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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자연·풍경 여행 및

통일의강 임진강

by 현상아 2006. 12. 9.

임진강 [臨津江]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황해로 흘러드는 강. 길이 254㎞. 유역 면적 8,118㎢. 강원도 북부를 흐르면서 고미탄천(古味呑川)과 평안천(平安川)을 합류하고, 경기도 연천에서 철원·평강 등을 흘러온 한탄강(漢灘江)과 합류한다. 고랑포를 지나 문산 일대의 저평지를 흐르는 문산천과 합치고 하구에서 한강과 합류하여 황해로 흘러든다.

국토가 분단되기 이전까지는 고랑포까지 배가 다녔고 소형 선박은 안협(安峽)까지 운항할 수 있었다. 강의 중상류 지역은 경기도의 동북단으로 황해도·강원도 등과 인접하며, 동쪽으로는 광주산맥의 지맥이 뻗어 지장봉(地藏峰, 877m)·보개산(寶蓋山, 724m)·향로봉 등 일련의 험준한 산이 있다.

임진강
임진강변

추가령구조곡을 사이에 두고 마식령산맥과 마주하며 그 지구대를 임진강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차탄천(車灘川)·한탄강 등을 합치면서 적성 부근에서 유로를 서남쪽으로 바꾼다.

임진강
숭의전에서 바라본 임진강

임진강
임진강변 부대에서

 

이들 하천이 합류된 유역에는 비교적 비옥한 평지를 많이 만들어서 쌀·밀·조·옥수수·고추·잎담배 등의 생산이 많다. 하류 유역에는 파주시·장단군 등이 있으며 한강과 함께 넓은 경기평야를 형성한다.

경기도 파주군 문산읍에 있는 문산평야.

예로부터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국경이 되어 역사적인 격전지이기도 하였다. 삼국 시대에는 임진강을 칠중하(七重河)라 하였고 연천군에는 고구려 칠중현의 치소인 칠중성(七重城)이 있었다.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이 강에서 백제군을 대파시킨 일이 있고, 신라 진흥왕은 이 강의 남쪽을 점령하여 고구려와 경계한 적이 있었다.

신라가 당나라와 더불어 고구려를 정복하였을 때에는 칠중성(積城 : 지금의 파주시 적성면)부근에서 이 강을 건너 평양으로 진격한 일이 있다.

공동경비구역 (Joint Security Area)
판문점은 서울에서 통일로를 따라 북으로 50㎞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진 곳으로, 현재는 남북대화의 장소로 이용되며, 군사정전회담이 열리는 곳으로 세계적인 명소가 된 이곳은 국토분단의 비극과 동족간의 전쟁이라는 민족의 아픔을 되새기는 산교육장이기도 하다.

강 하류 쪽의 파주군 중심지인 금촌은 토지가 비옥할 뿐 아니라 농산물이 풍부하고 소하천들이 많이 발달하여 있어 소규모의 주운(舟運 : 배로 화물을 나름)도 행하여진다. 문산읍은 경의선의 종점이며 판문점이 있어 남북 분단의 상징이며 군사상의 요충지가 되고 있다.

 

임진각 철교
임진각철교를 건너는 경의선 철도

봉서산(鳳棲山, 216m)은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이 산정에 산성을 쌓아 역사적으로 알려졌다. 문산 서북쪽의 임진진(臨津鎭)은 수도 서울을 방위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연천군 전곡읍에서 중요한 지류인 한탄강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흐르는데, 그 전곡읍 전곡리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전곡리선사유적지의 가을 풍경 모습

한탄강
연천군 장탄리

임진강 유역의 연천군은 본래 38선 이북이 되어 군정법령 제22호에 따라 38선 이남에 남은 지역을 파주군으로 편입시켰다가 1954년 10월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대체로 지금과 같은 행정구역을 갖추게 되었다.

경원선철도 종단점
신탄리역의 정경은 슬픔을 넘어 어떤 알지 못할 분노를 전한다. 철도 종단점 표지 철마는 달리고 싶다 라는 비원이 새겨져 있을 뿐이다.

장단군의 고랑포는 편리한 주운 때문에 물산의 집산지가 되던 곳이다. 장단의 임진강변에 있는 장단석벽(長湍石壁)은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예로부터 시인묵객이 많이 찾던 곳이다.


