 수 있다. 사람의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뇌도 그렇다. 뇌 속이 허송해야 지식과 지혜를 담을 수 있다. 비어 있는 컴퓨터 디스켓이라야 정보를 담을 수 있다. 비어 있는 공간이 많을수록 많이 담을 수 있다. 허송할수록 많이 들어갈 수 있다. 빈 그릇이라야 물을 담을 수 있다. 뱃속을 비워야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내부에 비어 있는 곳이 많아야 생명의 입자(粒子)들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다. 머리 속이 비어 있어야 뇌세포들이 사고(思考)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라는 말을 많이 쓴다.
영양가 높은 음식을 많이 먹어서 속이 가득 차 있고 몸집이 매우 큰 사람은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씨름 선수는 될 수 있지만 머리를 주로 쓰는 참모(參謀)는 되기 어렵다. 이런 사람은 영양과잉으로 인해서 영양물질이 독으로 작용하여 병이 나서 일찍 죽기 쉽다. 배가 부를 때 음식을 더 먹으면 처리해야 할 찌꺼기가 그만큼 더 많이 생길 뿐이다. 이런 사람은 요즘의 오렌지족과 같다. 오렌지족은 함부로 먹고 함부로 낭비하고 함부로 버린다. 그들은 오직 쓰고 먹고 버리는 것에서 쾌락을 찾는다.
기능은 어디서 오는가? 물이 필요하면 물가로 가야 한다. 물은 강이나 바다 냇물, 연못, 샘에서 얻을 수 있다. 사막에서 물을 얻을 수 없다. 물이 없는 사막에서 물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물을 얻으려면 물을 샘이나 강에 가서 길어 와야 한다. 없는 기능을 있게 할 수는 없으므로 어디선가 기능이 있는 곳에서 갖고 와야 한다.
옛 글에 사람은 천지의 전성(全性)을 지니고 있으며 식물은 천지의 편성(偏性)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사람은 하늘과 땅이 지닌 모든 성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식물에는 하늘과 땅이 지닌 성질의 일부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의 몸에서 어떤 기능이 부족하면 먼저 음식에서 그 기능을 찾아야 한다. 음식에서 찾지 못하면 약에서 찾아야 한다. 부족한 기능을 메꾸어 줄 수 있는 것이 음식이며 약이고 운동이다. 어느 한 기능이 부족해서 병이 생겼다면 그 부족한 기능을 메꾸어 주면 병이 낫지 않을 수 없다. 의술이란 부족한 기능을 메꾸어 주는 것이다. 김치를 담글 때 배추가 소금을 만나면 발효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듯이,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면 갈증이 사라지듯이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어서 본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의술(醫術)이다.
보리밥을 먹으면 머리가 좋아지는 이유
그렇다면 허송한 것은 무엇이고 밀한 것은 무엇인가? 밀(密)자는 빽빽할 밀(密)자다. 꿀 밀(蜜)자는 빽빽할 밀(密)자에서 나왔다. 꿀은 조직이 치밀하여 공기나 물 같은 다른 물질이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다. 밀도가 높고 조직이 꽉 차 있어서 물도 공기도 스며들지 못한다. 조직의 구조가 풀처럼 끈적끈적하여 조직 속으로 아무것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설탕 역시 조직과 맛이 밀(密)하다. 단맛이 너무 진하여 다른 맛이나 다른 기능이 들어갈 틈이 없다. 무엇이든지 농도가 진한 것은 다 밀(密)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찹쌀은 멥쌀보다 점성이 훨씬 많으므로 멥쌀보다 더 밀(密)한 식품이다. 그래서 찹쌀밥이나 찹쌀떡을 많이 먹으면 뇌가 밀해져서 머리가 나빠지기 쉽다. 그러나 보리밥은 점성(黏性)이 거의 없으므로 허송한 식품이다. 보리밥을 먹으면 뇌가 빈다. 뇌가 비면 뇌세포가 활동할 공간이 많아진다. 뇌가 비면 마음도 비어서 마음이 넓어진다. 뇌가 허송해져서 뇌가 활동을 많이 하게 되므로 머리가 좋아진다. 보리밥을 오래 먹으면 머리가 좋아지고 지혜가 생긴다.
쌀밥은 보리밥보다 점성이 많으므로 쌀은 보리보다 밀한 식품이다. 그러므로 흰쌀밥을 많이 먹으면 뇌가 밀해져서 곧 뇌가 점성으로 가득 차서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 하게 되어 머리가 나빠진다. 보리밥에 시래기국 같은 허송한 음식을 주로 먹으면 뇌가 허송해져서 머리가 맑아지고 꿀이나 찹쌀밥이나 흰쌀밥을 주로 먹으면 뇌가 가득 차서 밀해져서 머리가 나빠지고 마음이 혼탁해진다.
