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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지금여기

노자의 무명론 ...

by 현상아 2007. 4. 21.
 
노자의 무명론(無名論)

노자 도덕경의 전체를 일관하고 있는 사고방식은 대립되는 것의 공존이다.
예컨대 "천하가 다 아름다움이 아름다운 줄 알지만 그것은 추악함이 있기 때문이다" (2장), "현자를 높이지 말아서 백성으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하라"(3장),  "적으면 얻고 많으면 어지러워진다"(22장), "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진실하지 않다"(81장), "함이 없음을 하고 일 없음을 일삼고"(63장) 등등.
 
명(名) 부정의 논리
A = A 라는 논리는 공자의 정명론에 대한 비판이다. 공자의 경우 `A는 A이어야 한다'고 하여 현실의 것과 이상적인 것을 분리하고 현실의 것을 이상적인 것에다 일치시키려 한다. 공자에 있어서 이름(名)은 영원불변하는 진리이며 정의이며 보편자이며, 현실적인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맹자는 "한나라 깡패 주(紂)를 죽인 것이지 임금을 시해한 것은 아니다"(양혜왕 하8)라고 하여 혁명적 정명론을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는 이상[名]에 의한 현실 부정이 공자식의 마음 수양이라는 점진적 개량을 넘어 서서 파괴적 혁명적 수준에까지 이른 것이다.
노자는 이상적인 것으로서 불변의 기준인 이름을 부정한다. 예컨대 "도라 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고, 이름이라 할 수 있는 이름은 참된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라는 것은 직접적으로 군군 신신(君君 臣臣)의 논리에 대한 반박이다. 인의예지 등 유가가 주장하는 도는 참된 영원한 도가 아니다. 또 공자가 말하는 `임금이라 할 수 있는 임금, 신하라고 할 수 있는 신하(君可君 臣可臣)'는 `영원하고 참된 임금이나 신하(常君 常臣)'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자에 의하면 仁義 등을 갖추면 그는 임금다운 임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자가 볼 때 그것은 참된 임금이 아니다. 예컨대 전성자(田成子)는 신하로서 임금을 죽이고 왕이 되어 그에게 불복하는 사람들을 법으로 다스리고, 忠孝와 仁義 등을 지킬 것을 강조했다. 이는 그 나라뿐만 아니라 인의예지 등의 이념과 법률 제도까지 훔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아가 인의예지를 사람들에게 강요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앞장서서 지키려 했다. 따라서 그는 인의예지 등의 법도를 잘 갖춘 사람으로 임금다운 임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를 참다운 임금이라 할 수 있는가? 전성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도척이 도둑질을 하는데도 인의예지가 있어야 한다. 

"방안에 감추어 둔 것을 미루어 아는 것이 예지(聖)이고, 앞장 서는 것이 용(勇)이고, 맨 뒤에 나오는 것이 義이고, 가부를 미리 아는 것이 知이며, 고르게 나누는 것이 仁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못하고 도둑이 된 자는 천하에 없다" (장자 거협편) 

여기서 말하는 것은 공자가 생각하는 영원불변하는 기준인 이름(名)이 현실(實)을 완벽하게 규제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현실은 오히려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이름(이념)을 이용하는 무리들로 차 있다. 따라서 이름은 현실의 한 측면만을 규정할 뿐이다.
공자는 이름을 중심으로 하여 현실 속의 개체를 보는데 비하여, 노자는 영원불변하는 기준을 배제하고 이름(이념)의 위치가 현실적으로 어떠한가를 본다. 즉 현실을 중심으로 하여 이름을 살펴본다. 하나의 이름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과 반대되는 것이 있으며, 이는 현상 세계의 본질적인 성격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법령이 더욱 엄하게 되면 도적도 더 많이 나타난다.“ 정명론 식으로 생각하면 법을 더욱 엄격하게 집행할 때 도적은 줄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법이 많고 엄해도 범죄자는 교활한 꾀와 탐욕으로 그 법을 피해 가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 따라서 법과 범죄는 같은 근원에 있으며, 대립물의 공존이 현상세계의 근본적인 성격이라는 것이 노자의 생각이다.
 "天地에는 仁이 없다. 따라서 만물을 추구(芻狗; 제사 때 쓰고 버리는 짚으로 만든 개)로 대한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다고나 할까! 비었으나 다하지 않고 움직일수록 더욱 사물이 생겨 나온다. 仁은 본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氣가 모이고 흩어짐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이 마치 풀무에서 바람(氣)이 나오는 것 같으며,  생겨났다 없어지는 만물은 제사 때 한번 쓰고 버려지는 풀 강아지와 같다.“
노자의 이런 자연주의적인 세계관에서 볼 때, 인간의 탐욕과 꾀는 이념(이름)과 같은 뿌리를 가진 것으로 문명사회의 산물일 뿐 자연에 원래 있는 것은 아니다. "五色은 (인간이 본래 가지고 태어난) 눈을 멀게 하고, 五音은 인간의 귀를 먹게 하고, 五味는 인간의 입을 상하게 한다."
이렇게 볼 때 세계의 본래의 모습은 아무런 개념 규정이 없는 것[無], 개념 규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樸], 혹은 물질적인 기[氣]이다. 이것들은 모두 개념 규정[名]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무명(無名)은 천지의 시초이고 유명(有名)은 만물의 어미이다."
 