장단면사무소
옛날 파주시 장단면사무소.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는 지역주민들이 면사무소로 이용하며 많은 사람들이 근무했던 곳이리라. 면사무소 건물은 비무장지대 안이라서 인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하류 쪽에는 동파적벽(東坡赤壁)이 있으며 화장사·심복사·경순왕릉 등의 유적이 있다. 강의 중상류 지역은 6·25의 격전지로 많은 유적이 파괴되었으나, 보개산·문인폭(文人瀑)·연취암(蓮醉巖)·용추(龍楸)·문인석(文人石) 등의 명승고적이 도처에 많이 남아 있다. 또한, 강의 곳곳에는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고 판문점과 임진각은 남북 분단의 상징적인 곳이 되었다.

≪참고문헌≫ 韓國地名要覽(建設部國立地理院, 1982)
≪참고문헌≫ 新韓國地理(姜錫午, 大學敎材出版社, 1984)

죽음의 다리
중국 공산군은 바로 이 다리 근처에 매복하였다가 때마침 남하 중이던 미군에 집중사격을 가해 전멸시켜 버렸다. 그 때부터 이 다리를 미군이 전멸해 버린 죽음의 다리, 또는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뜻의 침묵의 다리라고도 불러왔다는 것이다.

DMZ내에 있는 군사시설
미군이 전방지역에서의 임무를 우리에게 넘겨준 이후 DMZ내에서 우리가 운영중인 시설

지뢰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안에 아직까지 어느정도 있는지 가름조차 할 수 없는 지뢰들. 사진은 대인지뢰

돌아오지 않는 다리
1953년 휴전 후 포로교환(1953.8.5~9.7) 당시 이 다리를 건너 북한으로 가면 다시는 한국에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돌아오지 않는 다리".

경의선 옆 열차화통
비무장지대(DMZ)로 들어가는 육중한 통문을 지나 북한을 향해 진입하여 1km 정도 지나면 철도 우측으로 증기기관차의 육중한 화통이 비켜 서 있다. 세월의 풍상을 말해주듯 붉게 녹슨 증기기관차는 그냥 아무 말 없이 한국전쟁의 참상을 말하고 있다.이 열차의 기관사였던 한중기씨는 한국전 당시 미군과 우리 국군은 황급히 퇴각하면서 이 열차를 북한 인민군이 사용할 것을 우려하여 폐기시켰다고 회고했다

숭의전

경기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산10 : 숭의전은 아미산의 끝자락에 아늑히 자리잡고 있으며 푸른 임진강을 바라보며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묘전이다.

남방한계선

황포돛배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에서 황포돛배를 타면서 임진강을 탐험할 수 있다.

임진강 적벽
붉은색 빛이 난다는 임진강의 적벽

화석정
율곡선생은 국사의 여가가 날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여생을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면서 시와 학문을 논하였다고 한다.
경기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산 100-1

자운서원

옛날 임진강 다리
경의선 철도가 지나가는 옛날 임진강 다리. 그 옆에 새로 세운 다리로 경의선이 달린다

서울 평양 이정표
도라산역의 평양 205km, 서울 56km의 이정표는 남북분단의 현실과 앞으로 극복해야 할 희망과 기대를 담고 있다

야월산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도신리 민통선 북방에 있으며 우수한 산림식생 보존지이며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초평도
파주시 군내면에 있는 안정적인 식생구조와 인간간섭의 배제로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로서 매우 중요함

문산습지
하천에 발달된 습지, 경기 파주시 문산읍 내포리(문산천 하구~송강교)

 

 


1953년 7월 27일 월요일 오전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됐다. 전선의 고지들은 조용해 졌다. 바다에서는 군함들이 귀항했고, 전투기들은 그들의 비행장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전쟁은 끝났다. 휴전이다. 남북은 즉각 2㎞씩 뒤로 후퇴하면서, 그 사이를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라는 완충지대로 만들었다. 그리고 남쪽은 DMZ 후방 5∼20㎞ 밖에 민간인 통제선(Civilian Control Line)이란 또 다른 선이 생겼다.

