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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디자인 및

의자

by 현상아 2007. 4. 16.
 


세바스티안 마타(Sebastian Matta)의_ ‘마그리타 의자(MAgriTTA Chair)’,_ 라는 작품이다._ 1970년 작품._ 이 친구들은 끊임없이 그 의자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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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가 무척 불편할 것 같은 이 의자는_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의 의자_ 작품명 ‘붓칠 의자(Brushstroke Chair)’이다, _ 1986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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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프리드먼(Tom Friedman)의 작품,_ ‘무제(Untitled)’,_ 199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_ 앉으면 않된다_ 물론 당신도 앉으려 하진 않았겠지만._ 이 작품은 이미지 예술이다_ 짓궂게도 말짱한 교실용 의자에 드릴로 구멍을 내_ 해골 같은 몸체를 통해 망각의 상태를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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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_ Chairs_ justinKIM

왜 그토록 의자에_ 집착하고 있었을까? 문득_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득_ 그때_ 그 겨울_ 긴 코트를 입고_ 명동의 코지 코너라는 커피숍의 문을 열고_ 극단 산울림의 임영웅 선생에게 들고간_ 나의 장막 희곡_ 의자 없는 도시_ 생각이 났다_ 조영남 형이_ 어두운 골목길 그대 창문 앞 지날때_ 어쩌구 저쩌구하는_딜라이라라는 얄궂은 노래를 힛트 시키고_ 군복을 입고 찾아와_ 그 극단원이던 이화여고 여학생을 무지 딸아 다니던 그때_ 나는 극단 산울림에서 공연하고 싶었던_ 그 희곡을 들고 찾아 갔다_ 모두들 자기 의자들이 없던 그 시대_ 오늘도 나는_ 의자를 찾는다_ justinKIM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안락의자, 1620년경의 이 의자는_ 현대의 의자로서의_인체 해부학과 골격학, 그리고 생리학적 토대를 가지고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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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 후반, 미국 뉴잉글랜드의 의자 
_높은 등받이와 함께, 앉는 부분에는 쿠션이 사용되었다.

미국적 실용주의적 의자의 표본이 된 이 의자는_ 박물관에 모셔져 있기 때문에

쉽게 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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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인도의 왕(라자, raja)이 사용하던 안락의자_ 1800년 작품이다._
아니 작품이 아닐지 모른다,_모른지기 의자란 놈은, _처음엔 본디_ 임금_ 혼자 앉도록 창안되었다._앉는다_이 것은 특별한 권력과 차별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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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로우(Willow)',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ntosh), 1904, 스코틀랜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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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함의 구조를 갖는 것_ 18세기 후반부터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안락함을 제공하는 도구나 장치는 언제나 실내의 열원(熱源)과 관계가 있었다.

말하자면 안락의자의 발전에 있어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벽난로와 같은 난방 장치였다.

 

또한 안락의자는 서재_ 흡연 등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기도 했고,

축음기가 유행한 1920년대 전반기를 지나 재즈의 시대를 거치면서

안락의자는 사치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이 되었다.

 


'다이아몬드(Diamond)', 의자, 해리 버토이아, 1952,
놀 어소시에이츠,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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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뿔 의자(Cone Chair)', 베르네르 판톤(Verner Panton),
1958, 플러스-리니에(Plus-Linje),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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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도 이넘의 의자들은_ 열심히 진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아마 지금의 인공위성을 경합하듯이

엉덩이를 편하게 하는 안락성과_ 기능성_ 그리고 디자인에 이르기 까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었다_나도 끊임없이 이 부질없는 의자들의 퍼레이드 뒷줄을 따라가고 있다

 

 

 



 

 

 

 

인간의 몸은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에 맞게 만들어지지 않았고, 의자 역시 애초에는 가구로서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인간이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구는 단연코 의자이며,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갇혀 생활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중세시대, 왕과 교황의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이었던 의자는 근대에 이르러 혁신적인 예술가들이 실험 정신을 반영한 작품으로서 진화를 거듭해 왔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가서 배우는 것은 글자나 덧셈, 뺄셈만이 아니다. 과목에는 없지만 아주 중요한 교육이 있다. 바로 의자에 앉아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교육보다도 어렵고 참기 힘든 수업이다. 의자 생활이 몸에 밴 어른이라도 수업을 듣기 위해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과 한 시간짜리 수업이라도 끊임없이 몸의 자세를 바꿔야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다. 장거리 비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오랜 시간 의자에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것이다. 과거 공산국가에서 사용한 폭력을 쓰지 않는 고문 가운데 가장 강력한 방법이 잠을 재우지 않고 장시간 의자에 앉혀 놓는 것이었다.


사람의 몸은 의자에 앉도록 디자인되지 않았다. 인체공학자들은 수많은 연구를 하면서 의자에 오래 앉을수록 몸은 점점 더 망가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의자에 앉은 자세는 폐, 소화기관, 척추, 허리근육과 신경계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앉아서 지내는 현대인들의 몸을 왜곡시키고 다양한 질병을 낳는 원흉이 바로 의자인 셈이다. 사람이 의자에 앉아 생활한 기간은 인류 역사 전체를 놓고 볼 때 대단히 짧다. 그 기간이 너무 짧아서 의자에 앉아도 불편하지 않도록 우리 몸이 진화하려면 앞으로 수천 년, 또는 수만 년이 흘러야 할지도 모른다.


몸이 의자에 앉도록 디자인되지 않은 것처럼 의자 역시 앉으라고 디자인한 것이 아니다. 의자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던 시절, 의자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귀족들이 길게 기른 손톱이나 치렁치렁한 가발 같은 것이었다. 거추장스럽기만 한 손톱과 가발은 하루종일 일해야 먹고살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평생 해 볼 수 없는 것이다. 즉 ‘일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표시였다. 마찬가지로 의자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앉아서 통치하는 자들의 상징물이었다.


