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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1900년대 및

박치기왕 김일

by 현상아 2007. 1. 14.


지난 10월 26일 지병으로 별세한 김일 옹. 그는 1960∼70년대 국내 프로레슬링계를 풍미했던 한국인들의 영웅이었다. 1957년 역도산체육관에 입문하며 레슬링을 시작한 그는 1963년 세계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가난했던 국민들의 시름을 잠시나마 덜어주었던 존재였다. 특히 그가 특유의 박치기 기술로 상대를 제압할 때면 전 국민이 열광적인 응원을 보냈다.

김일 옹이 우리 곁을 떠난지 두 달이 지난 지금 국민적 영웅의 일대기를 그린 동영상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동영상은 포털사이트의 블로그를 통해 확산되고 있으며, "영웅이라는 칭호에 걸맞는 삶이다" 등 매우 감동적이라는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동영상은 28세 청년 김일이 일본의 영웅이자 재일조선인 역도산을 만나기 위해 여수항에서 일본으로 밀항을 하는 내용부터 시작된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한 김일은 역도산을 만나기 위해 동경으로 향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불법체류자로 잡혀 1년간 형무소 생활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품고 주소도 모르는 역도산에게 편지를 쓴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다. 석방이 되고, 꿈에 그리던 역도산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인연을 맺어 김일은 체육관 생활을 하게 된다. 5개월간 김일은 밥 짓기, 빨래, 청소 등의 허드렛일을 하며, 남 몰래 레슬링을 연습한다. 그러던 어느날 역도산은 드디어 김일에게 운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혹독한 매질과 나무에서 쇠기둥까지 이어진 끔찍한 박치기 훈련. 김일의 이마는 부었다가 찢어졌고, 그 위에 딱지가 앉으면 굳은살이 생겼다. 남들이 다 하는 기술로는 일본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스승의 생각 때문이었다.

1958년 김일은 데뷔전을 치른다. 그러나 혹독한 훈련을 했음에도 패배한다. 매질이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김일은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된다. 스승이 준비해 놓은 김일의 새 이름 '오오키 긴타로(大木 金太郞)'.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는 사나이라는 뜻이다. 이후 그는 자이언트 바바, 안토니오 이노키 등과 함께 역도산 문하의 '세 날개 까마귀'의 삶을 살게 되는데…

'박치기왕 김일'이라는 제목의 이 동영상은 EBS의 교양 프로그램 '지식채널e'에서 제작한 것으로 지난 20일부터 방송된 것이다. '지식채널e'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네 차례,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에 방송되는 5분 분량의 짧은 프로그램으로 내레이션 없이 영상과 음악, 자막만으로 내용을 전달해, 시청자들과 언론으로부터 "기존 방송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형식으로 실험정신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박치기왕 김일'은 현재까지 2부가 방영되었고, 다음주에는 3부가 EBS를 통해 방영된다.

동영상 제공 = EBS 지식채널e
출처 : http://www.ebs.co.kr/HOMEPAGE/?progcd=0003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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