DMZ는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를 금지하도록 약속한 지대다. 그리고 민간인 통제선은 이 약속을 효율적으로 준수하기 위해 말 그대로 민간인이 거주하거나, 산업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남쪽의 필요에 따라 만든 지대다. 물론 북쪽도 비슷한 목적의 그런 지대를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한반도 허리를 구불구불 횡단하는 띠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후 50년이 지나 한 세기가 가고 또 다른 세기가 왔다. '그 띠가 어떻게 변해있을까?' 사람들의 머리 속에 20세기가 지구에 남기고 간 이 동서냉전의 흉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은 풀과 나무가 마음껏 자라고, 새와 물고기가 거칠 것 없으며, 온갖 야생동물이 뛰어 놀아도 그들의 훼방꾼은 없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런 상상이 발단이었을 것이다. 반세기 전 남과 북은 전쟁으로 서로 한쪽을 잃었지만, 그 반사적 이익으로 '자연생태계의 寶庫' 하나를 얻은 사실을 발견해 낸 것이다.

뒤늦게 찾아가 본 그곳에서는 자연이 자신들의 새 질서를 꾸며 가며 아주 특이한 자연생태계를 전개해 놓고 있었다. 戰場을 찾아 왔던 돼지풀이 토착식물을 밀어내며 치열한 영역 다툼을 하고 있었으며, 인간이 떠난 빈 마을을 아카시아, 버드나무, 갈대 숲이 차지해 놓고 있었다. 지뢰가 묻힌 그곳을 사람은 두려워했지만 자연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그 땅을 점령해 버렸으며, 그 속엔 이미 사라져버린 조나 팥, 귀리, 면화, 옥수수, 감자 따위가 혼자 자라고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멀리 시베리아에서 두루미, 재두루미가 그리고 몽골 고원의 독수리가 떼를 지어 찾아왔으며, 멸종된 줄만 알았던 산양 떼가 살고 있었다.
 



그곳에선 아직 인간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의 의도와는 아무 관계없이 그곳을 지구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연생태공원'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찬찬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곰곰이 생각하면 할 수록 흥미로운 곳이다.

그곳은 50여년전 전쟁을 할 때, 세계 각국의 무기 성능을 시험해보던 곳이다. 갖가지 전략과 전술이 짜여지고 실천됐던 곳이다. 그리고 지금은 개선하고 개량한 냉전 두 진영의 최첨단 무기가 '전시'되고 있는 곳이다. 군인들의 군복과 계급장, 내무생활과 군기, 병사들의 먹고 자는 방법 등 한국군과 북한군,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군대에 관한 과거와 현재가 존재하는 곳이다.

온갖 전쟁의 도구와 전략과 전술을 모아다 놓은 지구상에 한군데밖에 없으면서도 지금도 활용하고 있는 거대한 전쟁박물관인 것이다. 그곳은 DMZ권 문화라는 새로운 문화를 빚어 놓은 곳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전국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가져 온 이질문화와 군사문화가 뒤섞이고 충돌하며 아주 색다른 문화를 빚어냈다. 어떤 이는 DMZ, 그곳을 한국판 '멜팅 포트(Melting Pot)'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그런가하면 그곳엔 반세기 전 우리가 살던 모습, 풍습과 풍속도 그대로 묻혀있다. 그곳은 살아있는 냉전사회학 교실인 것이다.

천년고도 궁예도성은 지금 남쪽과 북쪽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고 비무장지대 한가운데 들어앉아 잠들어 있다. DMZ는 그 옛날에도 세력간의 각축이 치열하던 곳이다. 지금 수많은 關防유적들이 그 흔적이 되어 널려있다. 마침 이들 유적은 비록 방치되긴 했으나 섣부른 발굴이나 개발의 손때를 타지 않았다. DMZ는 거대한 역사유적지인 것이다.
철원의 북한 노동당사는 해방공간에 세워진 유일한 건물이다. 그리고 한탄강 승일교는 북한 이 '다리 미학의 백미' 란 말을 듣고 있다. 북한 건축을 알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단서들인 것이다. 그리고 철원 제일감리교회, 얼음창고, 동주금융조합, 제사공장, 철원역, 월정역의 잔해가 널려있는 옛 철원읍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던 도시유적지이다. 그곳은 근·현대사의 내용들을 속속들이 간직하고 있는 세계적인 건축·토목사 박물관인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오리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빚어 낸 철원평야와 운석이 떨어져 파였다는 해안분지 가 있는 지리학 교실이며, 전쟁을 치르는 동안 12명의 기독교도가

순교한 '바이블 루트'이다. 그곳은 20세기가 남기고 간 냉전유적지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한국 자연사 박물관'이다. DMZ는 전혀 뜻밖의 자원을 유산으로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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