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우리는 민족의 유산을 잃었다♣
-**아! 낙산사 그대가 그립다
**-
우리나라에는 '3대 관음도량' 이 있다.
동해 낙산사, 남해 보리암, 서해 강화도보문사 등.
여기에 여수 향일함을
더하면 '4대 관음도량'이 된다.
관음도량은 대자대비(大慈大悲)한 관세음보살을 신앙하는사찰이다
우리나라 불자의 50% 정도가
관세음보살을 믿고 의지하는 관음신앙을 한다.
우연의 일치 같지만 4대 관음도량은 모두 바닷가에 위치한다.
왜 그럴까?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이 중의 한 사찰인 동해 낙산사가 순식간에 전소(全燒)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 화마(火魔)가 삼킨 것이 어디 낙산사
뿐이랴?
울창한 송림, 집과 가구들,
더불어 살아가는 많은 식물과 작은 벌레들까지 다 앗아갔다.
정부당국에서는
40억원을 투입하여 '낙산사를 복원' 한다고 한다.
복원이라니?? 다 타고 검은재만 남았는데 무엇을 복원하나??
이럴때는
'재건(再建: 그 터에 다시 일구어 세운다)' 이라고 해야한다.
불교의 전문 용어로는 "중창불사(重創佛事)" 라고
한다.
정부당국이 이렇게 무식하니까
KBS. MBC. SBS 등 TV 에서 낙산사 화재소식을 전하면서
"대웅전을 비롯하여
전소 되었다." 라고 하루종일 떠들어 댔다.
미안하지만 낙산사에는 "대웅전"이 없는데~~
나무를 많이 심고 잘 가꾸자는
식목일에,
전 국민을 놀라게 하는 산불이 이곳저곳에서 우후죽순처럼 발생했다.
고성 비무장지대 산불, 서산 가야산 산불, 양양
산불~
이 모두가 자연발생적인가~~불씨를 사람이 퍼뜨리지는 않았을까?
대형사고 뒤에 늘 꼬리표가
붙는다.
"인재(人災)" 라고~~
이번에도 방심한 사이에 되살아난 불씨가 원인이 되었으니
누구도 변명할 수 없는 '인재(人災)"
리라.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삼재(三災)를 당한다.
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림도 없다.
삼재란 수재(水災).
화재(火災). 풍재(風災)를 말한다.
이 삼재를 자세히 살펴보면,
물. 불. 공기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하루도 가깝게
지내지 않으면 생존 자체를 할 수 없는 유용한 것들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고, 재산과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집어 삼키는
무서운
마왕(魔王)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반드시 전조(前兆:조짐. 징후)가 있다.
다시 말해 낌새나 예고편을 미리
보여준다.
사람이 알아 차리지 못하거나, 방심하거나,
'설마~' 라고 흘려버리는 순간부터 문제는 심각해 진다.
필자는
동해 낙산사를 일 년에 한번은 꼭 찾았다.
그때마다 틈틈히 카메라에 담아 놓았던 사진 들 중에서
화마에 잿더미로 사라진~그래서 두
번다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전재하면서 애석한 마음을 표한다.
2005년 4월 7일
이른아침에
부드러운 세상 가꾸는 부드마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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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에 담은 낙산사의 아련함이여.♡
*낙산사의
큰법당인 '원통보전' 과 7층석탑의 모습.
이 원통보전이 완전히 전소 되어 다시는 볼 수 없다. 이 안에 있던 건칠관세음보살좌상은 만일을
대비하여 스님들이 미리 지하 창고로 옮겨 무사하다.
*낙산사홍예문(洛山寺虹霓門-강원도유형문화재 제33호)
조선 세조 13년(1467)에 왕이 낙산사에 행차하여 절 입구에
세운 무지개 모양의 돌문이다. 당시 강원도는 26개의 고을이 있었는데, 세조의 뜻에 따라 각 고을의 수령이 석재를 하나씩 내어 26개의
화강석으로 홍예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홍예문 위에는 1963년 세운 누각이 있는데, 앞면 3칸·옆면 1칸의 문루이다. 이 문루는 주변 지형을
적절히 이용하여 홍예석 주위에 자연석을 쌓고 세워 특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낙산사원장(洛山僿垣墻-강원도유형문화재 제34호)
낙산사 법당인 원통보전의 둘레를 사각으로 에워싸고
있는 담장이다. 조선 세조(재위 1455∼1468)가 낙산사를 고쳐 지을 때, 처음 이 담장을 지었는데 대부분 터만 남아 있어 최근에
연결·보수하였다. 돌기와와 흙으로 높고 정연한 담장을 쌓고 넓은 벽면을 아름답게 장식한 이 담장은, 법당을 둘러싸 신성한 지역을 구분하면서 공간
조형물로서의 효과도 함께 나타내고 있다.
* 요사채(스님들이나 신도들이 기거하는 건물)의 모습
낙산사 요사채는 정말 아름다웠다. 깔끔하게 촘촘이 지어진 많은
요사채들이 이번 화재로 한 줌의 잿더미가 되었다.
