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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생활리듬 및

한식의 유래

by 현상아 2007. 4. 29.

한식의 유래

제환공의 딸 제강은 진(晉)나라 군주에게 시집을 갔는데, 그의 아들이 뒤를 이어 진헌공이 되자 제강을 자기 아내로 맞는다. 진헌공의 아들을 낳으니 신생(申生)이다.
또  헌공은  적족(狄族)  자매를  얻어  그  언니에게서  중이(重耳)를  낳고, 동생에게서 이오(夷吾)를 낳는다. 그  후 여러여인을 첩실로 거느리지만 아리따운 융족의 여인을 맞아 해재라는 아들을 얻는다.
이  융족여인을  얻게 된 것은 진헌공에 의해 멸망시키는 과정 중이었으므로 이 융족여인은 진나라를 망하게 할 결심을 한다. 그래서 자식들 간에 이간질을 시키며 멸망케 하는데, 중이라는 아들은 그 여인을 의심하여 마수에 걸려들지 않고 탈출을 한다.
나머지 아들들은 자결하거나 아버지와 싸울 결심을 하는 반면, 중이는  아버지에게서  보검을 받고[자결하라는 의미] 담을 넘어 도망가게  되는데, 이에 중이를 따르던 몇몇 충신들이 중이를 따라 19년간의 방랑생활을 하게 되는데, 떠돌이 생활에 병을 얻어 죽게 되었는데 개자추는 자기의 넓적 다리살을 베어 살마 먹여 중이를 살리게 된다.  
도중에 제환공에게 의탁하여 머물면서 시기를 기다리게 된다.
이윽고  진나라의 정세를 살펴 진(秦)나라의 도움을 얻어 모국인 진(晉)나라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사람이 진문공 (晉文公)이다. 그의 나이 62세였다. 그를  19년간  모시고 방랑을 했던 신하들이 모두 감투와 높은 자리들로  자리매김을  할 즈음, 국권탈환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주(周)나라에 내란이 일어나자 그길로 바삐 원정을 가는 차에 신하들 중 하나인 개자추(介子推)를 깜박 잊고 말았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된 진문공(중이)은 그를 백방으로 찾아 나섰다. 그는  노모를 모시고, 면상산(綿上山)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진문공이 직접 그를 찾아 나섰다. 열흘동안  산속에  군대를 풀어 개자추를 찾았으나, 그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신하들이 묘안을 내되 산에 불을 놓으면 노모를 모시는 입장에서 뛰쳐 나올것으로 생각하여, 이윽고 산에 불을 놓게 되는데 개자추는 끝까지 고집을 부려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산에는  진문공 일행이 잘 보이는 장소에 나무를 끌어 안고 불에  타 죽은 시체로 발견이 되는데 이를 일컬어 개자추의 포목소사(抱木燒死)라고 한다.  
진문공은  불을 지른 것이 잘못임을 깨닫고, 앞으로 이 날에는 제사를  지내 개자추의 원령을 달래되, 절대로 불을 사용하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    
그래서 그 날만은 찬밥을 그대로 먹으니, 한식(寒食)의 유래라 한다. 이후  불에 타죽은 장소인 면상산은 개산(介山)으로 고쳐 부르게 된다.

- 한식은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음력(陰曆)으로 2월과 3월에 걸쳐서 드는데 1999년의 한식은 양력(陽曆) 4월 6일이고 음력(陰曆)으로는 기묘년(己卯年) 2월 20일입니다. 또한 절기(節氣)로 청명(淸明)과 한식(寒食)날이 전후해서 있어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 명절날 조상의 산소에 가서 묘사(墓祀)를 지내는 날은 설날, 한식, 단오 (端午), 추석(秋夕) 등이지만 절사(節祀)로 가장 성하게 지내는 날은 한식과 추석입니다. 종묘(宗廟)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祭享)을 지내고, 민간(民間) 에서도 조상의 묘전(墓前)에 술, 과일, 포(脯), 식혜(食醯), 떡, 국수, 탕(湯), 적(炙) 등의 제물(祭物)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한식차례(寒食茶禮) 라고 합니다. 후에 명절제사인 절사(節祀)는 동지(冬至)가 추가되어 다섯 절사(節祀)가 되었습니다. 이 날은 성묘(省墓)를 하고, 식목(植木)을 하거나 헐은 분묘(墳墓)에 떼를 다시 입히는 개사초(改沙草)를 하는데, 3월에 한식이 든 해는 사초(沙草)를 하지 않습니다. 이는 '삼구부동총(三九不動塚)'이라 해서 '3월과 9월에는 묘소를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는데서 연유합니다. 물론 그 이유는 3월은 이미 봄이 되어 싹이 나왔기 때문이고, 9월은 이미 겨울에 접어들어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밥을 먹는다>는 한식의 의미로는 이 날은 풍우(風雨)가 심해서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다고 하거나, 다음 유래 고사에서 연유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본래는 고대(古代)의 종교적(宗敎的)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불{신화(新火)}을 만들어 쓸 때 그에 앞서 어느 기간 동안 구화(舊火)를 일체 금하던 예속(禮俗)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리나라 한식의 시초는 중국 당(唐)나라에서 전래되어 신라(新羅) 때부터로 전해지는데, 고려시대(高麗時代)에는 대표적 명절로 숭상되었고 조선시대(朝鮮時代)에 들어와서는 그 민속적 권위가 더욱 중시되었습니다. 농가에사는 이 날 농작물의 씨를 뿌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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