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천왕(蚩尤天王, BC 2748~BC 2598)
환단고기에서 특히 주목한 임금(황제)이 바로 배달국의 14대 환웅인 ‘자오지환웅’(치우천왕)이다.
치우천왕은 <환단고기> 외에도 <제왕연대>, <규원사화> 등 우리 역사서에 언급돼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의 정사인 사마천의 <사기>와 <한서지리지>, <상서>, <운급헌원기> 등에도 실려 있다.
<환단고기>를 보면, 치우천왕은 BC 2706년(42살) 환웅의 자리에 올라 BC 2598년(151살)까지 재위 109년 동안 동아시아 일대를 호령했다.
그는 10년 동안 중국의 황제 헌원(BC 2692~BC 2592)과 73번 싸워 모두 이겼다. 헌원은 중국 하나라 이전 삼황오제의 삼황(三皇) 중 태호복희에 이은 2번째 황제다.(삼황 다음은 오제(五帝, 요순 임금 등)가 이어지고, 이어 우(禹) 임금이 세운 하(夏)나라, 그리고 은(殷)나라, 주(周)나라, 진(秦)나라, 한(漢)나라로 이어진다. 현재 은나라부터 역사시대로 인정하고, 그 이전은 아직 역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은나라도 은허 유적이 쏟아지기 전까지는 역사로 인정받지 못했다. 얼마전 중국에서 하나라 시대 것으로 보이는 유적이 발굴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치우천왕은 수레와 투석기(돌을 날려 보내는 기계)를 만들어 전쟁에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 역사서는 치우천왕이 탁록(오늘날 하북성) 벌판에서 헌원을 끝내 사로잡아 신하로 삼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중국 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는 이와 다르다.
“제후가 모두 다 와서 (치우에게) 복종하여 따랐기 때문에 치우가 극히 횡포하였으나 천하에 능히 이를 벌할 자 없을때 헌원이 섭정했다.”
<사기>에 따르자면, 치우는 중국 산동성(산둥반도 지역) 일대에 거주하던 구려(九黎·동이족의 나라)라는 신족(神族)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중국 조상인 신농이 다스리던 영역 안에서 가장 강력한 족장이었다. 치우는 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신농의 후계자인 유망(楡罔)을 무찌른다. 그러자 유망이 황제 헌원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중원을 놓고 헌원과 치우가 대결전을 벌인다. 고대의 세계대전인 셈이다. 그리고 치우는 전군을 동원해 헌원과 10번을 싸워 9번을 모두 이긴다. 여기까지는 우리 역사서와 같다. 헌원은 폭풍우 속에서 치우에게 쫓기다 딸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후 세력을 회복해 용맹하던 치우의 형제(아마도 신하 장군으로 추정) 81명이 하나씩 하나씩 스러지고, 마지막 탁록 대전에서 치우는 종국에는 혼자 남아 싸우다 헌원의 병사에게 사로잡힌다. 그리고 황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목이 잘려 처형된다. 이후 동이족은 중원에서 밀려나 중국 동쪽 변방(만주)으로 옮겨갔다.
중국 역사서를 따르더라도, 우리 민족의 무대가 만주벌판에서 한반도로 축소된 단절점이 신라의 3국통일이었다면, 우리 민족의 무대가 중국대륙에서 만주와 한반도 등 대륙 변방으로 밀려난 것이 치우천왕의 패전이니, 우리 상고사의 중요한 한 순간이다.
중국 역사에서 치우는 악마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머리가 구리와 쇠로 돼있고(아마도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치우가 휘두르는 강력한 청동 신병기에 놀란 고대 중국인들의 눈에 치우가 그렇게 비춰졌을 지도 모른다), 폭풍우를 뿌리기도 한다.
