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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미스터리 및

우리나라에서 먼저 비행기(비차)를 만들었다.

by 현상아 2011. 4. 25.

우리나라에서 먼저 비행기를 만들었습니다.

 

 


그 비행기를 최초로 만든 발명가 정평구는
1552(?)~1593 한성 출생.

정평구는 원래 성격이 호탕하고 남을 잘 웃기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친구라면 아무도 가리지 않고 잘 사귀어 그의 주변에는 상것, 양반 할 것 없이 다 잘 모여 다녀서 그들이 다니는 주막에는 술이 항상 동이 날 지경이기도 하였다.

그는 게다가 머리가 비상하여 어느 날에는 가난한 친구를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자네 쌀 구경 했나?"
"쌀집 지날때 한번 했다네."
"자네 잘 살고 싶지 않은가?"
정평구의 물음에 그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잘 살고는 싶지만 그게 어찌 내 뜻대로 되는가."
"그럼 귀농을 하면 되지 않겠나?"
"양반이 귀농을 한다면 필시 괄시받을 것이네. 어찌 내 용렬함으로 큰 출세를 바랄 것이며 귀농을 한다 해도 노력할 자신은 있지만 남에게 놀림 받을 것이
두렵기만 하네."
정평구는 이 소리를 듣고 불쌍한 이 친구를 잘 살게 해줄 방도가 없을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얼마 생각하던 도중 그는 지관을 불렀다. 지관은 땅을 보고 다니는 사람으로 풍수를 보는 대가인데 그 지관에게 바로 자신의 대부터 잘 살게 해 줄 묫자리를 봐 달라고 부탁한다.

그 지관은 몇날 며칠을 명당을 찾아 다니다가 20일 후에야 겨우 명당을 발견했다고 정평구한테 말했으나 그 명당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영산이라 거기에 묘를 썻다가는 부락민들이 그를 쳐 죽일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정평구는 허허 웃으며 친구의 부친의 묘를 파서 친구와 함께 시신을 일단 야밤을 틈타 그 명당 자리에 묻고는 들키지 않도록 봉분을 만들지 않았다. 이후 그는 그 마을로 내려가 한양의 윤형원 대감이 묘를 그 곳에 쓴다고 거짓말로 유언비어를 퍼뜨리자 순진한 마을 사람들은 그걸 믿고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정평구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이 위태로운 위기를 넘길수 있냐고 묻자, 정평구는 그 곳에 미리 가묘를 만들면 윤형원이 묘를 쓸 수 없을 것이라고 넌지시 일러 주어 친구의 아버지 시신을 묻은 봉분없는 묘터에다가 봉분을 만들어줘 근사한 실제 무덤이 만들어졌으며 정말 그것때문엔지는 몰라도 그 친구는 2년 후에 진사과에 급제하고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

이런 정평구는 한양판 봉이 김 선달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그는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고 가난한 사람을 먹여 주고 의학적 지식도 약간 배워먹은 것이 있어 몸이 다친 사람을 치료해 주기도 하는 등 열심히 살았으며 장년이 되어서야 겨우 무과에 15등으로 급제했으나 그는 화약을 다루는 관리였다. 그는 아무튼 화구령이 되었다가 부임지인 진주로 내려오게 된다.

그렇게 와서 진주에서 생활하던 도중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그는 열심히 일해 화약을 질좋게 많이 만들어 조선군이 이기도록 많은 도움을 주어 그 공을 김시민 장군에게 인정받아 남해 권관으로 2등급이나 승진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1년이 지난 1593년에 진주성이 왜군에게 포위당하게 된다. 이때부터 비차가 활약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왜군 3만명이 진주성을 포위하자 유능한 김시민 장군은 수십차례 적군의 공격에서 진주성을 지켜낸다. 그러다가 김시민 장군이 싸우다가 전사하자 일단 왜군은 물러났으나 2개월 후에 다시금 진주성을 대대적으로 쳐들어오게 된다.

진주성을 포위한 왜군은 하도 피난민들이 많은 진주라 피난민이 조선군을 도와 쉽게 함락할 수가 없자 안에 있는 식량이 떨어지도록 아예 꽁꽁 몇십겹으로 성을 포위해 버린다. 이에 백성들은 굶는 자가 허다했고 왜군이 기운을 내서 쳐들어와 하루하루 겨우 버티는 실정이었는데 100리 밖 합천에 명군이 주둔해 있어서 곤양 군수 이종직이 명군의 진지에 도와달라는 파발마를 수차례나 보냈으나 명군의 장수들은 목숨이 아까워 도와주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이에 정승 이원익이 진주성에 통보하기를 15일, 보름만 버틴다면 명군 5천을 이끌고 구해준다고 서찰을 보내왔다.

권관 정평구는 그러나 15일동안 버틴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을 알았다. 당장이라도 왜군이 쳐들어오면 함락당할 가능성이 훨씬 우세한데 15일이나 버티라니. 무모한 요구였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정평구는 그때부터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아프다는 핑계로 집에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생각에 골몰하였다. 밖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보지 않고 방 안에만 있었다. 똥도 물론 안누고...

