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것 같던 장마가 다시 시작되고 한풀 꺾여야 할 무더위가 때에 안맞게 기승을 부리는 날씨.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은 한반도에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되고 있다. 지구온난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면서 이 같은 현상은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의 땅과 바다, 하늘에는 이미 많은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난류성 어류종인 오징어 풍작, 독성 해파리와 식인상어인 백상아리의 출몰, 산림해충 만연은 그 일부분이다. 이대로라면 몇 십 년 뒤에는 지금 우리가 보는 동ㆍ식물을 찾아보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지구온난화를 가장 먼저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은 우리 식탁이다. 오징어와 고등어, 갈치 등 난류성 어종은 밥상에서 자주 볼 수 있지만 명태, 대구, 청어 등 한류성 어종은 식탁에서 점점 구경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숙취 해소를 위해 북어해장국이 아닌 오징어해장국을 먹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해양수산부가 내놓은 2007년 상반기 어업생산 통계에 따르면 한반도 주변 수온 상승으로 난류성 어종인 오징어와 고등어 등은 지난해보다 어획량이 30% 이상 급증했다. 특히 오징어는 지난해보다 34% 증가한 24만2845t이나 잡혔다. 반면 대표적인 한류성 어종인 명태는 올 상반기에 35t밖에 잡히지 않았다. 1980년대 연간 17만t씩 잡혔던 것은 정말 옛날 이야기가 돼 버렸다.
국립수산진흥원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우리나라 주변 어업자원 변동 현상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난류성 어종 분포 해역이 점점 북상하고 있고, 이들 어종 어획시기와 기간이 점점 빨라지면서 늘고 있다. 또 난류성 어종의 겨울철 어획량 증가 현상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한국해양연구원 관계자는 한반도 주변 평균 수온이 상승하면서 찬물을 좋아하는 명태나 대구, 정어리는 계속 줄고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오징어나 멸치가 많이 잡히는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근 몇 년 사이 여름철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들을 위협하고 있는 독성 해파리가 급증하는 것도 지구온난화에 따른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지난 5월과 6월에 걸쳐 조사한 결과 대표적인 독성 해파리인 노무라입깃해파리가 이어도 인근에서 대량으로 발견됐다. 특히 이어도 인근에서 발견된 독성 해파리는 지난해보다 3주나 빨리 발견된것이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독성 해파리로 인해 여름철 피서객 피해는 물론 남해 연안 양식장에도 매년 수백억 원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2100년께 한반도 남부지역이 벵골보리수와 같은 아열대 나무로 뒤덮일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연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하면 나뭇잎이 나오는 시기가 7일, 2도가 상승했을 때는 14일 정도 빨라진다. 국립산림과학원이 1996년과 2005년 한반도 개화시기를 비교한 결과 모란 산괴불나무 야광나무 정향나무 등 32종류 개화시기가 최대 36일 이상 빨라졌다.
온대북부지역에서 자라는 잣나무 소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는 감소하고, 온대남부지역에서 자라는 졸참나무 서어나무 개서어나무 등은 증가하고 있다. 또 왕대나무는 19세기까지만 해도 호남지역에서 주로 자랐지만 최근에는 서울에서도 잘 자란다. 대나무 생활환경이 100㎞ 가까이 북상했다는 얘기다.
연평균 기온이 14도를 넘으면 생육이 불가능한 사과 재배 가능지역도 점차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어 사과=대구라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오재호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는 식생대가 충청권을 기준으로 온대와 한대로 나뉘었는데, 100년이 지나면 식생대 기준이 평안남북도를 가르는 청천강 지역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식생 변화는 서울의 봄철 꽃놀이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는 4월 중순이나 월말이 돼야 열렸는데 2000년 이후에는 3월 말에 벚꽃놀이를 하는 사례가 잦아졌다. 기온 상승으로 열대성 수목병해충 발생 등도 잦아져 산림생태계 교란은 이미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나무인 소나무와 참나무가 심각한 병충해에 시달리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잣나무도 재선충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그동안 잠복하고 있던 광릉긴나무좀이 활성화하면서 참나무시듦병 발생도 잦아지고 있다. 재선충병은 특정 지역에서 시작해 점차 주변으로 넓혀가는 형태를 띠는 데 반해 참나무시듦병은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산림에 더욱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제주도 산림은 지구온난화 영향이 더욱 크다. 세계자연보존연맹이 절멸위기종으로 지정한 구상나무림이 고사하고 있는 것이다.
바다와 육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하늘에서도 식생 변화가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 왜가리와 백로, 황로, 물꿩 등 대표적인 여름 철새들은 아예 우리나라에 눌러 살고 있어 텃새화하고 있다. 가을이 되면 강남으로 떠난다는 제비도 요즘은 그대로 남아 있을 때가 많다. 겨울철이 따뜻해지고 있어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먼 거리를 날아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인도네이사아 동남아 등 아열대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녹색비둘기나 검은바람까마귀 등은 우리나라 제주도나 전남 홍도 등 남부지방에서 자주 발견되고 있다. 재두루미나 고니, 노랑부리 저어새 등 겨울 철새는 봄이 오기도 전에 우리나라를 떠나기도 한다. 겨울 철새가 우리나라에 머무는 기간이 상당히 짧아진 것이다. 대신 우리나라를 찾는 봄철 철새의 이동시기도 최고 한 달 이상 앞당겨졌다.
국립공원 철새연구센터에 따르면 남해안 주요 국립공원을 거쳐가는 봄 철새 중 14종이 최고 한 달 이상 빨리 우리나라를 찾았다. 이는 기후온난화가 조류의 이동시기를 앞당긴다는 기존 학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생태계 교란은 단지 동식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먹이사슬의 정점에 서 있는 인간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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