치우천왕의 능은 능은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 관향성에 있었던 것으로 <한서지리지>에 전해지는데, 춘추전국시대에는 이곳 제(濟)나라의 군신(軍神)으로 추앙됐고, 이어 진나라, 한나라 때는 주민들이 제를 지냈다. 또 <사기> 봉선서에는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이 전쟁에 나가기 앞서 언제나 치우에게 제를 올린 다음에 출전했다고 한다. 특히 치우의 능에서 붉은 연기같은 것이 깃발처럼 휘날리면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조짐으로 믿었다고 한다. 치우천왕은 신화시대인 그때 뿐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 세나라 역대 왕릉 모두에 도깨비상의 모습으로 조각된다.
그런데 탁록의 마지막 전투 이후, 역사 속에서 사라진 비극적 인물인 치우(정사로 인정받는 <사기>를 따를 때)는 수천년이 흐른 뒤인 1999년 또다시 깨어난다. 붉은 악마의 캐릭터로.
붉은 악마는 당시 회원이던 한 축구디자이너의 권고로 1999년 치우천왕을 공식캐릭터로 정한다. 그리고 그해 3월29일 한국-브라질 전이 열린 잠실경기장에 가로 4m, 세로 3m의 대형 치우천왕 깃발이 첫 선을 보인다. 이날 한국은 한국 축구역사상 처음으로 히바우두가 뛴 세계 최강 브라질을 1 대 0으로 물리친다. 4500년 만에 깨어난 치우천왕이 ‘불패의 신화’를 또 한번 보여준 걸까?
그리고 붉은 악마는 이후, 경기에 앞서 애국가가 울릴 때는 대형 태극기를 펼치고, 한국 팀이 골을 넣으면 치우천왕기를 펼치는 것이 공식화 돼 있다. 그리고 치우천왕이 등장한 이후, 처음 맞은 월드컵에서 한국팀은 4강 신화를 창조해냈다.
그리고 또다른 치우가 있다. 만화가 이현세는 이보다 앞선 97년 고대 동아시아 전설을 집대성해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로 다시 표현해낸 <천국의 신화>에서 치우와 헌원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치우는 천족(天族·동이족)의 영웅으로, 그리고 헌원은 화족(華族·한족)의 영웅이다. <천국의 신화>에서 치우는 ‘까치 오혜성’, 황제 헌원은 ‘마동탁’의 이미지다.
이 만화에서 치우는 천족의 임금인 천군의 두번째 부인 발기달의 아들로 태어난다. 왕비가 아들이 없어 자연스럽게 천족의 왕위 계승자로 부상하나, 이를 시기한 왕비가 벌인 왕실 다툼에서 어머니 발기달이 살해당하는 와중에 부하들이 그를 안고 도망치다 밀림에 홀로 버려져 산속에서 호랑이에게 키워진다. 나중에 나라의 칼을 만드는 충신 손돌이 치우를 발견해 몰래 데려다 손자로 키운다. 치우는 아무 것도 모른채 평화롭게 자라나고, 그 사이에서 동네 여자친구 미리내(은하수의 순 우리말)와 연정을 키워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천족(天族)이 그동안 제후국이었던 화족(중국 민족)의 황제 헌원의 세력이 커지면서 존폐의 위기에 처하자,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다 스러져가는 천족의 나라, 배달국을 지키는 적통 왕세자, 메시아로 부상하고, 황제 헌원과 탁록에서 치열한 다툼을 벌이며 부족을 지켜낸다. 그러나 이 와중에 미리내가 교활한 헌원에게 사로잡히고, 헌원이 미리내를 이용해 치우를 괴롭히자, 치우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가 돼 부하들을 찔러 죽이는 등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킨다. 자신의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옴을 느끼는 가운데, 치우는 결국 잠들어 있는 사이 부하들에 의해 목이 잘린다. 이현세는 치우천왕을 <공포의 외인구단>, <지옥의 링> 등에서 나온 ‘까치 오혜성’과 너무나 흡사한 인물로 그려냈다.(개인적으로는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불패의 승리자 치우천왕(<환단고기>)보다 <사기>에 나오는, 단 한 번의 패배로 죽음에 이른 ‘비극적인 치우’가 애잔해 마음이 더 끌립니다. 또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실제 치우는 후자 쪽이 더 맞을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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