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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지금여기

자살의 메카니즘과 그 이면의 논리를... /...던져 버려라.내려놓아라...

by 현상아 2008. 10. 6.

무묘앙에오 (EO)

 

 

1992년에 깨달음을 얻은 후에 선(禪), 타오(TAO), 원시불교를 소재로 하여 그의 깨달음의 경지를 선승과 명상가들에게 서신의 형태로 전달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종교에 입문하거나 절을 짓거나 제자도 들이지 않고 자신의 거처를 '무명암(無明庵)'이라 이름 짓고 찾아오는 소수의 사람들만 만났으며, 그의 타계 후에도 특유의 독설과 날카로우면서 서정적인 필치로 많은 마니아 독자가 생겨나고 있다.

 

무묘앙에오는 14세때 <깨달음>을 언뜻 넘보는 체험이 있고부터 23세까지 여러 가지 신비학, TAO 등을 섭렵했지만 어떤 단체에 소속되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는 30세 무렵부터 우발적으로 독자적인 <채널링>을 시작하여 은하계의 막후 정보들을 얻었다. 33세에 그것들에 대한 총괄적 결론과 사색의 결과로 온 생명과 존재에 절망했다.

1992년 2월 17일 우발적으로 대오견성했다. 그후 약 1년동안 명상센터의 명상가들이나 치료가들에게 일방적으로 자기의 글을 우편으로 보내는 일을 했다. 거의 모두가 묵살해버린 가운데서 3명의 문하가 생겼다.

1993년 8월부터는 그의 지도와 방편이 갑자기 <선(禪>으로 기울고 선문의 본산, 각 지방 선방의 승려들에게 글을 우편으로 보내기를 계속했다. 그 중에서 문하가 나왔으며 뒤에 그 승려는 대오를 이뤘다. 전통과 형식에 매달리는 선, 그리고 스승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명상센터와의 마찰과 반감 속을 흐르면서 그의 글은 지금 많은 명상가나 참선 수행자들에게 개인적인 편지 또는 기관지의 형태로 전해져 소중히 간직되고 있다. 일생 동안 단체화, 조직화, 통속적인 사제관계를 거부했다.

1994년 10월 22일 죽었다. 당년 36세. 죽은 사람의 선문 직계 문하로 쥬우와 호오장 둘을 남겼다.

태양계 제3행성에 남겨진 작품으로 「폐허의 붓다들」「속 페허의 붓다들」「경련하면서 읽는 정신세계」「지구가 꺼질 때의 좌선」「폐허의 붓다들 외전」등이 있다.


 

 

 

질문 :  옛날 사람들의 말에 깨달으면 눈에 머므는 모든것이 깨달았다는것은

 대체 어떤 상태입니까?

 

화답 :  당신이  한 포기의 풀을 보고  그곳의 불성을  볼수 없는것은

 

 마치 당신이  도사의 행위나 말을 통해서만

佛性을 볼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실이라는  소재가  악기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 모든 용도로 

즉 음악 이외의  여러 장소에 사용되듯이

그렇다면  이 우주가 가장 근본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영역에서  만족하고 

편재하는 의식이나 불성이라면

당신은 대체 어디에서  그것을 놓칠수 있는것인가 

 

흔히 그 부근에  도달하는 모든것이  바로 그것인가

제아무리  정적에 도달한  도달한 도사의 말이나  책에서 조차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을 읽은  당신의 사고가

정적에  있을수  없기때문이다  

 

도사의 말 조차도  극단적으로 말 하면  당신의 정적을  파괴하는데 말이다

 

법화는 음악이기는  하지만  불성 자체는 아니다 

만약 그 자체를  발견하고 싶다면  그것은 모든 존재의 막에

둘러 싸여져 있는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보지 않을수 없다   당신은 그저 보지 않고서  끝까지 모른다고 버틸뿐이다

 

당신은 물속에 있으면서  물을 모른다고  말하는 물고기와  말해본적이 있는가

 

