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미국인들 (강인선 기자)
밤은 깊어갔고 미국 사람들이 차례로 빠져나간 바에는 한국 사람들만 남았다. 시간은 흘러 오전 1시30분이 넘었다. 마감시간이 다가오니 초조하고 피곤해서 자꾸 하품을 하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이래서 한국은 선진국이 될 수 없다니까…”라고 중얼거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미국 사람들은 평일날 밤에 이렇게 노는 법이 없어요. 다들 일찍 집에 들어가 쉬고 일기도 쓰고 책도 읽고 그러지요. 이렇게 밤늦도록 술을 마시면 다음날 일을 어떻게 합니까.”
나도 그렇게 느꼈다. 미국 친구들, 알고 보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의 라이프 스타일을 갖고 있다. 가끔 취재원에게 혹시 기사 쓰다가 궁금한 게 있을 때 밤에 전화해도 좋으냐고 물어보는데, “10시에는 자니까 그 이전에 해달라”고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워싱턴 시내로 들어가는 주요 고속도로 중 출퇴근 시간에는 2~3명 이상 탄 자동차만 진입할 수 있게 한 도로가 있는데, 그 시간대가 대개 오전 6시30분~9시, 오후 3시30분~6시다. 오전 7~8시에 출근했다가 2~3시에 퇴근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일찍 자고 일찍 출근해서 주로 오전에 집중적으로 일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그날 하루의 일이 다음날 컨디션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러고 보면 미국 친구들과 ‘에잇, 기분이다. 오늘 신나게 놀아보자’고 갑자기 놀러나간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사니까 이 사람들 생활은 대체로 하루하루가 예측가능하고 그래서 재미없기는 하다.
한번은 뉴욕에 놀러갔다가 투자은행에 근무하는 친구 집에서 자게 됐는데, 이 친구는 다음날 입을 옷과 구두, 핸드백까지 다 색깔 맞춰 골라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전날 준비해둔 대로 차려입고 나서 쏜살같이 사무실로 달려갔다. 진짜 효율을 극대화한 삶인데, 그래서 승진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버는 모양이다.
자기 전에 책 읽는 습관은 어릴 때부터 배우는데 ‘아이에게는 베드타임(bedtime) 스토리가, 어른에게는 베드타임 리딩(reading)’이라는 말이 있다. 어려서는 부모가 침대 맡에서 책을 읽어주고 어른이 되면 자기 전에 독서를 한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늘 나오는 장면이다.
중요한 차이는 잠자리에 들어가는 순간의 마음가짐이다.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잠옷 갈아입고 이 닦고 책 좀 읽다가 잘 수도 있고, 술 마시고 인사불성이 된 채로 집에 돌아와 의식불명 상태로 하루 일과를 마감할 수도 있다. 전자는 ‘다음날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삶이고, 후자는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는 방식이다.
사실 나의 유일한 바람은 자기 전에 오늘 한 일을 간단히 메모하고 내일 할 일의 리스트를 만들고 책 세 쪽 읽고 자는 것이다. 하지만 습관이 안돼서 이 간단한 일이 거대한 도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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