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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구)세상사 이모저모

국과수 홍일점 법의관 박혜진의 '부검' 이야기

by 현상아 2008. 1. 31.
“유영철 ‘딤채’ 매장법, 정교한 신체 절단술엔 우리도 놀라”
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법의관 국과수 홍일점 박혜진

 

 

국내 유일의 여성 법의관…1년에 사체 300구 부검
“낮에 부검한 시신 영혼이 꿈에 나타나 사인(死因) 일러준다면…”
“교통사고, 의료사고는 부검으로 진상 밝혀지는 경우 많아”
“부검 후 점심 맛있게 먹지만, 냄새 때문에 괴로워”
“입회한 유족, 두개골 열고 얼굴 절개할 때 가장 고통스러워해”
정다빈 자살 이후 국과수로 밀려든 ‘목욕타월 자살’ 시신들
음모와 쓸개즙으로 마약복용 여부 정확히 파악
 
 

 

오후 5시.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을씨년스러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에 해가 지면서 찬바람까지 쌩쌩 분다. 인근에 주택가와 상가가 빼곡히 들어서 있긴 해도 국과수를 떠올리면 시신을 해부해 검사하는 부검(剖檢)광경이 떠올라서 그런지 으스스한 느낌부터 앞선다.

국과수 관계자들은 “국과수 본원을 20년 전 서울의 서쪽 끝인 양천구 신월동의 국유지 야산에 지은 이유는 시민의 반발을 피해서였다”면서 “고속도로 사이에 있는 건물이라 북향이 될 수밖에 없어서 더 추운 것 같다”고 말했다.

부검실을 지하에 둔 법의학과 별관 건물은 요즘 한창 개축공사 중이다. “제발 부검하는 건물 같지 않게 지어달라”는 법의관들의 요구가 적극 받아들여졌는지 사무실로 쓰는 법의학과 2층은 흰색 원자재를 사용해 비교적 깔끔하고 평범한 사무실로 변신했다. 특히 예전에 지하 부검실로 내려가는 기괴한 통로이던 좁고 어두운 철제 나선형 계단이 사라졌다.

“여름이 가장 문제예요. 지하 부검실에서 냄새가 올라오거든요. 시체 썩는 퀴퀴한 냄새가 사무실까지 올라온다고 생각해보세요. 정말 미칩니다. 우리야 만성이 돼서 괜찮다지만 어쩌다 방문하는 분들은 ‘이게 무슨 냄새냐’고 물어요. 공사하는 분들께 ‘냄새가 절대로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공사가 잘 됐는지는 여름이 돼봐야 알 수 있겠죠.(웃음)”

7년 간 2000여 명 부검

부검의 박혜진(朴彗鎭·38)씨. 4급 서기관급 법의관으로 국과수 부검의들 사이에선 홍일점으로 통한다. 그가 국과수에서 일을 시작한 건 7년 전. 해부병리학을 전공한 남자 레지던트도 기피하는 사체 부검을 여성이 하겠다고 나선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지금까지 박 법의관의 손을 거쳐 감정(鑑定)된 시신만 2000여 구. 그는 과학수사 파트에서 철두철미하고 꼼꼼한 베테랑 부검의로 알려져 있다. 부검을 하는 광경이 떠올라서인지 인상이 깐깐하고 독해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크고 곱상한 눈매에 서글서글하고 시원한 인상이었다. 말문이 트이자, 아무리 처참하게 죽었거나 부패한 시신이라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부검할 대범한 성격이란 걸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 어떤 계기로 이 일을 하게 됐습니까.

“레지던트 때 교수님을 따라와 도운 적이 있어요. 10년 전만 해도 부검의가 턱없이 모자라 병리과 교수들이 국과수에 들어와 부검을 했어요. 교수가 부검을 하면 레지던트들이 따라와서 허드렛일을 맡죠. 제가 도운 건 아주 간단한 부검이었는데, 옆 부검대가 시선을 끌었어요. 칼에 찔려 죽은 시신을 난생 처음 봤거든요. 집도하는 분이 ‘칼이 어느 방향으로 들어왔고, 어떤 칼로 찔렀으며, 흉기는 두 개다’라고 설명하시더군요. 다음날 신문에 전날 부검을 했던 사건 기사가 나왔어요. 법의관의 설명이 고스란히 해설기사로 나왔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묘한 흥미를 느꼈어요.”

부검실 시설. 부검대와 수도시설이 보인다.