어떻게 보면 당신은  그런 물고기가 미쳤다고  생각할것이다 

그러나 당신들도  아주 똑같은 일을  몇천년이나

도사로부터 계속 들어오지 않았던가 

 물속에 있으면서  물을 모른다  보고싶다  볼수 없다고 하는 물고기는  확실히

미쳤다  

 

당신은 그런 물고기를  만난다면 웃을수 밖에  없다  때문에

나도 당신들을  보고 웃을뿐이다

 

즉 그 물고기들이  왜 그렇게 주장하고  왜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가를  관찰하려고 한다

 그 오해와 무지의 유래에 관해서  관심을 갖는다  이리하여 조용한 현은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도사의 설법이 시작된다  그 설법은 당신을 이해시키기 위한것이 아니다 그저 당신의 오해를

풀기 위한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자각 무자각에도 불구하고  광명과 의식과 허무속에서  살고 있는데도 

그것을 보고 싶다고 말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반복해서 말한다 

 

즉 그것은  보는것이 아니라  존재하는것이다 

 

알 필요가 없다  그곳에 이미

있지 않은가  물을  필요가 없다  당신은  해답속에서  살고 있다  명상하고 염불을 외고 

혹은 책을 읽어  무엇을

알려고 그리고 지금 무엇을 체험  하려고 하는가

 

당신은 지금도  이제부터도 예전에도  어디에서도  그것이 아니던가 

그런말을 들어도  난센스여서  전혀 이해할수

없다고  당신들은 말한다 

또한그렇게 보편적인것이라면  이세계는  벌써 더 좋은 세상이  되었을것이고

한층더 고통이  없을것이라고 말한다  정말그대로이다

 

이세계는  원래 잘 정리되어있어  무엇하나 잘못이 없다 

 

즉 물속에있으면서  물을 알려고 하든지 알고 싶다든지

체험하고 싶다든지  그 잘못된 질문에서 시작하면  어떤 탐구도  과학도 문명도  모두 난센스가 된다

 

우리들은 당신들에게 언제나 말한다

 

이미 벌써  광명.깨달음. 니르바나 .사마디가  실현된상태이다 

당신은 지금 그 안에서  살고 있는것이다

 

자연계는  물에 관한것을  묻고  철학하고 물에 관해서  명상하거나 물과 일체가  되고자 하는

물고기는 한마리도

없는것이다 

 

인간만이 다른 생물을  먹이감으로 해서  마치 내면의 고통을  자연으로 환원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고뇌발생생물로써  몇만년이나  이지구에서  서식하고 있다

 

질문이나 의문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지 않고  왜질문자체를  궁구하려 하지 않는가

 라고 일찍이  크리슈나므르티는

말해왔다 

 

그것은  애당초 질문바로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궁구하라이다

 

 일찍이 달마가  아주 먼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말하고 있다

 

질문을 해보고  일일이 해결하려고 하는것과  단순히 질문이  없어  안정되어잇는것중에

 당신은 대체 어느쪽이 아름답다고

하는가 

 

모르기때문에  묻는다고 말 하지만  실은  질문을 하는자는  무지한자가 아니다 

진정 무구하고  무지하다면

질문자체가  없기때문이다

 당신이 묻는다는것은  이미 당신안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것  결론을  내린것이

반드시 있다

 

질문은 당신의 분별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몇가지의  기존의 앎을 조합해서  발생된다

 

질문은 몇가지의  기존의  앎에서 발생하는것이다 

완전한 무지에서의 질문은  발생될수 없기때문이다  결국 당신들의

질문은  항상 언제나 같다

 

"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해 할수 있을까요"

 

 

 

당신들은  당신이 주입한지식 .경험.체험이  정리되지 않으면  도사에게 찾아와 

논리적으로 정리해달라고 말한다

 

붓다란  인류의 머리속을  정리정돈하는  업무를 맡은자가 아니다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것인가

 

붓다가  왜 인류가  버려야할 쓰레기에 관해서  쓰레기를 펼쳐보고  분류하고 

비교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일찍게  라마나 마하리쉬는  사고를 분석할 필요가 있는가  ?없는가? 라는 질문에대해

