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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성공의 및

서른, 니 안의 악마를 의심하라.

by 현상아 2006. 12. 30.
서른에게 보내는 편지 _ 니 안의 악마를 의심하라.

잊을만 하면 한번씩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인디언'이야기다.
아마 이 블로그(dooholee.com)에도 두어번쯤 적었던 기억이 난다.
인디언들은 말을타고 한참 달리다 가끔씩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너무 빠르게 달려 영혼이 따라오지 못했을까봐 잠시 기다리는것이라고 한다. 이말을 그대로 믿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떠올리는것은 아니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아주 큰 교훈을 준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한해를 정리하곤 한다. 그리고 다가올 새해에 대한 계획도 세운다.
그 계획은 이전보다 늘 더 '진보하리라'는 믿음이다. 지금보다 더 혹은 이전에 해보지 못했던 무언가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이 연말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있는것이다.
인디언 이야기는 숨가뿌게 한해를 달려온 우리에게 잠시 기다려 주변을 살필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진짜 자신의 영혼일수도 있고, 혹은 양심, 도덕, 신앙, 믿음, 의지등의 개념적인것이거나 가족, 친구, 애인, 팀원등 유형의 무엇일수도 있다. 혹은 명성, 경력, 재산등 자신의 성공에 필요한 무엇일수도 있다.

그래 이맘때면 그런것들을 한번씩 차근차근 살펴볼 이유가 있다.
특히 서른줄에 들어가는 나에게 이 시간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일전에 가까운 지인이 이런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제 곧 서른인데 이제껏 무엇을 이루었는지 모르겠네요..."
"서른.. 서른이면 이제 시작이지.. 모두가 서른이라는 선에 서서 '땅'하는 신호에 달리는거지"

서른, 시작.

이십대의 나에겐 서른이란 마치 젊음의 사형선고라고 생각했던적이 있었다.
김광석씨의 '서른즈음에'라는 구슬픈 노래가락 때문인지, 아니면 늘 피곤해 보이는 30대의 형님, 누나들의 얼굴때문이었는지, 서른이란 나이는 마치 모든 열정에 대한 기대를 접어두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연장하기 위해 작은 파도와도 타협하고 조용히 살아가는 그런 시간들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 서른이라는 나이를 맞이하는 형님, 누나들이나 드라마 영화속에서 비쳐지는 서른의 모습은 '준비'는 커녕 마치 '저승'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보여진것이 사실이다.
그런 나에게 '서른이면 이제 시작이지'라는 말은 마치 지동설같이 매우 새로운 '주장'이었다.
마치 모르고 살았던 예수의 '구원'을 들은것 처럼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하는 말이었다.
서른, 시작..

생각해보니 그랬다.
남자나이 서른. 일반적으로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교를 졸업하는 남학생은 28세쯤에서야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운이좋아 졸업과 함께 취직을 한다면 서른이면 이제 직장 2년차에 접어들 나이다. 그래봤자 사회초년생이다.
그런데, 사회의 시선은 다르다. 20대에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그런부류는 크게, 부모의 부를 타고 태어나거나, 연예인이거나, 벤처사업으로 엄청난 투자를 받은 사람들이다. 벤처붐이 한창일때 20대 사장을 찾아보는것은 어려운일이 아니었다.

옛날처럼 회사에서 차근차근 일해서 3년후 대리되고, 3년후 과장되고, 3년후부장되고 어쩌고저쩌고의 프로세스는 바보들이나 하는 게임이 되었다. 성공의 수단이 다양해진 지금은 어떤수를 쓰던지 일정한 규모의 재산을 모으는것이 승리자가 되어버리는 시대가 와버렸다. 그러니 3억소녀니, 부동산재벌이니, 재벌2세니..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성공스토리들이 쏟아져나오는것이고, 사람들은 이를 부러워 하는것이다.

그런 시대에 살아가는 나에게 서른이라는 숫자는 엄청난 장벽과도 같았다. 마치 이때가 되면 좋은차 하나 굴리고, 집하나 장만해서 아내와 함께 저푸른 초원을 그리고 있어야 할것만 같았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것 같은 내인생이 참으로 초라해보이는것이다. 정말 믿을것이라곤 '몸뚱아리'와 독선으로 똘똘뭉친 '잡학꾸러미'가  나에겐 전부인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그런것이 나뿐만은 아닌것 같다.
우스개로 하는 '엄마친구아들'쯤 되야 서른에 집도사고, 차도사고, '사'자 직업에 연봉 1억 어쩌고 저쩌고.. 어찌나 잘풀리는지, 그런데 내주변엔 그런 사람이 없다. 그 잘난 '친구아들'의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늘 좌절앞에는 그런 성공케이스만이 있을뿐이다. "철수도 너와 비슷한처지더라"라는 말따위 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그런 비슷한 처지를 누구에게 말하지도 않았으리라. 그런 처지따위 정말 '운없는' 나같은 사람에게만 있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바로 '서른즈음에' 찾아오는 생각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제 '겨우 서른'이다.

