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네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온 나라에 흩어져 있는 약 3000개의 모텔에서 난잡한 바람을 일으키는 풍객(風客)이라고 하니…. 자그마치 504만명으로 추산되는 어른이 성(性)의 밀렵에 여념이 없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바람! 흘레바람이 거세다. 이 땅의 2030 젊은 기혼 여성의 43.3%가 모노가미(monogamy)의 틀을 흔들며 내밀하게 도둑질의 스릴을 즐기고 있다니…. KTX와 증편된 항공기가 배덕한 남녀 사이의 공간을 좁혀주고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숙박업소의 대낮 열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는 현실. 도통 진화의 길이 보이지 않는 전통 음식(닭볶음탕과 영계백숙) 매출이 늘어나고 있는 등 불륜산업이 연중 호황을 누리고 있단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개방적인 성을 구가했다는 신라시대의 성 풍속이 다시 재현된 것일까? 남녀 간 사랑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고려시대의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가 21세기 대한민국에 다시 유행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섹스의 르네상스 바람. 여인의 심층에 자고 있는 ‘색기’를 일깨우는 엽색의 바람은 신장된 여권이 진작시킨 자유 성주(性主) 탓일까? 여태까지 여자의 성을 억압한 것이 우리 성 규범의 핵심이었기에 말이다.
성인 네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온 나라에 흩어져 있는 약 3000개의 모텔에서 난잡한 바람을 일으키는 풍객(風客)이라고 하니…. 자그마치 504만명으로 추산되는 어른이 성(性)의 밀렵에 여념이 없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흘레바람이 몰고 온 공갈, 협박, 납치, 구타, 살인사건 등 치정(癡情)에 얽힌 사고가 끊임없이 보도되는 걸 보면 터무니없는 낭설만은 아닌 것 같다. 알려지지 않고 감추어진 사례는 훨씬 더 많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바람 잘 날 없는 바람의 나라, 동방불륜지국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성서에 의하면 부부의 인연이 하느님의 뜻이며 결혼의 의미를 ‘떠남’ ‘연합’ ‘한 몸’으로 설명한다. 부모의 품을 떠나 불완전한 두 남녀가 사랑으로 결속된 친밀감으로 빈틈없이 연합하여 성적인 결합으로 성숙한 한 개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그러나 불륜이 일상으로 자행되는 ‘바람의 왕국’에서는 결혼을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한다. 불륜이란 인륜에 어긋나는 언행이며 인륜이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다. 하지만 인륜을 넘어설 수밖에 없는 인간의 생물학적 속성 때문에 가정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은밀한 월담이 예사롭게 이루어진다. 애당초 계명(誡命)에 관한 시내산 협상에서 협상 상대인 하느님과 10개 항목으로 계율을 제한한 것은 모세의 공(功)이나,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제외시키지 못한 그의 과오 때문에 후세의 남녀 관계가 난마처럼 얽히게 됐다고 한다. 바람에 의한 인간의 풍파(風波)를 모세 탓으로 돌리는 해학이다.
남자와 여자 관계에는 유통기간이 있다. 유효기간이 경과하면 서로 물리고 질려 식상해 한다. 신비의 치장이 모두 지워지면 결국 감추어진 속물 근성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남녀관계의 무료함. 이때부터 인간은 일탈의 싹수에 물을 주기 시작한다. 일상의 매너리즘. 단일 궤도만을 운행하는 열차에는 소금에 절어 시들어가는 야채만 잔뜩 실려 있다.
색다른 맛이 나는 싱싱한 과일을 그려본다. 탈선의 속내가 꿈틀거리고 사행(邪行)을 빌린 짜릿한 체험을 상정(想定)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은 이내 역의(逆意)의 적심(賊心)을 가슴 깊이 암매장하고 만다. 인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행(射倖)과 허영의 바람에 들뜬 여성은 바람에 몸을 실어 배륜의 드라마를 엮어간다. 돈을 찾아, 힘을 찾아, 불을 찾아 색기(色氣)를 발산한다. 속앓이도 없이…. 지천으로 깔려있는 섹스 방에서 속 것을 까발린 채 강물에 배를 띄우며 섹스의 전위 동작에 여념이 없는 우리나라, 바람의 나라.
불륜은 사랑으로 정착되기 어렵다. 남녀관계를 지속시키는 강력한 모티브가 없고 바꿔봐야 그 물건이 그 물건이기 때문이다. “간음하지 말라”에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가 부가된 십계명에 “남의 남편을 탐하지 말라”를 별도의 항목으로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모세의 실책이다.
“하느님! 지금이라도 불륜 여성의 이마에 주홍글씨를 새겨 주세요.”
오래된 물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가 있다. 애증 어린 추억과 가슴을 울리는 아련한 사랑, 객쩍은 사연이 녹아 있다. 그리고 잔잔한 설렘이 있다. 마지막까지 변색된 사랑을 안고 고비고비마다 어려움을 딛고 굳어진 부부애로 살아가는 범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 정 정 만 | 연세대 의대 졸업. 연세대 의대 외래교수이며 현 세우미(世優美)비뇨기과 원장·대한기능영양의학회 회장. 시인 겸 의사. 저서 ‘남자의 성’ ‘바로 서야 바로 된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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