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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및

기이한 인질극, 인생… 먹고살기 위해 자신을 볼모로 삼다

by 현상아 2007. 2. 21.

괴기스러운듯 슬픈듯… 설치미술가 천성명씨 개인전

김수혜기자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거친 솔로 벽에 흰 페인트를 바르던 젊은 남자가 힐끗 뒤돌아봤다. 19일 오후 서울 소격동 갤러리 선 컨템퍼러리. 여섯 번째 개인전 개막을 이틀 앞두고, 설치미술가 천성명(千成明·36)씨가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21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 그는 이 화랑에 4.5m 높이 대형 인물상 1점에 1m 미만의 키 작은 인물상 11점을 세운다. 천씨는 이것을 ‘12점’이라고 세는 대신, “전부 합쳐서 한 작품”이라고 했다. 전체의 제목은 ‘그림자를 삼키다’. 인물상 하나 하나는 그 세부(細部)다. 관람객은 1층에서 출발해 2층과 3층을 본 뒤, 지하 1층에 내려오게 된다. 어느 층을 가건 창백한 겨울 햇살이 스미는 스무 평 남짓한 공간에 슬픔이 일렁인다. 전시장 입구에 선 인물상 ‘인질’은 한 사내가 다른 사내의 목에 칼을 들이댄 형상이다. 둘은 사실 한 몸에서 돋아난 샴 쌍둥이다.

 

  • ▲설치미술가 천성명씨와 19일 서울 소격동 갤러리 선 컨템퍼러리에서 만났다. 그의 작품‘인질’앞에서“작품과 작가가 많이 닮았어요”라고 하자, 그는“제 얼굴 보고 만든 거니까요”라고 했다. /김수혜기자
“밥벌이, 고통스럽잖아요. 먹고 살려고 다들 기를 쓰는데, 그게 자기 시간과 육체를 바치는 일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누구에게나 인생은 자기 자신을 볼모로 삼은 인질극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2층 복판엔 껍데기만 남고 속은 텅 빈 대형 인물상이 넋을 놓고 앉아 있다. 이 인물상을 물고기 껍데기를 머리에 뒤집어쓴 소년, 새 껍데기를 뒤집어쓴 소년, 풍경(風磬)을 든 단발머리 소녀가 둘러싸고 있다. 선승(禪僧)들은 물고기를 ‘늘 깨어있는 동물’이라고 이른다. 천씨는 “물고기를 쓴 소년은 나 자신”이라며 “상처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고 싶다”고 했다. 새를 쓴 소년은 이 세상에 상처 따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리는 방관자, 풍경을 든 소녀는 상처를 지나 구원에 이르는 길로 작가를 이끄는 안내자다.

  • ▲천성명씨의‘그림자를 삼키다’는 4.5m 높이 대형 인물상 1점에 높이 1m 미만의 소형 인물상 11점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세필로 그려 넣은 눈동자가 흡사 살아있는 사람처럼 묘하게 담담한 인물상들이다. /갤러리 선 컨템퍼러리 제공

천씨는 울산에서 태어나 수원대를 졸업했다. 아버지는 공무원, 어머니는 수예점을 했다. 형제자매(2남2녀)와 일가를 통틀어 예술로 밥을 버는 사람은 천씨뿐이다. 작가에게 “나는 어려서”라는 서두를 툭 던진 뒤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끝맺어보라”고 했다. “대개 혼자 있었다”고 그는 답했다. “외로울 때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친구들”이라고 했다. “최근 가장 극심하게 슬펐던 때는?” 그는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면서 이런 생각이 들데요. 상처, 많이 주지요. 남이 내게 혹은 내가 남에게. ‘미안하다’고 사죄하지만, 사죄는 사죄일 뿐이죠. 상처는 결국 상처 난 사람 혼자 견뎌야 할 몫이거든요.”

그는 화성 동탄면 목리의 논밭 한복판에 컨테이너를 세우고 작업실로 쓴다. 수원 화서동에 있는 4평 원룸에서 매일 오전 11시 목리 작업실에 출근해 꼬박 12시간 작업한다. 지난 7개월간 딱 하루, 설날만 쉬었다. 불자(佛子)들이 쓰는 말로, ‘용맹정진’이다. “언제까지 작품을 할 거냐”고 정색하고 묻자, 천씨는 승려처럼 파랗게 깎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언제 관둘지 모르는데…. 지금이라도 관둘지 몰라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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