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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럭셔리 및

세계 7 대 신비의 건축구조물 ...

by 현상아 2007. 1. 16.
World Best 세계 7 대 신비의 건축구조물 ... 2007-01-16 12:06
카테고리 : 미 소 4 http://blog.paran.com/plandirector/16020344




 

계인들이 뽑은 불가사의 건축물은 1년 후 2007년이 돼야 알 수 있다. 하지만 후보에 오른 많은 건축물 중에서도 2,000년 이전까지 인류가 만든 건축물 가운데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근현대 건축물을 재해석한다.먼저 고대 불가사의에도 이미 선정돼 있는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물로 무굴제국 황제 샤자한이 부인 뭄타즈 마할을 위해 만들었다는 타지마할.

 

그리고 4,000년 전에 25톤의 돌을 이용해 영국의 원주민들이 만들어 낸 스톤헨지, 중국의 만리장성과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등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파리의 에펠탑과 뉴욕 자유의 여신상,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는 2000년부터 5년 동안 엄격한 선별과정을 거쳐 100개가 넘는 세계 유적으로 뽑힌 곳이다.

 



 


‘고대 그리스 문화의 대표적인 걸작’이라고 불리는 아크로폴리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제1호다. 고대 그리스는 도시 국가로 이루어졌으며 각 도시 중심지에는 약간 높은 언덕이 있었는데, 이를 ‘폴리스’라고 불렀다. 이곳은 주변 지역을 감시하기에 알맞을 정도로 높았기 때문에 도시를 방어하기 위한 거점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 국가 자체가 폴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원래의 폴리스는 ‘높은’이라는 의미의

 

‘아크로(akros)’라는 단어가 붙어 아크로폴리스라고 명명된 것이다.
특히 중앙에 위치한 파르테논은 그리스 건축의 상징 그 자체이며 멀리서 보면 떠있는 것처럼 느껴져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함을 자아낸다. 중간부분이 약간 부풀어져 있는 기둥은 딱딱한 신전의 모습을 보다 풍요롭게 해준다. 또한 기하학의 법칙이 엄격하게 적용되기는 했지만, 딱딱함을 배제한 건축기법을 사용해 지금도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아크로폴리스는 40여 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완성되었다. 기원전 447년 파르테논이 건설되기 시작해 438년에 완성됐고 건물 외벽의 장식은 432년까지 계속됐다. 그 후 기원전 421년과 406년 사이에 에레크테이온과 니케신전이 완성된 것. 성벽 밑으로는 기원전 6세기에 지어진 ‘술의 신’디오니소스의 연극장(1만 7,000석)과 부유한 귀족이며 철학자였던 헤롯 아티커스가 기원 후 161년에 세운 극장(5,000석)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크로폴리스도 많은 변화를 했다. 1458년 아테네를 점령한 터키인들은 파르테논신전 남서쪽에 첨탑을 세웠으며, 1687년 터키인과 싸우던 베네치아인들이 아크로폴리스를 폭격, 신전 안에 있던 화약고가 터져 건물 중심부가 파괴되기도 했다. 1800년대 초기에는 터키의 허락을 받은 영국의 귀족인 토머스 엘진이 조각품을 철거해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팔아 상당수의 유물이 유출되기도 했다.

 


로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콜로세움은 고대 로마의 유적지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이탈리어로는 ‘콜로세오’라 불린다. 콜로세움의 정식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극장으로 콜로세움이란 이름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거대하다’라는 뜻을 가진 콜로사레에서 왔다는 설이 있으며, 또하나는 경기장 옆에 네로 황제가 세운 높이 30m의 거대한 금도금상인 콜로소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바로 그것인데 전자의 설이 유력하다. 콜로세움은 기원후 72년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네로 시대의 이완된 국가 질서를 회복한 후, 네로 황금궁전의 일