*낙산사동종 (洛山寺銅鐘: 보물 제479호)
조선 예종 1년(1469)에 그의 아버지인 세조를 위해 낙산사에
보시(布施)한 높이 158㎝, 입지름 98㎝의 종이다. 종 꼭대기에는 사실적이고 기품 있어 보이는 용 2마리가 서로 등지고 있어 종의 고리역할을
하고 있다. 어깨 부분에는 연꽃잎으로 띠를 둘렀다. 몸통에는 가운데 굵은 3줄을 그어 상·하로 나누고, 위로 보살상 4구를 새겼다. 보살상
사이사이에는 가로로 범자를 4자씩 새기고, 보살상 머리 위로는 16자씩을 새겨 넣었다. 몸통 아래로는 만든 시기와 만들 때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종의 밑 부분에는 너비 9.5㎝의 가로줄이 있어, 그 안에 당시에 유행하던 물결무늬를 새겨 넣었다. 큰 종으로는 조각수법이
뚜렷하고 모양이 아름다우며 보존상태가 좋아, 한국 종을 대표하는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 종의 소재가 청동이므로 이번 화마를 견디지못하고,
500년 동안 낙산사를 지켜오던 인고의 세월을 마감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여~~ 위의 그림은 낙산사 동종에 그려진 보살입상이다.
*낙산사 원통보전을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 늘 이곳에서 옷 마무새를 고치고 정숙한 마음이
되었는데 이제는 허전함이 밀려온다. 위의 편액 '洛山寺' 를 소리 없이 읽어보면서~
*낙산사 원통보전 첫 관문인 돌 길과 사천왕문이 수백년 묶은 고목의 녹색 잎새와 잘 어우러진 모습이다. 사천왕문에는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우람한 네 구의 사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있어 마음이 검은 사람은 흠칫 놀란다. 아....이 광경을 다시 볼 수 없나니...
*낙산사칠층석탑 (洛山寺七層石塔-보물 제499호)과 이백년 된 보리수나무
이 석탑은 창건 당시
3층이던 것을 세조 13년(1467)에 이르러 현재의 7층으로 조성한 탑이다. 이때 수정으로 만든 염주(念珠)와 여의주를 탑 속에 봉안하였다
한다. 탑의 머리장식부에는 가늘고 긴 쇠막대를 중심으로 원나라의 라마탑(喇마塔)을 닮은 여러 장식들이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어 또 다른 특징이
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양식을 이어 받고 있으나 전체의 조형이 더욱 간략화 되었다. 이 탑은 다행이도 이번 화마에 잘 견디어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도리 자체가 열기에 달구어진 상태라서 견고성이 염려된다. 잎이 푸른 이백년된 저 보리수 나무는 이제 볼 수가 없어
마음이 아프다.
* 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洛山寺乾漆觀音菩薩坐像-보물 제1362호)
조선시대 초기에 조성되었다. 낙산사 원통보전에 모셔져
있는 건칠불상으로, 근처의 영혈사에서 모셔왔다고도 전해진다. 금속으로 만든 8각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채 앉아 있는데, 적당한 크기로 허리를
곧추 세우고 고개만을 앞으로 약간 숙여 마치 굽어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머리에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높은 보관을 썼으며, 네모꼴에
가까우면서도 각지지 않은 둥글고 탄력적인 얼굴에는 귀·눈·입·코 등이 단정하게 묘사되어 있다.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고,
가슴 부분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가슴에 올리고 왼손은 배에 두었으며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모양을 하고 있는데, 가냘픈 듯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양 어깨를 덮은 옷은 옷주름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는데, 내의 깃이 가슴 밑을 수평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온몸에는 화려한
구슬장식이 드리워져 있다.
이 관음보살상은 표현수법으로 보아 고려 후반의 전통양식을 바탕으로 한 조선초기의 작품임을 짐작케 해준다.
전체적으로 각 부분의 비례가 좋고 특히 얼굴표정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머리에 쓰고 있는 보관은 고대 이래의 형식에 원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보관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이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스님들이 미리 지하장고로 옮겨 놓아 이번 화마를 피해갈 수 있어서
그나마 큰 다행이다.
*의상대(義湘臺-강원도유형문화재 제48호)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낙산사를 지은 의상대사를 기념하기 위해
1925년에 만든 정자이다. 원래 이곳은 의상이 낙산사를 지을 당시 머무르면서 참선하였던 곳으로 옛부터 의상대라 불렸다고 한다. 6각으로
만들어진 아담한 크기의 의상대는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길 해안 언덕에 있어 좋은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난간을 비스듬하게 세운
것은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의상대는 다행이도 이번 화마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홍련암에서 바라 본 의상대와 주변의 모습이다.
관음송(觀音訟)의 기개와 늠름한 성품이 보는 이의 마음에 솔향을 가득
전해줄 듯 하다. 건재하기는 한데... 더위는 먹지 않았는지 조심스럽다.
▲동해 낙산사 해수관음보살입상
여러겹의 연꽃잎이 핀 연화대좌 위에 사뿐이 나투셨다. 보관에는 정광여래(아미타불)를 정대하시고, 중생의 온갖 소원을 다 들어주실 감로병을 꼬옥 움켜쥐고서 어느중생을 교화할까를
살피는듯 하다. 다행이도 이번 화마를 피했지마는 주위에 울창한 송림을 모두 잃어 앞으로 50년은 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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