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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구)세상사 이모저모

집중해야 공부 잘 한다

by 현상아 2006. 9. 21.
 민족사관고 졸업하고 프린스턴대 진학한 곽지용군 -


지난해 프린스턴, 칼텍, 컬럼비아, 코넬, 듀크 등 11개 대학에 합격하고 프린스턴대에 진학한 곽지용군(20)에게 공부는 선택이요, 의지요, 재미라고 한다.

“교환교수로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때 2년, 중학교 때 1년 반 정도 미국에서 살다 왔어요. 엄마가 비행기 안에서 알파벳을 가르쳐주신 게 영어공부의 시작이었죠. 미국은 중학교도 수업이 오후 2~3시면 끝나는데 공부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을 때라 시간 나는 대로 놀았어요. 그래도 나중에 대학은 미국에서 다녀야겠다는 생각은 했죠. 초등학교 때 부모님과 미국 동부지역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여행했는데 어린 마음에도 그 학교들이 좋아 보이더라고요.”

아무 걱정 없이 미국 아이들과 뛰어놀다 중학교 3학년 여름 귀국한 그는 맞닥뜨린 국내 현실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또래 중학생들이 이미 대학 진학을 위해 치열하게 선행학습을 하고 있었던 것. 막연히 미국 유학을 꿈꿨던 그는 서둘러 준비하지 않으면 꿈이 좌절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고 한다.

마음만 초조할 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그에게 한줄기 희망이 돼준 건 두 권의 책이다. ‘민사고 천재들은 하버드가 꿈이 아니다’와 민족사관고 초기 졸업생 네 명이 쓴 ‘내 공부는 내가 한다’가 그것. 두 권의 책을 통해 유학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 비로소 보이는 듯했다는 그는 민족사관고 국제반 진학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민족사관고가 수재들만 들어가는 학교로 명성이 자자하기에 과연 입학할 수 있을지, 설사 입학한다 해도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지만 지레 겁먹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중학시절의 절반가량을 미국에서 보낸 그는 일단 중학교 3학년 과정을 확실히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점에 있는 문제집이란 문제집은 거의 다 사서 몇 번씩 반복해 풀었다고 한다. 그전까지만 해도 책상 앞에 10분 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수시로 들락거리며 물 마시고, 화장실 다녀오기 바빴다는 그는 ‘뒤처지는 공부를 따라잡으려면 생활습관부터 바꿔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되자 집중력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됐다고.

다행히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미국에서 생활한 덕분에 영어의 기본은 잡혀 있던 터라 미국에서 본 토플 점수와 영어 에세이로 서류 전형을 통과할 수 있었다. 창의력 테스트 등 몇 개의 관문도 무사히 통과한 그는 마침내 2002년 민족사관고에 입학했다.

민족사관고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벽까지 손전등 켜가며 공부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에게는 커다란 시련이 코앞에 버티고 있었다.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국제반 친구들의 실력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던 것. 1년 안에 그들 수준에 맞추지 못하면 유학의 꿈은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느껴졌다고 한다.

그의 ‘민족사관고 적응기’는 고군분투에 가깝다. 오랜 기간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아이들에 비해 영어 실력이 부족했던 그는 수업 자체가 험난한 산을 오르는 것 같았다고 한다. 영어 원서로 수업을 하는 터라 내용을 알든 모르든 무조건 읽어야 했는데 시간상 모르는 단어를 일일이 사전으로 찾아볼 수 없어 무조건 읽으면서 이해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또 학교에서 매주 3백50개 이상의 단어 시험을 보는데 처음엔 단어를 쓰면서 외우다가 도저히 시간이 안돼 눈으로 보며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1학년 때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찼거든요. 1학년 때는 시간이 아까워 동아리 활동도 안 했어요. 새벽 2시면 기숙사 전체에 불이 꺼지는데 손전등으로 불을 밝혀가며 공부한 적도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2박3일 동안 집에서 지낼 수 있는데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까지 책을 펴고 공부했고요. 집에서도 몇 시간씩 한자리에 눌러앉아 공부하는 저를 보고 엄마가 놀라실 정도였죠. 그렇게 한 덕분에 1학년 말에는 반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이 됐어요.”

처음엔 도대체 이해가 안되고, 황당하기만 했던 수업이 1년여 만에 알아듣기 쉬워지고, 과제에 대한 부담도 줄었다고 한다.

“민족사관고에서는 1학년부터 찰스 디킨스나 셰익스피어, 존 그리샴 같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원서로 읽게 해요. 2주일에 1권씩 읽어야 하니 엄청난 부담이죠. 안 읽을 수는 없고, 이왕 하는 거 확실히 끝장을 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참고하라고 일러준 원서까지 다 챙겨 읽고 수업에 임했죠. 남보다 앞서가려면 남보다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넓고 깊게 공부하는 게 제 방식이에요. 그렇게 하면 처음엔 지지부진한 것 같아도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거든요.”

‘공부할 때는 절대로 요령을 피워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공부 철학. 그는 책을 읽을 때도 앞뒤 표지는 물론 목차와 서문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하게 읽는다고 한다. 잠을 줄여 공부해야 할 때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뿌린 만큼 거둘 때의 성취감은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로 짜릿하다고.

성적이 안정권에 들자 그는 과외활동을 시작했다. 우선 초등학교 6학년 때 1품까지 땄던 태권도를 다시 시작했다. 다른 운동은 하지 않고 태권도만 집중적으로 한 결과 3단을 따고 2학년 때는 태권도부 주장, 3학년 때는 태권도부 보조교사로 활동하게 됐다. 그는 태권도를 통해 체력뿐 아니라 리더십도 기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공계열 공부해 노벨상 타고 싶어‘한다면 한다, 아니 더 잘하고 만다’는 그의 신조는 민족사관고 영자 신문 ‘민족헤럴드’의 편집장을 맡았을 때도 진가를 발휘했다. 디자인팀과 편집팀을 나누고 사설팀을 분리시키는 등 스태프들이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것. 팀원의 사기가 진작돼 신문의 질이 높아졌고 3백~4백 부였던 발행부수를 1천 부까지 늘리는 성과로 이어졌다. 문화일보와 교육부가 주최하는 미디어 콘테스트에서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봉사활동에도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학교에서 권하는 자원봉사에도 열심히 참여했지만 그는 집 근처 장애아동보호시설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매우 보람됐다고 한다.

어릴 적 그의 장래 희망은 쓰레기수거차량 기사. 쓰레기수거차 모양이 독특해서 꼭 운전해보고 싶었다고. 그러나 지금의 그는 이공계열에서 공부하다 어떤 전공을 선택하든 노벨상을 탈 만큼의 성과를 올리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야무진 꿈을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을 프린스턴대에 내딛기로 결정했다.

“미국 서부 쪽은 연중 날씨가 따뜻해서 공부가 안될 것 같더라고요(웃음). 동부에 자리한 프린스턴대는 아이비리그 중에서 학부 중심의 인재 양성을 하는 곳으로 명성이 높아요. 인구 1만 명 정도의 소도시에 대학이 하나의 타운을 형성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여성동아 200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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