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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다큐멘터리 및

김치의 역사와 영양, 맛, 제조방법 ...

by 현상아 2006. 11. 21.
김치를 의미하는 옛말은 ‘디히'와‘지'인데‘지'는 지금까지도 김치의 다른 표현으로 불리고 있다. 상고시대에는 김치를 ‘저(菹)'라는 한자어로 표기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김치·젓갈무리인‘저해'가 기록되어 있으며 또 "고려사(高麗史)","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서도 ‘저'를 찾 아볼 수 있다. 이후‘지(漬)', `염지(鹽漬)', `지염(漬鹽)', `침채(沈菜)', `침저(沈菹)', `침지(沈漬)', `엄채(掩菜)', `함채(鹹菜)' 등이 김치무리로 표기되었다. `저'란 날채소를 소금에 절여 차가운 데 두고 숙성시킨 김치무리를 말하는 것이다. 19세기 초의 저서인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는 저에 대한 설명과 함께 많은 종류의 김치가 선보이고 있다.
김치란 말은 `침채'라는 한자어에서 비롯되었다. 이 한자어는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에는 없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만든 글자인 듯 하다. 이 단어는"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라고 하였는데 이 가 에서, `짐치', 다시 `김치'의 여러 단계로 어음변화가 일어나 김치가 된 것 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보다 더 오랜 고유어로 `디히'가 있다. "두시언해(杜詩諺解)"권3에 원문의 `동저(冬菹)'를 라 번역한 데서 이 귀한 말을 확인할 수 있다. 남도 지역 특히 전라도에서는 지금도 김치를 `지'라고 하며 황해도와 함경도, 서울말에도 `오이지', `짠지' 등의 `지'가 있는데 알고 보면 이 `지'는 `디히'가 변한 것으로 이는 김치의 역사가 자못 오래되었음을 말하며 그 생명력이 긴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우리 민족이 고대부터 채소를 즐겨 식용하였고 소금을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사실, 젓갈과 장 등의 발효 식품이 만들어진 시기 등을 고려할 때 삼국시대 이전부터 김치무리가 제조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김치무리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동이전" 고구려조이다. “고구려인은 술빚기, 장 담기, 젓갈 등의 발효 음식을 매우 잘한다"는 기록은 이 시기에 이미 저장 발효 식품이 생활화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신문왕이 683년에 왕비를 맞이하면서 내린 폐백품목 가운데 간장, 된장, 젓갈무리가 들어 있어 발효 식품이 상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삼국유사"에도 소금에 절인 김치와 젓갈이 나오지만 양념이 가미된 담금 형태의 김치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이 시기에 산출된 채소인 순무, 외, 가지, 박, 부추, 고비, 죽순, 더덕, 도라지, 고비 등으로 소금에만 절인 것이 주된 김치무리였을 것이다. 그밖에 이들 채소를 장에 절인 형태, 초에 절인 형태, 술지게미에 절인 형태, 소금과 곡물 죽에 절인 형태 등이 있었다고 추축된다. 이런 절임법은 오늘날의 장아찌형으로 우리나라는 풍부한 해산물과 양질의 채소, 훌륭한 발효 기술로 장아찌형 김치무리와 생선, 곡물, 채소, 소금으로 이루어진 오늘날의 가자미식해, 북어식해 같은 식해형 김치무리가 존재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한편 백제 문화로서 서기 600년경에 창건된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토기 중에는 100센티미터 이상 되는 대형 토기들이 있다. 이것들은 대체로 승려들이 생활하였던 곳에서 출토되었다. 크고 형태가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의도적으로 땅을 파고 묻어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 대형 토기는 겨우살이에 대비한 김장독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으리라 추정되며 삼국시대 김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유적이 되고 있다. 이외에도 신라시대 성덕왕 19년(720)에 세워져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는 법주사 경내에 있는 큰 돌로 만든 독은 김칫독으로 사용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김치무리를 만들어 저장한 것으로 생각하면 김장의 기원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려시대
