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기에는 영락없는 섬이다. 하지만 섬은 아니다. 보름달을 닮은 둥그스름한 이 섬 아닌 섬은 주변을 거의 한 바퀴 휘감아 흐르는 물굽이와 금빛 모래톱으로 둘러싸여 육지 속의 섬마을로 보일 뿐이다. 모래 한 삽만 뜨면 섬이 될 것 같은 육지 속의 섬은 흔히 '물돌이동' 또는 '물돌이마을'로 불린다.
경북 북부에는 이러한 물돌이마을이 셋 있다. 예천 회룡포, 안동 하회마을, 영주 무섬마을이 바로 그것. 신기하게도 각각의 이름에서 그곳이 물돌이마을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묻어난다.
회룡포(回龍浦)는 용이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는 의미인 것 같고, 내 하(河) 돌 회(回) 자를 쓰는 하회(河回)는 글자 그대로 물돌이이고, 무섬마을의 무섬은 물섬에서 연유된 듯하다.
# 예천 회룡포
회룡포는 봉화에서 서서히 강폭을 넓혀온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비룡산과 맞닥뜨리면서 태극무늬 모양으로 원을 그리며 350도 휘감아 돌아나가면서 만든 마을이다.
회룡포를 우선 한눈에 보려면 신라 천년고찰 장안사에 주차한 후 전망대인 회룡대(해발 199m)에 올라야 한다. 신라가 삼국통일 후 국태민안을 염원하며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는데, 그 하나가 비룡산이며 나머지 둘은 금강산과 기장 불광산이다.
회룡대에서 바라본 회룡포는 규모 면에선 안동 하회마을에 미치지 못하지만 물이 돌아나가는 정도나 풍광만은 한 수 위라는 것이 중론이다.
회룡포의 원래 이름은 의성포. 의성포에서 회룡포로 개명한 사연은 이렇다. 구한 말 예천의 아랫고을인 의성에 살던 경주 김 씨들이 이곳으로 이주, 논밭을 개간하면서 자연스레 의성포라 불렸다. 하지만 이 의성포가 유명세를 타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의성군에 가서 물돌이마을을 찾는 웃지 못할 일이 잦아지자 예천군이 8년 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고즈넉한 강마을인 회룡포는 오래 전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인근의 경북선 철길과 함께 주인공인 은서와 준서의 어린 시절 고향으로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젊은 연인들의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박용성 문화관광해설사는 "지금도 드라마 '가을동화'에 나왔던 주인공의 거주지가 그대로 남아 있어 회룡대를 찾는 관광객들이 묻는다며, 그 집은 회룡대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오렌지색 지붕의 2층집"이라고 말했다.
회룡포는 지금도 경주 김 씨 집성촌으로 10가구 25명이 살고 있다. 회룡포의 면적은 대략 6만 평. 이 땅은 억겁의 세월 동안 강의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배수 잘 되고 보습력도 뛰어난 충적토라 흉년 한 번 든 적이 없는 천혜의 땅이어서 주민 모두 고소득 농민이다.
회룡대에서 20분 정도 능선을 따라 걸으면 삼한시대부터 격전지로 유명한 원상성에 닿는다. 이곳에선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물이 만나는 그 유명한 삼강(三江) 나루터도 볼 수 있다.
회룡포로 직접 들어가려면 이웃 개포면에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차를 이용하든지 차로 2, 3분 걸리는 강변으로 이동해 '뽕뽕다리'라 불리는 200m 길이의 철다리를 건너야 한다. 구멍이 숭숭 뚫린 건축용 철판(일명 아르방)을 두 줄로 깔아놓은 이 다리는 큰 비가 내리면 물 속에 잠겨 현대판 외나무 잠수교로 불리기도 한다.
낙동강이 태극 모양으로 돌아 흐르는 하회마을은 풍산 류 씨가 600여 년간 거주해온 집성촌.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지리적 여건 덕분에 외침을 한 번도 겪지 않아 상류층 기와에서부터 초가토담집에 이르기까지 잘 보존돼 마을 자체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돼 있다. 지난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문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또 매년 10월 문화관광부 선정 최우수 축제인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이 열릴 땐 특히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
하외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보려면 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강 건너편 부용대에 올라야 한다. 병풍처럼 우뚝 선 암벽인 해발 64m의 부용대는 화천서원 주차장에서 250m 정도 송림길을 산책하듯 걸으면 된다.
이곳에 서면 낙동강 물줄기에 포근하게 감싼 마을과 하얀 백사장 그리고 류성룡 선생이 북서풍을 타고 날아오는 모래로부터 하회마을의 기를 보호하기 위해 1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는 만송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용대를 찾으면 놓쳐선 안 될 두 곳이 있다. 입구 화천서원 뒤 옥연정사와 부용대를 기준으로 반대편에 위치한 겸연정사가 바로 그것. 옥연정사는 류성룡 선생이 만년에 기거하면서 임진왜란 전란사인 징비록(국보 132호)을 저술한 곳이며 겸연정사는 류성룡 선생의 형인 류운룡 선생이 학문을 하던 곳이다. 겸연정사는 화천서원 바로 뒤에 위치해 있고, 옥연정사는 부용대에서 산길로 10여 분 걸으면 만난다.
