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황제라 할지라도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이들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고 늙어가다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됩니다.
중국 황제들은 자신들이 유일하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노화와 죽음을 피하고 불로장생의 힘을 얻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불로장생의 꿈을 좇던 황제들은 장수는커녕 단명한 이들이 훨씬 많죠. 통계에 의하면 평균연령이 겨우 30세 정도였다는 군요. 황제들이 찾았던 이른바 ‘불로장생’의 비법은 사실 ‘단명의 비법’이었던 걸까요? 어쨌거나, 역대 중국황제들은 방사의 힘을 빌리거나 단약을 만드는 등 젊음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계속해 왔습니다
가장 이른 전설과 기록
황제상
황제(黃帝)는 중화민족의 시조로 불리는 신화 속의 황제로 100년이 넘는 통치기간 동안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자신이 하루하루 노쇠해지자, 황제는 소호(少昊)에게 황위를 선양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죽고 싶지 않았던 그는 스스로 불로장생의 세계를 찾아 나서기로 하고 선옹 용성자와 부구공을 스승으로 삼아 불로장생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황제는 이들을 따라 단약을 만들 장소를 찾아 떠돌다 마침내 강남 이산에 다다랐습니다.
단약은 아홉 번의 길고 긴 반복 과정을 거쳐서만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구전환단(九轉還丹)이라고 부릅니다. 황제는 이곳에서 480년 만에 단약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황제가 한 알을 먹자, 몸이 가벼워지고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백발은 검게 변하고 주름살도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이 순간, 자줏빛 구름에서 붉은 샘물이 쏟아져 나오고, 황제가 그 안에서 7일간 머무르자 노화의 모든 흔적이 사라져 완전히 청춘을 되찾았습니다.
그러자 샘물 위에 상서로운 구름이 피어나고, 안개가 걷히자 황제의 앞에 옷과 관대가 든 함과 옥주전자가 나타났습니다. 황제가 하늘에서 내린 의복을 입고 주전자에 담긴 술을 마시자, 하늘에서 백룡이 내려와 황제와 두 스승을 태우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연단도
물론 이 이야기는 전설일 뿐으로, 연단술에 대한 가장 이른 기록입니다.
연단에 필요한 주요 기물은 바로 솥(鼎)으로, 방사들은 솥으로 음식이 아닌 다른 것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었죠. 당시 각종 금속 및 광물들은 흙으로부터 추출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광물이 흙 속에서 다른 종류로 변화한다고 믿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황은 천년 후 응황으로 변하고, 응황은 다시 천년 후 황금으로 변한다는 식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이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을지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여기에서 천지조화의 힘으로 솥 안에서 물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방사들은 솥 안에 갖가지 약을 넣고 끓여서 금이나 은을 얻어내려 했죠. 이렇게 전국시대에 이르러 연단술이 싹트게 됩니다.
진시황, 한무제 때에 이르면 황제의 지시로 연금술이 더욱 발전합니다. 이 때에는 동이나 철을 금이나 은으로 바꾸려 했을 뿐 아니라, 황제에게 바칠 불로장생의 선약을 만드는 데도 노력을 기울이게 되죠. 방사들은 황금이나 옥은 썩거나 녹슬지 않으므로, 이를 먹으면 수명이 금이나 옥과 같이 길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금과 옥으로부터 단약을 만들어 먹으면 영원히 늙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연단로
물론 이는 현대의 관점에서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다. 더구나 연단술로 만들어진 물질은 비소, 수은, 납 등 인체에 치명적인 성분이 다량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물질을 복용했다간 사망에 이를 수도 있었죠. 그러나 당시 연단술과 단약 복용은 상당히 널리 퍼진 현상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불로장생을 꿈꾸던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중금속에 중독되거나 일찍 사망했습니다.
불로장생을 향한 시황제의 꿈
진시황은 재위 기간 내내 불로장생의 헛된 꿈을 좇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황위가 만대에 이어지고, 스스로도 불로장생하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시황제는 전국 통일 후 불로장생의 비방을 찾기 위해 자주 순행을 나갔는데 뜻밖에 그의 운명은 불로초를 찾아 나선 길 위에서 달리하게 됩니다.
기원 전 219년 순행중이던 진시황은 서복으로부터 ‘바다 속에 봉래, 방장, 영주의 삼신산이 있고 그 곳에 선인들이 살고 있으니 소년소녀들을 보내면 불로장생의 약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진시황은 이 말을 듣고 수천 명의 소년소녀들을 보내 약을 구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진시황은 4년 후 다시 방사들을 바다로 보내 불사의 약을 찾아오도록 명합니다. 물론 방사들이 약을 구했을 리는 만무한 일. 하는 수 없이 악귀로 인해 영지기약과 신선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악귀를 피하기 위해 황제가 종적을 모든 이에게 비밀로 해야한다고 진시황을 속입니다. 진시황은 이 말을 믿고 행궁 260채를 새로 지어 매일 머물렀습니다. 황제를 따르는 이들은 절대 황제의 거처를 발설하면 안되었고, 만약 이를 어긴 자는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하루는 황제가 양산궁으로 순행을 갔다가, 산 밑으로 승상 이사가 수레를 잔뜩 끌고 성대하게 출행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황제는 이 모습을 보고 불쾌하게 여겼는데 누군가가 이 사실을 이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 후로 이사는 출행 때 행렬을 간소화했는데, 진시황은 이사의 수레가 줄어든 것을 보고 누군가가 그에게 이야기해주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거처를 발설한 자를 색출하려 했지만 실패하자, 결국 그 자리에서 자신을 따르던 모든 이들을 죽여버렸습니다. 물론 그 후로 아무도 감히 황제의 거처를 입 밖에 내지 않게 되었죠.
