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임지(任地)인 쓰촨성[四川省]에서 태어나, 17세 때 현종의 제18왕자 수왕(壽王)의 비(妃)가 되었다.
그러나 현종의 무혜비(武惠妃)가 죽자, 황제의 뜻에 맞는 여인이 없어 물색하던 중 수왕비의 아름다움을 진언하는 자가 있어, 황제가 온천궁(溫泉宮)에 행행(行幸)한 기회에 총애를 받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수왕의 저택을 나와 태진(太眞)이란 이름의 여도사(女道士)가 되어 세인(世人)의 눈을 피하면서 차차 황제와 결합 되었으며, 27세 때 정식으로 귀비(貴妃)로 책립되었다.
다년간의 치세로 정치에 싫증이 난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아 궁중에서는 황후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고, 세 자매까지 한국(韓國)·진국부인(秦國夫人)에 봉해졌다.
또한, 친척 오빠인 국충(國忠) 이하 많은 친척이 고관으로 발탁되었고, 여러 친척이 황족과 통혼(通婚)하였다.
그녀가 남방(南方) 특산의 여지(枝)라는 과일을 좋아하자, 그 뜻에 영합(迎合)하려는 지방관이 급마(急馬)로 신선한 과일을 진상(進上)한 일화는 유명하다.
755년 양국충 과의 반목이 원인이 되어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안사의 난), 황제·귀비 등과 더불어 쓰촨으로 도주하던 중 장안(長安)의 서쪽 지방인 마외역(馬嵬驛)에 이르렀을 때, 양씨 일문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군사가 양국충을 죽이고 그녀에게도 죽음을 강요하였다.
현종도 막을 방법이 없자, 그녀는 길가의 불당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정사(正史)도 그녀를 "자질풍염(資質豊)"이라 적었으며, 절세(絶世)의 풍만한 미인인데다가 가무(歌舞)에도 뛰어났고, 군주(君主)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총명을 겸비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백(李白)은 그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했고, 백거이(白居易)는 귀비와 현종과의 비극을 영원한 애정의 곡(曲)으로 하여 《장한가(長恨歌)》로 노래한 바와 같이, 그녀는 중국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주인공이 되었다.
진홍(陳鴻)의 《장한가전(長恨歌傳)》과 악사(樂史)의 《양태진외전(楊太眞外傳)》 이후 (潤色)은 더욱 보태져서, 후세의 희곡에도 좋은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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