이렇게 3일이 지났을까. 3일동안 방 안에 혼자 감금하여 생각에만 열중하던 그는 3일 후에야 밖으로 뛰쳐나와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했다. 그걸 백성들이 이상하게 여겼으나 그는 그런데에 신경쓰지 않았고 막바로 진주성 감영으로 뛰어가 진주성 방위 대장에게 자신이 방에서 정성들여 쓴 설계도를 내보인다. 그리고 감영에서 공인 수십명을 제공받고는 자기 설계도대로 뭔가를 만들도록 한다.

그러나 그때 감영의 재산이 별로 없었으므로 백성들에게 일정한 기부금을 얻어 재료를 겨우 구한다음 그가 방에서 나온지 5일 뒤에야 뭔가를 심혈을 기울여 만들더니 그로부터 또 이틀 후에야 겨우 완성되었다.

완성된 모습은 지금 존재하지 않으나 아무튼 그때 완성된 것이 바로 비차였다. 비차의 모습을 적기를 당시 진주민들이 비차를 보고는 모두 경악하고 탄식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아무튼 9일동안 만든 비차. 이 비차는 정평구가 홀로 시험을 한 결과 하늘을 나는데에 성공하여 높이 높이 날아 백성들이 그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이 날았다가 번개가 치자 빠른 속도로 북문에 착륙하였으나 그는 어느 한 군데 다친 곳이 없었다.

그때부터 정평구의 대대적이 '공중전'이 펼쳐졌다. 그 공중전에 정평구는 비차를 타고 아래의 왜군들에게 화살을 쏘고 돌을 던졌으며, 그가 출전한 첫날 왜군들은 비차의 공습에 무려 수백명이 죽고 수천명이 다쳤다고 한다.

이튿날 두번째 출전에도 왜군은 이번에는 하늘로 총도 쏘고 방패로 막고 시도도 해 보았지만 별수 없이 이번에는 화약에 불을 붙여 왜군의 진지로 던져 왜군의 막사들이 거의 불타서 첫날보다 더 많은 수의 왜군이 죽고 다쳐 왜장들까지 겁을 먹어 땅굴을 파라고 명령을 내렸다.

셋째날에 그가 다시 비차를 타자 왜군들은 지레 겁을 먹어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으나 이번에 정평구는 싸우려고 나온 것이 아니라 합천으로 비차를 타고 날라가 명군에게서 진주민들이 하루동안 먹고 살 만한 양식을 가득 싣고 돌아왔다. 이때 비차는 정평구 혼자 한 대만이 아니라 그의 수하 공인들 25명이 각각 한대씩을 조종했다고 하니 이미 비행기 편대가 그때 만들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진주시민들도 양곡을 얻고 또 전투도 전력을 다하자 오히려 왜군들이 초조해졌다. 이제 3일 후면 이원익 정승이 이끄는 군사들 5천이 당도할 테니 왜군들은 그때까지 진주성을 점령해야만 했고 정평구는 그때까지 막아야만 했다. 정평구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넷째날에는 정평구가 자신의 운세를 점을 치다가 불길함을 느껴 아프다는 핑계로 공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왜군이 동문쪽으로 쳐들어왔으나 패했다.

다섯째날, 정평구는 자신의 흉이 다한 줄 알고 밖으로 나오다가 깃대가 부러져 그의 발 앞에 떨어졌다. 그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불길하다고 수근댔으나 그는 무시하고 그냥 비차를 타고 공습에 나섰다. 그가 공습에 나서 왜군 수백명이 다시 죽었으나 그가 당당하게 진주성으로 돌아올 즈음 왜군 조총부대의 집단 사격이 이어졌다. 왜군들은 그만을 조준하고 조총을 퍼부어댔으며 정평구는 요리조리 잘 피하고, 막다가 결국 총에 맞았으며 비차는 엄청난 속력과 함께 진주성 안으로 떨어졌다.

진주성 안으로 떨어지자 백성들이 모두 그쪽으로 달려갔고 그곳에는 정평구가 거의 죽은 채로 신음하고 있었는데 의원이 달려와 맥을 짚으니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때 정평구를 묻을 묘지가 없어 화장시켰는데 이후 진주성의 장수가 선조에게 비차를 만들자고 권했고 설계도를 찾았으나 설계도가 찾을 수 없어 만들지를 못하였다. 그 이유는 항상 설계도를 그가 자기 품에 가지고 다니다가 화장당했으니 그것과 함께 타 버렸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한편, 나머지 25대의 비차들은 사용할 방법을 몰라 녹슬다가 1597년에 진주성이 점령되자 왜군들에 의해 파괴되고 불타게 된다.

 

내용출처 : 야사, 조선왕조 실록, 개인작성, 일본의 <사기>, <조선책략> 등등

 

상기내용 출처 : http://blog.naver.com/dmc6463?Redirect=Log&logNo=80022738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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