고려 초기는 사회 전반에 숭불 풍조가 만연하여 육식을 절제하고 채소요리를 선호하였다. 전시대의 김치 형태에서 순무, 무, 가지, 오이, 부추, 미나리, 고비, 아욱, 박, 고사리, 도라지, 토란, 대산(大蒜),죽순, 형개, 동과(冬瓜,동아), 산갓, 황과, 산추, 파, 생강 등으로 재배 채소의 종류가 더욱 많아지고 나박지형의 김치가 선보인 것이 특징이다. 김치에 있어 절임 형태의 김치무리와 함께 새롭게 개발된 국물 있는 김치무리 곧 동치미류가 등장하여 분화된 형태를 보여준다.이 시기에도 단순 절임형 김치무리에 마늘 등의 양념과 천초, 피, 귤피(橘皮) 등의 향신료가 가미되는 양념형 김치무리가 등장하게 된다. "동국이상국집"의 "가포육영(家圃六泳)"에는 “무청을 장 속에 박아 넣어 여름철에 먹고 소금에 절여 겨울철에 대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장아찌와 김치가 분리된 것을 나타낸다. 또한 겨울을 대비한다는 것으로 보아 김장의 풍습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때의 소금에 절인 김치류는 오늘날의 짠 무를 물에 희석하여 먹는 나박지, 동치미 등의 침채류를 생각할 수 있다. 고려 말 이달충(李達衷)이 지은 "산촌잡영(山村雜詠)"이라는 시에는 “여귀풀에 마름을 넣어 소금 절임을 하였다."는 구절이 있어 김치무리 야생초를 이용하여 제철 김치의 맛을 즐겼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또 "목은집(牧隱潗)"에 나오는 이색의 시구에 `침채(沈菜)', `산개염채(山芥鹽菜)', `장과(藏瓜, 된장에 담근 오이장아찌)' 등이 나온다. 여기에서 김치란 우리말의 직접적인 한자 표기인 `沈菜'가 선보이고 있으며 장아찌가 문헌상으로 처음 소개되고 있다. 한편 "고려사"-"예지(禮志)"에 `근저(미나리 김치)', `구저(부추김치)', `청저(나박김치)', `순저(죽순김치)', 등의 김치무리가 있었다. 이러한 제향음식(祭享飮食)과 관련되는 김치류 외에도 더 많은 종류가 있었을 것이다. 고려 사회에서의 김치는 앞서 밝힌 채소류가 주원료로 쓰인 단순 절임형 김치무리가 일반적이었을 것이며 그 밖에 장아찌형, 나박지형 김치와 양념이 가미된 김치무리가 있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김치의 원료에 있어 배추가 주재료로 된 통배추김치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있다.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쓰여진 숭채(배추)는 약용으로 사용되었고 김치로 이용된 문헌상의 기록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배추김치의 보편화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초기 문예진흥책과더불어 정엽, 인쇄술, 천문학, 등의 산업이 급격히 발달하였다. 따라서 채소류의 재배도 더욱 풍성해지면서 김치류의 제조도 활발해졌고 인쇄술의 발달에 따른 농서(農書)의 폭넓은 보급 덕분에 채소 재배 기술이 향상되었다. 또 외국에서 여러가지 채소가 유입되어 김치 재료가 다양해졌고 여러형태의 담금법도 개발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조리 방법을 기록한 여러 문헌에는 순무, 무, 오이, 가지, 동아, 산갓, 죽순, 파 등이 김치의 주재료로 쓰이고 있다. 김치는 각 지역 산물에 따라 다르게 변화하였기 때문에 향토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한편 꿩(생치, 生稚)이 김치의 재료로 이용되는 등 채소에 육류가 가미된 형태를 보여 주기도 한다. 김치는 단순 절임의 장아찌형과 싱건지 형태의 김치가 있으며 나박지형, 동치미형 물김치까지 등장하고 있다. 김치의 국물색을 낼 때는 맨드라미나 잇꽃, 연지 등으로 붉은 색을 내기도 하였다. 또 김치에 양념 사용이 많아져 주재료와 부재료의 구분이 뚜렷해진다. 조선조 중기 이후에는 상업의 발달에 따라 상품 작물의 재배도 활발해졌다. 각종 전래 채소와 과수 재배, 원예 작물과 약초가 널리 보급되었고 이것들이 김치의 주재료, 부재료로 이용되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전래 식품으로는 호박, 고추, 옥수수, 고구마, 동아, 사과, 수박 등인데 특히 17세기 초에 유입된 고추는 우리 식생활에 큰 변화를 주었다. 고추가 김치 양념의 하나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이전의 담백한 맛의 김치무리가 조화미(調和味)로 바뀌게 되었고 주재료와 양념 재료의 종류가 늘어나게 되었다. 고추는 "지봉유설(芝峰類說)"(1613년경)에 그 기록이 보이나 김치에 이용되었다는 문헌기록은 "산림경제(山林經濟)"(1715년)에 처음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김치에 고추가 들어가면서 젓갈이 다양하게 쓰이게 되었다. 식물성 재료에 동물성 재료를 첨가하여 맛과 영양의 조화를 이루게 되었으며 김치의 감칠맛을 더욱 향상시켰다
김치의 영양성분과 역할은 그 원료에 따라 각각 다를 수 밖에 없으나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 주원료로 사용되는 채소에 함유된 칼슘, 구리, 인, 철분, 소금 등은 인체에 필요한 염분 과 무기질을 함유하므로 체액을 알칼리성으로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동물성 젓갈에서 아미노산을 얻어 쌀을 비롯한 곡물류에서 부족한 단백질을 보완할 수 있다. 김치가 익으면서 새우젓, 멸치젓, 황석어젓 등의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며 뼈도 녹기 때문에 칼슘의 급원이 된다.
