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0일 속의 역사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2000)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오늘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장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증진시킨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오슬로 시청 메인홀에서 있은 시상식에는 하랄드 5세 노르웨이 국왕과 각국 외교사절 등 1,100여명이 참석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군나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노벨평화상 인증서와 금메달, 900만 크로네, 우리돈으로 12억원 상당의 상금을 받았다.
김 대통령은 1986년부터 15번 연속으로 후보에 오른 끝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됐다.
김 대통령은 아시안인으로서는 일곱번째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기록됐다.
1999년 프란요 투즈만 크로아티아 대통령 사망
1993년 넬슨 만델라 노벨평화상 수상
1991년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서울)
1990년 미국 석유왕 해머 사망
1990년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988년 국민일보 창간
1987년 미국 바이올린 연주자 하이페츠 사망
1982년 소련, 우주인 211일의 우주체공기록 세우고 귀환
1981년 국회 내무위 통금해제건의안 가결
1979년 테레사 수녀 노벨 평화상 수상
1978년 베긴-사다트 노벨평화상 수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결혼(1977)
소련의 남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한쌍이 1977년 오늘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은 1972년 뮌헨올림픽 100미터와 200미터 육상에서 우승한 발레리 보르조프!
신부 역시 뮌헨올림픽에서 체조 개인종합우승을 했던 루드밀라 투리슈체바!
뮌헨 올림픽에서 처음 만난 뒤 5년만에 결혼에 성공했다.
올림픽이 맺어준 부부 보르조프와 투리슈체바는 결혼식이 끝난 뒤 많은 하객들에 둘러 싸여 춤을 추기도 했다.
1976년 제20차 남북적십자 실무회담(판문점)
1976년 한적(韓赤) 북적(北赤)에 성묘단교류 제의
1975년 소련의 반체제 물리학자 사하로프, 노벨평화상 수상
1973년 한국-인도, 국교수립
1973년 북한함정 서해 대청도 부근에 계속 출몰. 긴장상태 조성
1971년 광복 후 첫 민방공훈련 실시
1971년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 노벨평화상 수상
1970년 소련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 노벨 문학상 수상
1963년 한국-바티칸시국(市國) 수교
1962년 황지선(黃池線) 개통
1961년 소련-알바니아 국교단절 발표
1961년 하마슐드 전 유엔사무총장에 노벨평화상 수여
1960년 박태선 장로교 신자 1,000여명 동아일보사 습격
1957년 시인 노천명 사망
1956년 독립운동가 정이형 사망
1954년 유엔총회, 중국의 한국전 포로억류비난 결의안 채택
1952년 알베르트 슈바이처 노벨평화상 수상
1951년 유엔총회 군축위원회 설치안 채택
1950년 50만 북한동포 남하 피난
[1950년] 독립운동가 김규식 사망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김규식 선생이 1950년 오늘 예순아홉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미국에서 공부한 김규식 선생은 1919년 임시정부의 초대 외무총장 자격으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해 일제의 한국침략을 규탄했다.
해방 뒤에는 이승만, 김구선생 등과 함께 우익진영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김규식 선생은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로 돌아가자 중도우익을 표방하고 중도좌익 대표인 여운형 선생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김규식 선생의 좌우합작노선은 남한 단독정부 구성을 주장한 우익진영의 방해와 편협한 공산당의 대응으로 끝내 실패하고 만다.
남한지역에서만 치뤄진 총선거에 불참하고 은퇴한 김규식 선생은 6.25전쟁 때 납북돼 평안북도 만포진 근처에서 숨을 거뒀다.
해방정국의 정치적 분열을 막기 위해 좌우합작운동을 정계했던 우사 김규식 선생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와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내며 독립외교 활동을 벌였던 우사(尤史) 김규식 선생이 이날 평북 만포진 부근에서 69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1881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난 선생은 YMCA학관, 배재학당에서 교육을 통한 민족계몽 운동을 펼치다가 1913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1919년 1월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승국 대표들 모임인 `파리강화회의`에 국민대표로 파견돼 독립 외교활동을 벌였으며, 같은 해 4월 구성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총장 겸 주 파리대표 위원으로 임명됐다. 그후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을 위한 외교선전 활동을 벌이다가 다시 상해로 돌아와 민족통일전선운동을 전개했으며, 중일전쟁후 민족혁명당 대표로 활동하다 1944년 임시정부 부주석에 선임됐다.
선생은 광복후 임정요인으로 귀국, 좌우합작 운동에 힘썼으며 민족분단을 막고자 김구 선생과 함께 남북협상에 나서는 등 심혈을 기울이다 6.25전쟁 중 납북돼 이날 사망했다. 정부는 1989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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