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uxury] 마놀로 블라닉, “섹스보다 좋다” 마돈나도 흥분시킨 구두
- 다이애나비 등 왕실부터 유명 스타까지 열성 팬으로 만들어
섹시하고 화려한 디자인, 영화 ‘마리 앙투와네트’에도 출현
한국에 2005년 입성… 수십만~수백만원 고가 불구 두터운 매니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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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 앙투와네트’ 리미티드 에디션. 400만원이 넘는 악어가죽의 ‘마리펌’. / 크리스털이 박힌 주얼리 구두. (photo 허재성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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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7월, 영국의 찰스 황태자는 한 TV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연인 카밀라 파커 볼스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시인했다. 당시 찰스 황태자는 다이애나 황태자비와 별거 중이었다. 이날 저녁 다이애나는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열린 공식행사에 혼자 참석했다. 공식석상에선 대체로 낮은 구두를 신던 그녀가 이날은 유난히 높고 뾰족한 하이힐을 신었다. 그녀는 평소보다 더 당당하고 자신감 넘쳐 보였다. 다이애나와 함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던 구두는 ‘마놀로 블라닉’표였다. 다이애나는 영국 처치스트리트에 있는 이곳 매장에서 같은 모양의 구두를 색깔별로 구입하는 ‘마놀로 블라닉 매니아’였다.
미국의 상류층이나 영국의 왕실에서 유명한 이 구두가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데엔 ‘섹스 앤 더 시티’라는 미국의 시트콤이 있었다. 주인공인 캐리가 뉴욕의 외진 골목에서 강도를 만났을 때다. “시계, 반지는 다 가져가도 좋은데요…”라던 캐리는 강도가 “그 신발도 어서 벗어 내놓으라”고 하자 “제발 마놀로 블라닉 구두만은 안된다”고 사정한다.
마놀로 블라닉 브랜드는 공격적인 광고나 홍보전을 동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래도 될 만하다. 이 구두에 마음을 빼앗긴 세계적 스타들이 알아서 ‘마놀로 블라닉 예찬론’을 펼쳐서다. 팝 가수 마돈나는 “섹스보다 좋다”고 했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자 마리는 “아무것도 입지 않고 이 신발만 신고 싶을 정도로 우아하고 매혹적”이라며 “발을 위한 보석”이라고 칭송했다. 제니퍼 로페즈, 캐머런 디아즈, 기네스 팰트로 등 이 구두를 즐겨 신는 유명 연예인이 줄을 잇는다. 화장품 회사 에스테로더는 2004년 아카데미 수상자에게 자사의 화장품을 선물하면서, 마놀로 블라닉 샌들을 함께 넣기도 했다.
뾰족하고 날렵한 앞코와 잘록하게 들어간 여성의 허리 같은 힐, 그리고 부드럽게 빠지는 듯한 구두의 몸체…. 스페인령 카나리섬 출신의 마놀로 블라닉이라는 구두 디자이너가 구두 시장에 혁명을 일으킨 지 35년, 열광하는 매니아층도 두터워졌다. 패션계에선 하나의 액세서리로 인식되던 구두를 강력하고 독립적인 패션 장치로 발전시켰다는 평도 나온다. 구두 애호가나 구두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 사이에서도 인기다. 한 켤레는 전시용으로, 한 켤레는 직접 신기 위해 두 켤레를 사는 ‘마놀로 중독자’까지 있다. 대체 마놀로 블라닉의 인기 비결은 무얼까.
지난 5월 21일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2층에 있는 마놀로 블라닉 매장. 크리스털이나 진주 구슬이 주렁주렁 달린 구두, 앞코는 막히고 뒷굽은 뚫린 색색가지의 ‘슬링 백’, 꽃무늬가 수놓아진 검은색 실크 구두…. 신기 위한 게 아니라 미술관에 전시되는 게 어울릴 것 같다. ‘펌프스 라인’이라고 불리는 기본 모델은 80만~90만원대로, 주얼리 장식이 달린 제품은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악어 가죽으로 만든 ‘마리펌’이란 모델은 427만5000원. 소형 자동차 한 대 값에 육박한다.
이렇게 비싼 데도 인기는 사그라들 줄 모른다. 이 매장엔 패션 멋쟁이뿐 아니라 “예쁜 줄로만 알았는데 편하기까지 하다” “지치고 우울하던 기분이 싹 가신다”면서 주얼리 구두를 ‘충동구매’하는 주부도 많다고 한다.
