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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미스터리 및

현대에 살펴보는 도깨비의 의미

by 현상아 2007. 4. 12.

현대에 살펴보는 도깨비의 의미

 

여름은 열대야 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이다. 어릴 적 긴긴 여름밤에는 옥수수를 쪄먹으며, 모깃불을 놓고, 옛날이야기, 도깨비 이야기 등을 듣던 일들이 생각이 난다.


나는 유달리도 도깨비, 귀신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의 어머니가 겪으셨다는 이야기며, 이웃 아저씨들이 들려줬던 것들은 나를 오싹하게 만들고, 밖에 아무도 없을 때는 방문을 열고 나가질 못할 정도였다.


그 때 들은 이야기 중 하나를 생각해 본다. 이웃집 아저씨가 밤길을 오는데 길이 갑자기 환해지더라고 했다. 그래서 무작정 오다보니 갑자기 개천에 빠져 버렸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 돌멩이를 집어 마구 던지니 다시 어두워졌다고 했다. 이때 그 집 아주머니가 남편이 올 방향을 보았는데 파란 불이 보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도깨비장난이라고 어른들은 말했다.


흔히 신민요로 알려진 노래 중에 '산도깨비'가 있다.


"......

머리에 뿔달린 도깨비가

방망이 들고서 에루화 둥둥

......

저 산도깨비 날 잡아갈까

가슴소리만 콩닥콩닥

걸음아 날 살려라------

꽁지 빠지게 도망갔네"


나는 풍물패들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하고는 혹시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물었다.


"뿔 달린 게 이상해요. 우리 도깨비는 뿔이 없는 게 아닌가요?"


역시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은 탓인지 예리한 지적을 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감을 잘 잡지 못한다.


▲도깨비  
이 학생의 말대로 우리 도깨비에는 뿔이 없다. 아니 뿔이 달렸는지 어떤지 모른다. 목 위로는 본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삼국시대 때부터 전해오는 귀신무늬 기와(귀면와:鬼面瓦)에는 두 세 개의 뿔로 보이는 모양이 있기도 하지만 분명한 근거는 없다.


대부분의 도깨비 그림이나 노래에서 보는 뿔 하나 달린 도깨비는 일본 도깨비 '오니'를 우리 도깨비로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도깨비 '오니'는 뿔이 하나 있고 포악하다고 전한다. 어쩌면 우리 조상의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일본의 칼을 좋아하는 무사 정신이 도깨비에도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그럼 우리 도깨비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을까?

도깨비의 모든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도깨비의 어원, 도깨비의 다른 말

 

도깨비는 '돗+가비'의 합성어로 보며, 돗은 '불(火)'이나 '씨앗'의 의미로 풍요를 상징하는 단어이고 '아비'는 '장물애비', '처용아비' 등에서 보듯이 아버지 즉 성인 남자로 생각할 수 있다. "돗+가비>도ㅅ가비>도까비>도깨비"로 변화되었다.


지방의 사투리로는 토째비(경북 월성), 돛재비(경남 거창), 도채비(제주도 전남 신안) 등이 있으며, 돗가비, 독갑이, 도각귀, 귀것, 망량, 영감, 물참봉, 김서방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해안에는 주로 선착장 주변에 살면서 어민들을 도와주는 도깨비참봉, 또는 물참봉이라 불리는 도깨비들이 있다고 알려진다. 제주도에는 집안을 지켜주거나 물고기를 몰아다주는 도깨비영감이 전해진다.


도깨비불


도깨비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도깨비 불'이다.


▲도깨비  
조선 중기 성현의 수필집 '용재총화(慵齋叢話)'에도 도깨비불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가 여럿으로 흩어졌다 다시 합쳐진다. 빙 돌다가 위아래로 흔들리고 쫓아가면 이내 없어져버린다. 또 여기서 꺼졌다가 다른 곳에서 켜지기도 한다고들 말한다.


