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돌아오고 있다. 명절이면 불거지는 ‘명절 스트레스’와 고부 갈등 문제. 결혼할 땐 시어머니가 ‘엄마와 딸처럼 지내자’시더니….
이때쯤이면 과연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주부들…. 여성조선 독자들은 과연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의 해법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할까?
▲ 대담참가자 : 유영숙(34세, 10세 아들·9세 딸을 둔 10년차 주부), 한은나(35세, 8세 딸을 둔 8년차 주부), 김호정(33세, 8세·6세 딸을 둔 10년차 주부), 곽미정(35세, 11세 아들·8세 딸을 둔 11년차 주부) |
친하게 지낸다는 것과 ‘딸처럼’지낸다는 것
여성조선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딸처럼 지낼 수 있을까요?
곽미정 고부간에 친하게 지내려면 우선 한집에 살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우리 형님이 결혼하자마자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거든요. 처음엔 두 분 사이가 굉장히 좋았는데, 함께 산 지 3년 만에 사이가 급격히 나빠졌어요. 시어머니는 시집살이를 시키는 분이 아닌데도 형님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봐요. 예를 들어 어른들은 아침 일찍 식사를 하시잖아요. 반면에 형님은 아주버님 출근시키고 느지막이 아침식사를 하고 싶어했죠. 결국 시어머니와 형님은 아침 점심을 따로 드시고 저녁에야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식사를 했대요. 서로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감정이 쌓였고 결국 갈등 끝에 분가를 했어요. 안 생기던 아기가 분가 직후에 생겼으니, 형님도 그 스트레스가 대단했나 봐요. 분가한 이후에는 두 분이 다시 얼마나 친하게 지내는지 몰라요. 안부전화도 거의 매일 하고요, 재미있게 지내세요.
유영숙 요즘 시어머니들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신 것 같아요. TV에 나오는, 자식들 때문에 희생하느라 허리가 휜 어머니를 찾아보기 힘들어졌어요. 며느리보다 더 세련되고 멋진 시어머니도 많고요. 그래서 전 시어머니를 ‘시어머니’로만 볼 것이 아니라 여자 대 여자로서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전 결혼하고 바로 남편이 외국에 공부하러 가야 할 입장이라 잠깐 시댁에서 살았어요. 저랑 시어머니, 시할머니가 함께 살게 되었죠. 그런데 제가 결혼하자마자 시어머니가 옳다구나 하고는 저한테 시할머니를 맡기고 아침 일찍 외출했다가 저녁에 시아버지 돌아오시기 직전에 들어오시는 거예요. 얄밉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철없게도 보였지만, 여자 대 여자로서는 이해할 것 같았어요. ‘시어머닌데 왜 저러실까’보다는 ‘시어머니도 여잔데’ 하면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성조선 딸처럼 지내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들이 결혼한 직후에 며느리에게 ‘너는 나한테 또 하나의 딸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시어머니도 있잖아요.
곽미정 딸 가진 시어머니라면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아들만 있는 시어머니나 가능한 얘기죠. 전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는데, 솔직히 나중에 며느리가 들어온다고 해서 친딸처럼 대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아무리 며느리가 여우처럼 살갑게 군다고 해도 어떻게 ‘너는 내 딸과 똑같다’고 하겠어요. 그건 이중인격이라고 생각해요.
한은나 저는 처음에 시어머니와 딸처럼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시어머니는 굉장히 세련된 분이에요. 영화도 동구권 영화나 레오카락스 같은 감독의 예술영화를 좋아하시죠. 신혼 때는 그런 시어머니와 평일 아침에 만나 함께 영화 보고 점심 먹고 영화 얘기하면서 재미있게 보냈어요. 평일에 시어머니와 둘만 만나면 굉장히 친하게 지냈죠. 그런데 주말에 남편, 시아버님과 함께 만나면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예를 들어 식당에서 전골 같은 걸 먹으면 제가 떠도 되는데 굳이 당신께서 뜨신다고 하세요. 그러고는 아버님 떠드리고 남편 것 떠주고 당신 것 뜨신 다음엔 국자를 딱 놓으시는 거예요. 그 순간 가슴에 비수가 꽂히죠. 지금이야 “어머님, 저는 왜 안 주세요?” 하지만 그때는 그런 말도 못했어요. 어머님은 악의 없이 무의식중에 그러신 거지만 그땐 그런 작은 일로도 무척 상처 받았어요.
친정엄마와 딸은 정말 친하기만 한가?
곽미정 사실 딸처럼 지낸다는 말도 좀 그래요. 솔직히 여자들은 친정엄마랑 더 많이 싸우지 않나요?
