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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모양처에 대한 진실과 오해들

by 현상아 2007. 3. 31.

‘현모양처는 구시대의 유물도 남성이 만든 족쇄도 아니다’

일처다부제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요즘 세상에 현모양처 운운하는 게 구식으로 보일 수 있지만, 현모양처가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멋에 푹 빠질 수 있다. 으레 현모양처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은환(이민영 분)이나 ‘나쁜 여자 착한 여자’의 세영(최진실)같이 인내심 많고 자기희생적인 여성들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드라마 속 현모양처들은 무조건 순종적이거나 착하기만 한 편향적인 여성일 뿐이지 현모양처로 보기 힘들다. 실제 현모양처들은 훨씬 엄하고 강할뿐더러 살림에 창조적이고 무조건 참기보다는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이 부분은 21세기 현모양처나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 시대의 현모양처 모두 마찬가지다.

현모양처의 진실과 오해 1
현모양처의‘남편에 순종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조선시대 대표적인 어머니상으로 꼽는 신사임당의 부모는 애초에 자식을 현모양처로 기르기를 작정했던 모양이다. 중국의 어진 임금 문왕(文王)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본받으라고 사임(師任)이라 지었을 정도니까. 어쨌든 신사임당은 순종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남편과 있었던 한 가지 일화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신혼 초 남편 이공과 10년 동안 서로 헤어져 학업을 닦은 뒤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맺은 적이 있다. 그런데 신사임당을 처가에 남겨두고 서울로 올라간 이공이 아내가 보고 싶다며 자꾸 집으로 되돌아왔다. 보다못한 신사임당이 바느질 그릇에서 가위를 끄집어내어 이공 앞에 놓고 “나는 세상에 희망이 없는 몸이라 어찌 오래 더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당신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스스로 자결이라도 해서 내 인생을 마치는 편이 더 좋을 것입니다”라고 비장하게 남편을 꾸짖었다. 정신을 차린 이공이 서울에 다시 올라가 공부로 뜻을 이루었다. 이렇게 신사임당은 모진 부분이 많은 여성이었다. 현모양처를 순종적 인간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 시대 사람들의 착각일 뿐이다.

사족이지만 신사임당에겐 양처보다 현모 소리 들을 만한 일화가 더 많다.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를 임신하고서는 정성껏 글씨를 쓰고 그림도 열심히 그렸다고 한다. 그는 의미조차 희미했던 수백 년 전에 이미 그림태교를 했던 셈이다. 율곡 이이에게 얼마나 어진 엄마였는지는 더 이상 말하면 잔소리다. 남편 이공, 아들 이이를 모두 당대 최고의 학자로 만들어낸 힘은 순종이 아니라 곧고 강한 마음이었다. 현모양처가 남편에게 순종적이라는 것은 요즘 사람들이 만들어낸 ‘강한 여성 콤플렉스’의 반작용일 뿐이다.


현모양처의 진실과 오해 2
‘자기희생적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으레 현모양처를 ‘자기희생의 표본’ 정도로 생각한다. 남편과 자식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역대 그 어떤 현모양처도 자신의 재능이나 능력을 썩힌 경우는 없다. 신사임당, 소설가 박완서, 김영란 대법관 모두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한 여성들이다. 세상 사람들은 현명하다. 생각해보니 자기희생적인 어머니나 아내를 현모양처라고 지칭하지 않은 것이다. 현모양처는 아주 개인적인 행복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간형이다.

현모양처의 가장 큰 조건은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줄 아는 능력이다. 행복한 가정은 행복한 주부가 만들 수 있다. 본인 스스로가 행복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보상받기 위해서, 혹은 노후를 보장받으려는 생각으로 자식을 교육시켜서는 절대 현모양처가 될 수 없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해야 하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자신의 인생을 축소시키되, 완전히 포기해서는 안 된다.

주부들과 인터뷰를 하다 보면 “남편보다 자식들이 좋다”거나 남편은 거론도 하지 않은 채 “자식들 바라보며 산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대답은 “나는 정말 행복하지 않다”나 “억지로 현모양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자식만 바라보고 산다니… 이건 가장 불행한 일이다. 반대로 아주 가끔이지만 “아직도 아이들보다 남편이 더 좋다”라고 말하는 주부도 있다. 그 주부는 자녀를 비싼 유치원에 보내지 않아도, 아파트 한 채 살 날이 막막해도 행복한 미소를 잃어본 적이 없다. 아내가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한 법이다. 그 가정은 누가 봐도 부러워할 정도로 사랑이 넘쳐난다.