‘마놀로 표’ 구두는 신어서 편하다거나 실용성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대신 섹시한 디자인이 과감하고 화끈하다. 구두 본을 뜬 일러스트레이션은 빛깔이며 디자인이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기만 해도 눈이 즐겁다. 구두 끈이 마치 발목에서 춤을 추는 것 같고, 구두 몸체와 힐의 선에서 관능미가 느껴진다.
‘튀는’ 구두라고 해서 유행을 타는 것도 아니다. 구두 앞쪽에 굽을 둔 ‘플랫폼’이나 바닥 전체가 통굽으로 된 ‘웨지힐’이 대세일 때에도 마놀로 블라닉은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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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놀로 블라닉이 직접 한 구두 스케치.
- 기본 모델은 구두 옆 부분이 트인 ‘도르세(d’Orsay)’, 샌들, 뒤쪽이 뚫린 ‘뮬(Mule)’, 기본 모양에 발등을 덮는 끈을 둔 ‘메리 제인’ 등. 수십 개의 기본 틀 위에서 매년 스티치나 소재에 약간씩 변형을 줄 뿐이다. 디자이너 마놀로 블라닉은 “우리 고객은 자신만의 취향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 무언가를 새로 제시해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상업성에 영향받지 않는 작품을 제작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런데도 매번 화젯거리를 뿌린다. 올해 마놀로 블라닉은 허영과 사치의 대명사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그린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화려한 구두 제작을 맡았다. 리본이 달리고 커튼 패브릭을 섞은 드레스풍의 구두가 탄생했다. 이 디자인을 살린 300만~400만원대 ‘마리 앙투아네트’ 리미티드 에디션도 나왔다.
현재 마놀로 블라닉은 멀티숍에 들어가 있는 경우는 많지만 독립적인 부티크는 뉴욕·런던·홍콩·모스코바 등 세계적으로 8곳밖에 안된다. 곧 터키 이스탄불과 싱가포르에도 부티크를 낸다. 한국엔 2005년 들어와 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갤러리아 명품관에 매장을 두고 있다.
몇 십 개 되는 기본 틀을 각국으로 보낸 뒤, 현지 고객의 취향에 맞춰 제작해주는 게 이 브랜드의 특징이다. 국가별로 에나멜, 와니(악어가죽), 송아지 가죽, 패브릭 같은 소재나 굽 높이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다. 국내에선 9㎝짜리 굽에, 주얼리가 달린 제품이 특히 인기다. ▒
- 마놀로 블라닉은 누구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살리려면 신발 신을 때 발가락의 일부분만 보여야 한다” “신발 숍에 오는 모든 고객은 천국에 와 있다는 기쁨과 희열을 느껴야 한다” “내 신발은 패션이 아니라 제스처다.” 구두 디자이너 마놀로 블라닉의 ‘구두 철학’이다.그는 수습생이나 보조생을 두지 않고 구두를 스케치하고 틀을 만들어 굽을 깎아내는 작업을 직접 한다. 구두 디자이너의 세계 3대 거장이라고 불리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로저 비비에르, 앙드레 피루지아의 대를 잇는 최고의 디자이너라고 불린다.
2002년 스페인의 왕 후앙 카를로스로부터 스페인의 최고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특별상을 받았다. 영국의 디자인박물관에 구두가 전시된 첫 번째 구두 디자이너의 영광도 누렸다. 그가 만든 구두 기본틀과 디자인 스케치를 보러 박물관에 몰려든 사람이 줄을 이었다.
1942년 스페인령 카나리섬에서 출생한 그는 스위스 제네바대학에서 문학과 건축을 공부했다. 이후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미술 공부를 했고 1969년 런던의 패션 부티크에서 일을 시작했다. 구두 디자인을 시작한 것은 1971년 뉴욕에서다. 플랫폼 신발이 유행이던 때에 날씬하게 빠진 스틸레토 힐(굽 부분이 허리처럼 잘록하고 얇은 힐) 스타일을 되살렸다.
첫 가게를 1979년 뉴욕에 오픈한 뒤 크리스천 디오르, 캘빈 클라인 등을 위한 슈즈도 디자인했다. 장 콕도의 영화와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 코코 샤넬 같은 디자이너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그는 ‘여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비밀을 아는 남자’라고 불린다.
/ 황성혜 기자 coby072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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