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에 사는 김민영(가명·여·20)씨는 2004년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자퇴했다. 공부가 재미없었다. 대신 주유소와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어머니는 “정신 차리고 제발 공부하라”고 했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다. 중3 때부터 사귀던 ‘동네 오빠’ 박민우(가명·현재 21세)씨와 손잡고 영화를 보러 다니는 게 좋았다. 그렇게 철없던 17살의 어느 날, 덜컥 임신을 했다.
◆철 없던 18살, 엄마가 되다
무서웠지만 병원에 갈 용기가 없었다. 남자친구에게도 말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임신 3개월을 넘겨서야 어머니에게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펄쩍 뛰었다. “너 지금 아기 낳으면 인생 다 포기해야 돼, 알아?” 아기를 떼자고 했다. 안 된다고 버티던 김씨는 결국 가출했다.
인천행 열차를 탔다. 친구 집에서 몇 달을 얹혀 지냈다.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안 남자친구의 부모가 수소문 끝에 김씨를 만났다. “병원 가서 임신중절 수술을 받자”고 했다. 김씨는 몰래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중절수술을 받고 싶지 않으니 말려달라”고 의사에게 부탁했다. 박씨 부모가 김씨를 끌고 병원에 가자, 의사는 “몸이 약해서 중절수술을 할 수 없겠다”고 말했다. 박씨의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포기했다. 배가 불러온 김씨는 2005년 9월 춘천에 있는 미혼모 보호시설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혼자 아기를 낳았다. 딸이었다. 핏덩이를 안는 순간, 목까지 울음이 차 올랐다. “그때 내가 엄마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 아기만은 지켜주고 살겠다고 결심했죠.”
남자친구 박씨가 보호시설에 찾아왔다. 군 입대를 앞둔 그는 “제대하고 꼭 아이랑 같이 살자”며 눈물을 글썽였다.
◆남의 집에 맡긴 아기
양가 부모들은 그러나 아기를 입양시키자고 했다. 완강하게 거부했지만, 김씨에겐 아기를 키울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타협 끝에, 복지기관이 소개하는 위탁 가정에 딸 은영(가명·현재 3세)이를 맡겼다. 남자친구가 입대한 뒤, 김씨는 하루 10시간씩 식당 보조와 청소 일을 했다. 하루를 꼬박 일해도 2만원 벌기가 힘들었다. 김씨는 “그때 처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고 말했다. 바쁜 와중에도 2주에 한 번씩 은영이의 얼굴을 보러 갔다. “우는 아기를 떼놓고 나올 때면, 명치 끝이 타는 것 같아서 하루 종일 냉수만 마셨다”고 했다.
고생하는 김씨의 모습에 박씨의 부모가 누그러졌다. 은영이가 돌을 맞을 무렵, 박씨의 부모가 찾아왔다. “지난 일을 잊고, 앞으로 예쁘게 살아라.” 결혼승낙을 받은 것이다. 작년 10월엔 휴가를 나온 박씨와 함께 혼인신고를 하고, 위탁 가정에서 은영이를 데려왔다. 은영이와 헤어진 지 꼭 1년 만이었다.
◆스무 살 엄마의 꿈
김씨는 요즘도 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일한다. 둘째 딸 은정(가명·1)이도 낳았다. 두 아이를 돌보면서 식당 일까지 하려면, 하루 세 시간도 잘 수가 없다. 한 달 내내 일해서 50만원을 번다. 기저귀와 분유 값만 한 달에 20만원이 넘게 든다. 김씨는 “아이들에게 사주고 싶은 걸 못 사주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한창 멋 부릴 나이인데, 얼굴에 로션 바를 시간도 없다. 남편 박씨가 꼬박꼬박 군대에서 보내는 안부편지는 큰 힘이 된다. 2008년 3월 박씨가 제대하면,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김씨는 “남편이 제대하고 네 식구가 오순도순 살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며 “그때까지 억척 엄마로 살겠다”고 말했다.
[원주=오윤희 기자 oyoun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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