진시황의 전례 때 남겨진 글자
한편 이럭저럭 황제를 속여넘기긴 했지만 방사들은 여전히 불안감에 떨고 있었습니다. 진나라 법률에 따르면 방사가 권한 방술이 두 번이나 듣지 않으면 목이 달아나게 되기 때문이죠. 결국 다시 선단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그들은 몰래 도망치게 됩니다. 진시황의 분노는 요사스러운 말로 백성을 어지럽혔다는 명목으로 유생들에게까지 불똥이 튀었습니다. 이 사건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분서갱유의 발단입니다.
그러나 진시황의 노력은 결코 그치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210년 그는 불사의 약을 얻기 위한 최후의 순행을 떠납니다. 한편 수년간의 여정에도 불로초를 구하는데 실패한 서복은 봉래선약을 구할 수 있으나 바다 한가운데 큰 물고기가 가로막고 있어 더 이상 항해가 불가능하다고 황제를 속입니다. 그리하여 진시황은 물고기를 잡을 공구와 큰 활을 준비하도록 명했습니다. 그는 친히 군대를 이끌고 지부도로 가 고래 한 마리를 잡았지만 선인이며 선약은 흔적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진시황은 황궁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병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 때 그의 나이가 49세였습니다.
미신에 빠져 나라를 말아먹은 가정제
가정제
진한시대는 사회발전이 상대적으로 낙후했던 시기니 미신이 성행할 법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가 앞으로 굴러감에도 여전히 연단술과 불로장생에 빠져있던 황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명 무종이 후사 없이 죽자 흥원왕의 아들 주후총이 황위를 이어 가정제로 등극합니다. 가정제는 불로불사의 단약을 얻기 위해 벌인 엽기 행각이 악명 높은데요, 단약을 만들기 위해 궁녀들의 월경혈을 강제로 채취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가장 유행했던 연단술 중 하나가 ‘홍연’이란 것으로, 처녀의 월경혈과 가루약을 배합하여 단약을 제조하면 건강해질 뿐 아니라 성욕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가정제는 이 단약을 만들기 위해 궁녀들에게 하혈을 촉진시키는 약을 먹여, 궁녀들이 출혈 과다로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입막음을 하기 위해 피를 채취한 궁녀들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그의 횡포는 임인궁변이 일어나는 원인이 됩니다.
무당들이 사용했던 단약로
대신들은 미신에 빠져 있던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상서로운 물건들을 황제에게 진상했는데 그 중에는 천년 묵었다는 오색 거북도 있었습니다. 가정제는 궁녀 양금영, 형취련 등에게 거북을 잘 돌보도록 명했지요. 그런데 사실 이 거북은 가짜였습니다. 거북 등의 다섯 색깔도 염료로 칠해 조작했던 것인데 거북을 물에 풀어놓자 이 색깔이 모두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거북도 얼마 못 가 죽어버리고 말죠. 궁녀들에게 화가 돌아갈 것은 뻔했습니다. 이를 두려워한 궁녀들은 영빈 왕씨와 함께 황제를 암살하기로 모의합니다.
가정제가 단비 조씨의 처소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양금영 등 네 명의 궁녀들은 몰래 침소에 들어가 황제를 목 졸라 살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궁녀 중 한 명이 이 사실을 방황후에게 알려 황제는 목숨을 구했습니다.
가정제는 이때의 충격으로 한 달 동안이나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황후는 황제 대신 조서를 내려 궁녀들과 영빈의 죄를 추궁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던 단비까지 사건에 연루시켜 능지처참했습니다. 가정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한 방황후에게 감사를 표시하고자 황후의 부친을 평안후에 봉했습니다.
그러나 가정제는 죽은 단비의 노비로부터 그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몇 년 후 황궁에 불이 나 방황후의 처소에까지 번졌는데, 가정제는 불을 끄라는 영을 절대 내리지 않습니다. 방황후는 화재로 중상을 입었으나 황제는 그를 찾아가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가정제는 병에 걸린 황후를 방치해 자신의 목숨을 구했던 은인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후에도 가정제는 정사를 멀리한 채 자신이 귀신의 보호를 받는다고 믿으며 더욱 미신에 빠져들었습니다. 가정제의 재위 중에는 정치 문란과 부패, 민란이 끊이지 않았으며, 결국 가정제 사후 채 100년이 못되어 명 왕조는 멸망합니다.
출처 http://blog.qq.com/qzone/622008594/121613227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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