나는 어렸을 때 소위 도깨비불을 본 적이 있다. 우리 마을 외딴집 굴뚝근처 지붕에서 불이 붙었다. 동네 사람들이 “불이야” 소리를 지르며, 불을 끄러 달려갔는데 갑자기 불이 꺼졌다. 아무도 영문을 몰랐다. 그 집 뒤에 한적한 길이 있는데 밤마다 파란 불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보았다. 모두 도깨비불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무서워서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도깨비불이란 무엇일까?


인(P) 화합물은 공기 중에서 쉽게 자연발화 된다. 액체로 된 인화수소는 보통 온도에서도 저절로 불이 붙는다. 사람의 시체가 썩었을 때도 인화수소가 생기는데, 이것이 무덤 주변에 도깨비불이 나타난다고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시체나 식물이 썩어서 생긴 메탄이 땅 속에서 솟아오르면서 자연적으로 불이 붙어 음산한 빛을 내는데 이것을 도깨비불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경우는 동식물이 부패하기 쉬운 늪지대에서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정전기현상'이나 '빛의 이상굴절에 의한 신기루 현상'으로 도깨비불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아직 명확하게 입증된 바는 없다. 요즘 승용차들 중에는 깜박이 등을 노란 색이 아닌 파란색으로 바꾸는 것을 종종 본다. 이런 차가 만일 옛날에 출현했다면 분명 도깨비불로 오인되지 않았을까? 또 파란깜박이등을 단 사람은 혹시 스스로 도깨비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도깨비의 모습, 성격


▲도깨비  
도깨비이야기에서 나오는 도깨비 모습은 사람과 비슷하나 특이한 모습으로 표현되곤 한다. 우리 조상들이 생각했던 도깨비의 모습은 기와무늬나 문고리 등에 남아 전해져 온다.


도깨비 전설에서 나오는 도깨비 모습은 '키가 팔대장 같은 넘', '커다란 엄두리 총각', '다리 밑에서 패랭이 쓴 놈', '장승만한 놈', '팔대상 같은 놈'이라고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도깨비는 남성이며, 총각이 많다. 내가 어렸을 때 들은 도깨비의 모습도 정확하지 않았다. 그저 크다는 표현 외에는 얼굴을 본 사람이 없는 것으로 기억된다.


도깨비의 성격은 귀신과는 달리 매우 인간적이다.


도깨비 이야기를 보면 먹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또 힘이 장사이고, 신통력을 가지고 있어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주거나 망하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신통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고 소박하여 인간의 꾀에 넘어가는 바보 같은 면도 있다.


사람의 간교함에 복수를 하기도 하지만 되레 잘되게 도와주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결코 해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도깨비는 대체로 인간적이며, 교훈적이다. 또 도깨비이야기에서는 현실에서 실현하지 못하는 사람의 욕망을 대리만족 하도록 도와준다.


도깨비는 음식 중에서 메밀로 만든 묵과 수수팥떡, 막걸리를 좋아하며, 시기와 질투도 있고, 멍청하기도 하다. 또 따돌림을 당하면 화를 내고, 체면을 중시하는가 하면 노래와 씨름을 즐긴다. 말피를 제일 무서워하며 언제나 배신당하거나 하여 사람을 못 당한다.


도깨비는 씨름을 즐긴다.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도깨비는 씨름을 하자고 한다. 그렇다고 도깨비가 천하장사는 아니다. 씨름실력은 별로이며, 외발다리이다. 처음에는 무섭지만 정신 차리고, 왼쪽 다리로 감아 넘어뜨리면 이긴다고 한다. 묘하게도 오른쪽이 아닌 왼쪽 다리이다.


넘어뜨리고 나서 도깨비를 나무 등에 묶어놓고 아침에 가서 보면 빗자루, 부지깽이(아궁이에 불을 땔 때 불을 헤치거나 끌어내거나 거두어 넣거나 하는 데 쓰는 가느다란 쇠나 나무로 된 막대기), 도리깨장치(곡식의 알을 두드려서 떠는 농구의 한 가지. 장대 끝에 서너 개의 회초리를 매어 달아 돌게 함) 등이 묶여져 있었다는 말들을 한다.


