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길의 자연이야기
▲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는 가물치. |
산후보혈(産後補血)에 좋다 하여 팔뚝만한 가물치 한 마리를 서울 경동시장 어귀에 있는 어물전에서 샀다. 집에 와 큰 솥을 훨훨 타오르는 연탄불에 얹고 지긋이 달군 다음 바닥에 참기름을 한번 두르고 녀석을 확 집어넣었다. 솥뚜껑을 후딱 덮고 두 손으로 꽉 누른다. 있는 힘을 다해서 말이다. 녀석이 얼마나 힘이 센지 온 솥이 덜커덕거린다. 솥바닥이 얼마나 뜨거웠을까? 그러다가 잠잠해진다. 죽은 것이다. 지금도 이마와 등에 땀이 쭉 밴다.
가물치는 우리나라 전국의 큰 강과 호수는 물론이고 작은 연못에도 서식(棲息, 식물은 ‘자생한다’라고 씀)한다. 서양사람들은 가물치가 뱀을 닮았다고 하여 ‘snake head’라 하고, ‘뱀이 변하여 가물치가 되었다’는 중국 전설도 있다. 원통형 몸에 머리는 긴 편이고 입이 크다. 몸은 황갈색이거나 암회색이고, 몸 전체에 검은색의 마름모꼴 반문(斑紋)이 퍼져 있다. 식성도 좋아서 작은 물고기는 물론이요, 개구리도 잡아먹으며 배가 고프면 제 새끼까지 마구잡이로 먹는다.
가물치가 가장 좋아하는 환경은 저수지나 늪과 같이 물의 흐름이 거의 없고, 물풀이 많이 나 있는 곳이다. 놈들은 물풀을 뜯어다 모아서 지름이 1m나 되는 둥지를 만들고 거기에다 알을 낳는다. 물론 둥지는 물 표면에 둥둥 뜨고 한 번에 낳는 알은 평균 7000여개나 된다.
그 드센 가물치가 일본에서 판을 친다면 믿겠는가? 1923년께 일부러 들여간 가물치는 일본 본토의 모든 평야지대에 널리 분포하게 되었고 근래는 홋카이도에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그냥 먹기도 하지만 주로 산후(産後)에 푹 고아먹는 그 힘 센 물고기, ‘kamuruchi’가 일본을 평정하였다. ‘죽일 놈’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가물치만이 아니다. 광활한 미 대륙의 생태계를 ‘아시아산 민물장어(드렁허리)’가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는다고 미국 생태학자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악어를 제외하면 천적이 없고, 그것들이 사는 늪지에선 배스나 불루길 등 미국 토착 어종의 씨가 말라 버린다”고 대서특필이다. 어디 그뿐인가.
어떻게 건너갔는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잉어가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에서 판을 친다. 미시시피강에다 처음 풀었던 잉어가 재빨리 삶터를 넓혀서 미네소타까지 북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해안에서 캐나다 밴쿠버 쪽으로 우리나라 미더덕(멍게의 일종)이 바다를 삼킬 듯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식물 중에 해안가에서 자생하던 갈대가 담수호인 오대호까지 퍼져 나가는 모습을 두고 이 지역 언론은 “아시아가 미국을 점령하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고 한다. 칡도 한몫 거들었다고 한다.
당하는 데 이골이 난 우리지만 이렇게 우리 것이 남의 땅에도 쳐들어간다는 것을 알리고자 이 글을 쓴다. 너무 기죽지 말라는 것이다. 동식물은 뿌리내리고 살면 거기가 고향이다. 사람도 넓은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한다. 그럼 그렇고 말고, 그래야지.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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