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신상이야기 --- 첫번째 탐구
* 이따끔씩 내 이야기를 하기로 하겠다
그런데 난 엄청나게 모순된것과같은 행동을 한다
어떤때는 개인의 과거따위는 어찌 되도 상관
없다고 말하다가 어떤때는 묻고 어떤때는 질문 같은건 무의미하다고 말 하다가 또 다른때는
중요한
질문이있다며 말하기 시작한다
순간순간이 움직이고있기때문에 그 움직임을 일정하게 논리적으로
모순되지 않는 언행을 취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그것을 언동의 일관성이 있어서 좋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건 생명안에서는 있을수 없다
어제는 맑았지만 오늘은 흐리다고해서
사람들은 불평을 해델까 ? 말하지 않겠지 그렇건만 한사람의 인간이 통일성을
갖지못한다면 비난
당하게 된다
변덕쟁이.미친놈.버릇없는것. 정신불안정이라는 말을 듣는식이지 하지만 본래
자연이란 그런것이다
* 사회는 농경문명이래 마을의 질서를 규제하기 위해서 갖가지 통일성을
개인의 언동에까지
몰아붙이고 말았다
문명은 애당초 처음부터 불법이라고 말한점에서 道를 짓밟았다고 할수 있다
이처럼 작위적인
질서는 드디어 법도라 불리우는 현재의 법률에 이르렀다 이것은 본래
서로 공존하는 사람들의
육체적안전을 위한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인위적인 질서는 원숭이같은 일부 포유류를 제외하곤
자연계의 어디에도 없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법률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단한번도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린적이 없다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린다고 하면
사람들은 무언가 거대한 폭발이나 폐기물을 만든다거나 오염물질에 관한것만을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몇만년전 원시적인 마을의 생활이라도 이미 그곳에 법률이있다면 그것
만으로 자연과의 조화는 무너져있다
작은 오솔길을 만들고 다리를 만드는것만으로 이미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에 더 기묘한것이 있다
자 그러면 다리를 만들면
안되는걸까 ? 인간이 지혜를 궁리하면 안되는걸까 그렇지 않다 문제는 그 다리를 만드는
장소의
선택과 동기에있다 극단적인 이야기가 되겠는데
* 한명의 붓다(석가를 뜻하는게 아님)가 마을에 무언가를 만들면 그건 언뜻 보기에
아무 도움이
안되는것처럼 보여도 조화되어있다
그런데 마을사람이 무언가 무척 편리한 농기구를 만들었다면
그건 굉장히 해로운것이 된다
문제는 만들어지는 물건이 무엇인지.폐기되는 게 무엇인지
누가 핵무기를 발사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그렇게 그렇게 시키는가이다 극단적인 논리도 아무
것도 아닌이야기이다
* 만약 자연계의 섭리또는 佛性이 향하는대로 산다면 충분히 핵무기 단추를 누를수도 있다
그것은 꼭 선악의 문제도 아니며 인간중심의 문제 .지구중심의 문제도 아니다
지나친 극단적인
논리일지도 모르나 바로 그것이 타오이며 禪意識의 형상이다 당신은 그걸 알것이다
내 문하중의 한사람에게 이런말을 한 적이 있다
법은 결코 인간을 위한것이 아니다 그러니 만약 전 인류의 모든 사람이 법과함께 있다면
어느날
우리들이 멸망해서 이 혹성에서 사라지는것 역시 법의 선택이 될수도 있다
법은 우리를 살린다고
만은 할수 없다
만약 진짜 법안에 있다면 그것이 어떤결단 어떤결말이 날지는 전혀 알수 없으며
때로는 인류가 절멸하는게 낫다는결단이 내려 질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붓다들이 히틀러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절대로 되지 않는것도 아니다
모든 요점은 어떤일의 결말이나 과정이 아니라 동기에있다 그런데 더 부조리한것은
완전한 법은 동기가 없다는사실이다