달리기로 치자면 이제 겨우 몸풀기 위해 운동장 2바퀴 돌았을뿐이다.
물론 아버지가 육성회장이나 주임선생쯤 되서 안뛰고도 체력장 만점 받는 친구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늘 하는 일이 육상이라 친구들보다 더 멀리 뛰어갔을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보통'의 친구들은 이제 겨우 운동장 2바퀴 돈것이 맞다.
아직 취직도 못하고, 빈둥대는것을 정치인들의 탓으로만 돌릴수는 없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악조건에서 지금 돈천만원도 못모은 자신이 패배자나 낙오자 따위가 아닌것은 확실하다.
그냥 아주 수학공식처럼, 지금나이쯤에 아무것도 없는것이 '당연하다'라고 자위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있었을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의 더러움도 씁쓸함도 알고, 성과의 달콤한 보상도 알고, 이제는 나를 잡아당겨줄 튼튼한 줄이 무엇인지도 이제 대충 알만한 나이인것은 확실하다. 이제 '준비 땅!'이라는 구호에 맞춰 달리면 된다.

너무 빨리 치고나가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몹쓸병에만 안걸렸다면 지금 살아온만큼 더 살날이 남아있다. 더 살날이 남아있다는것은 그만큼의 기회가 더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술이나 마시고 다니던 대학을 나와 돈벌겠다고 이것저것 해본 시간이 빨라야 5년이고, 늦어야 2년이다. 말하자면 지금과 같은 시간의 6배, 길게는 15배정도 더 기회란게 있다는것이다.

심지어 요즘은 '실버시대'라고 하는데, 이제는 60이 넘어서도 뭘 할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게 조급할 필요가 없을수도 있다. 마흔이 넘은 김종서, 이승환의 콘서트도 힛트를 치고, 초등학교때 보던 신승훈도 한류의 주역이 되고 있는 세상이다. 오히려 더 길게 자신을 만들어갈수 있는 세상이 된것에 감사해야 한다. 10대 20대가 우리들 자랄때처럼 뭣모르는 세대가 아니고, 우리보다 더 빨리 무언가를 알게 되고, 더 잘하게 되고 새로운 성공신화를 창조하지만, 그것 역시 그들의 일이다. 우리 세대도 이전세대에게는 그랬을것이다.

얼어죽을 패배감을 버리자.

"또 하루 멀어져간다.."하며 담배나 태우고 있을시간이 아니다. 이제 시작인데, 죽는사람처럼 패배자 흉내나 내고 있을때가 아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신나게 달릴 준비를 하자. 준비운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Skill과 Networks을 정리해보자. 자신의 Skill을 뒷받침 해줄만한 성과물들을 나열해보고, 그 증거들을 수집하자.
이 모든것들을 펼쳐놓고 나의 능력의 총합이 무엇을 할수 있는 물건인지 따져보자.

그리고 이 '물건'이 30년후에 어떻게 되어있을지에 대한 신나는 상상을 해보자.
그 물건은 아직 뭉뚱할것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괴석'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뾰족하게 갈아서 한방에 사냥감을 처치할수 있는 창과 칼을 만들자. 과제의 기한은 30년이다.
30년후에 '마에스트로'라는 소릴 들을 각오를 하고 자신의 '괴석'을 '수석'으로 만들자.
단점마저 매력으로 승화시키자. 그것이 우리들이 서른즈음에 해야 할 일이다.

네 삶을 방해하는 스파이를 죽여라.

악마는 절대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스파이는 절대 스파이인척 영리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봐서 자기앞의 악마와 스파이를 바로 잡아낼수 있을것이라 착각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악마는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고, 스파이는 가장 친한 동료이거나, 선한 눈을 가진 순둥이 동료였다. 악마같은 악마는 없는것이다.
우린 가끔 우리의 삶을 의심해야 한다. 너무 잘나가고 있을때도, 무기력과 좌절감에 허우적댈때도 나의 삶을 방해하는 '스파이'가 있음을 의심해야 한다.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곳에 있는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사고를 좌지우지 하는 종교나 가치관 혹은 학문이나 철학도 자신을 강력한 틀안에 가둬 못나오게 하는 감옥일수도 있는것이다. 매일아침 세번씩 외치는 위대한 사상가의 명언이나, 어릴때 삶의 목표가 되었던 위인마저 '악마'일수가 있는것이다.

우리는 이런이유로 언제나 열려있어야 한다. 모든 생각이 '맞을수도 있다, 틀릴수도 있다'는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유부단 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다. 겨우 서른즈음에 가진 경험과 이론으로 세상을 다 아는냥 판단하고 고집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서 독버섯을 피우고 스파이짓을 하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파괴하고, 그 탓을 남에게 돌리게 한다.

진짜 명상하는 기분으로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자. 상종도 하기 싫었던 친구의 개똥철학도 꿀맛으로 들어보고, 들으면 역겨웠던 정치이야기도, 돈주고 보라고 해도 보기 싫었던 신문의 사설도 읽어보고, 광신도들이나 하는짓인줄 알았던 종교체험도 해보자. 심지어 '도를 아십니까'라는 도인들과도 토론을 해보자. 열여섯 꼬맹이의 말이 유치하다거나, 칠십 노인에게 더이상 배울것이 없다고 속삭이는 악마를 죽여라. 이제껏 그것들에 대한 편견을 만들었던 모든 경계를 지우는것이 악마와 스파이를 없애는 길임을 명심하자.

꽉막혀 살지말자.
우리는 겨우 서른살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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