하회마을보존회는 지금보다 유량이 늘면 전통 나룻배를 띄워 만송정과 부용대 사이를 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영주 무섬마을
회룡포를 휘감아 도는 내성천이 이보다 상류 쪽인 영주 동남쪽 문수면 수도리에 일궈놓은 물돌이동이 무섬마을이다. 수도교를 건너 마을에 들어서면 유유히 흐르는 내성천 강물과 드넓은 금빛 백사장, 고색창연한 고가와 초가들이 조화를 이뤄 마치 어린시절 외갓집에 놀러온 듯한 정겨운 느낌이다. 부엌의 연기를 빼내기 위해 까치구멍집이라는 시설을 갖춘 경북 북부 산간벽촌의 가옥 형태가 눈길을 끈다.
하회마을처럼 풍수지리상 연화부수형으로 길지인 이곳에는 17세기 반남 박 씨들이 난을 피해 안동에서 영주로 피신을 오면서 정착했고, 그 뒤 선성 김 씨가 시집을 오면서 지금까지 두 성씨의 집성촌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무섬마을은 수년 전 전통마을로 지정돼 지금도 일부 보수 중이라 약간은 어수선하지만 찬찬히 둘러보면 옛 선비고을의 운치를 흠씬 느낄 수 있다.
전체 45가구 중 100년 이상 된 고택만 16동인데 경북 중요민속자료인 해우당(海愚堂)을 비롯,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것만 9채나 된다. 수도교를 건너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해우당은 고종 때 의금부 도사를 지낸 김낙풍이 기거한 곳으로, 한때 대원군이 이곳에 머물기도 했다. 해우당이라 적힌 편액은 대원군의 친필이다. 문화재 자료인 김뢰진 가옥은 조지훈 시인의 처가로 그의 시 '별리'는 이곳과 무섬마을을 무대로 쓴 것이다.
놓쳐선 안 될 명물이 하나 있다.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외나무 다리다. 예부터 이 다리가 외지로 나가는 유일한 통행로였지만 지난 1980년 수도교가 놓인 이후부터 거의 방치되다 2년 전 마을주민과 출향인들이 성금을 모아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다리를 복원했다. 이를 계기로 매년 10월이면 외나무 다리 체험행사를 개최한다.
# 가는 길&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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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전국을 달리는 청포집'의 청포정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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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는 상당히 먼 여정이다. 무리하면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지만 1박을 하는 것이 여유 있다.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 대신 물돌이 마을 세 곳만을 보려면 영주 무섬마을, 예천 회룡포, 안동 하회마을 순으로 둘러보는 것이 효율적이다.
우선 영주 무섬마을.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영주IC~봉화 영주 36번 직진~안동 방향 우회전~수도리 전통마을(16㎞)~영주 봉화 부석사 적서~수도리 전통마을~적서농공단지~문수~무섬마을 순.
무섬마을에서 회룡포로 가기 위해 수도교를 건너 왔던 길로 1㎞쯤 가면 원암 정류장에 다다른다. 이곳을 지나자마자 조제1리(샛골 잔드리)라 적힌 이정석을 끼고 좌회전. 역시 이정표 기준으로 ~예천IC 예천 보문~예천IC~군청 경찰서~군청 문경~점촌 문경 회룡포~문경 지보~회룡포~문경~회룡포 개포~용궁 회룡포~회룡포~회룡교 건너~장안사 주차장~회룡대 순이다.
회룡대에서 뽕뽕다리를 건너 회룡포로 들어가려면 회룡교 앞에서 우회전하면 백사장을 만난다. 외길이라 찾기 쉽다.
회룡포에서 안동 하회마을 가는 길은 회룡교를 건너 안동 예천 34번 924번 지방도~지보 개포~안동 예천 34번 좌회전~안동 서안동IC 영덕 34번~안동 풍산~직산터널~풍산읍 하회마을 병산서원~하회마을 병산서원 지보~하회삼거리 좌회전~하회마을 병산서원 순이다. 우회전하면 부용대(3㎞) 겸양정사 옥연정사다. 우회전할 경우 일직 방향 좌회전~부용대 방향 좌회전 후 바로 우회전~화천서원 주차장 순으로 가면 된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예천은 청포로 유명하다. 전국을 달리는 청포집(054-655-0264). 예천읍 내 한천 제방 인근 예천공공도서관 옆에 있다. 주 메뉴는 청포정식(7000원)과 탕평채(1만5000원). 50년 간 녹두를 전통 방식으로 고집해온 시어머니 밑에서 배운 며느리 양종래 씨가 10년 전부터 안살림을 맡고 있다.
청포에다 미나리 당근 계란 김 쇠고기 등으로 고명을 만들어 참기름과 양념장을 곁들인다. 여기에 된장찌개와 10여 가지의 밑반찬이 나온다. 이 중 녹두비지전은 일품이다. 전체적으로 맛이 담백하고 깔끔하다.
일부 사진 지자체 제공
글·사진=이흥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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