거꾸로 인위적인 동기는 반드시 손익계산이따른다
그래서 개인이익추구만이 에고로 불리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집단으로써의 회사나 나라이익의 추구가 세간의 싸움을 대규모로 만들기때문이다
만약 지구를 소중히 한다면 그것을 지구인들은 고귀한 이념이라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우주안에서는
그야말로 기막히게 멋진 에고이다
* 하지만 자연의 법이란 원래부터 인간본위가 아니다
그래서 인간이나 인간중심.지구중심의
손익에서 무슨일을 행하거나 법률을 만들면 아무리 장기적으로 인간에게 공헌이되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한들 완전히 잘못된결과가 나온다
그잘못의 기준은 바로 법이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묘하게 으시되는 법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건 자연의 법칙이나 법률이랄까 신이라는 자들의 명령일까
아니아니 그렁 이상한 종교적인것은
아니다
그건 전혀 어려운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곤충조차도 거기에따르고 있기때문에
법그것은 그냥 그런 無心이다
그래서 지혜를 더 하면 더할수록 법에서 멀어진다 이경우의 지혜또한
정의가 복잡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혜에도 두가지가 있기때문이다
하나는 살아남으려는 공포가 만들어내는 걱정이 빚어내는 지혜
대부분은 거의 이에 속한다
또 하나는 살아남으려는 공포가 만들어낸 걱정이 빚어내는 지혜
대부분 거의 이에 속한다
또 하나는 붓다들의 내발적인 지혜이다 그리고 그런붓다들의 지혜는 왕왕
부조리한 모순투성이가 쉽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항상 조화를 낳는다
붓다가 컴퓨터를 만들지 않는게 아니며 붓다가 과학을 부정하는것도 아니다
그저 붓다에겐
근원적인 조작의 동기에 생존욕의 본능이 관여하고 있지 않다
왜그렇게 하는지 붓다들 자신도 전혀
모르고 하는것이다
그는 자기가 자기의 성과를 보고 그 성과를 회수하는일에 무관심이 없다
그래서 오로지 할뿐이며 경우에따라서는 오로지 사람을 죽일지도 모른다
이건어떤의미에는
대체로 동물같은 의식이다
그래서 법은 인간다움을 부정하는건 아니지만 결코 인간적이진않다
인간에게는 한가지 동물로써 인간다움이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성이니 인간의 마음이니 하는구분으로 다른생물과인간을 구별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난 어지간한 동물이나식물의 의식.본성
지금여기있음에 있어서는 웬만한 禪師도 모른다고 단언한다
* 자 이런이야기를 아무리해도 어떻게해야 좋을지 모르고 우리들은 어찌할바를
몰라할뿐이다
그렇다고 자연을 학자처럼 이해했다고 해서 우리들이 이해할수있는일 같은건
실로 좁고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떻게 자랐다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다
그런건 그다지
문제가 안되기때문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버리는데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버릴려고 마음먹고 버리는것이며
또 하나는 갖고 있을수 없게 되어 버리는것이다
마치 손에들고있는 금속이 과열되어 그이상 갖고있으면 피부가 탈듯이 뜨거워서
손을 놓치고
만다
이것이 네게 일어난일이었다 그리고그것은 자기가 과열시킨것이며 또세계에대한
관찰이
그렇게시켰던것이다
사실 이 인간세계는 내가 보기에 완전히 미쳐있었다 그하나의 방편은 禪이다
도사는 애당초 왜 손뗄필요가 있는지 또그것조차 모르는 신참자에게 일부러
손을 떼지 않으면
괴롭기그지 없는 그손에 쥔금속을 과열시킨다
일부러 고통을 정중하게 주는것이 禪이다
* 좌선도 두가지 목적이있다
하나는 떨어뜨리고 버리기 위한 고요이고
또 하나는 고뇌를 과열시키는것이다