극소수의 사람이 절대적인 권력을 쥐던 시절, 세상에서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왕, 황제, 종교의 우두머리 같은 절대 권력자였다. 그런 사람을 ‘권좌(權座)에 올랐다’고 표현하는 이유다. 회의의 의장을 영어로 ‘의자사람(Chairman)’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의자는 평범한 가구가 아니라 왕관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중세에는 소수 귀족들에게까지 의자에 앉을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었고, 재산이 더 축적되고 산업혁명이 일어난 뒤에 비로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권력의 상징이라는, 의자가 생겨난 본질적 기능이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크기와 재료, 장식으로 의자는 더욱 강력한 권력의 상징, 부의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다.


오늘날 그것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우리가 일하는 사무실이다. 사장, 부장, 말단 사원에 따라 의자는 놓이는 위치, 크기, 높이 등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 공간의 우두머리를 금방 알 수 있다. 창가 쪽에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가장 높이 솟은 의자의 주인이 바로 그다. 이런 배치는 단 한 명의 권력자가 나머지 사람을 감시하도록 디자인된 공간과 의자 설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두머리는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도록 배치되어야 한다. 따라서 창가나 벽을 등지고 높다란 의자에 앉아 있다. 반면에 부하 직원들은 그를 향해 배치되어 있거나 언제나 무엇을 하는지 감시당할 수 있게 벽을 향해 낮은 의자에 앉아 있다. 그리고 의자에 목 받침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도 계급이 구분된다. 민주적인 회사를 만들고 싶다면, 가장 먼저 공간과 의자 디자인의 차별을 철폐해야 할 것이다.


의자가 대중화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계가 마련해 주었다. 20세기 전까지 극소수의 권력자, 귀족, 자본가를 제외한 절대 다수의 사람은 몸을 수고롭게 움직여야만 먹고살 수 있었다. 즉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 수고로운 노동을 기계가 대체해 나가자 현대의 노동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장부를 정리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결국 기계는 수많은 관리직 노동자, 즉 의자에 의지한 노동자를 양산했다. 따라서 의자는 대량 생산되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장인들이 일일이 나무를 깎고 장식을 붙여 생산하는 방식으로는 산업사회의 엄청난 수요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바야흐로 의자는 기계생산시대에 맞게 효율적으로 디자인되어야 했다.


기계생산시대, 대량생산시대에 걸맞게 의자 디자인을 혁신한 주인공은 모더니스트들이었다. 이들은 대량 생산에 적합하지 않은 장식을 죄악으로까지 여기며, 화려한 장식이 덕지덕지 붙은 바로트,로코코, 신고전주의시대 귀족 의자의 거품을 완전히 걷어내 버렸다. 그리하여 과시가 아닌 앉는다는 기능에 충실한 의자, 대량 생산하기에 알맞은 단순한 의자를 디자인하려고 노력했다. 오늘날 명품 의자로 각광받는 르 코르뷔지에의 셰즈롱그,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로셀로나 의자,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의자, 알바르 알토가 나무를 구부려 제작한 의자 시리즈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들 모더니스트들이 디자인한 의자는 정말 대중화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들은 대량 생산에 맞는 단순한 의자를 만들어 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값싼 의자, 편안한 의자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사실 모더니스트들이 디자인한 의자는 자신들의 철학과 이상을 표현하는 도구 이상이 되지 못했다. 즉 그들에게 의자는 창작 욕구를 토해 낼 아주 적절한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모더니스트들은 과거의 권력과 신분 과시형 의자에서 완전히 탈피한 혁신적인 스타일을 창조했지만, 그것 역시 새롭게 부상한 엘리트 계층의 신분을 과시할 뿐 진정으로 대중에게 다가가지는 못했다. 돈 번 티를 내려고 아르마니를 입고 벤츠를 타듯, 자신의 사무 공간을 모더니스트들의 의자로 장식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유로운 창작 욕구를 더욱 부채질하여 더 기괴하고 도저히 앉을 수조차 없는 의자를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의자에 대한 반성으로 생겨난 것이 인체 공학을 바탕으로 한 몸에 딱 맞는 의자, 건강을 해치지 않는 의자, 편안한 의자다. 의자는 이제 창작 표현의 대상을 넘어 과학이 되었다. 척추의 구조와 움직임에 따라 유연하게 반응하는 최첨단 의자들이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돈 채드윅이 디자인한 아론 의자는 이러한 인체공학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의자는 무려 200만 원을 호가한다. 20세기의 의자는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유명 디자이너가 애써 만든 이른바 굿 디자인 의자들은 여전히 대중과 먼 거리에 있다. 그 의자들은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서 과거 왕과 귀족의 의자처럼 행세한다. 정말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편안히 앉을 수 있는 값싸고 튼튼하고 아름다운 의자는 나올 수 없는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안타깝게도 ‘없다’이다. 그것은 비행기의 이코노미 의자를 비즈니스나 일등석 의자로 바꿀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들에게 정말 편안한 의자는 값싸고 불편한 의자들인지 모른다. 우리가 학생 시절에 앉았던 나무 의자, 오랫동안 앉으면 삐걱거리고 흔들려서 나중에는 땔감이 되는, 그런 이름 없고 하찮은 의자 말이다. 그러나 너무 낙심하지 마라. 어차피 우리 몸을 해롭지 않게 하는 완전한 의자는 만들 수 없다. 사람이 의자를 떠나 끊임없이 움직이든지, 의자 생활을 천만년 지속하여 우리 몸이 의자에 맞게 진화하지 않는 이상, 명품 의자에 앉는 사람이나 싸구려 의자에 앉는 사람이나 몸이 망가지기는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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