▶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경우 부족해지기 쉬운 비타민B1(thiamin)의 흡수에 도움이 된다.
▶ 채소의 풍부한 섬유소를 섭취하여 변비를 예방하고 장염,결장염등의 질병을 억제한다.
▶ 다익은 김치는 유기산, 알코올, 에스텔을 생산하여 유산균 발효 식품으로 식욕을 증진 시킨다.
▶ 익어감에 따라 번식된 유산균은 창자의 다른 유해균을 억제하여 이상 발효를 막는다.
▶ 각종 비타민을 공급하는데, 특히 비타민C가 많고 고수, 갓, 무우청, 파 같은 녹황색 채 소가 많이 섞이면 비타민A가 많아진다.

김치를 처음 먹어보는 외국인들이 느끼는 김치의 맛은 고통스러울 정도의 매운 맛이다. 한국인들은 유난히 매운 음식을 좋아 하는데 김치가 가장 대표적인 매운 음식에 속한다. 또한 한국인들은 기름지고 느끼한 음식을 먹을때면 김치를 찾는데 무슨 이유가 있을까? 김치의 매운맛은 고추의 성분중 캡사이신(capsicine)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캡사이신은 대사작용을 활발하게 하여 지방을 태워 없애기 때문에 체내에 지방이 축적되는것을 막아준다. 또한 캡사이신은 식욕을 촉진하기도 한다. 한국인들이 기름진 음식에 김치를 찾는것은 고추의 이러한 작용에 입맛이 길들여져 왔기때문이다. 또한 고추에는 상당량의 비타민 A가 7,405 I.U., B1이 0.3 mg, C가 220mg이 들어있다. 마늘은 예로부터 몸에 좋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있다. 외국인들은 마늘의 독특한 냄새와 맛때문에 마늘을 싫어하기도 하는데 최근 마늘의 항암효과가 알려지면서 관심이 늘고 있다. 한의학계에서만 주장되다가 최근 실험에 의해 과학적으로 마늘이 항암효과가 있음이 입증되면서 서양의학계에서도 그 효능을 인정받고 있다. 사실 마늘의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도 마늘은 우리 음식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양념이었지만 요즘 더 욱 주목을 받고 있다. 살균 작용이 있으며 항균성 물질의 하나인 알리신은 체내 비타민B1이 0.33mg, B2는 0.53mg, C는 7mg 정도이다. 예전에는 김치에 젓갈을 넣어먹는 집이 거의 없었으나 요즘은 김치에 젓갈을 넣는것이 일반화 되었다. 젓갈은 김치와 매우 이상적인 만남이다. 젓갈은 이미 발효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김치의 숙성을 촉진 시키면서 필수 아미노산의 함량을 높여준다. 젓갈은 김치의 맛을 더욱 좋게 하면서 영양도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작용을 한다. 배추에 들어있는 캐로틴이라는 성분이 체내에서 비타민A로 작용을 한다. 비타민C도 다량 함유 되어 있으며 특히 대장암을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열량은 겨우 100g에 17Kcal밖에 못내고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도 조금밖에 들어있지 않아 영양 식품이라고 특별히 내세울 수는 없지만 자칫 비타 민류가 결핍되기 쉬운 겨울철에 비타민 A 와 C 의 공급원으로서의 배추의 가치는 과소 평가 할 수 없다. 더욱이 배추 속에 농축되어 있는 비타민 C는 소금에 절여 오랫동안 두어도 상당한 양이 그대로 남아 있다. 또 적은 양이긴 하지만 단백질의 아미노산 조성은 우수해 영양 학적으로 높이 평가 받고 있고 , 칼슘도 70mg 이나 들어있다. 비타민 A는 없지만 비타민 C는 44mg이나 들어있으며 칼슘이 62mg, 인이 29mg 들어있다. 