이렇게 말햇다

쓰레기 주머니에서  내용물을 일부러 끄집어내어  그것들을 조사할 필요가  있는가 

사람들은 쓰레기를 모으기

위해서  책을 읽고  도사의 말을 듣는다  또한 그쓰레기를 분류하고  정리정돈해서 안심하고자

 그 자신이 모은

쓰레기를  정리해주기를  책에 기대하고  테라피스트나  점술가 .심령가와  선을 하는

도사에게 그것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난센스인가

 

붓다들의 일은  인류가 하는  사고의 쓰레기를 일소 하는것뿐이다  그리고 쓰레기가  없어졌을때 

말할것은

아무것도 없다

 때문에 도사가 싫어하면서도 말하는것은  당신 쓰레기에 관해서 이야기 할때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나  가슴속에 주입한 쓰레기가 썩어  마침내 그 악취를  견딜수 

없게 되어서야  비로소

도사에게 말 한다

 

아무쪼록  이 근원을 끊어 주십시요  고통의 근원을 끊는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요  라고

그렇게 되기 까지  당신의 쓰레기를  쓰레기라 생각하지 않고  계속 수집하고 있다 

인류에게 딱 들어 맞는 별명이

있다 

쓰레기 수집가이다  나홀로 쓰레기족  쓰레기 마니아이다 

 

쓰레기 종류가  명상이나 선이든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그종류에  관계없이 

우리들이 손에 넣은 순간에

이미 벌써 쓰레기가 된다

 무거운 짐이 된다  그러니 꿍꿍이 속이 있는 명상은  그만두기 바란다

 

광명이나  깨달음을 위한 명상이나  좌선따위는 버려라

 

 버리고 빈손으로  살고 빈손으로 죽으라

 

그렇게 하면  그 빈손 자체가  진정한 명상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시시한  옛사람의 말 따위는   던져 버려라  .내려 놓아라

 

- 출처 : EO


 

 

 

 

 

 

 

자살의 메카니즘과 그 이면의 논리를...

*    어떤 생명체가 어떤상황하에서 자살하는가를  검토하고  그 상황과성질을  모두 회피할수 있다면

자살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유일한 방법은  세상의 그어떤해결방법  이른바테라피에도

종교에도 없으며 장기적으로 보면 깨달음이외에는 없다 

이생에서 어떻게든 자살하지 않고 온전하고 원만하게 지냈다 하더라도  어딘가의 생에서는 아주간단한

상황설정으로 어이없이  자살하기 때문이다

 

자살문제는  실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살의 원인은  분명한  苦이기때문이며  고 가 없으면

자살하지 않게 된다  자살하지 않은것은  논리적으로는  붓다들만의 일이기 때문에  고 만 없어진다면

자살은 없어지고  만인이  붓다가  된다

물론 생명이란  그렇게 마음대로는  안되게끔 되어있어 이기회에  자살론을 통째로 뒤집어서 반대로

전개하면  깨달음의 원리가  분명해질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비상식적으로 그야말로  눈부신 결론이

되겠지만 실제론 그 비상식을  살고있기때문에  붓다들은  자살하지  않는것이며 자살할 가능성 조차

없는것이다

 

*  자살하면 무언가 부정적인 사고로 치부하고 통상은 생명의 의지가 약하기때문에 자살을 생각

한다고  정의 하지만  실제로는 정 반대이다  생명이 강할수록  자살하고 지성이 높을수록 자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뛰어난 지성이 자살한다는건 아니다  또 삶에대해 진지하게 생각했기때문에

자살한다는 식으로 미화시킬 문제도 아니다  결국 핵심은 바보니까  자살하는것뿐이다

하지만 자살을  한번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더 바보이며  자살을 두번다시 생각하지  않은자가

붓다인것이다

 

* 자살의 메카니즘과  그 이면의 논리를  전개해보자

 

1.자살직전에  안정된 자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안정되어있으면  자살하지 않는다는 것이 결론이

된다

 

