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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다큐멘터리 및

트로이Troy 의 목마

by 현상아 2008. 4. 21.

고대도시 트로이는 터키의 서쪽 에게해(海)와 흑해(黑海)를 잇는 헬레스폰투스(다르다넬스 해협)의       입구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에 위치 함으로 인해서 예로부터 번영을 누려왔다.

 

 



 최근에 들어서 '트로이 전쟁'이란 소설을 영화화한 이후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희랍어와 라틴어로 쓰여진 책,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서 처음으로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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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이에 가면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이 목마 모형이다. 관광객이 올라가서 창문으로 내다 보게 
 되어 있다. 아래에 적힌 트로이 목마의 유래를 읽어보면 이 목마의 중요성을 알게될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 중, 트로이성을 포위한 그리스군이 무력으로는 도저히
함락 불가능이라, 지략을 이용하기로 했다. 목마를 만들어 두고 후퇴하는 척 했고 트로이는
그리스 포로를 잡아 목마의 용도를 물어보니, 포로는 목마가 아테나에게 바치는 헌납품이라
고 했다. 트로이는 목마를 성으로 들이고 밤새 승리의 축제를 지났다.
그날 밤에 목마 안에 숨어있던 오딧세이와 그리스 병사들은 성문을 열고 트로이를 함락시키고
말았다.  그래서 트로이 목마가 유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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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목마는 '트로이 전쟁'이란 영화에 나오는 것인데, 1997년 그 영화를 위하여 
          만든 것이고 트로이에 아직도 서 있다.   아주 인상적인 조형물이다.



  4000여년 동안 존재해온 고대 문명의 중심지였으며 전설속의 도시였던 트로이는 독일 고고학자 슐리만이 1870년에 이곳을 발굴하면서 시작되어 독일과 미국의 고고학자들의 발굴로 트로이의 청동기 시대를 노출 시켰다. 

  유적은 9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최하층은 BC 4000년 말기의 것으로, 성벽으로 에워싸여 있었다. 제2층에는 메가론식의 왕궁으로 짐작되는 건물이 있고, 이 층에서 많은 금·은 제품을 발견하였으며, 이 층을 호메로스 시대의 것으로 생각하였다.

  슐리만은 이때 발굴한 유물들을 독일로 밀반출, 1881년 베를린박물관에서 처음으로 공개함으로써 찬란했던 트로이문화가 세상에 알려졌다.
 
  1945년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은 이를 탈취, 금, 은 보물은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에, 도자기류는 세인트 피터스버그 에르미타슈 미술관에 소장하다가 1995년 4월 푸시킨 미술관에서 다시 전시되었다 


  왜 트로이에 그렇게 많은 지층이 형성되었을가?

  트로이는 BC 3000년에 시작되어 AD 500년에 이르기까지 아홉번이나 파괴되고 재건된 역사를 가진 도시다. 아래의 그림에서 각 지층의 존재 시기와 건축물의 특징들을 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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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의 건물들은 햇빛에 말린 흙벽돌로 지어졌다. 이 건물들이 파괴되고 다시 건축될때는 
 그 흙벽돌은 아무 가치가 없기 때문에 허물어뜨리고 그 흙을 제거하지 않고 그 위에 다음 단계
 의 건축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지층은 점차적으로 높아지게 되었고, 그후 고고학자들은 오래된
 구조는 더 낮은 지층에서, 좀더 최근의 구조는 좀더 높은 지층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1층에서 7층까지는 트로이, 8층에는 그리스 유물, 9층에는 로마 건축물들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올라간 인위적인 지층이 약 15 미터가 된다고 한다. 
  
                                                                                   사진과 글: by JHP (Dre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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