유영숙 성격이 맞지 않으면 엄청 많이 싸우잖아요. 사실 핏줄이라서 더 많이 싸우고 더 많이 상처 주는 사이죠. 그저 핏줄이니까 봐주고, 설령 지금은 화가 나서 안 보더라도 언젠가는 용서하고 볼 수 있는 안 보이는 끈이 있는 거죠. 하지만 남편은 헤어지면 그만이잖아요. 며느리들은 그런 것도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곽미정 전 아니에요. 나중에 만에 하나 신랑이랑 헤어져도 시어머니와는 만날 것 같아요. 살다 보면 남편이 죽도록 미울 때가 생기잖아요. 그런데 전 우리 어머님만 생각하면 괜히 미안해요. 저한테 너무 잘해주시거든요.
결혼 후 큰아이 학교 들어갈 때까지 주말이면 온 가족이 시댁에 갔는데 가 있는 내내 얼마나 편하게 해주셨는지 몰라요. 전 주말 내내 먹고 자고 설거지 정도밖에 안 하면서 푹 쉬고 올 수 있었죠. 제가 하려고 해도 진심으로 말리시거든요. 집으로 돌아갈 때면 바리바리 반찬까지 싸주셨죠. 한동안은 그런 게 너무 미안해서 자주 안 가려고 했는데 어머님이 오히려 섭섭해하시는 거예요. 평생 시누이 아이들을 돌보느라 고생하시더니 요즘엔 형님 댁에서 쌍둥이 돌보느라 고생하세요. 전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김호정 딸처럼 지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며느리처럼 지내요. 며느리로도 좋게 지낼 수 있는데 굳이 딸처럼 하려고 하진 않아요. 서로 지킬 것은 지키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저희 시어머님도 저한테 굉장히 잘해주세요. 본가가 전라도인데, 저도 내려가 있는 동안은 설거지 정도밖에 안 해요. 저는 그것을 시어머니가 제게 주방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하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 눈치를 봐서도 아니고 아들에게 직접 밥을 해주고 싶은 마음인 거죠. 아직까지 어머님 손맛을 따라갈 수도 없고요.
곽미정 “어머니 전 이 맛이 안 나요. 어쩜 이렇게 맛있어요?”해요. 그러면 정확히는 알려주지 않으시고 “이게 뭐 어렵다고 그러니?” 하시면서 속으로는 좋아하세요.
한은나 한번은 시부모님이 어느 날 우리 집에 오셔서 부대찌개를 끓였어요. 전 요리를 잘 못하는 편인데 그날따라 맛있게 되었더라고요. 생전 그런 말씀 안 하시던 시아버님도 “찌개 참 맛있다”고 칭찬을 하셨죠. 그러자 시어머니가 한마디 하시는 거예요. “얘, 네가 나보다 잘할 수 있는 건 부대찌개 하나구나?” 속으로는 서운했지만 “제가 어떻게 어머님을 따라가겠어요”했죠.
김호정 저도 살림을 10년 했으니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지만 시댁에서는 “집에서는 왜 이 맛이 안 나지?”하고 말해요. 그러면 어머님이 너무 좋아하세요. 시댁에서는 차려놓은 것을 나르기나 하지 요리에 간섭 안 하죠. 어머님이 “간 볼래?” 그러셔도 “딱 맞네요” “좀 싱겁네요” 이 정도 외엔 안 해요.
유영숙 시댁에서는 어느 정도 연기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고부간에 너무 가까운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김호정 시어머니랑 며느리 관계는 서로 어려운 점도 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곽미정 그래서 고부간에는 같이 사는 것도 사이를 좋지 않게 하지만, 자주 보는 것도 안 좋은 것 같아요. 친구 간에도 너무 가까우면 안 좋은 점도 보이고 그러잖아요. 부부가 결혼 전에 데이트할 땐 서로 예쁜 점만 보이지만 결혼하고 너무 잘 알면 싸우기도 하잖아요. 시댁식구도 그런 것 같아요. 좋은 것만 보려고 노력을 해야지, 너무 시시콜콜한 것까지 알게 되면 ‘왜 저러나’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생길 것 같아요.
김호정 처음엔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신다고 해서 가까이 지내도, 지나치면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만만하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곽미정 맞아요. 친정어머니가 직선적으로 “얘, 넌 왜 밥을 이렇게밖에 못하니?”하는 것과 시어머니가 “밥이 왜 이렇게 되냐? 우리 아들은 진밥 좋아하는데”하고 말씀하시는 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엄청나게 차이가 있잖아요. 저희 시어머니는 그런 경우에 당장 그 자리에서는 말씀하지 않으세요. 대신 다음에 만났을 때 “그런데, 그때 너희 집 쌀이 별로 안 좋은 것 같더라”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내가 시어머니가 되면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 성격이 직선적이어서 곧이곧대로 말할 것 같아요.
한은나 저희 시어머니는 아들만 둘인데 큰아들이 미국에 살아요. 형님은 교포라서 한국말도 잘 못하고 한국 풍습도 잘 모르죠.
명절이면 저는 임신 막달에도 새벽까지 전을 부치는데, 형님은 “(혀꼬부라진 발음으로)어머니~ 저는 들어가서 잘게요”하고 들어가 버려요. 어머님은 저한테 “쟤는 원래 일을 잘 못하잖니”하면서 저만 시키시더라고요. 제가 더 편하니까 그러시는 것 같지만 부아가 나기도 하죠.