박혜진 법의관은 이화여대 의대 89학번이다. 여성이 선호하는 피부과, 내과 등을 선택하지 않고 해부병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이대 의대에서는 피부과를 가려면 1, 2등을 다퉈야 했어요. 외과의사도 싫었어요. 출퇴근이 일정하지 않거든요. 여자들이 의외로 병리과를 많이 선택하는 편이에요. 병리과에서는 위나 간 같은 장기 조직을 떼어 판독하는 일을 하는데, 환자를 직접 대하지 않아도 되고 맡은 일만 하면 되거든요. 출퇴근 시간도 정확하고요. 전 꿈이 현모양처였어요. 가정생활에 방해가 안 되는 과(科)로는 병리과가 ‘딱’이었죠.”

▼ 대학병원 병리학실에 근무하면 월급이 꽤 많을 텐데, 왜 국과수 부검의가 됐나요.

“의사 세계는 좁아요. 하루 종일 병원 판독실에 앉아 장기 조직만 들여다보는 게 지겨운 일이잖아요. 적성에 안 맞다고 생각한 거죠. 또 병리과엔 여자가 많아 시누이나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 의사들이 있을 테니 치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월급은 대학병원이 훨씬 많죠. 교수 수당까지 합치면 월 900만~1000만원은 받을 수 있죠. 하지만 좁은 의사 세계에서 살고 싶지 않았어요. 답답하잖아요. 전 깨어 있고 싶었어요. 월급은 적지만 국과수에 잘 왔다 싶어요.”

너도나도 공무원을 선호하는 추세라지만 한 달에 1000만원을 벌 수 있는 직장을 마다하고 300만~400만원짜리 월급쟁이를 선택하는 건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 듯하다. 매일 사체를 만져야 하는 법의관 생활이 싫증나진 않을까.

“사명감이나 소명의식보다는 책임감이겠죠. ‘이 시신에 대해 내가 보는 게 끝’이라는 책임감이랄까요. 이 죽음에 대해 내가 마지막으로 말해준다고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무거워요. 부검을 하지 않으면 억울하게 묻힐 시신이 얼마나 많겠어요. 대부분 ‘술에 취해 자는 줄 알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죽어 있더라’고 말해요. 부검하면서 목 부분에 혈관이 끊어져 있거나 뺨을 심하게 맞았거나 머리를 가격당한 흔적을 찾게 될 때가 많아요. 맞으면 멍이 시퍼렇게 든다고 생각하지만 멍이 전혀 없는 경우도 더러 있어요. 죽음과 동시에 충격을 받았다면 멍이 전혀 없죠. 예를 들어 오토바이 사고나 차 사고로 죽었는데 몸에 멍 하나 없는 경우가 있어요. 만약 그 사람이 살았다면 다음날 온몸에 멍이 들겠죠. 멍도 살아 있어야 시퍼렇게 드는 겁니다.”

“죽은 자는 진실한데 산 자가 거짓말”

국과수는 변사체의 사인(死因)만 감정하는 기관이 아니다. 법과학 수사 감정기관인 국과수는 크게 두 분야로 나뉜다. 약·독물 분석과 마약분석, 화학분석, 화재 감정, 교통사고 분석을 담당하는 법과학부와 변사체 사인 감정, 유전자 분석, 범죄심리 분석, 문서·영상 분석을 포함한 법의학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법의학부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부검은 범죄사건의 과학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모든 죽음은 병사(病死)가 아니라면 법의학적으로 사인이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법의관은 죽은 자의 사법적 사인을 가리기 위한 최일선의 감정사인 셈이다. 한마디로 ‘사람이 왜 죽었나’를 밝혀내는 직업이다. 질식사인지 약물중독인지 사인을 밝혀야 하고, 자살인지 타살인지 병사인지 의료사고인지 죽음의 종류를 알아내는 일련의 조사를 수행해야 한다.

국과수를 거치는 사체는 한 해에 7000여 구. 서울 신월동 본소를 비롯해 서부(광주)분소, 동부(원주)분소, 중부(대전)분소에 재직 중인 법의관은 총 17명이다. 전국의 사건사고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라는 지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소장과 보직자가 부검에 전념할 수 없는 실정을 고려하면 겨우 12, 13명의 법의관이 한 사람당 연간 300~400구의 사체를 부검하는 실정이다.


 

최근 휴대전화 폭발로 추정되는 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업무상 과실치사로 사망했다는 것을 밝혀낸 것만 보더라도 과학수사에서 부검이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만하다. 부검이 아니었다면, 채석장에서 유압 드릴 중장비 차량의 후진 상태를 뒤에서 봐주다 치인 것을 휴대전화 배터리 폭발에 따른 사망으로 종지부를 찍을 뻔했다.

