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13세부터 100세까지, 여자는 7세부터 63세까지 부모가 될 수 있다.
*missionary(선교사)가 의미하는 것; 이것은 성교를 나누는 체위중 여자가 아래, 남자가 위인 정체위를 뜻하는데,
2차 세계대전때까지는 미국인의 70%가 이'missionary'밖에 알지 못했다고 1948년 킨제이 보고서가 밝혔다.
*Multiple Orgasm.... 클레오파트라는 알렉산드리아의 한 사원에서 성적인 훈련을 받았다.많은 수의 남성들과의
실습으로 서호에게 미치는 쾌감을 연구했다고 전해진다. B.C48년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남동생인 남편을 독살하고 로마의 명장 시저를 유혹했고, B.C.42년 시저가 부루투스 일당에게 독살되었을 때는 최고 실력자 안토니우스를 유혹했다. B.C.31년 안토니우스가 실각한 뒤, 실력자 옥타비아누스를 사로잡기엔 그녀 자신도 너무 늙어
이미 39세였다. 그뒤 40세되던 해, 독사로 자신의 가슴을 물게 해서 죽었다. 클레오파트라는 당대 최고의 미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녀는 뚱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천부적인 화장술과 미용법으로 많은 남성들을 사로 잡을 수 있었다.
*노인네들의 성.....성에대한 모든 것을 학문적으로 정립한 영국의 섹스학자 하베록 엘리스는 자진해서 실험대에 오른 여성들과 섹스를 만끽했는데, 그의 전성시대는 70세였다. 피아노의 마술사 프란츠 리스트는 70세때 피아노를 배우러 온 여학생들과 정사를 가진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리스트의 마지막 애인은 그의 가정부였다.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70세때 미모의 27세 여인과 사랑에 빠졌으며, 83세까지 관계를 지속했다. '인간의 굴레'를 쓴 서머셋 모옴이 72세때 여비서와 불같은 사랑을 나누었던 사실이 그 여비서의 일기장에 서 발견되었다. 그의 성욕은 85세가 될때까지 왕성했다고 한다. 영국의 불가지론자 러셀은 80세에 네번째 여인과 결혼했다. 몰몬교의 최고 지도자 '브리감 영'은 72세에 27번째 아내를 맞이했다.
*사람은 사정하는데에 10-20초가 걸리고, 약 반숫가락 정도의 정액을 쏟는데, 그 안에는 100,000,000- 500,000,000의 정작 있다. 이에 반해서 돼지가 사정하는데는 약 10분이 걸리고 두컵 이상의 정액을 쏟으며 85,000,000,000,000이상의 정자가 있다.
*남자가 한번 사정을 하면 그때 소비되는 열량은 200미터를 전력질주 한것과 맞먹는다.
*사람의 정자는 여성의 질 속에서 3-5일동안 살수 있는 반면에, 박쥐의 정자는 6개월까지 살수 있다.
*감기는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잘 걸린다고 한다. 킨제이의 보고서에 따르면 자위행위와 몽정도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많다고 한다.
*미국 24개 주에서 남자의 성 불능(impotence)은 이혼사유가 된다.
*중세 가톨릭 교회에서는 남녀가 성행위를 할수있는 날을 엄격히 정해두었다. 우선 매주일과 수요일, 금요일에는 절대로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즉 1년에 5개월은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는 날이었다. 또 부활절이 되기 전 40일 동안과 크리스마스 전 40일, 임신한 뒤부터와 출산한 뒤 40일동안에도 성행위를 할 수 없었다. 성찬예식 전 3일과 결혼 뒤 3일동안에도 관계를 맺을 수없었다. 뿐만 아니라 한번 관계를 맺으면 30일동안 교회에 나갈 수 없었고, 나가기 위해서는 40일동안의 고행과 헌납이 있어야만 했다.
*일생동안 남자는 12명의 여자와, 여자는 2명의 남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통계가 있다.
*교황 레오 8세와 프랑스 대통령 프렉스 화로는 성행위중에 복상사(腹上死)했다.복상사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을때 일어날 확률이 4배나 높다.
*중국의 샨 린 공주는 30명의 남자들과 함께 잘수있는 커다란 침대를 만들었다.
*돈 쥬앙의 자서전에는 자신은 2065명의 여자와 관계를 맺었다고 말하고 있으나 실제로 상황을 적은 것은 200여명밖에 안 된다. 그는 자신의 정력을 지키기 위해서 매일 생마늘을 몇쪽씩 먹었다고 한다.
*1960년 경기도 파주군 용주골에는 인구 2000명에 1000명의 기지촌 여자들이 있었다. 또 1965년 서울의 종로 3가에는 10000명의 창녀들과 5000명의 콜걸들이 있었다. 1860년 파리에는 매춘부가 30000명이나 활보했고 비공식적으로는 120000명이었다 한다. 거리에는 매춘부와 거지들이 35000명정도가 있었으며 1839년 런던에는 7000명정도의 창녀들이 있었다고 조사되었다. 미첼렌의 조사에 따르면 80000명정도의 매춘부들이 잇었더고 하며, 1820년경 비엔나에는 400000명의 인구에 20000명 이상의 매춘부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남자 7명당 춘부가 1명인 셈이 된다.1830년 뉴욕에는 20000명 이상, 1852년 샌프란시스코에 3000명, 1869년 신시내티에는 200000명의 인구에 7000명, 필라델피아에는 인구 700000명에 12000명의 매춘부들이 있었다고 여러 통계자료들은 밝히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중에 일본은 전쟁에 나가 있는 군인들을 독려하기 위해 식민지인 한국의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는 '위안부'로 삼앗다. 이러한 정신대 강제 동원은 조선 총독부의 명령아래 군 병력과 경찰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는데,이때 끌려간 여인들은 돼지우리처럼 지저분한 곳에서 살면서 하루 수백명의 일본군을 상대해야만 했다. 1940-1945까지 끌려가 위안부 노릇을 했던 한국여성들의 수는 20000명이나 된다. 우리민족은 단일민족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일제 침략기와 그외 여러 외적의 침입때에 이미 다른 나라의 피가 많이 섞였 다. 그래서 한민족이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사람이 전쟁에 직면했을 땐 지극히 본능적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 죽느냐 사느냐하는 원초적인 상태에서의 심리적,육체적 피로나 불만족같은 본능적인 욕구들은 본능적으로 풀어줘야 한다고 하는데, 이런 것들때문에 실제로 전장(戰場)에서는 오입이라는 명목하에 정부가 위안부를 만든다. -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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