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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자연·풍경 여행 및

다랑이 마을에도 가을이...

by 현상아 2007. 10. 31.

다랑이마을에 가을이 깊었구나
[매거진 Esc]
아득한 섬들과 추수밭의 그림 같은 풍경, 거칠면서도 쓸쓸한 남해 바다를 느껴보자
한겨레  2007-10-18 오후 0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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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도의 한 농가에서 바라본 벽련포구 바다.


“남해 금산은 아름다운 바다였다. 아득한 섬들과 푸른 물은 들리지 않는 계면조로 펼쳐져 있었다.”

소설가 김훈은 13년 전 펴낸 <풍경과 상처>에서 남해를 ‘계면조’에 비유했다. ‘계면조’는 판소리의 조 가운데 하나로 5음으로 이뤄지며, 서양음악의 단조와 비슷하게 구슬픈 느낌을 준다. 10월에 접어든 남해는 과연 잘 조율된 악기처럼 바다 냄새와 색깔이 적절히 어울렸다. 그러나 남해의 멋을 계면조에만 비긴다면, 그것은 절반만 맞다. 금산 보리암에서 바라본 낙조만큼 사촌해수욕장 근처의 일출도 아름다웠고, 가천 다랑이마을은 쓸쓸해 보였지만 서포 김만중 유배지 노도의 바닷바람은 거칠고 신선했다. 말하자면 남해 바다는 살아 있었고, 적당히 남성다운 음조도 함께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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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6시 넘은 해질 무렵 가천 다랑이마을. 이미 추수가 끝나 다랑이는 황량하다.


논두렁 따위를 왜 찍습니까?

이달 11일 찾은 남면 가천 다랑이마을은 마지막 추수가 끝난 상태였다.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다랑이(산골짜기의 비탈진 곳에 있는 층층으로 된 좁고 긴 논배미)는 잦아드는 계면조 음계처럼 조금 쓸쓸한 느낌을 줬다. 그러나 황량해 보이는 땅 위와 달리 땅속에서는 벌써 마늘이 자라고 있었다. 억척스런 다랑이마을 주민들은 이모작 때를 놓치지 않는다. 다랑이는 이모작으로 경작되는데, 광고 사진에 여러 차례 등장한 것처럼 주로 벼농사를 짓고 벼농사가 끝난 뒤엔 마늘도 심고 시금치도 심는다. 주민들은 다랑이라는 표준어보다 ‘다랭이’라는 사투리로 말할 때가 많다.

김주성(50)씨도 벌써 마늘 심기를 끝냈다. 50년 전에 이 마을에서 태어난 김씨에게는 몸에 밴 일이다. 다른 4남매들처럼 그는 부지런히 다랑이를 오르내리며 자랐다. 김씨는 2002년 무렵 외지에서 찾아온 웬 사진가가 카메라를 들이댔던 것을 기억한다. 개간된 지 400년도 더 된 논두렁 따위를 왜 사진으로 찍으려는지 당시의 김씨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김씨는 “처음에는 마을이 아름답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다른 130여 주민들처럼 그에게 다랑이는 지겹게 일해야만 매달려 살 수 있는 곳이어서 더욱 그랬다. 지금도 다랑이는 기계화가 어려워 평지의 논보다 경작에 훨씬 품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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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산 보리암에서 바라본 남해.


김씨는 “외지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사진을 찍고 나서야 내가 살아온 마을을 유심히 살펴봤다”고 말했다. 지금 다랑이마을은 문화재청이 지정한 명승 15호다. 유명해진 뒤 외지인이 마을에 들어와 사는 일도 생겼다고 김씨는 전했다. 주민은 130여명인데 민박집만 15곳이 생겼다. 마을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씨는 10월에 다랑이마을에서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바다낚시와 근처 설흘산 산행을 꼽았다. 낚시꾼들은 배를 빌려 근해로 나갈 수도 있고 그냥 갯바위에서 낚시를 할 수도 있다. 10월부터 겨울까지 감성돔이 많이 잡힌다.



» 절 입구에서 보리암으로 내려가는 계단.


서포 김만중이 유배당했던 노도는 다랑이마을에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다. 다랑이마을에서 상주면 방향으로 해안길을 따라 차로 40분쯤 가면 벽련이 나온다. 벽련 포구에서 바라보면 삿갓 모양으로 생긴 노도는 배로 10분 거리다. 정기로 다니는 배편은 없고 벽련 포구에서 어선을 타고 들어갈 수 있다. 포구에 있는 팻말에 어선 연락처가 있다. 선착장에서 느린 걸음으로 20분 정도 걸어가면 김만중의 유배지 터가 나온다. 남해군은 그가 머물렀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초가를 재현해 놨다. 등성이에 둔 초가의 마루에서 바다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김만중은 숙종 때인 1688년 쉰셋에 사화에 연루돼 이곳에 귀양을 왔다. 김만중은 <구운몽> <사씨남정기> 등의 소설을 쓰면서 3년을 버티다 숨졌다. 노도 선착장에서 유배지로 가는 길은 산등성이에 걸쳐 있는데, 그곳에서 바라본 바다는 아름다웠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입이 즐겁다’는 말을 한다. 그 표현을 빌려 쓰자면, 눈이 즐거웠다. 낚시꾼이라면 노도 유료낚시터 입장료 3천원만 내면 손도 즐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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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선교에서 바라본 죽방렴. 죽방렴은 길이10m 정도의 참나무로 된 말목을 갯벌에 박아 만든 원시적 어업도구이다. 밀물 때 원통에 들어간 물고기는 썰물 때 나오지 못한다.


금산 보리암에서 10월의 일출을

김훈은 “내가 (이성복 시인의 시)‘남해 금산’을 읽은 후 (남해의) 그 바다와 섬들은 나의 마음속에서 생-멸의 공간, 또는 그 둘이 서로 삼투하는, 그래서 내가 살아보지 못한 어떤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빛깔을 바꾸어 왔다”고 <풍경과 상처>에서 마저 읊는다. 시인 이성복은 1986년에 펴낸 시집 <남해금산>에서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라고 노래했다.

시인과 소설가가 잇따라 상찬해 유명해진 남해군 상주면 금산의 보리암에서 일출을 맞는 것도 10월의 남해를 즐기는 한 방법이다.

남해=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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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거의 다 진 시간 사촌해수욕장 모습.



남해 여행 쪽지
가는 길 자체가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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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는 유인도 3개와 무인도 73개로 이뤄져 있으며, 정확한 행정구역은 경상남도 남해군으로 남해읍과 9개 면으로 나뉜다. 신라 신문왕 때인 687년 ‘전야산군’이란 이름을 얻었다는 기록이 처음 나온다. 357㎢의 좁은 지역에 ‘남해 12경’ 등 볼거리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 서울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여수·진주·사천공항 등을 거쳐 닿을 수 있고, 차로는 통영-대전고속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남해를 뭍과 연결해 주는 창선·삼천포대교는 지난해 건설교통부가 뽑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1위로 꼽힌 바 있으니, 남해로 가는 길도 이미 관광의 일부다. 부산, 진주 등에서 오는 시외버스도 많다. 특이한 요리법이 발달하지 않았으나 전복, 생선회 등 신선한 재료 자체가 특산물이다. 원시 어업도구인 ‘죽방렴’에서 잡은 멸치가 유명하다. 남해군청 문화관광과 홈페이지(namhae.go.kr)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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