“(몸을) 열어보면 알 수 있어요. 배터리 폭발로 사망했다는 사람이 외부 충격에 의해 심장과 폐가 완전히 파손돼 있었어요. 심장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 있었고요. 또 심한 압력과 충격으로 척추가 절단돼 있었죠. 휴대전화 배터리가 폭발해서 발생한 손상이라고 볼 수 없었어요. 부검을 하지 않았다면 엉뚱한 사인으로 죽었다고 했겠죠. 휴대전화 회사만 원성을 들었을 거예요.”

박 법의관은 “죽은 자는 진실한데, 늘 산 자가 거짓말을 한다”면서 “교통사고 사망자일 경우 부검을 통해 뜻밖의 진실이 밝혀지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여러 사람 중 한 명이 살아남았을 경우 산 사람이 거짓말을 하더군요. 교통사고 사망자 감정이 골치 아픈 이유죠. 하지만 부검으로 진실에 근접할 수 있어요. 법의학적 지식과 교통공학적 지식을 모두 동원해 사망자의 손상 원인을 밝히는 거죠. 이를테면 자동차의 내부 구조물과 유사한 상처는 없는지, 안전벨트로 인한 부상이라면 어느 쪽 좌석의 것이었는지 등을 고려하면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운전자는 사고를 예견할 수 있지요. 사고 직전에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아주 세게 밟게 돼요. 이는 운전자의 오른쪽 신발 바닥이나 다리의 손상에서 드러나요. 브레이크를 밟은 쪽 신발바닥에는 브레이크와 같은 문양이 선명하게 찍혀 있어요. 또 브레이크를 급하고 심하게 밟은 충격으로 오른쪽 다리가 골절되는 경우가 많죠.”

수면 중 급사, 99%가 남성

‘부검’ 하면 대부분 사건에 연루된 변사체를 떠올리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평범한 남성이 잠자다 원인불명으로 급사해 부검대까지 오는 게 그런 예다.

“여자가 급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100명 중 99명이 남자라고 보면 됩니다.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는 것은 참 위험해요. 푹신한 베개나 침대에 얼굴을 묻고 자는 버릇이 있는 사람이라면 과음한 날은 주의하는 게 좋죠. 심장이 병적으로 커진 상태이거나 부정맥 같은 심장질환을 가진 사람은 특히 위험해요. 문제는 이런 심장질환은 본인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또 코골이 남성도 위험해요. 코를 심하게 고는 남성이 술을 많이 먹으면 자다가 사망할 수 있어요. 자면서 코를 골다가 호흡이 끊어지는 일이 생길 수 있거든요. 수면무호흡증이죠. 정상적인 상태라면 수면무호흡증이 발생해도 체내 혈중 산소농도가 낮아질 경우 뇌의 호흡중추에서 다시 호흡을 시작하도록 해줘요. 그런데 과다한 음주상태, 거기다 코까지 심하게 골면 그런 기능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박 법의관은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에 개선돼야 할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심근경색에 대비해 보험을 드는데, 심근경색이라는 진단을 받으려면 심장에서 심근경색이 일어난 부위가 확인돼야 해요. 심장발작 후에 적어도 6시간 정도는 살아 있어야 심장에서 심근경색이 일어난 부위가 현미경 검사로 확인돼요. 바로 사망할 경우 심장의 변화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심근경색이란 말을 못 써요. ‘관상동맥경화에 의한 급성 심장사’로 판단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심근경색에 적용되는 보험금을 못 받아요.”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검을 두 번 죽는 것으로 여겨 끔찍해 하지만, 사인을 밝히는 건 살아남은 사람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람이 자다가 갑자기 죽으면 대체로 그냥 장례를 치러요. 하지만 타살만 부검하는 게 아닙니다. 서양에선 부검이 일반적이에요. 5대 강력사건의 피해자만 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죽음도 사망 원인을 정확히 알기 위해 하죠. 부검하면 다 나오거든요. 평소에 병이 있었다던가, 혹은 암 덩어리가 진행되던 사실이 확인될 수 있어요. 암으로 사망했다는 사인이 나오면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만약 사인이 심혈관계 질환이나 뇌혈관계 질환으로 나오면 과로사로 인정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 유족이 회사에서 더 돈을 받아낼 수 있잖아요. 부검은 때로 죽은 사람의 한을 풀어주기도 합니다.”

손상 위주 부검은 사체 완전 해부

 

부검 중인 박혜진 법의관.

▼ 요즘 의료사고 사망자의 부검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고 들었습니다.