부인 인공호수를 만들었던 자리에 착공하여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80년)때 완공했다. 완성 축하를 위해 100일 동안 격투 경기가 열렸으며, 그 때 5,000마리의 맹수가 도살되었다고 전해진다.
장대한 타원형 플랜이 있는 투기장은 아치와 볼트를 구사한 ‘로마 건축기술의 결정’이라 할 수 있는 건조물로 거대한 바위 축대 위에 축조되었다. 또한 이 축대는 점토질의 인공호수 위에 설치되어 지진이나 기타 천재로 인한 흔들림을 흡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콜로세움은 완공된 이래 300여 년 동안 격투기가 계속 벌어지다 405년 오노리우스 황제가 격투기를 폐지함에 따라 처참한 역사도 종지부를 찍었다. 그 후 콜로세움은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입기도 하고, 중세 교회를 짓는 데 재료로 쓰이기도 해 외벽의 절반이 없어지는 수난을 겪었다. 그러다 18세기경 교황의 명에 따라 기독교 수난의 현장으로 복구되어 현재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손꼽는 최고의 유적지로 남겨져 있다.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1889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박람회 때 건설된 철탑이다. 에펠탑은 철교와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의 내부를 설계한 구조 공학자인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이 설계했으며 그의 이름을 따 에펠탑이라고 지어졌다. 지상 300m 높이라는 당시의 건조물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세계 최고의 강철탑으로 에펠이 축적해 온 철교의 가설기술을 구사하여 실현시킨 것이다. 구조재(構造材)인 강철은 프랑스 국내에서 생산된 것을 사용했으며, 2년 2개월 만에 공사를 끝냈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는 구조 공학적으로 손꼽히는 건축물이지만, 처음 탑이 건축될 때 석조건물에 익숙했던 파리지엔들이나 보수주의 건축가들의 거센 항의가 있었다. 국가 차원에서 도시미의 조화를 제일로 강조하고 관리하는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파리 시민들은 고딕건물과 철탑은 서로 어울리지 않아 조화를 깨뜨리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현재 에펠탑은 파리 전체와 균형미는 물론 관광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무전탑으로 이용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55피트의 텔레비전 안테나가 덧붙여져서 텔레비전 송신탑으로 사용되고 있다. 탑의 높이는 건설 후 약 40년간 인공 건조물로서는 세계 최고였다. 탑의 꼭대기에 오르면 파리시의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세느 강에 위치하고 있어 파리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철탑 위에서뿐만 아니라 철탑이 위치한 광장에서도 연주 등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열린다. 오늘날 에펠탑은 파리 경관에 없어서는 안 될 명물이 되었다. 이렇듯 매년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이 4,000만 명을 넘는다고 하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호주의 시드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라는 것과 오페라하우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매우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건물의 외관은 커팅된 오렌지 조각에서 그 디자인이 유래되었다. 또 항해하는 돛을 상징한다고도 하는데 덴마크의 건축가 요른 우츤(Joern Utzon)의 설계로 1959년에 착공, 14년간의 공사시간을 거쳐 1973년에 완성되었다.

 

엄청난 공사비와 공사기간, 어려운 공법으로 예산을 낭비한다는 무수히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완성된 후에는 많은 찬사를 받았으며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독특한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시드니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오페라하우스는 실내에 5개의 크고 작은 공연장이 있으며 부설되어 있는 방도 무려 1,000여 개나 된다. 가장 큰 콘서트홀은 2,7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으며 1,600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오페라극장 등도 유명하다. 또 오페라하우스는 일 년 내내 음악회, 가극 등의 다채로운 공연이 열리기 때문에 시드니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유익한 문화공연을 선사한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코르코바도(Corcovado) 산 정상에 32미터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예수 그리스도상이다. 구아나바라 만을 바라보고 있는 코르코바도 산 정상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도 있다. 시드니와 홍콩도 나름대로 대단한 항구도시이긴 하지만 리우데자네이루는 서로 연결돼 있는 여러 개의 산 위에 건설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항구도시들보다 더 특별하다.

아침 일찍 코르코바도 산 정상에 올라가면 떠오르는 태양빛을 받은 구름이 구아나바라 만을 가득 메운 장관을 볼 수 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본 섬들은 멀리 구름에 가려져 꼭대기만 살짝 드러나 있다. 리우데자네이루는 구경거리만 많거나 자연의 아름다움만 빼어난 도시가 아니다. 때묻지 않은 사람들의 생생한 삶과 보사노바 음악의 선율이 있는 리우데자네이루는 꽤 인상적인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

 


 


앙코르와트는 수리야바르만(Suryavarman) 2세가 지은 건물로, 힌두교에서 세계의 중심이자 성소로 여기는 신화 속의 산 메루(Meru)를 형상화한 것이다. 외벽은 폭 200미터 정도 되는 해자로 둘러싸여 있으며 해자 위에 돌다리를 놓아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 앙코르와트는 직사각형의 3층 건축물로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맨 위층은 네 모퉁이에 탑이 솟아 있고 중앙에 65미터 높이의 성소가 있다.

 

사원은 아침의 금빛 태양 속에서 가장 아름답다. 동틀 녘, 태양빛이 벽에 새겨진 압사라(Apsara-천국의 요정) 상을 비출 때면, 마치 돌 조각인 압사라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숨막히는 아름다움 속에 있노라면 이곳이 악명 높은 공산주의 조직인 크메르루즈의 마지막 도피처였다는 아픈 과거를 좀처럼 떠올리기 힘들다.
3층의 성소는 예전에는 힌두교 승려와 왕만이 올라갈 수 있는 특별한 곳이었다. 앙코르와트 3층은 마치 일출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해뜨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이른 아침이면 금빛 태양 광선이 독특한 돌기둥으로 장식된 창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와 건물 곳곳을 비추는데, 한낮의 강한 햇빛 속에서는 오히려 희미하던 부조의 부분 부분이 잘 드러난다. 5백년 역사가 오롯이 숨쉬는 그곳에 서 있노라면 종교적인 숭고함과 고상함을 느낄 수 있다.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에 있는 고도(古都)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그라나다는 스페인을 점령했던 이슬람 세력이 기독교의 반격으로 밀리면서 마지막까지 버티던 곳이다. 1492년 1월 2일 스페인을 통치하던 부부(夫婦) 군주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그라나다에 입성함으로써 779년에 걸쳤던 이슬람 세력의 이 도시 점령기가 끝난다. 이것을 계기로 약 800년간 스페인에 머물렀던 무어인(아프리카의 아랍인)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이베리아 반도는 기독교 세력이 완전히 탈환했다.

