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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사랑과 진실

대시의 조건!

by 현상아 2007. 6. 4.

이정도는 되어야, 대시의 조건!

 

장장 몇 달간의 싱글생활을 꿋꿋하게 버텨내는 동안 드디어 나도 대시를 받게 되었다. 사랑이 오지 않아요, 사랑이 오지 않는 구나 이불 붙들고 눈물을 주워 삼켰는데 환호성을 지르는 것도 잠시! 대시의 방법이 너무 쿨하지 않아서 기분 다 잡쳤다. 아무리 외로웠어도 아무거나 다 받아줄 수는 없는 노릇 아냐?

 




이제 밝혀주마, 은사장이 어떤 대시를 받았는지! 무슨 이벤트를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꽃다발에 마음이 몽글몽글 핑크로 변해버리는 자아도취의 소녀시절도 아니고, 인물이나 조건이나 그딴 거 따지기에는 언제나 연애는 코드가 통하는 사람끼리 해야 한다는 나의 주장도 이번에는 저 멀리 던져버릴 정도로 싱글의 기간이 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사람을 받아줄 수 없었던 이유는 대시의 방법이 정말 틀려먹어도 한참 틀려먹었기 때문. 정말 난 웬만해서 받아주고 싶었다. 사람꼴만 하고 있으면 받아주겠다는 말이 헛된 것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쉬운 공략의 처지에 있던 날 꼬시지 못했던 대시는 대체 어떤 걸까? 남자 후배의 말마따나 ‘남자를 차는 그런 나쁘고 못된 여자’ 역을 자처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가장 Latest 대시는 남에게 밝히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밝힌다. 다른 여자들이 이런 창피한 대시에 속 끓이지 않길 바라며 힘들게 했던 대시를 안 하느니만 못한 일로 만들어 버리는 남자들을 타도하기 위하여.



나의 대시는 문자로 시작되었다. 긴긴밤 사랑이 오지 않아서, 한국으로 들어올 생각하지도 말라는 부모님의 엄포에 서러워서 잠 못 자고 책이나 보고 있던 내게 단순하게 날라온 문자. 그래 이때쯤 니가 고백하지 싶었으나 그래도 문자로 이건 아니잖아. 원래 남자들이 마음을 먹은 대시의 그 날짜, 말마따나 ‘입질의 최고조’인 그 날을 여자들이 모를 리 없다. ‘난 전혀 몰랐어~’ 나도 역시 그런 문자로 답해주긴 했지만 정말 몰랐을 리가 있나.
하루 중 못해도 한 시간은 주변관계 노선도로 시간을 보내는 게 여자다. 어쨌든, 그날 밤 나는 받고야 말았던 것이다. 무엇을? 사랑의 고백 문자를. 문자를. 문자를!! 고등학생도 아니고!
전화로 하는 고백이야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남자를 위해서 그냥 저냥 받아들일 수 있다지만. 문자라니... 정말 어디 가서 친구들한테 쪽 팔려서 말도 못하겠다. 결국 사태해결을 위하여 나는 끝까지 모르는 척 했고 결국에 속이 터진 그가 전화를 했다. 이래야 이야기가 되지.



남자 여자 사이는 언제나 확실하게 해두는 게 좋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린 충분히 서로를 좋아한다고? 말로서 관계를 확실히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언제쯤 맘 돌리면 그냥 끊어지고 마는 게 확실하지 않은 사이니까, 남는 것은 상처뿐) 그래서 전화가 오게 만드는 것까지야 쉽게 넘어갔는데 이럴 수가! 받아보니 이 인간 술 마셨다. 취하진 않았다고 하나 술이 한잔이라도 들어갔다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 술은 용기를 줄지 모르지만 말실수도 낳는다.
그래, 그 인간도 말실수 했다. 내가 좋다고, 사귀자는 말에 (솔직히 고백을 문자로 한다는 거 자체가 조금 마음에 걸렸으나, 꼭 그것 때문은 아니고 난 무조건 3번은 튕기자 주의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고 어설프게 빼면서 여운을 남겼다.
"그런데 내가 왜 좋아요?"
그러자 이유가 없단다. 이거야 뭐 좋아하는 이유가 적은 남자들이 가장 쉽게 대는 이유니까 그러려니 해도...
"그래도 이렇게 대시하는 게 나한테 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라는 내 질문에…
"그래 뭐.. 사귀자. 너 남자면 다 좋아하잖아."
미치지 않고서야.... 미치지 않고서야.... "미안하지만 남자면 다 좋아도 오빤 아닌 거 같은데?" 라고 냉랭하게 말할 수 있었던 날 흉볼 사람 있을까? 자기도 말 실수 했다 싶으니 다시 저자세로 나오며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았다는 둥 그렇지만 그 동안 너한테 틈이 없어서 망설였다는 둥 아무리 좋은 말로 날 꼬시려고 해도 이미 늦었다.



이런 몰매너의 대시 덕에 나는 가장 최악의 방법을 택했다. 싫다 좋다 대답을 하지 않고 "난 지금 그쪽에게 관심이 없고, 대시를 한 그쪽을 생각해서 최소한의 기회는 주고 싶다. 내가 준 기회를 잘 이용해서 내 마음을 움직여 봐라."

이미 내게 신용을 잃을 대로 잃어서 내 마음을 어떻게 흔들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과연 내 마음을 흔들 수 있을까? 남들에게 말하기도 창피한 대시 받고 그저 헬렐레할 여자가 어딨겠나. 내가 아무리 오랫동안 굶었어도 그렇지! 그래서 대시남은 아직도 고군분투 중인지 아닌지. 그건 다음 칼럼에 추신으로 붙일 수도, 아닐 수도.

사랑이 오지 않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사랑이 오지 않을 뿐이다.

 

이정도는 되어야, 대시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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