“폭증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의료사고는 의료인의 과실을 뜻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진료를 받다가 예상치 않게 사망하는 경우 일단 의료사고라고 합니다. 부검을 하게 되죠. 부검의가 사망자와 관련된 각종 진료기록을 검토해 부검한 후에 부검감정서를 제출하면 수사기관은 이를 토대로 수사를 진행해요.

환자의 사망에 흥분한 유족이 무조건 ‘담당의사의 과실’이라며 병원 업무를 마비시키거나 의사를 폭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한번은 산모가 부검대에 올라왔어요. 분만하고 바로 사망했더라고요. 유족이야 담당의사가 잘못했다고 난리를 쳤죠. 부검해보니 양수색전증이었어요. 양수색전증은 아이가 나오면서 양수 성분이 산모의 혈액순환계로 들어가는 거예요. 혈액순환계로 흘러들어간 양이 너무 많으면 손도 못 쓰고 바로 사망할 수 있어요.

또 요즘 관절수술 많이들 하잖아요. 한번은 나이 든 남자가 양쪽 무릎에 무릎관절 치환술을 받고 회복실로 옮겨진 후 죽었어요. 수술한 부위의 출혈이 엄청났습니다. 유족은 의사가 수술을 잘못했다고 펄펄 뛰었겠죠. 막상 부검을 해보니 지방색전증이라고 해서 뼈에 있는 골수성분이 혈액순환계로 들어간 겁니다. 이 또한 멀쩡하게 회복되다가 갑자기 사망할 수 있거든요. 척추수술한 후에도 이런 사고가 있을 수 있어요. 요즘 의사를 불신해 환자가 사망하면 무조건 의료사고라고 우기는 경향이 있어요.”

한 사람을 부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20분에서 길게는 2시간이 걸린다. 매일 아침 9시10분이면 부검이 시작된다. ABC조로 나뉜 부검팀은 사건의 내용에 따라 분배해서 법의학과 지하의 두 개 방으로 흩어진다. 형사가 들어오면 사체의 신원을 파악한 뒤 사건 개요에 대해 브리핑을 듣는다. 부검의는 외상부터 철저하게 살핀다.

사건 개요가 간단할수록 부검도 간단하다. 간단한 부검은 복부를 여는 내경검사로 바로 들어가서 필요한 장기만 보고 봉합하면 된다. 20여 분이면 끝난다. 반면 손상 위주로 부검을 하면 말 그대로 사체를 100% 해체하는 끔찍한 광경이 벌어진다.

“타살이 분명한 사체일 경우 손상 위주로 부검을 해요. 겉 피부부터 차근차근 점검하는 거죠. 예상치 않았던 상처가 나올 수 있거든요. 겉 피부가 멀쩡해도 속을 봐야 하기 때문에 팔 다리 전신을 한 층씩 절개해나갑니다. (부검 때) 유족이 한 명 들어오는데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게 두개골을 열고 얼굴 부분을 층층으로 절개해나갈 때입니다. 형사들 중에도 보다가 기절하는 사람이 있어요. 죽은 사람은 산 사람처럼 피가 많이 나오지 않아요. 하지만 배 안에는 장기가 파열되면서 피가 고여 있을 수 있습니다. 국자 모양의 기구로 고여 있는 피를 떠내고 장기를 하나하나 다 꺼내서 잘라요. 보통 1cm 간격으로 자르도록 돼 있는데 사건마다 달라요. 발에 차인 흔적을 찾으려면 장을 잘게 잘라봐야 하겠죠. 보통 혈액이나 위 내용물을 채취하는데, 마약이 의심되는 경우도 있어요. 모발과 음모, 쓸개즙으로 마약을 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음모로는 마약을 했는지, 머리카락으로는 언제부터 했는지 알 수 있어요.”

유영철 사건 때는 공중탕 달려가

박 법의관의 말대로 죽은 자는 정직할까. 긁힌 자국이 위에서 아래인지, 아래에서 위인지 상처에 묻은 이물질의 종류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망할 당시의 광경이 생생하게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법의관의 철칙이 ‘절대 소설 쓰지 않는다’입니다. 법의학 실무 경험이 적으면 사건을 해결하려는 욕심이 앞서요. 무리하게 소설을 쓰게 되는 거죠. 예를 들면 둔기로 머리를 가격당해 죽었다면, 강력사건 경험이 부족한 경찰관들 중에는 간혹 아귀를 맞추려고 소설을 써오는 사람이 있어요. 거기다가 부검의가 ‘둔기로 때린 다음에 재떨이로 한 번 더 때리고…’ 이런 식으로 결론짓는다면 재판이 진행되면서 문제가 생겨요. 피고인이 ‘난 재떨이 사용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할 경우 재떨이에서 유전자가 안 나오면 ‘증거 불충분’이 됩니다. 아주 위험한 일이죠.”