또한 배추, 무우 등은 알칼리성 식품으로 체액을 알칼리성으 로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무우청은 영양가가 매우 높아 단백질의 약 60%는 순 단백질로서 라이신 함유량이 높은 우량 단백질이다. 배추와 마찬가지로 비타민A 와 C가 많고 철분도 많다. 파는 비타민B1을 활성화 시키는 작용을 한다. 살균, 살충의 효가 있으며 유기산, 유기염 등의 효소를 많이 가지고 있 다. 100g 당 칼슘이 73mg, 인이 46mg이나 들어있고 비타민은 푸른 잎에 A가 408I.U., B2가 0.15mg, C가 16mg정도 있다. 또한 마늘처럼 알리신이 있어 체 내 비타민 B1의 흡수를 도와준다. 배추를 절일때 쓰는 소금은 해로운 미생물의 침입과 번식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배추를 절이게 되면 배추의 부피가 크게 줄어드는데(숨이 죽었다는 표현을 쓴다.) 이것은 소금을 넣으면 배추 세포내의 농도보다 바깥의 농도가 더 높아져 삼투압의 원리에 의해 배추 세포내의 수분이 밖으로 빠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 삼투압 때문에 세포간 물질교류를 활발해지고 효소의 작용이 활성화 되기 때문에 조직감이 좋아지고 젓산이 잘 발효 될 수 있도록 한다.

절구는 보리 등의 곡식을 빻는 데 많이 썼지만, 작은 절구는 특별히 양념용으로 두어 깨 마늘 생강 등을 빻았다. 여름철 우물가에 큼직한 자연석을 놓고 중간을 옴폭하게 파내서 고추를 찧거나 으깨는 절구로 쓰기도 했는데, 오랫동안 여러 집에서 사용하느라 깊숙히 패이면 디딜방아의 확으로 옮겨 계속 썼다. 오지그릇 : 음식을 갈기 좋게 안쪽에 거친 홈이 잔뜩 패인 오지그릇 강판 : 돌로 구워 만든 강판. 오늘날의 강판 모양과 비슷하다. 마자 : 마자(磨子). 손가락을 끼워넣을 수 있도록 홈이 패여 있다. 이곳에 손가락들을 넣고 고정시킨 다음, 거친 면으로 양념을 갈았다. 깨소금 고춧가루 간장 등 양념을 보관하던 단지들이다.
경질토기 : 높이 89cm, 입너비 55cm, 목둘레 117cm, 배둘레 227cm의 가야시대 경질토기. 토기는 진흙으로 구워 만든 용기로, 정착 생활을 하면서 먹을 것을 보관 저장하고 이동하는 데 편리한 도구였다. 겨울이 긴 한반도에서는 채소를 소금 젓갈 간장 등에 절여 담가왔다. 철기를 사용한 초기국가시대에는 토기 제작 기술이 더욱 발달돼 수분이 새지 않는 경질토기가 일상에 널리 쓰였는데, 익는 동안 물이 많이 생기는 채소절임 음식을 저장하는 데 적당했을 것이다. 새우젓독 : 작은 새우젓독은 보통 새우젓을 살 때 새우젓 장수에게서 함께 건네받았다. 새우잡이 배는 한번 출어하면 많은 새우를 잡아야 했고, 잡은 새우들은 바로 독 속에 저장해야 부패하지 않았다. 배가 불룩한 옹기는 한정된 공간에 많이 싣기 힘들어, 배가 나오지 않은 새우젓독이 개발됐다. 또 각 독들 사이에 손을 넣을 수 있는 틈을 만드느라 밑동 지름이 입 지름보다 짧은 역삼각형의 독이 생겨났다는 추측이다. 굳이 새우젓만이 아니라 각종 젓갈을 담는 독으로도 쓰였다. 강원도는 산악지대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나무를 이용한 독이 발달됐다. 통나무의 속을 파내서 통을 만들고 밑받침을 끼워 고정시킨다. 운반하기 쉽고 깨지지 않으며 오래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옹기독 대용으로 널리 이용됐다. 사진의 독은 높이 128cm, 지름 80cm, 밑받침 지름 152cm, 두께 4cm로 국내에서 가장 큰 나무독이다 발효 저장식인 김치를 보관하는 김칫독은 지방별 특성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발달했다. 