사회와 역사의 분석
노자의 이름부정론[無名論]은 탐욕과 이기심에 의한 갈등과 투쟁이 극심했던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면서 동시에, 그 사회적 혼란을 부정하고 이념에 의해 새 질서를 수립하려고 했던 공자 등의 시도에 대한 회의이며 비판이다.
노자는 대립이 공존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  "천하는 모두 아름다움이 아름다운 줄만 알고 그것이 추악함을 동반함을 알지 못하며, 선(善)이 선함만 알고 그것이 불선(不善)을 동반함을 알지 못한다." 정명론이 바로 그런 것이다.
"무릇 예(禮)란 충신(忠信)이 박약한 데서 나온 것으로 혼란의 시작이다." , "큰 도가 폐해 없어지니 인의가 있게 되고, 지혜가 나오니 큰 거짓이 있게 되었다. 육친(六親)이 불화하니 효와 자(慈)가 있게 되고, 나라가 혼란하니 충신이 있게 되었다." 예나 인의 충효 지혜 등은 모두 사회의 무질서를 극복하기 위하여 제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상(名)을 제시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 그만큼 큰 혼란이 있다는 말이 되며, 반대로 그런 이념이 제시되면 그것에 의해서 사회는 더욱 혼란하게 된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이념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위(有爲)함으로서 사회를 구제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 유위에 반대가 되는 것이 그것에 동반됨을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유위에서 혼란이 가중되는 것을 상승(相乘)적 작용(악순환)이라 한다면, 노자는 그것을 치유하기 위하여 상강(相降)적 작용을 제시한다. [이것을 노자는 無爲라 한다.] 즉 노자는 그 대립의 공존을 해결하기보다는 해소하려 한다. 지혜나 인의, 법령, 세금 등을 없애면 그것에 대립되는 큰 거짓, 불화, 도적, 백성의 굶주림 등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無'의 범주에 의해 `有'의 범주를 해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노자는 有爲란 혼란의 길이며 문명화의 과정이고, 無爲란 문명의 구속과 혼란을 치료하는 자연 상태로의 길이라고 본다. 하지만 無爲(아무런 행위함도 없는 것)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노자는 無爲를 有爲하라고 한다. 성인은 "만물을 만들되 지배하지 않으며, 생산하되 소유하지 않으며, 이루되 자랑하지 않으며, 공이 이루어지되 그것에 거하지 않는다." 이는 공자의 정명론이 가정하는 사회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런 문명화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무위를 일삼는 것이다. 이를 노자는 "학문을 하면 날마다 늘어나고, 도를 하면 날마다 줄어든다. 줄이고 또 줄여서 무위에 도달한다. 그러면 함이 없어도 되지 않는 것이 없다"(無爲而無不爲)고 한다. 이렇게 하면 인간의 마음은 근원인 본성의 고요함으로 돌아가고, 사회는 문명화되기 이전 상태인 자연으로 복귀하게 된다.
노자는 문명사회가 추구하는 남성다움(雄)·강함(强)·굳셈(剛)을 부정하고 여성다움(雌)·부드러움(柔)·약함(弱)을 주장하며, 결국은 이것의 극치인 허(虛) 정(靜) 무(無) 인(仁) 도(道)의 세계로의 복귀를 주장한다.
노자의 체계는 대립이 공존하는 현실 세계와 그런 대립이 없는 도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도의 세계를 한편에서는 사변적으로 분석하여 제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해석한다. 사변적으로 분석 제시된 도의 세계는 허·고요함·무로서,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고 잡아도 잡히지 않는 것, 형체가 없는 형체, 모습이 없는 모습이요, 황홀한 것이며, 오묘하고 또 오묘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해석된 도는 원시 상태이다. 원시 시대는 사변적으로 제시된 도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문명사회의 언어가 없으므로 無名이며 문명사회의 행위가 없으므로 無爲이다. 여기에서 부터 혼란과 억압이 증가되어 가는 문명의 과정을 노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최상의 정치는 백성이 통치자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 다음은 통치자를 사랑하여 기리고, 그 다음은 통치자를 두려워하고, 그 다음은 통치자를 업신여긴다." 이 마지막은 통치자의 학정에 견디지 못하는 단계이다.  이것과 대비되는 최상의 사회를 노자는, 구성원들이 평생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범위 안에서 살며 문자도 무기도 수레도 필요 없이 무지무욕하게 사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사회라고 한다. 이는 토지 공유제에 기초한 공동 생산 공동 분배의 원시 씨족 공동체 사회이다. 여기에서 부터 역사는 사유재산제에 근거한 자사다욕(自私多欲)으로 대립 투쟁한 춘추 전국 시대로 나아간 것이다.
 