부검실 건물 복도에 전시된 신체 장기 표본들.

▼ 수술과 달리 부검할 때는 냄새가 심하다고 하던데요.

“부검하는 사람은 잘 못 느껴요. 오로지 ‘왜 죽었지?’에 몰두하니까 그런가 봐요. 부검이 끝나자마자 점심시간인데요. 밥을 맛있게 먹어요. 팔자가 아니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그런데 부검 후에 냄새가 옷에 배여 죽을 지경입니다. 부검이 끝나면 바로 옷을 갈아입어요. 아예 여러 벌 갖다놨어요. 머리카락도 문제죠. 머리카락에 밴 사체 냄새가 통 가시질 않거든요. 샤워를 해야 되는데, 여긴 여자 샤워시설이 없어서 본관 건물까지 가서 샤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가 않아요.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 때는 견디다 못해 근무 중에 국과수 근처 공중탕으로 달려갔죠.”

▼ 법의관이 된다고 했을 때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요.

“전 결혼하고서 국과수에 왔어요. 남편이 검사이기 때문에 적극 찬성했죠. 사실 부검을 하면서 법률적 지식의 필요성을 절감하거든요. 그때마다 남편이 도움이 돼요. 형사적 부검은 자살인지 타살인지 사고사인지 가려줘야 하잖아요. 법의관의 임무는 부검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부검한 결과를 문서로 적어야 하고, 단순히 ‘머리 손상’이라고 적는 게 아니라 한 줄 더 써야 해요. ‘넘어지면서 바닥에 부딪혔을 때 생긴 손상이다’라고.”

박 법의관은 “부부가 비슷한 일을 하니까 참 좋더라”고 했다.

“제가 레지던트 할 때였어요. 남편은 제가 의사라고 이것저것 자주 물어봤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부검에 대한 궁금증이죠. ‘만일 여자를 칼로 찔러놓고는 그 여자를 살리려고 인공호흡을 했다고 주장한다면,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지?’라고 묻는데, 그땐 몰라서 대답을 어리뜩하게 했어요. 지금은 정확하게 답할 수 있죠. ‘숨이 덜 끊어진 상태에서 일반인이 당황해서 인공호흡을 하면 공기가 막 들어간다. 공기가 폐나 식도로 들어간 흔적 때문에 단번에 알 수 있다’라고.”

그는 법의관에게 법률적 지식이 필요한 이유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싸우다가 사망했다고 쳐요. 법의관이 사인을 ‘머리 손상’이라고 하면 수사관은 ‘때린 건가요, 넘어진 건가요’ 하고 자꾸 물어오겠죠. 법률적 지식이 없으면 왜 자꾸 귀찮게 묻는지 답답할 거예요. ‘사인만 밝혀주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법률적 지식이 있으면 수사 진행에 도움이 되도록 자세하게 답을 해줄 수 있죠.”

“피가 저만큼은 안 나올 텐데…”

▼ 부검을 하다가 세균에 감염될 위험이 크겠네요.

“그럼요. 장화 신고 수술복 입고 들어가지만 늘 조심스러워요. 특히 결핵은 정말 위험하거든요. 폐를 보면 결핵인지 알 수 있는데, 폐결핵은 공기로 전염돼요. 공기를 마시면 끝나는 거죠. 부검 때 미세하게 장기를 단면으로 잘라내거나 늑골을 절단하다가 종종 칼에 손이 베이거든요. 사체의 피가 제 손에 묻을 땐 정말 찜찜해요. 결핵환자를 부검한 날은 집에 가자마자 목욕탕으로 직행해요.”

▼ 법의관에겐 어떤 직업병이 있습니까.

“이제 7년쯤 되니 덜해요. 예전에는 꿈에서까지 시달렸어요. 자다가 가위에 눌리면서 ‘일어나’ ‘저리 가’ 하면서 잠꼬대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낮에 부검한 사체가 꿈에 나타나는 거예요. 부검을 하다가 사인이 안 나오면 덮으면 되는데, 계속 연연한 탓이지요. 영혼이란 게 있어 왜 죽었는지 말해주면 좋겠다는 심정이에요. 또 TV나 영화를 볼 때도 스토리보다 장면 하나하나에 집착해요.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면 ‘피가 저만큼은 안 나올 텐데’ ‘저 정도 맞으면 어느 장기가 얼마나 파열되겠다’ 하는 식이죠. 심지어는 아이가 차가 오는 쪽으로 달려가면 ‘위험하다’는 생각보다 충돌사고를 당한 몸 상태가 떠올라요. 어디가 어떻게 망가졌겠다 하고. 웬만하면 머릿속에 넣어두고 싶지 않은데 쉽지 않아요. 일상생활에서 부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아요. 떨쳐버리고 싶어요.”