그렇다고 남편을 사랑해야 행복하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행복을 찾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사업을 할 수도 있고, 미뤄두었던 꿈을 느리지만 차곡차곡 이뤄갈 수도 있다. 주변에 밤 10시부터 11시까지는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주부가 있다. 그 시간에는 주로 독서를 하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고 한다.
현모양처의 진실과 오해 3
‘현모양처는 남성들이 만든 족쇄?’

페미니스트들은 현모양처를 남성들이 여성을 누르기 위해 만든 이미지라며 무척 싫어한다. 그들의 주장이 일정 부분 맞긴 하다. 남성들이 득세한 시절에 유독 현모양처들이 많이 양산된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현모양처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킨 측면이 많아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지금은 여성들이 현모양처를 볼모로 남성에게 싸움을 걸어오는 양상이 많이 나타난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남편들이 토로하는 아내에 대한 불만 중에 “남녀평등이 와전돼 모든 부분에서 남편을 이기려 하고, 너무 근시안적인 싸움을 걸어온다”는 소리가 많다. 실제로 신혼 초 부부싸움의 양상은 “나도 똑같이 돈 버니까 가사를 비롯해 모든 부분에서 똑같이 해야 한다”는 아내의 주장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1960, 70년대 산업화를 성공으로 이끈 이면에는 우리 어머니들의 희생이 숨어 있었다면, 산업이 조밀해진 21세기는 남성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내나 자식으로부터 끊임없이 ‘승진’과 ‘성공’, ‘성실한 남편’과 ‘자상한 아빠’가 되기를 강요받는다. 그러니 숨 한번 마음껏 쉴 여유가 없다. 여성들은 직장생활이 막막해지면 전업주부를 해도 되고 작은 사업을 시작해도 괜찮지만, 남성들은 입장이 다르다. 조직 안에서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텨야 인맥도 넓어지고, 퇴사 후 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도 다양하게 연구할 수 있다. 진급이 힘들다고 회사를 그만둘 입장이 못 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집에 들어와서는 성실한 남편 역할을 하느라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부부싸움이 잦은 ‘신혼의 위기’를 잘 견뎌낸 아내나 약해빠진 남성의 현실을 잘 아는 아내들은 절대 ‘남녀평등’이나 ‘현모양처 족쇄 이론’ 등을 꺼내지 않는다. 남편이 기운을 차리고 힘차게 일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자녀들이나 자기에게 득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에는 돈 잘 버는 아내가 현모양처?

현모양처가 저평가 받는 분위기는 서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1970년대 이후 가부장적인 지배가 여성들에게 어머니와 아내(현모양처)의 역할을 강제했다고 주장하면서, 결혼제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여성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실제로 독신여성들이 급속도로 늘어났고 이것은 저출산 문제로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는 1990년대 이후 국내에도 활발하게 조성되었고, 지금은 세계 최소 출산율을 기록하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독신보다 결혼은 하되 ‘이혼’을 선택하는 양상이 더 많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최근 들어 이런 양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다시 현모양처 여성이 환영받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말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로 남성들이 현모양처 아내를 꿈꾸지 못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즉, 여성운동가들이 주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함께 벌고 함께 가사노동과 육아에 헌신하자’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현모양처가 꿈이고 신부수업만 한다는 여성은 맞선자리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성공한 남편과 아리따운 전업주부 아내는 오랫동안 완벽한 결혼의 상징이었다. 아내가 일하러 나간다는 것은 남편의 돈벌이가 시원찮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최근엔 성공한 남성들마저 전업주부보다 고소득 전문직 여성을 아내로 선호하고 있다. 한 대학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결혼 후에도 직장생활을 하겠다’는 여학생이 98.5%, ‘아내의 직업이 있어야 한다’고 응답한 남학생이 89.4%나 됐다고 한다. 이제는 아내의 직장생활을 강요하는 남편과 직장을 그만두려는 아내의 싸움이 이혼으로 진행되는 시대가 되었다.

얼마 전 결혼이 임박한 30대 전후 남성들과 의도적으로 술자리를 한 적이 있다. 그들에게 ‘21세기 현모양처를 정의해달라’고 말했더니, 한 친구가 기다렸다는 듯이 “돈 잘 버는 아내가 현모양처”라고 답했고, 나머지 참석자들도 이내 동조하고 나섰다. 이들의 바람 속에는 ‘현명한 엄마와 어진 아내’는 기본이고, ‘돈도 잘 버는 여성’이라는 의미까지 포함돼 있었다. 이런 사실을 여성들도 알고 있을까.
여성조선
글_최국태 기자  사진_김동관,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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