풍어제를 끝낸 칠산 어민들은 짚배를 만들어 제물과 도깨비 선원을 태워 보낸다. 망망대해로 나간 이들 도깨비 선원들은 어부들의 뱃일도 도와주고 조기떼도 몰아다준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삼국유사> 진평왕조에는 도깨비 이야기가 나오는데, 비형이라는 도깨비 두목이 하룻밤 사이에 신원사 도량에 큰 다리를 놓아 귀교(鬼橋)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경북 청송군 부남면 화장동에 가면 실제로 `도깨비다리'가 있다고 한다.

현대에 도깨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쨌든 도깨비 설화는 우리 조상들에게 친숙한 이야기였다고 보인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도깨비를 봤다는 사람은 없다.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시는 나의 어머니는 비행기, 기차, 자동차 등 요란한 소리를 내는 커다란 것들이 나오면서 물러났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문제가 아니다.


▲도깨비  
속리산에서 도깨비처럼 사는 '도깨비 박사' 조자용 씨가 있다. 그는 도깨비문화에 관한 한 박사이고, 기와뿐 아니라 그림, 조각, 민담, 갖가지 유물 등 도깨비에 관련된 것들을 1000여 점쯤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원래 제 전공은 현대건축이지만 세계적으로 나가자면 무엇보다 우리 전통을 알아야겠다 싶어 기와에 관심을 갖다가 도깨비무늬 기와, 즉 귀면기와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제야 아차, 이것이었구나 싶었지요. 그렇게 해서 도깨비문화를 파고들게 되었고, 결국엔 기와뿐 아니라 그림, 조각, 민담, 갖가지 유물 등 관련된 모든 것들에 손이 가게 된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 본격 종합문화센터 '도깨비 왕국' 건설공사도 진행 중이며. '헌마을 운동'도 벌인다고 한다. 이것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뒤집는 조씨의 역점사업 중 하나인데 흉물스런 시멘트문화대신 우리의 전통 의식주 양식을 되찾아오자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작업으로 그는 주변 속리산 일대 마을마다 장승을 하나씩 세워주기로 했다고 한다.


최근엔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자를 정확히 예언한 것으로 알려져 유명세를 탔던 ‘남산 도깨비예언궁’의 무속인 김재연(여·56)씨 가 사비를 들여 각종 무속용품과 세계 각국의 공예품을 전시하는 ‘도깨비박물관’ 건립에 나서고 있다.


지금 새삼스럽게 도깨비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도깨비를 믿자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도깨비 박사' 조자용 씨가 말하는 철학을 우리도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도깨비는 왜 생겼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자연을 극복하는 끝없는 싸움 속에서 사람들은 비, 바람, 구름, 번개, 천둥 따위를 관장하는 신을 생각했고, 자연재해로부터 액운을 막아주는 수호신도 필요로 하였을 것이다. 조선시대 실학의 대가 성호 이익선생은 "자연의 영기가 모여서 도깨비를 만들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도깨비무늬 기와, 즉 귀면와(鬼面瓦)에서 생각되는 것은 도깨비 기원이 악귀를 쫓는 ‘벽사의례(壁邪儀禮)’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기와에 도깨비무늬를 그려놓고 나쁜 귀신을 몰아내 주길 기대한 것이다. 절 문짝에 그려 넣은 도깨비들도 역시 벽사를 상징한다.


도깨비가 조상들에게 주었던 대리만족도 중요한 의미이다. 서민들이 배를 굶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탈출할 자신이 없자 도깨비를 내세워 대리만족 내지는 희망을 추구했던 것이 바로 도깨비 이야기일 것이다.


요즈음 많은 고학력자, 지도층들도 복채를 들고 점술가를 찾는 일이 많다고 한다. 얼마나 답답하면 그럴까 생각도 되지만 운만 쳐다보고 운에만 따르려는 자세가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현대에 와서 이런 귀신을 쫓는 도깨비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마는 내 생활 속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않도록 노력하며, 희망을 갖고 열심이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도깨비 얘기가 주는 귀중한 교훈이 아닐까?