꿀 한 가마니와 시래기 한 가마니를 비교하면 부피는 같지만 꿀은 무겁고 속이 꽉 차 있어서 공기도 물도 그 속에 들어갈 틈이 없다. 반대로 시래기는 속이 비어서 가볍고 물이거나 공기가 스며들어갈 수 있는 틈이 아주 많다. 꿀은 몹시 밀한 식품이고 시래기는 몹시 허송한 식품이다. 벽이나 바닥의 갈라진 틈을 밀랍으로 막으면 천 년이 가도 물도 바람도 새지 않는다. 그러므로 밀한 꿀을 먹으면 몸이 밀해지고 허송한 시래기를 먹으면 몸이 허송해진다.
뇌세포가 활동하고 움직이려면 공간이 필요하다. 마당이 넓어야 아이들이 제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고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아야 건강해진다. 꿀처럼 밀한 음식을 먹으면 뇌세포가 운동을 하지 못해서 퇴화하여 바보가 되고 단명하며, 시래기처럼 허송한 것을 먹으면 뇌세포가 운동을 많이 할 수 있으므로 머리가 좋아지고 건강해지며 병이 나지 않고 장수한다.
허송한 것이 좋은 것이다. 허송(虛鬆)은 빌 허(虛) 자에 머리 헝클어질 송(鬆)이다. 머리가 까치집처럼 된 것을 나타내는 글자다. 까치칩처럼 헝클어져서 속에 공간이 많은 것을 허송하다고 하는 것이다. 칡을 예로 들면 뿌리가 굵고 통통한 암칡은 조직이 치밀하고 빽빽하므로 밀한 것이 되고 수칡은 조직이 성글므로 허송한 것이 되는 것이다.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의 교훈
우리 옛날 이야기 중에 호랑이와 곶감에 관한 것이 있다. 어느 산에 호랑이가 한 마리 살았다. 그런데 어느 해에 큰 가뭄이 들었다. 온 산에 고라니나 토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호랑이는 석 달 열흘을 굶었다. 먹을 것은 사람이 사는 동네에 내려와야만 구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날마다 마을 주변에 와서 얼쩡거리는데 어느 날 어느 집 안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앙앙’ 하고 우니까 엄마가 아이를 달래려고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호랑이가 와서 물어간다고 했지만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귀신이 와서 잡아간다고 해도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밖에 아무리 무서운 것이 온다고 해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곶감을 주겠다고 하였더니 울음을 뚝 그치는 것이 아닌가. 그 얘기를 호랑이가 문 밖에서 듣고 있다가 ‘곶감이란 놈이 나보다 훨씬 무서운 놈인가 보다 그 놈이 오기 전에 먼저 피해야겠다’ 하고 멀리 도망을 가 버렸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서 아이한테 과연 호랑이가 더 무서운 것인가? 아니면 곶감이 더 무서운 것인가? 이 이야기에서 말하려고 하는 감추어진 참뜻은 무엇인가?
만약 나한테 호랑이한테 물려 죽을 것인가, 곶감을 먹을 것인가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호랑이한테 물려 죽을 것을 선택할 것이다. 호랑이 밥이 되어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라도 똑똑한 귀신이 될 것이고 곶감을 먹고 멍청이가 되어 살다가 죽으면 죽어서도 멍청한 귀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죽어서 귀신이 되어 사는 것도 사는 것인데 귀신한테는 귀신으로 사는 것이 좋고 사람한테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좋다. 귀신한테는 귀신의 삶이 있고 사람한테는 사람의 삶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곶감을 먹으면 머리가 꽉 차서 곧 뇌가 밀해져서 살아서도 사람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죽어서 귀신이 되어도 귀신 노릇도 제대로 못할 것이니 당장 호랑이한테 물려 죽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이 동화의 본뜻은 아이들한테 곶감이 나쁘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에 본래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벌의 독은 어디서 오는가? 꿀에서 오는 것이다. 꿀처럼 달콤한 것을 많이 먹어서 뇌가 꽉 차 있으면 뇌세포가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한테 꿀을 많이 먹으면 바보가 되는 것이다. 꿀, 곶감, 설탕, 찰떡 같이 밀한 음식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주고 이쁜 아이 매 한 대 더 때리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가난한 집안의 선비가 보리밥에 나물죽을 먹으며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공부를 해서 과거시험을 보면 장원급제(壯元及第)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온갖 술과 고기를 비롯한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들과 엿, 꿀, 떡, 같은 것을 잔뜩 먹으면서 공부한 부잣집 고관대작(高官大爵)의 자식들은 죽어라고 공부를 해 봐야 낙방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만약 진수성찬(珍羞盛饌)을 마음껏 먹으면서 공부한 선비가 과거에 급제를 했다면 그것은 제 실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뒷배를 봐 주었거나 커닝을 잘 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든지 뱃속과 머릿속을 비워야만 몸이 건강해지고 머릿속을 지혜로 가득 채울 수 있다.
출처 : 2005. 5. 16. 약초연구가 운림 스승님
발전해서 정말 다행인 의술
100년전 치과 의료기구들 ㄷㄷ 마취없이 충치 조지는중
im.newsp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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