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은 의자에 앉도록 디자인되지 않았다. 인체공학자들은 수많은 연구를 하면서 의자에 오래 앉을수록 몸은 점점 더 망가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의자에 앉은 자세는 폐, 소화기관, 척추, 허리근육과 신경계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앉아서 지내는 현대인들의 몸을 왜곡시키고 다양한 질병을 낳는 원흉이 바로 의자인 셈이다. 사람이 의자에 앉아 생활한 기간은 인류 역사 전체를 놓고 볼 때 대단히 짧다.
몸이 의자에 앉도록 디자인되지 않은 것처럼 의자 역시 앉으라고 디자인한 것이 아니다. 의자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시절, 의자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귀족들이 길게 기른 손톱이나 치렁치렁한 가발 같은 것이었다. 거추장스럽기만 한 손톱과 가발은 하루종일 일해야 먹고살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평생 해 볼 수 없는 것이다. 즉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표시였다. 마찬가지로 의자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앉아서 통치하는 자들의 상징물이었다.
의자가 대중화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계가 마련해 주었다. 20세기 전까지 극소수의 권력자, 귀족, 자본가를 제외한 절대 다수의 사람은 몸을 수고롭게 움직여야만 먹고살 수 있었다. 즉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 수고로운 노동을 기계가 대체해 나가자 현대의 노동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장부를 정리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결국 기계는 수많은 관리직 노동자, 즉 의자에 의지한 노동자를 양산했다. 따라서 의자는 대량 생산되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장인들이 일일이 나무를 깎고 장식을 붙여 생산하는 방식으로는 산업사회의 엄청난 수요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바야흐로 의자는 기계생산시대에 맞게 효율적으로 디자인되어야 했다.
오늘날 명품 의자로 각광받는 르 코르뷔지에의 셰즈롱그,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로셀로나 의자,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의자, 알바르 알토가 나무를 구부려 제작한 의자 시리즈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들 모더니스트들이 디자인한 의자는 정말 대중화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들은 대량 생산에 맞는 단순한 의자를 만들어 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값싼 의자, 편안한 의자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사실 모더니스트들이 디자인한 의자는 자신들의 철학과 이상을 표현하는 도구 이상이 되지 못했다. 즉 그들에게 의자는 창작 욕구를 토해 낼 아주 적절한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모더니스트들은 과거의 권력과 신분 과시형 의자에서 완전히 탈피한 혁신적인 스타일을 창조했지만, 그것 역시 새롭게 부상한 엘리트 계층의 신분을 과시할 뿐 진정으로 대중에게 다가가지는 못했다. 돈 번 티를 내려고 아르마니를 입고 벤츠를 타듯, 자신의 사무 공간을 모더니스트들의 의자로 장식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돈 채드윅이 디자인한 아론 의자는 이러한 인체공학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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