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밀한 순간-책에 매혹된 여자들
Pieter Janssens Elinga(Dutch, 1623-1682), Woman Reading, late 1660s
네덜란드 화가 피터 얀센스 엘링가가 1660년대에 그린 그림은 독서에
푹 빠진 하녀를 보여준다. 아래의 렘부란트의 독서하는 노부인과 달리
하녀는 우리 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다. 그것은 세상에 등을 돌린 것을
드러내는 전통적인 표식이다. 하지만 그녀가 몰두하고 있는 것은 신의
말씀이 아니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펼쳐진 책을 쳐다보는 간접적 눈
길-화가는 어깨 너머로 관람자에게 권유한다-은동시대인에게 책을 읽
는 하녀가 어떤 종류의 책에 깊이 빠져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려준다.
그녀는 <유명한 명마 바이아르트를 얻고, 놀랍고도 진귀한 모험을
겪는 기사 말레스기의 아름다운 이야기>에 푹 빠져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당시에 대단한 인기를 모았던 기사소설에 속하는 중세
영웅 서사시를 네덜란드의 상황에 맞게 번안한 소설이었다.
그림의 세부 사항을 살펴보면 사람들은 화가가 이 하녀의 독서 태도가
경솔하며 적절치 않다고 비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일이 담김
쟁반은 벽 쪽에 바짝 붙어 있는 의자의 불룩 솟은 부분에 아무렇게나
성급하게 놓여져서 언제라도 미끄러져 떨어질 것처럼 보인다. 또 하녀
가 좀더 많은 햇빛을 받기 위해 위쪽에 난 세 개의 창 가까이로 옮겨 놓
은 의자에 깔려고 생각했던 방석은 부주의하게 바닥에 떨어져 있다.
여주인의 것처럼 보이는 실내화도 정돈되지 않은 채 방 가운데 흗어져
있다. 칼뱅주의 윤리가 요구하는 대로 주의 깊게 노동 의무를 수행하
는 대신에, 가능한 한 빨리 독서를 다시 시작하려는 열렬한 욕구를 품
고 있기 때문에 하녀는 신발에 걸려서 비틀거렸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녀가 중독 같은 독서에 다시 빠져들기 위해서 여주인이 집을 비운
시간을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여주인이 집을 나서면
가정의 질서가 즉각 위협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REMBRANDT, The Prophetess Anna (known as Rembrandt's Mother), 1631
렘브란트는 책을 읽는 노부인을 그렸다.(그림 속 노부인은 렘브란트의
어머니로 알려졌으며, 많은 사람들은 그 인물에서 예언자 안나를 보려
고 애를 쓴다.) 노부인의 무릎에 놓인 스스로 빛은 내는 것 같은 거대한
책은 히브리어로 보이는 문자 때문에 <구약성서>로 인식될 수 있다.
노부인의 주름진 손은 펼친 책 위에 평평하게 놓여 있다. 읽은 것이 힘
든 노인들은 이렇게 손으로 부분을 가리킨다. 또한 그 태도는 렘브란트
의 책 읽는 노부인의 성경의 말과 맺고 있는 친밀한 관계를 표현한다.
그녀는 자신이 읽은 글의 의미와 뜻을 마음 깊은 곳으로 받아 들이려
는 것처럼 보인다.
렘브란트는 평생을 노쇠 현상에 몰두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도 지나온
삶의 흔적과 점점 노쇠해지는 남녀 노인의 그림을 그렸다. 이 책에 실
린 그림을 그릴 때 그가 사용한 모델은, 널리 알려진 이 그림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과 달리 그의 어머니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렘브란트의
동시대인인 얀 리벤스도 책을 읽는 노파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같은
모델을사용했다. 물론 그녀의 코에 외알 안경을 걸친 모습으로 말이
다.
두 노파는 시대의 관습에 부합되게 성경을 읽고 있다. 렘브란트는 노파
의 몸을 풍성한 옷감으로 꼭꼭 감쌌다. 손과 주름진 얼굴만이 드러나
보인다. 커다란 성경 그 자체에서 빛이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책을 읽
을 때 글자를 주의해서 자세히 읽고 있느 노파의 주름진 손을 펴진 채
위에 놓여 있다. 책을 읽은 것이 힘겨운 나이 먹은 사람들은 이런 식으
로 읽어햐 할 줄을 표시한다. 이런 태도는 또한 책을 읽는 사람이 문자
와 맺는 친밀한 관계를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각과 반대로 노인이 품위를 지닌 것인가 하는 물음
에 대해서 고대 세계는 부정적인 답변을 했다. 노인은 국가를 위해 활
동을 했고 자손을 낳은 것으로 그저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간주되었
을 것이다. 그에 비해서 렘브란트의 그림은 노년이 지닌 의무와 위엄과
아주 늙은 남녀 예언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의 권위 사이에 존재
하는 직접적 관계를 만들어낸다. 경건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의무를 마쳤다는
사실에 노년의 위엄이 있는 것이다.
Jan Vermeer, Woman in Blue Reading a Letter, 1663-64
"베르메르, 이 신비로운 화가는 네덜란드 여인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냈다. 그는 그녀들이 지닌 차분함을 마술를 부려 불러냈다. 그의 그림
속 여인들은 밀치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감추어져 있고, 닫혀진 세
계를 다스린다. 그녀들이 읽은 편지는 불멸의 공식을 담고 있다."라고
네덜란드의 작가 체스 노터봄은 쓴 적이 있다.
푸른색 재킷을 입은 임신한 것처럼 보이는 한 여인이(눈에 보이지 않
는) 창가에 서 있다. 그리고 아마도 남편에게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편
지를 읽고 있다. 뒤쪽 벽에 걸린 네덜란드의 남동 지역을 나타내는 지
도는 편지를 보낸 사람을 암시하나다. 여인의 입술은 마치 편지의 내용
을 읊조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반쯤 벌어져 있다. 읽은 내용을 마음속에
담아두기 위해서 사용하는 집중력 혹은 편지의 내용을 해독하기 위해
서 들이는 노고에 대한 암시가, 편지를 읽는 여인을 모호하지만 친밀한
분위기로 보호막처럼 감싸고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장르화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전통과 같은 선상
에 있다. 덧없는 순간을 포착하고 귀중한 순간을 재현하는 것이 선배들
보다는 그들에게 훨씬 중요했다. 그림은 완벽한 순간을 찍은 사진처럼
되었다. 몸짓과 자세, 생기에 찬 시선이 여자다움이 지닌 비밀을 포착
하고 있다.
편지는 분명 연애편지다(열린 보석합 뚜껑 뒷면에 보이는 남자의 초상
화가 그 사실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림은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사랑의 순간(사랑의 눈빛)을 보여주려 할 뿐이다.
슈테판 볼만의 <책 읽은 여자는 위험하다> 中
아름다운 미술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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