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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자연·풍경 여행 및

월악산,충주호,일출,운해,보덕암

by 현상아 2007. 5. 13.

 

누군가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 그가 친구이거나 연인이던 혹은 심지어 가족의 일원 이라 해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소 오만한 발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조금 우울하다.


아마도 17년 전 여름 이었을 것이다. 거의 매주 도봉산을 오르내리던 때가 있었다.
회사 동료들과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간에 산행을 시작했다. 그 당시는 젊어서였는지, 혹은 매주 그 산을 오르내려서 그만큼 자신감이 있어서인지 눈 감고도 도봉산은 다닐 수 있다고 자신을 하였었고, 그럼으로 출발 시간이 늦은 것은 그다지 염려가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능선 정상에서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렇게 길을 잃고 산속에서 3시간 정도를 길이 아닌 길로 방황 아닌 방황을 하다가 겨우 어느 암자로 찾아 들어가 아침을 맞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자연이라는 것, 특히 산이라는 것이 매우 위험한 존재라는 당연한 진리와 산속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뿐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처음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물속에 들어갔을 때의 공포감과 조금 비슷하기도 했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지금 불현듯 그때의 그 산행이 떠오른 것은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당시의 나는 자연의 두려움에 대해서는 알았지만, 그 산에 대해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라 부르는 오만 방자한 발상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지금은 아마도 그런 자신을 돌이켜 볼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또 지나 지금의 나를 돌이켜 본다면 또 어떤 부질 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

나는 사랑에 빠져있고 그 사랑에 자신하고 있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내 사랑의 대상에 대해서 혹은 내 사랑의 방식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고, 아니 이제 알 만큼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또 나름대로의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이 산행을 마감하며 그러한 나의 모든 생각이 정말 오만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허상임을 알게 되었나 보다.

 


월악산 !! 영봉 정상에 서면 북으로 충주호가 내려다 보이고 맑은 날에는 치악산까지 보인다는 충주와 제천 사이에 자리잡은 해발 1097M의 힘 있는 산이다. 2년 전 이맘때 송계계곡을 출발해서 영봉을 거쳐 덕주사로 내려왔기 때문에(아직도 기억이 선한데) 이번에는 신륵사를 출발해서 영봉을 거쳐 보덕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도상으로 더 이상의 등산로가 보이지 않으니 나는 이산의 모든 코스를 밟아보게 되는 것이며, 당연히 이산의 모든 길을 정복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신륵사에서 영봉으로 오르는 초입은 상당히 완만하고 너무 정비가 잘 되어 마치 서울 근교의 유원지에 온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길 위로 떨어진 낙엽들은 반은 비에 젖고, 또 반은 아직 녹지 않은 눈에 덥혀 패잔병처럼 흩어져 있고, 그 떨어진 낙엽들을 쓸쓸히 바라보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태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경사가 가파르게 변하고 발자국 소리와 더불어 거친 숨소리만이 고요한 산속에 퍼지고 있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았음에도 춥지 않을까 하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을 만큼 날이 포근하다. 잠시 쉬어가는 모퉁이에서 뒤를 돌아보니 구름 사이로 빨간 해가 떠오르고 있었고, 그 해를 바라보는 가슴속에도 한줄기 빛이 들어오는 듯하다. 이른 아침 출발한 나의 하루가 충분히 길 것이고 비교적 여유롭게 이산과 이 자연을 만끽하리라는 설렘을 빨갛게 떠오르는 저 해가 증명해주는 듯하다.

 

 

마을에서 출발한지 2시간 30분만에 영봉 정상에 서게 되었다. 멀리 펼쳐진 능선과 구름들의 조화로운 모습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감히 내려다본다고 표현할 수 없는 그 경이로운 모습을 눈 속에 그리고 가슴속에 조용히 담아 갈 것이다.

 

 

해는 높이 떠서 세상을 비추고 있지만, 저 아래 구름 낀 골짜기 사이로는 아직 빛이 새어들지 못하는지 어둠과 적막함이 남아 잠든 듯 고요하다. 눈을 감고 얼굴로 그리고 몸으로 쏟아지는 초겨울 아침의 햇살을 그 순수하고 따스한 자연의 햇살을 느껴 보았는가? 그 햇살이 나의 몸을 덥히고 영혼도 덥히고 어느새 나는 그 산의 정상에서 혼자만의 자유로움에 충만하여 행복한 미소를 띄고 있다. 그래 나는 사랑에 빠진 것이다. 가슴으로 전해오는 지금 이 느낌이 사랑이 아니라면 세상에 사랑은 없을 것이다. 엉치뼈가 시큰해지며 가슴이 뭉클하게 내려앉는 그런 사랑만이 사랑은 아닌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 수 있는 믿음과 여기 산이 있고 또 내가 서있음으로 오로지 두 발과 시선만으로 연결된 그런 사랑도 사랑일 것이다.

 

 

보덕암으로 향하는 하산 길은 예상보다 조금 길었고 지도상에 나타난 것 보다는 많이 거칠었다. 영봉을 지나 가파르게 이어진 중봉을 넘는 길은, 적당히 내린 눈으로 보이는 것 보다 훨씬 미끄러웠고 벼랑으로 내려진 철 계단은 시골마을 허름한 이발소에 그림으로 걸렸다면 나름대로 멋있었겠지만, 그 길을 걸으며 잠시 고개를 내밀어 보니 아찔한 낭떠러지에 현기증이 나며 오금이 저려왔다. 어느 정도 내려왔을까? 오랜만에 왼쪽 무릎에서 통증이 느껴지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신하던 사랑이 이렇게 빨리 식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오르기 전 그 설렘과 두근거리는 호기심이 사라지고 새로운 그리움이 찾아 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제 이산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마주치는 산이 있고 마음에 담아둔 산이 항상 있고 그래서 나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다음에 이 길을 다시 찾아 이 칼끝 같은 벼랑에 다시 선다 해도 기억은 남아있으나 어쩌면 생소하게 낯선 설렘일지 아니면 기억하는 그리움일지 알 수가 없다.

 

 

저 아래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이따금 들려온다. 반갑다. 살면서 개 짖는 소리가 반갑게 들릴 수도 있구나!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보덕암은 작고 조용한 절이다. 스님이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 산을 오르며 지불하는 국립공원 입장료(문화재관람료)의 상당 부분을 절에서 떼어 간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나쁘지만, 그래도 이렇게 힘든 산행을 마치고 절로 들어서면 마음이 아주 넉넉하게 포근해진다. 그 산의 정상에서 만끽하던 햇살의 따스함과는 또 다른 여유로움과 모두를 용서해 줄 것 같은 너그러움이 절 속에 있는 듯하다. 등산화를 벗고 대웅전 옆 문으로 들어가 익숙한 방법으로 배를 올려본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떠올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돌이켜본다. 그들에게는 행복을 그리고 나에게는 겸손함을 달라고 빌어 본다. 아니 어쩌면 겸손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파렴치한 놈이다. 그리고 내 잘못의 용서와 이해를 구해본다.

 

 

서울은 늘 그렇듯이 복잡하게 나를 맞아준다. 코를 파고드는 정체 불명한 서울의 냄새에 저절로 인상이 구겨진다. 언젠가는 영원히 떠나서 사리라는 꿈을 꾸어 본다. 후후 용서를.. 나를 포함한 이 서울의 모든 잘못에 용서를 구해보며 이번 산행을 마감한다.

 

출처 :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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