▼ 여성이라 더 꼼꼼하고 섬세하게 부검할 것 같은데요.

“그건 아니에요. 남녀 차이가 아니라 성격 차이예요.”

최근 국과수 지역분소들이 인력 부족으로 소임을 다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부산 영도구에 있는 국과수 남부분소의 경우 작년에 부검을 하는 법의관이 모두 사직서를 내 부검을 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남부분소는 법의관 한두 명이 연간 500건에 달하는 사체의 부검과 검안을 담당할 정도로 살인적 격무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부검할 수 있는 건물을 제대로 지어주지 않아 1993년 설립 이래 줄곧 의과대학의 병리학실을 빌려 부검을 했다. 이른바 ‘보따리 부검의’였다.

“10년 동안 건물 좀 지어달라고 애원했어요. 그런데 안 들어준 거죠. 부검의가 절망하는 건 낮은 보수 때문만은 아니에요. 일을 인정받지 못할 때입니다. 예산이 지원되지 않는 것은 국과수가 예산 편성이나 조직 구성에서 독립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내놓아도 우리 힘으로는 실행에 옮길 수 없어요.”

의사가 법의관을 기피하는 건 열악한 환경과 박봉 때문이다. 2006년 17명을 채용하는 법의관 공채에 1명만 지원하더니 2007년의 경우 10명 채용에 단 1명도 지원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 해 7만여 건에 달하는 변사사건이 발생하는데 겨우 10% 미만이 부검대에 올라간다. 선진국에선 변사자의 30~50%를 부검한다.

“법의관은 해부병리학을 전공한 의사죠. 4급 서기관이 되려면 전문의 자격이 있어야 해요. 현재 17명 중 16명이 박사학위 소지자입니다. 부검을 돕는 연구원 중에도 박사학위 소지자가 여럿 있어요. 임상병리사, 방사선 기사, 치과 기공사 등 보건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을 모두 소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열악한 환경이지만 한국의 과학수사는 세계적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 연말 동남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 현장에 자국의 희생자들을 수습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법의학팀이 파견된 적이 있다. 희생자들이 무더운 날씨에 물속에 잠겨 있던 터라 신원 확인이 쉽지 않았다. 특히 퉁퉁 부은 손가락을 붙잡고 어떻게 지문을 채취할지 우왕좌왕했는데, 한국팀은 3분 만에 간단하게 지문을 채취했다. 손가락을 뜨거운 물에 잠시 담갔다가 단백질 응고현상을 이용해 간단하게 지문을 뜰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한국팀이 가장 먼저 희생자 전원의 사체를 수습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법의학팀은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했잖아요.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씨랜드 사건, 대구지하철 참사 등 큰 재해를 경험하면서 노하우가 쌓였어요. 특히 대구지하철 참사 때는 그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코리아 디모트팀을 만들었어요. 일명 한국 대량재해 사망자 대응팀(Korea DMORT·Disaster Mortuary Operational Response Team)이죠. 쓰나미 때 코리아 디모트팀이 파견됐어요. 더운 나라여서 시신의 부패가 매우 빨리 진행돼 있더라고요. 도저히 육안으로는 신원확인이 되지 않을 정도였죠. 현지의 법의학팀은 국내 법의학팀과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사망자의 치과치료 기록을 유족한테 받아서 현지에서 치과검사와 검시를 중심으로 신원을 맞췄어요. 신원 확인 속도가 한국팀이 가장 빨랐어요.

동양인인지 서양인인지 정도만 가늠하는 상태에서 우리 팀은 ‘몇 번 몇 번 시신이 한국인으로 의심된다’면서 ‘검사를 더 해볼 수 있도록 시신을 잠시 내달라’고 했어요. 그게 다 맞았어요. 선진국에선 놀라워했어요. 나중엔 유전자검사로 정확하게 맞춰서 시신을 받아올 수 있었어요. 다른 나라 법의학팀들이 ‘한국팀들과 공동작업을 하게 해달라’고 제의할 정도였죠.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의 기대수준에 맞추면서 실력이 는 것 같아요.”

