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서방을 팝니다.
한 십 년쯤 함께 살아 단물은 빠져 덤덤 하겠지만
허우대는 아직 멀쩡합니다.
키는 6척에 조금은 미달이고
똥배라고는 할 수 없으나
허리는 솔찬히 굵은 편,
대학은 나왔으나 머리는 깡통입니다.
직장은 있으나 수입은 모릅니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출근하고
밤늦게 용케 찾아와 잠들면 그뿐.
잔잔한 미소 한 번,
은근한 눈길 한 번 없이
가면 가는 거고 오면 오는 거고.
포옹이니 사랑놀이니 달착지근한 눈맞힘도
바람결에 날아가버린 민들레 씨앗된지 오래입니다.
음악이며 미술이며 영화며 연극이며
두눈 감고 두귀 막고 방안의 벙어리된지 오래입니다.
연애시절의 은근함이며 신혼초야의 뜨거움이며
생일이며 결혼기념일이며 이제는 그저 덤덤할 뿐,
세월 밖으로 이미 잊혀진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일 뿐,
눈물방울 속에 아련한 무늬로 떠오르는 무지개일 뿐, 추억줄기일 뿐.
밥 먹을 때도 차 마실 때도 포근한 눈빛 한 번 주고받음 없이
신문이나 보고 텔레비나 보고,
그저 덤덤하게 한마디의 따근따끈한 말도 없고.
매너도 없고 분위기도 모르는지.
그 흔한 맥주 한 잔 둘이서 나눌 기미도 없고.
일요일이나 공휴일의 들뜨는 나들이 계획도
혼자서 외출하기, 아니면 잠만 자기.
씀씀이가 헤퍼서 말도 잘해서 밖에서는 스타같이 인기 있지만
집에서는 반 벙어리, 자린고비에다 술주정꾼.
서방도 헌 서방이니 헐값에 드립니다.
사실은 빈 가슴에 바람 불고 눈 비 내리어 서방 팝니다,
헐값에 팝니다.
주정거리듯 비틀거리며 말은 하지만
가슴에는 싸한 아픔 눈물 번지고 허무감이 온몸을 휘감고 돌아
빈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서방 팝니다.
헌 서방 팝니다며 울먹입니다.
흩어진 마음,
구멍이 송송 뚫린 듯한 빈 가슴을 추스리며
안으로만 빗질하며 울먹입니다.
- 이향봉 시집 -
http://doumi.3002.com (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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