좌선도 두가지가 있다
통상은 버림을 위한것이다
하지만 버림이란 더이상본인이 버리지 않으면 미치거나 마음의 고통 .고민 .모순등의
혼란으로
폭발직전이 되어야만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신참자는 애당초 왜 손을 떼는지 왜풀어놓은지
그리고 무엇을 푸는지를 모르기때문이다
도사는 그손을 떼야만 할 금속 모든마음을 과열시킨다
하지만 손을 떼야만 하는것 모든마음이라는 사실에 도달하는 데 오랜시간이 걸린다
여기서 모든
이란 진짜 전부를 가리킨다
예외란 단하나도 없다 그래서 난늘 산야신에게도 禪계통의 사람에
게도 이렇게 말 한다
光明 그곳에는 한 조각의 희망도 없다 그건 마음의 짓이다
이는 禪의 희망이기도 하며 기타의수행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수행의 의미따위는 방황이나마음에의해 인간멋대로지어낸 산물이다
* 아무리해도 어떤 참선자도 無心이라 말하면서
그곳에 예외를 만들곤한다 하지만 완전한
無心이란 조금의 예외도 없다 이는 일종의 바보의 경지이다
더이상 아무것도 모른다 바보 그자체인것이다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
도통 모른다
내가 지금 뭔지는 모르지만 아는건 한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에오의 死人禪 또는 일반禪이
극한적 고뇌나 광기에있는 사람들에게는 편한길이 될듯 싶다는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속에 결코 세속적인 개혁이나 시비를 끌어들일수는 없다
그렇게 하면 다시금
비교와분별의 고통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버림은 인간으로부터의 벗어남이었으며
지구로부터떠남이었으며 우주나존재 그자체를 단념한 이탈이었다
왜아직 살아있는지
불분명하다 아직 불분명하다
그것은 내가 죽을때까지 불분명하다 나는 살아있다는것 그 자체도 무관심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죽는것에도 별관심이 없다 이러한 의식상태는 善.惡을 결코
마음에 만들지 않는다
항상 분별을 전혀 모르게 된다 내게는 그곳에 분별을 버릴려는 수행같은 건
아무것도 없다
당신의 노 스승이 말하듯이 또는 모든 선사들이 말하듯이
大悟란 단 한방에 끝난다
그리고 그것은 無心이라는 휴유증을 남긴다
거꾸로 무언가가 아무래도 무언가가 사라진것 처럼 없다
마음이 완전하게 사라지면
살아있을수 없기때문에 사라진것은 마음도 아니다
대부분은 무심한 시간이 많기때문에
마음이 이전에 비해 몇천분의 일이 줄어든건 분명하다 하지만 정말 없어진건 무엇일까
그것은 실로 무언가라는것은 아니다
예를들면 자기를 잃어버린것도 아니다 자아가 사라진것도 아니다
잡념이 사라진것도
아니다
도리어 그것들을 만들어내는 진짜 근원이 거의 사라진것이다
없어진것 말하자면
의식의 움직임이다
나는 의식이 전혀 아무것도 보려하지 않고 정지해있었음을
한참 후에야 알게되었다
뇌의 어느부분이 이상해졌다든가 정신이상이라든가 그런것도 아니며
또 단순히 멍하게
부주의한것도 아니다
생각에 사로잡혀 멍해있는것도 아니다 결국 이상태를 난깨달음과는
다른말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것이 정지점또는 <.> 이라는 표기이다 그것은 물리적 용어가
좋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념을 필요로하는 용어가 아닌 정지라면 어린아이라도 이해
할수있기때문이다
그것은 멈춤이다 그것은 개념이나 가르침이 아니며 상태이다 이것은 결코
오해되지 않는다
멈춘다는것은 개념이 아니라 묘사하는 단어이다
* 문제는 의식이 멈추는 정지점까지 본인이 체험할수 있는가 아닌가이다
그런데 이의식이란
용어를 말 하는 순간 갑자기 두서가 없어진다
애초에 의식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기란 상당히
곤란하다
의식한다라는 말은 가령 사람눈을 의식한다와같이 눈치를 보거나 구애된다거나
주의를 준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달마.법 붓다들이 말하는 의식이란 ?