평소 적은 인력으로 격무에 시달리는 한국 법의학팀은 고강도의 실전경험으로 단련돼 있다. 반면 국과수에 대한 인식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과수 분소를 옮기거나 신축하는 것이 원자력연구소 설립만큼이나 힘든 것이 현실이다.

박 법의관은 “전국 방방곡곡의 변사자들을 부검하기 위해선 적어도 50명 이상의 부검의가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시신을 처음 발견하는 경찰이 변사체의 검시를 의뢰해야 검시와 부검이 이뤄지는데, 경찰이 관심을 보이지 않아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변사자가 의외로 많다는 것.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건 처리도 어려운 실정이다.

▼ 부검하는 법의관도 부족하지만 현장에서 사체를 검시하는 검시관도 모자라지요.

“맞아요. 현장에 파견돼 사체를 보는 건 정말 중요해요. 일선 경찰서의 과학수사팀으로는 힘들고 국과수에서 의사인 검시관을 현장에 파견해야 사체를 제대로 볼 수 있어요. 사체의 온도와 경직 상태로 사망시각을 추정하고 사람이 죽어서 피가 아래쪽으로 몰릴 때 생기는 멍 자국(시반)을 확인하는 일은 의사인 검시관이 해야 하거든요. 사체가 국과수로 오기까지 이틀이 걸려요. 경찰이 부검의 필요성을 검사에게 보고하면 담당검사가 부검 여부를 결정합니다. 또 판사로부터 사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야 하죠. 그 사이에 냉장보관이 되기 때문에 검시관의 현장조사가 아주 중요하죠.”

▼ 현장감식 경험이 부족한 형사들이 시신만 덜렁 들고 올 때가 많다면서요.

“현장감각도 떨어지지만 떠넘기기 수사를 하는 게 문제예요. 교통사고 사체라고 해서 보면 교통사고가 아닐 때가 많아요. 부검해보면 교통사고 흔적이 없는 겁니다. 범인이 시신을 국도 옆으로 굴러 떨어지게 해놓고 도망가는 경우가 있거든요. 또한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면 폭력팀으로 사건이 넘어가요. 그런데 부검해보면 교통사고인 게 분명해집니다. 교통사고는 차량에 의한 충격 때문에 손상 부위가 광범위하거든요. 수사관이 현장에서 사체를 자세하게 살펴봤다면 상처 부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조각이나 기름때 같은 걸 발견했을 텐데, 제대로 안 본 거죠. 수사를 하다 보면 귀신 씌운 것처럼 자신의 추측을 우기고 믿게 되나 봐요. 세워진 자동차 옆에 쓰러져 있으면 무조건 교통사고라는 식이죠. 막상 부검을 하면 교통사고가 아니라 밟힌 흔적이 나와요. 현장수사가 그만큼 왜곡돼 있다는 겁니다. 이와는 딴판으로 경기도 화성경찰서는 살인사건을 여러 차례 겪어봐서 현장에서 증거물을 채취하는 게 수준급이에요. 현장사진을 아예 CD에 담아서 올 정도로 베테랑이 됐죠.”

▼ 어떤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2004년 유영철 사건입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김치냉장고 ‘딤채’의 원리를 적용했어요. 땅을 직사각형으로 팠거든요. 시신을 묻고 나뭇잎으로만 덮을 경우 빠르면 1개월에 백골이 돼버려요. 야산이라면 뼈조차 사라집니다. 그런데 유영철은 땅을 직사각형으로 아주 좁게 파서 사체를 묻었어요. 온도의 변화가 없는 저온의 땅속인 점, 공기로부터 차단되는 원리를 정확하게 이용한 겁니다. 부패 속도가 아주 느리죠. 또 사체를 담았던 비닐을 땅 밑바닥에 깔았어요. 묻는 순서에도 나름의 룰이 있었죠. 머리 넣고, 가슴 넣고, 팔 넣고, 다리를 X자형으로 올려놓았어요.

토막낸 사체를 맞춰서 신원확인을 하고 부검을 하면서 정말 놀라왔어요. 인체를 절단할 때 톱이나 도끼를 이용하는데, 유영철은 잭나이프 같은 작은 칼 하나로 절단했거든요. 의대 해부학책을 완전히 파악했더라고요. 관절 부분을 비틀어 분리한 다음에 잘랐고, 인대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토막을 냈어요. 정말 집념이 대단한 연쇄살인범이었어요.”

기자는 당시 수감 중이던 유영철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유영철은 편지에서 자신의 독특한 매장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죽어 마땅한 여자들을 내가 한 명 한 명 처단했다는 흔적을 세상에 남기기 위해 부패되더라도 유골이 남는 방법을 연구했다.”