2. 자살이란  당연한 일이겠지만  죽는다는걸 의식하고 있다  기묘하게도  죽어본적이 없는데 아마

죽으면 편할것이라고  멋 대로 정의하고  죽음이란  고 에서  해방되기 위한 무엇일거라고 멋대로

추측해버린다  죽는다는  의식은  산다는 의식이  없이는  절대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음의 결론이  나온다 

애초에 살아있다는  자각이없는 생명체에는  자살을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있다는 실감과 자각이 명확한것  바로 그때문에  죽음이 명확해지는 것이다

 

이들 생명체는  그 순간순간의  생명의 약동감은 생생하지만  그것을 총칭해서  나는 매일 이렇게

살아있다고  사고하진 않으며  다만 생명활동이 있을뿐  생명이라는  관념은 없다  그들에게는 죽음

이라는  관념도 없으며 따라서 자살이라는  발상조차 일어날수 없다 

애초에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않은게  자살하지 않은 중요한  요인이다

 

3.    공포로 발광하는 일은 있어도 순수한  공포에서  자살한 예는 없다 

공포는 자살의  원인이 될수  없다  오히려 지성체는 발광을 회피하기 위해서 자살한다

즉 미치기 싫다는  동기가  자살하는 동기중의 하나이다  미친채로  산다는것은  고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기묘한 문제가 있다

 아직 미친적도 없는데 미치는걸 두려워 한다는것은  아직죽은적도 없는 주제에 죽음을 동경하는것과

닮았다 .정말로 미쳐버리면  오히려 사람은 괴로워 하지 않을련지도  모르기때문이다

따라서  엄밀하게는  미치는게  고 가아니라 

차마  미치지 못하고  제정신을  그대로 지닌 관찰자  평가자로써의 자아가  죽을래야 죽지도못하고

미칠레야  미치지도  못하는  상태가  고인것이다

애당초  제정신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자는 광기도  모른다

요점을 말하자면  부모나 학교가 강요해서건  본인이  멋대로 정의해서건  애당초 제정신이니

사회적 평균이라는걸  이상하게 알고있기때문에  미치는것이지  우둔한 무지의 상태에서는

미칠수가  없다는 애기이다  이들사실에서 붓다들 .동물들.유아들은 무지하며  원래 제정신이

무엇인지를  모르기때문에 미치는일이 없고  또 미치는게 무엇인지를  모르고  따라서  광기에의

공포도  없고  자살도 하지 않는다

 

4.  이처럼 아직 자신이 경험하지도 않은 것에 대해서  어설픈 분별이나 정의를  내리고 예측을 하는게

무엇보다도  자살의 원인이다

자살의 원인을  요약 하면

 

1. 무언가에 사로 잡혀서  불안한 고 로부터  편안해지고 싶다

2.자신이 살아있는상태를  이상하게 규정하고 있다

3.제정신이란  무엇인가를 확정해서  정해놓고 있다

따라서  분별이야 말로 자살의  원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분별이 원인이 아니라  분별한데다

나아가서  그 어느한쪽이  옳다고 믿거나  감각적으로  그어느쪽인가를  편애해서 고집했을경우에

괴로움이나 모순에따른 갈등이생기고  생명의 고나  발광에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살하면 편할것이라 생각하고  자살한다

 

자살의 원인은  편한것을 찾는데서  생긴다

 

자살후가  고  라면 아무도 자살을 최종수단으로 선택하지 않을것이다  이것은 아주 명백한 사실이다

사람이 자살에서  찾는것은  편안함이지  자극적인 경험이  아니다

즉 편안함을 찾는 원인은 스스로 고통스럽기 때문이며 따라서  고를 없애면 자살은 사라진다

에오가  누누히 말했듯이  문제는 즐거운 생활이나  행복에있는것이 아니라  고 의  소멸뿐이다

그러면 편해지고  자살은 없어진다  심신이 동시에  편안하데  자살할 사람은 없다

자살은 악이 아니라  자살의 주요 원인인  고 가  우리들에게  불쾌하니까 단지 그것을 회피 할

따름이다 

선.악이란 옳고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고.락의  문제인것이다

 

- 출처 : 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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