평안도 함경도와 같이 추운 겨울이 계속되는 북쪽 지방에서는 김칫독이 매우 크다. 또한 남쪽에 비해 키가 작고 옆으로 퍼진 풍만한 형태적 특징을 보인다. 함경도 회령(會寧) 지방의 흑유 계통 그릇은 일찍이 널리 알려진 것이다. 경기도 충청도의 중부권 김칫독은 키가 크고 폭이 좁아 날씬하고 예쁘게 생겼다. 경상도 지방의 독은 질감이 투박하고 둔하며 크기는 작은 편이다. 또 충청도 남부권의 독은 입구가 좁고 갸름한 형태며, 전라도 지방의 독은 키가 작은 반면 옆으로 비대하게 퍼진 풍만한 형태를 보인다 해주독 : 조선시대 후기의 해주독. 한국의 독이나 항아리들은 지역마다의 특성을 잘 담은 모양새를 갖추었으며, 대부분 도기(陶器)나 옹기(甕器)로 돼 있다. 그러나 관서 지방에서 나온 해주독’은 사기(沙器)로 구워져 있어 매우 독특하다. 해주독의 정확한 발생 연원은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후기 이후의 작품만이 많이 남아 있다. 형태나 모양 등에서는 청화백자의 영향을 받아 청화백자의 기법을 그대로 살린 것이 많다. 이중으로 된 김치 항아리 : 항아리 입구에 물이 흐를 수 있는 턱을 만들어 계곡에서 떨어지는 물이 턱의 주위를 돌아 흘러내릴 수 있도록 했다. 조선 말기 경상남도 합천 지방에서 사용했던 이중독은 자연과 더불어 살려는 선인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좋은 본보기다. 산에서 흐르는 계곡물을 이용, 더운 여름철에도 시원한 김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된 이 독은 산과 계곡이 많은 합천 등지의 산악 지방에서 많이 사용됐다. 자배기 : 둥글넓적하고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옹기그릇으로, 채소를 절이고 김치양념을 버무릴 때 사용한다. 그외 부엌에서 음식물을 운반하거나 그릇을 씻는 데도 쓰이며, 보통 손잡이가 붙어 있다. 오가리 : 조상들은 익혀 먹는 시기의 길고 짧음에 따라 각 김치들의 보관 장소를 달리했다. 좀 일찍 먹을 김칫독은 장독대 응달에, 그보다 늦은 겨울에 먹을 것은 도장에, 겨울에 내어 봄에 먹을 김칫독은 땅에 묻었다. 그리고 보온 보습 통풍이 뛰어난 짚으로 막을 지어 김칫독을 적온으로 보관했다. 사진의 김치광은 유르트(Yurt)를 연상시키는 원추형의 집인데, ‘오가리’라고도 불린다. 현재 이런 유형의 살림집은 남아 있지 않지만, 강원도 삼척 등지에서 건물의 부속 형태로 찾아볼 수 있다.
1.가꾼다 우리 밭농사는, 마치 아이를 안고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긁어주고 어르듯이 정성을 다한다. 2. 다듬는다 재료를 다듬는 순간부터 음식에 손맛이 들기 시작한다 3. 씻는다 모든 푸성귀는 세벌 씻고도 맑은 물에 여러 번 헹구었다. 4. 썬다 우리나라는 채소를 조리할 때 가급적이면 쇠칼로 써는 것을 피했다. 5. 간다 우리 음식의 조리에서 `간다’는 동작은 마술처럼 정교하고 신비롭다. 6. 절인다 `절인다’는 것은 조금씩 서서히 간을 배게 하는 과정이다. 7. 담근다 김치 맛의 오묘함은 양념들의 다양한 배합에 따른 것이다. 8. 삭힌다 한국 특유의 `삭은 맛’은 음식의 발효로부터 온다. 9. 갊는다 응달에 놓인 독은 김치를 서늘하게 보존하는 데 가장 알맞은 그릇이다. 10. 묻는다 흙의 단열효과를 이용해, 오래 보관하는 김치독은 땅에 묻었다. 11. 덮는다 짚은 보온 보습 통풍성이 뛰어나, 채소류의 보관재료로서 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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