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웰빙·미용·패션 및

웃음보다는 감정의 본질에 정직하게 ...

by 현상아 2007. 7. 27.

하지현의 '성질 연구'

웃음만 나온다고요? 화내는 연습 하세요

남들은 제가 명랑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요즘 저의 가장 큰 문제는 화를 잘 못낸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불쾌한 말을 들어도 그냥 웃기만 합니다. 그리고 집에 오면 며칠 동안 후회하며 끙끙 앓습니다. 머리가 텅 빈 채 바보같이 웃기만 하는 제 성격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화가 나도 웃기만 하는 바보 P)


겉으로는 명랑한 듯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골병이 들고 있는 당신, 괴롭죠? 언제나 웃으면서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넘어가주지만, 돌아서서 집에 오고 나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가라앉지 않으니 ‘형광등’이 따로 없지요. 화난 표정이라도 지었으면 나중에 찾아가서라도 항의할 수 있겠으나 웃는 얼굴만 보여줬으니 일종의 ‘면죄부’를 발행한 셈이군요.


어떤 갈등이 생길 때 이를 똑바로 의식하면 너무 괴롭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방어’라는 것을 합니다.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소 조지 베일런트 소장은 각기 성격이 다른 사람들을 수십 년 동안 추적·관찰해서 그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어기제를 발달수준별로 분류했습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딱 잡아떼는 ‘부정’, 폭력을 구사하는 ‘행동화’와 같은 방어는 미숙한 것이고,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식의 ‘승화’, 농담 한 마디를 던져주는 ‘유머’는 상대적으로 성숙한 방어기제로 봅니다. ‘웃음’도 성숙한 방어기제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최대한 성숙한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도록 교육을 받습니다. P씨가 당황한 상황에 웃기만 하며 애태우는 이유는 속마음까지 여물지는 못한 채 그저 겉으로만 성숙한 방어술을 구사하도록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p.s. 웃음은 욕을 퍼붓고 신체적 응징을 가하는 것보다 한결 나은 방식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방어술로 모든 공격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P씨는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잘 넘어가는 ‘웃음’이란 레퍼토리만 갖고 있습니다. 웃고 넘어갈 때 직접적 갈등은 사라지는 듯 보입니다. 아울러 ‘내가 너보다 나아’라는 자긍심도 심어줍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변화를 이끌 피드백을 주지는 못하고, 그의 잘못을 오히려 강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마구 대한다 해도 웃으며 넘어가주는 만만한 사람으로 찍힐 수도 있고요.


화를 내고 싫은 표정을 짓거나, 아예 무시하는 등 감정 반응을 하는 레퍼토리를 늘려야 합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연습이 많이 필요하겠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어색함을 극복하기 위해 일단 지금 느끼는 감정의 본질에 정직하게 가까워지려는 노력부터 시작하세요. 그렇다고 책상을 뒤엎지는 마시고요.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

::: 성질연구 이메일을 보내주세요

나든 남이든 간에 정신분석·심리상담을 의뢰하고 싶다면 weekend@chosun. com으로 내용을 보내주세요. 하지현 교수가 시원하게 긁어드립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