또 요즘처럼 살기가 각박하여 수십 명을 죽이는 연쇄살인범이 나오는 세상엔 인심이 참 흉흉한데 도깨비가 다시 등장하여 많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위로와 대리만족을 주면 얼마나 좋을까?


도깨비 관한 글을 마무리하면서 "도깨비와 과부"라는 이야기를 하나 들어보자.


"과부 한 사람이 도깨비하고 친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도깨비가 좋아한다는 메밀묵을 쑤어서 놔두었다. 밤이 이슥하자 도깨비가 와서 메밀묵을 먹었다. 과부는 도깨비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였고 드디어 친해졌다. 과부는 도깨비더러 돈이며 금은보화를 갖다 달라고 했다. 도깨비는 과부가 원하는 대로 돈이며 보물을 얼마든지 갖다 주었다.


부자가 되자 과부는 도깨비가 귀찮고 싫어졌다. 그래도 도깨비는 계속해서 왔다. 곰곰 생각한 끝에 과부는 도깨비더러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그건 왜 묻느냐고 묻는 도깨비에게 과부는 "도깨비가 무서워하는 것을 못 오게 하고, 그런 것을 모두 치워 버리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도깨비는 과부가 자기를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자기가 무서워하는 것은 말의 피(말대가리)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과부는 자기의 집 삽짝에 말대가리를 걸어 놓았다. 밤이 되어 도깨비가 마음놓고, 여자의 집에 찾아오다가 말피(말대가리)를 보고 그만 기겁을 하고 도망쳤다. 도망치면서 도깨비는 '여자에게 속 주지마소. 여자란 못 믿을 것이오.'하고 외쳤다고 한다."


도깨비 속담


* 도깨비 달밤에 춤추듯 : 멋없이 거드럭거리는 꼴

* 도깨비 대동강 건너듯 : '일의 진행이 눈에는 잘 안 띄나 그 결과가 빨리 나타남'의 비유

* 도깨비 땅 마련하듯 : 실속이 없이 헛된 일만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

* 도깨비를 사귀었나 : 까닭도 모르게 재산이 부쩍부쩍 늘어감

* 도깨비 사귄 셈이라 : 귀찮은 자가 조금도 곁을 떠나지 않고 늘 따라다님

* 도깨비 수키왓장(기왓장) 뒤듯 : 쓸데없이 이것저것 분주하게 뒤지기만 함

* 도깨비 씨나락 까먹는 소리 :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씨부렁거리는 소리

* 도깨비 장난 같다 : 하는 짓이 분명하지 아니하여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 도깨비놀음 :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이상하게 되어 가는 일

* 도깨비불 보기 : 정월 보름날 밤 도깨비불이 노는 것을 보아 풍어점을 치는 것. 섣달 그믐날 도깨비불이 놀던 곳과 보름날 밤 놀던 곳이 같으면 풍어를 예상한다. 보름날 불이 많이 노는 곳은 농사가 잘 된다. 낮은(물이 많은) 곳에서 놀면 논농사가, 높은 곳에서 놀면 밭농사가 잘 된다.

* 도깨비장물 : 북한에서 부르는 술의 별명. 정신을 흐리멍텅하게 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만든 물이라는 뜻이다. 중국 동포들은 '도깨비물' 또는 '도깨비뜨물'이라고 한다.



<참고문헌>

한국인 우리들은 누구인가, 김열규, 자유문학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구비문학대계』, 1980∼1986

우리문화의 수수께끼2, 주강현, 한겨레신문사, 1997

도깨비처럼 사는 도깨비 박사' 조자용씨, 정영주, 주간한국 2000 02/02(수)

한국전통문양집 3권 도깨비문양, 안상수, 안그라픽스

한국의 도깨비 : my.dreamwiz.com/wongraphic

도깨비 이야기 : my.dreamwiz.com/wongraphic/home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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