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사랑을 위해 생명을 불태운 비운의화가 모딜리아니 [Amedeo Modigliani, 1884.7.12~1920.1.24]
유대계 명문의 아들로 태어나, 피렌체와 베네치아의 미술학교에 다닌 뒤,
1906년 이후는 파리에서 살았다.
1906년 파리로 도착한 그는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있던 몽마르트에 자리를 잡는다.파리에서 가장높은 곳에위치한 몽마르트는 도시개혁 이후에도
서민적인 용모를 가지고 있었고 전망도 좋고 방값도 싼데다
자유로운 까페 분위기 덕분에 젊은 예술가들에겐 메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여기서 그는 2년 먼저 와 있는 청년 피카소를 만난다....둘 사이에 진정한 우정은 싹트지 않는다
1908년 처음으로 앙데팡당전에 출품하였고,
다음해, 조각자 카마이노의 작품에 감명을 받았고
1909년 브랑쿠시의 권유로 조각제작을 시도하여,
니그로조각과 브랑수시식의 사실을 떠난 간결한
조형양식을 흡수 발전시킨 독자적 조각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장티푸스 폐렴등 안아파본 병이 없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못해서
1913년부턴 회화에만 전념을 하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늘 조각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고 한다. 어쨋건 모딜리아니는
초기회화에서 세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07년 있었던 세잔의 회고전에서 본 세잔의 표현주의는
그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주로 초상화만을 그렸고 보통 주위의 이웃이나 지인, 창녀들을 모델로 그렸다
1910년 <<첼로를 켜는 사람>>등 6점의 유화를 앙데팡당전에 출품하였으며,
1913년 퐁마르나스로 옮겨 키슬링,수틴등과 사귀었다.
에콜 드 파리의 뛰어난 작가로서 제1차 세계대전중에 많은 걸작을 남겼는데,
탁월한 데생력을 반영하는 리드미컬하고 힘찬 선의 구성,
미묘한 색조와 중후한 마티에르 등이 특색이다
1917년, 베르트 배유화랑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다.
초기에는 풍경화도 몇 점 그렸으나, 파리로 온 후부터는 초상화와 누드화가 대부분이다
특히 긴 목을 가진 단순화된 형태의 여인상은 독특하여,
무한한 애수와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품고있으며,
보티첼리나 베네치아파의 작풍과도 이어지는
섬세하고 우아한 이탈리아적 개성을 보여준다.
시인적 자질이 풍부한 다감한 미남자로 일화가 많으며,
만년에 잔느 에뷔테른과의 사이에 딸을 두었다.
생전에는 폴 기욤, 즈보로브스키 등 일부 화상이 원조했을 뿐,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가난 속에 과음과 방랑을 일삼다가
지중해의 뜨거운 햇빛과 고향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했던 그는
1920년 1.24 일 파리의 자선 병원에서 3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며
카라 이탈리아(그리운 이탈리아)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Self-Portrait Oil on canvas, 33½ x 23½,
브라질의 Mrs. Yolanda Matarazzo 수집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모딜리아니는 좀처럼 자화상을 그리지 않았다
그가 죽기 얼마전가 무엇을 느꼈던 것일까
그는 1919년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화폭 위의 화가는 가장 잘생긴 미남화가라는 칭호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왜소하다 빠레트위의 색깔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가라앉은 색깔이다.
선척적으로 약했던 그는 죽음의 공포에 짓눌려 살았던 것일까?
어쩌면그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생각도 못한채 굴종하며
겨우 술과 마약으로 미약한 반항이나마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으면서도 운명을 바꾸지 못한 채 죽음을
향해가던 비운의 모습이 그의 그림 속에 베어있다
Jeanne Hébuterne
모딜리아니는 세잔느나 달리처럼 자신의 아내를 즐겨 그렸다.
이 작품에서도 다른 초상화에서처럼 기다린 코와 목이 특징적이다.
파리의 몽마르뜨나 몽파르나스지역에 모여 활동하던
에콜 드 파리 사이에서도 로맨티스트로
유명했던 모딜리아니를 사랑했던 쟌느는 `얼굴이 길어 슬픈 여인'
이라는 그만의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원천이 되었다.