名 부정과 힘의 논리
맹자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은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을 말하십니까?"이다. 맹자가 보건대 사람들은 인의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므로 만승(萬乘)의 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그 부하인 千乘의 나라이다. 이것은 유가의 근본적인 입장으로, 인의 등의 명(名)을 실천함으로써 사회를 파괴하는 사적인 것(私利 私慾)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자는 유위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相乘적인 대립은 결국 이념(名)을 이용하여 각자의 욕망을 채우는 힘의 싸움에 불과하다. 이념의 절대성이 부정되면 결국 남는 것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자기주장을 하는 세력들뿐이다. 노자는 근본적으로 이런 힘의 싸움을 반대한다. 
노자는 만일 상대를 약하게 하려 할 때 무조건 힘으로 밀어 붙여서는 안 되고[有爲], 그 힘의 관계를 잘 이용하여 통제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無爲이지만 無不爲가 된다는 것이다. 노자는 현실을 이념의 측면이 아닌 힘의 측면에서 본다. 현실은 힘이 얽혀 있는 것이며 그 힘의 구조를 이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구조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은 '부드러운 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포정이 소를 잡을(解牛) 때 두께없는 칼날로 뼈 사이의 넓고 넓은 틈을 찌른다는 것과 같은 것이며 노자의 처세술일 것이다. 포정의 칼날은 두께가 없으므로 뼈 사이의 틈이 아무리 좁은 것이라 할지라도 넓은 것이다. (『장자』「양생주」) 마찬가지로 세상일은 아무리 어렵고 안 될 것 같아도 그 일을 힘 안들이고 매끈히 해낼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노자가 이념을 부정하고 현실을 세력간의 갈등 관계로 본 것은 법가와 같다. 그러나 법가는 왕을 중심으로 국가의 모든 힘을 집중시키고 힘을 배양하여 그 힘으로 `함이 없어도 되지 않음이 없음(無爲而無不爲)'을 이루려 하지만 노자는 그런 힘의 관계를 부정한다.
법가의 대표적 인물인 한비자는 노자와는 달리 남성다움, 강함, 굳셈의 입장에서 노자의 무(無)를 받아들인다. 노자의 대립의 해소책인 `무위를 유위함'은 ‘부드러운 힘'의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한비자는 바로 이 점, `무(無)로서 유(有)를 제어한다(以無制有)'는 것을 왕의 통치술의 핵심으로 받아들인다. 왕은 무가 되고 신하는 유가 되어야 한다. 신하가 보는 왕은 무(無), 즉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고, 왕이 보는 신하는 유(有), 즉 환하게 알아 볼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무와 유는 각각 어두움과 밝음으로 비유될 수 있다. 밝은 데서 어두운 데를 보면 잘 안보이지만 어두운 데서 밝은 데를 보면 잘 보이는 것과 같다. 또한 한비자는 신하는 유위(有爲)하고 왕은 무위(無爲)해야 한다고 하여 왕이 신하를 부리는 기본 원리로 채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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