내용없는 의식일뿐이다
이것이 소위 無와는 약간 다른 空이다
의식은 그냥그대로이다
물론 그것은 무의식이 아니라 무언가를 보거나 행 하는것인데 전혀 흔적이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흔히 거울에 비유된다 과연의식이란 무엇일까
그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어느것에 주의를 집중하거나 몰입해서 듣고있으면 우리는 흔히 의식이 그쪽에
사로 잡혔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고대불교의 부처들이 말하는것 처럼 철저히 무엇인가가 되어서
또는 오로지 밀고나가는
행위라면 대상과는 전혀 틈이 벌어질수 없으며 또 그곳에선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비교또한
존재할수 없다
보통사람들이 말하는 주의력과는 전혀 다른 어떤 종류의 의식성이 그곳에 남는다
이를 가리켜 禪은 여기라든가 이것이라 부른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로부터 한 발도 벗어난적이 없으며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우리자신과
뗄레야뗄수 없다
만약 禪이 움직이는 주의력과 의식을 나타낸것이라면 저것혹은 그것이라고
표현했을것이다
그것은 무슨일을 하더라도 잃어버리지 않는다 잃어버렸다고 잘못 짚을수야
있지만 결코 잃어버릴수는 없다
마치 당신이 멍하니 생각에 잠기게 되면 혹 자신의 육체를 잊을수야 있겠지만
그렇다고 육체
그자체가 없어지는것은 아닌것과같다
그것은 생각하는것 .잊어버리는것. 자각하는것과 자각하지 않은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존재성 그자체이다
한밤에 당신이 무의식으로 떨어져도 당신의 육체는 그대로 존재
한다
비록 똑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의미로 의식과 존재성과주인공은 계속 존재한다
필경 그것을 체험한 사람은 그것을 아무것도 아닌것이라고 밖에 말할수 없다
* 무엇이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것
자기자신인가
하지만 그것은 자아로써의 자기는 아니다 기억의 자기나 자기에대한
무엇인가도 아니다
그저 그뿐이다 그곳에있는 당신의 의식 그 자체이며 그곳에는
인격도 개성도 아무것도 없다
나는 개성과 인격을 없애라고 말 하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격이나 기억은 주변에
불과한것이다
즉인격은 당신의 주인공이 입는 옷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꼭 벌거숭이
로 걸어다닐필요는 없다
개성도 인격도 입으면 되는것 단 당신의 본성은 벌거숭이 그대로
무인격 무개성인채로 이다
나는 늘 당신은 나다 나는 당신이다라고 말 한다
에오라는 청년은 때때로 벌거숭이라는 옷을 입는다
또는 인도주의적인 법의의 방편을
입기도 한다
때로는 갑자기 우주복을 입기도 한다
그렇게 이 에오라는 청년의 쓰기.말하기
화제거리를 방편의 결과로써 일일이 보고있자니 마치 하나의 인격 패션쇼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것도 아니며 단 한가지도 내의상을 갖고있지 않다
내의상은 전부 빌린것
이다
지식도 방편도 그리고 인간으로써의 내 개성까지 그 모든것이 빌린것이다
모두다 그것은 설법이라는 쇼를 위해 빌린의상이다
* 나는 무언가 뚝 부러지는일이나 깨달음의 냄새가 풀풀나는 화재를 꺼낼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내의상에 잡히고 만다
나는 점점 인격이나 설법.화제라는 옷을 벗어나간다
마지막에 나는 팬티 한장만 걸치고 이렇게 말한다
"이거다 그냥이거다 그거다 그냥 그거다 "
그리고 내가 마지막에 팬티를 벗으면 그무대에서 당신이 보는것은
다름아닌 바로 당신이다
거기에 나와 당신을 구별하는것은 없다
우리는 태어날때 벌거숭이요 죽어서도 벌거숭이다 그리고 평생동안 의복아래에서
벌거숭이다
가끔씩 실제로 날 만난사람은 나를 보고 뒤로 넘어진다
아무리 살펴본들 어느구석을 찾아
본들 보통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內面 깊은것도 나는 보통사람이다
- 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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