 

아프리카로 물러난 아랍 사람들이 스페인에 남기고 간 가장 유명한 문화유산이 ‘붉은 성(城)’이란 뜻의 알람브라 궁전이다. 알함브라 궁전은 이베리아 반도 최후의 이슬람 왕조였던 나스르 왕조가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에 걸쳐 완성됐다. 이곳은 알함브라 궁전, 정원, 요새로 구성되어 있다. 미로로 연결되어 있어 가이드 없이는 길을 잃을 정도로 규모도 엄청나지만, 세심한 정교함이 더욱 놀라움을 선사한다. 알함브라 궁전의 장식은 기하학적이면서 세밀하다. 벌집 모양 장식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바늘구멍 하나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한 문명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는 이런 세부적인 데까지 기울이는 정성에 있을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은 1884년 프랑스가 미국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미국인들에게 기증한 것이다. 최상층의 전망대까지 올라가려면 무려 3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며 나선형의 계단은 좁고 경사가 심하다. 원래는 ‘자유는 세계를 비춘다’로 불렸다고 한다. 1875년에 조직되었던 프랑스 아메리카연맹이 기금을 모금하고, 프랑스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삼아 동상을 만들었다. 두꺼운 동을 늘여서 만든 연판제 동상으로 1884년 프랑스에서 완성하여 해체해서 미국으로 옮겨졌고, 1886년 10월 28일 미국 대통령 클리블랜드의 주재로 헌정식을 하였다. 뉴욕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자유의 나라 미국을 상징하고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1세기 동안 아메리칸 드림의 선봉장 역할을 해왔다.세계에 빛을 밝히기 위해 족쇄를 던져 버리고 횃불을 높이 쳐든 모습은 자유를 묘사하며 머리에 씌워진 관의 7개의 첨단은 세계 7개 바다, 7개의 주에 자유가 널리 퍼져 나간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횃불까지 이르는 비좁은 계단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지만 왕관까지는 올라가 볼 수 있다. 토대부분의 2∼3층은 박물관이다. 총 무게는 225톤으로 횃불까지의 높이 약 46m, 대좌 높이 약 47.5m이다.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머리 부분 가까이까지 오를 수 있다.

 


 


모스크바 강을 끼고 있는 크렘린 궁은 제정 러시아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크렘린은 모스크바 강변의 높은 지대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가리키는 러시아어다. 유리 돌고루키 왕자 시절에는 보잘 것 없는 성채로 인식되었지만 러시아 황제들이 머물면서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많이 지어 지금과 같은 화려한 모습을 간직하게 되었다.
현재 크렘림 궁 성벽의 둘레는 2,235m, 높이는 5~9m이며 성벽 곳곳에는 20여 개의 망루가 있다. 망루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은 80m 높이의 트로이츠카야탑이며 유명한 것은 17세기에 만들어진 스파스카야탑이다. 이 탑에서는 1시간마다 종소리가 울리는데 이 종소리에 맞춰 레닌 묘의 위병들이 근무교대를 한다. 크렘린 궁 동쪽에는 붉은 광장이 자리잡고 있다. 본래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뜻을 지닌 붉은 광장은 5월 1일의 메이데이나 11월 7일의 혁명기념일에 펼쳐지는 대규모 퍼레이드로 인해 꽤 친숙한 명소다. 붉은 광장은 크렘린 궁의 북동쪽 성벽과 국립역사박물관, 성 바실리 사원 등에 둘러싸여 있다

 

또 광장의 중간쯤에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유명한 레닌의 묘가 있다. 붉은 광장의 남쪽 끄트머리에는 전형적인 러시아 건축양식의 화려한 성 바실리 사원이 우뚝 솟아 있다. 마치 양파처럼 생긴 9개의 돔이 저마다의 독특한 양식을 뽐내는 건축물이다. 이 사원은 이반 대제가 카잔의 아스트라한을 항복시킨 기념으로 1560년에 완공시켰다.

 

Good Actual Conditio...

 

 

 

에디터_배주현 참고도서_《세계의 문화유산》, 사진제공_호주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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