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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한국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니들스골프장(파71·6616야드)에서 끝난 US여자오픈은 한국 선수들의 잔치였다. 156명의 출전 선수 중 44명이 한국 선수였다. 이중 브라질 교포 안젤라 박이 공동 2위(3언더파), 박인비와 박세리가 공동 4위(2언더파), 신지애는 6위(이븐파)에 오르는 등 ‘톱 10’에 한국 선수 8명이 들었다.
컷(cut·2라운드까지 결과를 놓고 3라운드에 진출한 선수를 추리는 것)을 통과한 선수 가운데 한국 선수는 28명. 외국에서 태어난 선수를 제외해도 무려 25명이다. 반면 미국 선수는 24명에 불과했다. 유럽 선수는 겨우 7명만이 컷을 통과했고, 상위 15명 가운데는 한 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도대체 한국여자골프는 왜 이렇게 강한 것일까?
- 평균적인 능력으로 볼 때 한국인들은 체격과 힘이 좋은 서구인들을 이겨내기가 어렵다. 그러나 기술과 정신력을 위주로 하는 양궁이나 골프 같은 종목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호주의 간판스타 그레그 노먼은 “1m짜리 퍼팅의 성공 여부는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누가 더 강한가에 달려있다”고 했다. 그만큼 골프에 있어서 정신적인 면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일본의 프로골퍼인 무라구치 후미코(村口 史子)는 지난 5월22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한국여자프로골프가 강한 이유’라는 글을 통해 “한국선수들은 4시간 이상 소요되는 라운드에서 공에 집중하는 능력이 남다르다”고 분석했다. 그녀는 “김미현이 그 작은 몸집으로 LPGA투어에서 8승이나 올린 것은 자기 기분을 조절할 수 있는 ‘그 무엇’ 없이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Friedman)은 한국 여자 골퍼들의 열성과 부모의 관심, 대대로 물려받은 손재주를 강세의 이유로 꼽았다. 그의 말대로 한국 선수들이 LPGA투어에서도 가장 일찍 연습장에 나가고, 가장 늦게 연습장을 떠난다는 사실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호텔에 돌아와서도 카펫이 깔린 복도에서 퍼팅 연습을 한다. 김미현을 비롯해 많은 선수들이 동전 두 개를 겹쳐놓고 위의 동전만 퍼터로 쳐낼 수 있을 정도로 훈련에 훈련을 반복했다. 미국 선수들의 정신 자세와는 확연히 다르다. 켈리 로빈스(미국)는 지난 2003년 “골프는 단지 직업이다.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노는 것이지 죽기 살기로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1997년 상금랭킹 3위(91만907달러)였던 그녀는 7월5일 현재 상금랭킹 141위(1만1857달러)에서 헤매고 있다.
한국의 ‘골프 대디(golf daddy)’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씨는 ‘골프 대디’의 원조였다. 박세리는 “아버지는 항상 내가 더 강해지고 최고가 되길 원하셨다”고 했다. 실제로 박세리에게 골프를 가르친 사람도 바로 박준철씨였다.
일본과 미국에서 신인왕을 차지한 한희원 역시 아버지의 힘으로 버텼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한희원이 미국으로 갈 때 사람들은 ‘헝그리 정신’이 없어서 곧 포기할 것이라고 했다. 한희원은 3년을 참고 기다렸다. 출전권이 없어서 월요 예선을 전전하는 생활을 하다가 부녀는 나란히 장염으로 병원 신세까지 졌다. 하지만 66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뚝심’을 발휘했고, 당당히 스타 반열에 올랐다. ‘중고 밴’을 몰고 다니며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던 김미현과 아버지 김정길씨의 이야기는 TV 다큐멘터리로 소개되기도 했다.
한국 여자골퍼들이 선전하는 이유가 바느질과 젓가락 사용 등을 통해 길러진 탁월한 ‘손 감각’을 물려 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예민한 감각이 중요한 골프에서 한국 선수들이 앞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한국 선수들이 양적으로 늘어난 데는 박세리의 힘이 컸다. 그녀의 ‘성공 신화’는 어린 학생들과 그 부모들에게 새로운 ‘롤 모델’(role model)이 되면서 골프 열기에 불을 붙였다. ‘제 2의 박세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골프에 뛰어드는 선수들이 급증한 것이다. 박세리와 함께 뛰는 젊은 선수 중에서 “세리 언니는 내 우상”이었다는 선수가 상당수다.
현재 한국중고골프연맹에 등록된 중고생 골프선수들은 1800여명. 90년대 초반 200여명에 비하면 9배나 늘어났다. 등록하지 않은 채 골프를 배우거나 유학중인 청소년을 따지면 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일본은 90년대 초반 8000여 명에 달하던 중고생등록선수가 250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미국의 경우 골프를 칠 줄 아는 청소년은 2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실제 주니어연맹(초등학생포함)에 등록한 선수는 5200여 명 수준이다. 마음가짐도 다르다. 외국 선수들은 대부분 취미 삼아 골프에 입문하고, 또 방과후에 골프 연습을 한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최고 자리에 올라 ‘부와 명예’를 잡으려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필드와 연습장을 오간다.
이번 US여자오픈만에서, 최우수 아마추어 선수로 나란히 뽑힌 두 명이 한국국가대표 주장인 송민영(18·대전국제고)과 미국 아마추어골프계를 주름 잡는 제니 리(19)였다. 지난해 미LPGA투어 퀄리파잉스쿨을 수석으로 통과한 김인경 역시 일찌감치 유학을 떠나 미국 아마추어 무대를 휩쓴 뒤 올해 프로에 입문했다.
한국에서는 골프 선수로 키우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 온 가족이 선수에게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골프를 가르친다면 4억 원은 족히 들어갈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 선수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프로에 뛰어드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도 ‘투자 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미LPGA투어에서 뛰는 선수는 ‘가족 단위 사업’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족들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 골프 선수들의 부모들의 지나친 열성은 때론 ‘시샘’에 찬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은 지난 2005년 “한국 부모들은 연습장에 달라붙어 아이들이 화장실 외에는 못 가도록 감시하고, 퍼팅을 잘못하면 밥을 굶기는 사례까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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