이러한 목이 길쭉한 인물 스타일은 아프리카 원시 조각이나 모딜리아니가
활동하던 시기에 유럽에서 유행한 일본의 우끼요에서 영향을 받고,
세잔느와 입체주의가 가미된 그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눈동자가 없음에도 관객은 그 눈동자를 읽을 수 있다.
검은 머리를 한 잔느가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쓰고 슬픈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핏빛으로 물든 것처럼 뒷배경이 슬픔을 노래한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느의 그림은 몇작품을 빼놓고는 모두가 처량하다.
어쩌면 모딜리아니는 잔느의 슬픈 운명을 보았을지 모른다.
자신을 만났기 때문에 슬픈 운명을 가져야했던 잔느.
모딜리아니가 정말 그녀를 사랑했다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지 말았어야하지 않았을까.
잔느의 초상화를 볼 때마다 그녀의아픔이 우리모두의것처럼 슬프게 느껴진다.
Portrait of Jeanne Hebuterne (1919)
이그림은 2004년 소더비경매에서
3130만달러(347억6000만원)가 넘는 가격에 익명의 입찰자에게 팔렸다.
1919년 무렵 모딜리아니는 파리에서 화가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잔느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좋아진 상황과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모딜리아니는 작품에 대한 열정과 끝없는 음주벽을 놓지 못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 잔느 에뷔테른느(1919년작)는 이때에 그려진 것이다.
임신한 잔느의 모습은 왠지 처연하다. 그 눈동자 없는 눈은
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담아 슬프게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사진의 인물작품에서 눈동자를 표현하지 않은 점은 매우 특이한데
오히려 푸른색만으로 표현한 눈의 표정은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영원으로의 응시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영화 모딜리아니 (2004 )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던 모디, 피카소.수틴.디에고 리배라.키슬링
우트리오등이 작품경연대회를 위해 출품준비를한다
피카소의 모딜리아니
악기를든 여인을그리다 소재의 한계성을 느끼고
잔느에게서 받았던 모자를보고 소재를 바꾸게된다
모딜리아니의 잔느
모딜리아니는 여성인물화에 눈을그리지않는것으로 유명하다
이작품이 그의 마지막으로 잔느의 눈을그려넣는다
아이의 출생신고를 간신히마친 그는 너무기쁜 나머지
오늘 작품 발표회 시간을 넘기고 만취 된다
발작크 동상옆에서 춤추던 그를 보았다네....
아주 즐거운 얼굴로 부드럽게 춤을추면서 선률에따라 움직였지
그의 미소는 너무도 눈이 부셨지...
그순간을 내마움속에 간직하고 공허한 나날을 위로 한다네
-오거스트 르노아르-
잔느와 모딜리아니는 각각 다른 묘지에 안장됐으나
1930년잔느 집안의 허락을 받고 잔느는 모딜리아니 무덤 곁으로 옮겨가게 됐다.
1906년 파리로 도착한 그는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있던 몽마르트에 자리를 잡는다.
Self-Portrait Oil on canvas, 33½ x 23½,
에콜 드 파리 사이에서도 로맨티스트로
유명했던 모딜리아니를 사랑했던 쟌느는 `얼굴이 길어 슬픈 여인'
이라는 그만의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원천이 되었다.
이러한 목이 길쭉한 인물 스타일은 아프리카 원시 조각이나 모딜리아니가
활동하던 시기에 유럽에서 유행한 일본의 우끼요에서 영향을 받고,
세잔느와 입체주의가 가미된 그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3130만달러(347억6000만원)가 넘는 가격에 익명의 입찰자에게 팔렸다.
그리고 잔느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좋아진 상황과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모딜리아니는 작품에 대한 열정과 끝없는 음주벽을 놓지 못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 잔느 에뷔테른느(1919년작)는 이때에 그려진 것이다.
임신한 잔느의 모습은 왠지 처연하다. 그 눈동자 없는 눈은
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담아 슬프게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사진의 인물작품에서 눈동자를 표현하지 않은 점은 매우 특이한데
오히려 푸른색만으로 표현한 눈의 표정은 모든 것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영원으로의 응시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용모가 수려했던 모딜리아니역의 Andy Garcia 와
쟌느의 외모와꼭닮은 Elsa Zylb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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