박 법의관은 “한때 목욕타월로 목을 매서 자살한 사체가 너무 많았다”면서 “연예인의 자살을 모방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한때 자살사이트에서 ‘목을 매서 죽은 사체가 가장 평온하다’고 했다는데, 천만에요. 목을 맨 시체는 혀가 빠지고 얼굴이 검붉게 변해서 절대 평온해 보일 수 없어요.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식으로 나무 위에 목을 맬 경우엔 얘기가 달라지죠. 한꺼번에 혈관이 꽉 막혀버려 창백하게 보일 수도 있거든요. 고(故) 정다빈씨가 목욕타월로 자살하고 난 뒤에 한동안 국과수에 목욕타월로 자살한 시신들이 신드롬처럼 밀려왔어요. 이런 얘기 하면 좀 뭣하지만, 칼에 찔려서 모든 피가 몸 밖으로 빠져나간 상태의 여성 사체는 마치 밀랍인형처럼 예쁘게 보일 수 있어요.”

‘가장 무서운 건 삼각관계’

▼ 정다빈, 이은주… 국과수가 꽤나 시끄러웠겠어요.

“말도 마세요. 다들 와서 보겠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사람은 죽으면 똑같아요. 생명력이 없으면 다 마네킹 같아요. 똑같은 빛깔과 포즈로 개성이 전혀 안 보이죠. OOO씨가 아무리 예뻤어도 죽어서 여기에 왔을 땐 평범한 사체에 불과했죠. 죽기 직전 술을 엄청 많이 먹어서 인사불성 상태에서 목을 맸더라고요. 격해질 대로 격해져서 목을 맨 거죠.”

국과수에 오는 사체들은 지역마다 계절마다 차이가 있다. 농촌의 경우 농약을 이용한 자살이 가장 많다. 여름에는 익사가, 다른 계절에는 추락이나 목맨 자살자가 많다. 도시에선 정신과적 항우울제를 치사량에 가깝게 먹어 사망하는 사례도 많다.

박 법의관은 “경영난에 따른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면서 “의대 선배가 경영난을 비관해 링거로 마취약을 투여해 자살하고 부검대에 올라왔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삶에 대한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실 거예요. 목을 매 자살한 사람에게도 삶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발버둥친 흔적이 남아 있어요. 목에 맨 끈을 풀기 위해 손톱으로 얼마나 긁었는지 목의 자국을 보면 알 수 있죠. 대부분 총을 맞으면 바로 죽는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3~4분은 살아 있어요. 어떤 여성이 남편에게 불륜으로 내몰리다 사냥총에 맞았어요. 심장이 완전히 망가졌어요. 여성은 심장을 움켜쥐고 현관 밖 계단을 내려와서는 행인을 붙잡고 ‘총에 맞았어요. 119 좀 불러주세요’라고 말하고는 쓰러졌어요.

반면 죽음도 불사하는 일이 뭔지 아세요? 부검대까지 오는 사체들, 의외로 돈 문제에 얽힌 경우는 드물어요. 거의 다 치정사건이죠. 남자들은 돈은 잃어도 여자 뺏기는 건 못 참는 것 같아요. 법의관들은 우스갯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삼각관계’라고 해요. 질투가 살인을 부르는 겁니다. 특히 불륜이 원인이 된 부부싸움이 살인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요. 요즘 불륜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정말 ‘당신 남편은, 혹은 아내는 무사하십니까’를 물어야 할 지경에 이른 것 같아요.

인생의 마지막을 보는 작업

삶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 같아요. 한번은 40대 초반의 대기업 회사원을 부검한 일이 있어요. 업무 때문에 새벽 4시에 퇴근을 하고는 옷만 갈아입고 바로 출근하다가 대문 앞에서 사망했어요. 그때 한 손에는 서류가방이 들려 있었고, 다른 손에는 종이 한 장이 쥐어져 있었어요. 막내딸이 비뚤비뚤한 글씨로 ‘아빠, 일찍 들어오세요. 사랑해요’ 라고 쓴 종이였다고 해요.

법의관은 늘 인생의 마지막을 보잖아요. 인생이 허무하지만 아쉽고 무섭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아요. 사람들은 저질러놓고 후회하더라고요.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내일도 늘 내 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고 김형곤씨의 경우 건강을 위해 운동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운동이 죽음을 재촉했죠. 인간은 대개 먼 미래를 설계하면서 꿈을 키우지만, 생명은 유한하잖아요. 꿈도 중요하지만 오늘 하루 행복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건 오늘의 사랑이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쳐다보는 가족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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