곽미정 남편은 성격이 무척 까칠해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대요. 집안에 아무도 반찬 투정하는 사람이 없는데, 남편만 어렸을 때부터 “이건 너무 짜” “이건 너무 푹 익었어”하며 까다로웠대요. 어머님도 그걸 알고 계시니 저한테 항상 “저렇게 성질 나쁜 녀석이랑 아무 일 없이 살아주는 게 용하다”고 고마워하세요.
유영숙 며느리가 딸이 되느냐 친구가 되느냐, 아니면 원수가 되느냐에는 아들 역할이 굉장히 큰 것 같아요. 저희 시어머니는 남편을 어려워해서 오히려 저를 굉장히 친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남편이 마마보이면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하나의 경쟁상대로 봐서 친해지기 힘들 것 같아요.
결국 말보다 진심이 통한다
김호정 결국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너는 내 딸이다’라고 얘기하시든 안 하시든 그건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말씀 안 하셔도 정말 딸처럼 대해주시면, 며느리도 시어머니를 엄마처럼 대할 거예요.
한은나 진정성이 문제죠. 저희 시어머니는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에요. 선물도 백화점에서 파는 고급 물건 아니면 거들떠보시지도 않고, 빵도 동네 빵집 것은 드시지도 않으시거든요. 하지만 절 대할 땐 진심으로 대해주시는 걸 알아요. 이젠 그런 점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었죠. 허영심이 좀 있으시지만 가식적인 면은 전혀 없으시니까, 앞에서 잘 해주시고 뒤에서 눈 흘기는 일은 절대 없는 분이니까 좋아하게 되었어요. 시어머니는 별일 아닌 경우에도 저에게 편지나 카드를 잘 써주시거든요. 글도 굉장히 잘 쓰시는데, 그런 점은 좋은 점이라고 생각하고 저도 배우려고 노력해요.
김호정 진심이 읽히면 감동을 해서 통하죠.
곽미정 우리 애들 세대에도 통할까요? 아닐 것 같은데….
김호정 맞아요. 우리 세대만 해도 시어머님과 관계가 좋지 않다 하더라도 어른에 대한 예의는 갖추려고 최대한 노력했잖아요. 아이들에게도 “사람의 도리를 모르면 공부 잘해도 다 필요 없다”고 가르치지만 애들 세대에는 또 달라질 것 같아요.
유영숙 점점 개인주의의 나쁜 면이 그냥 받아들여지는 것도 문제예요. 저희 형님 중 한 분은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 분인데, 다 커서 미국에 갔으니 한국 풍습은 다 알 것 아니에요. 그런데 결혼하고 시댁에 와 있는데 아침에 큰 형님이 음식하고 있을 때 머리에 수건을 감고 왔다 갔다 하더니, 식탁 다 차리고 어른들이 앉아서 ‘식사하라’고 하니까 방에서 아주버님만 쏙 나와서 “저흰 밥 안 먹어요” 그러는 거예요. 결국 두 분은 결혼한 지 석 달 만에 이혼하셨죠.
곽미정 저도 십 몇 년만 있으면 시어머니가 될 텐데, 그때 정말 존경받는 시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해요. 우리 어머님 같은 시어머니가 되어야 할 텐데….
유영숙 저도 아들이 있잖아요. 저는 며느리가 저한테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며느리한테 잘하든 못하든 할 것 같아요. 먼저 정을 주고 기대가 컸다가 실망이 크면 어떻게 해요.
어쨌든 친구도 그렇듯 며느리 시어머니 관계도 여자 대 여자로 궁합이 맞아야 친해지고 딸처럼 지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주부 배심원 판결ㅣ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딸처럼 지낼 수 있을까요?
곽미정 주부
“남편과 헤어져도 시어머니와는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시어머니는 저를 정말 딸처럼 아껴주세요. 딸처럼 아껴주시고 항상 저한테 고마워하시니 엄마처럼 대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돼요. 여자로서 시어머니의 일생이 너무나 고맙고 애틋합니다.
한은나 주부
“딸같이 대해주던 시어머니도 큰일 겪고 나니 멀어지더라고요”
사업하시던 시아버님이 부도를 맞은 후 시어머니와 정말 좋았던 관계는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어요. 돈 문제가 개입하니까 갑자기 악화되는 게 고부관계더라고요. 오랜 노력 끝에 시어머니와 친밀한 관계를 회복했지만, 딸처럼 지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되었어요.
유영숙 주부
“궁합이 맞으면 딸처럼도 지낼 수 있죠”
친구도 그렇듯 며느리 시어머니 관계도 여자 대 여자로 보면 이해할 수 있어요. 서로 맞으면 친구처럼 딸처럼도 지낼 수 있지만, 맞지 않으면 극단적인 경우 서로 얼굴 안 보고도 살 수 있죠. 상대적이라고 생각해요.
김호정 주부
“딸처럼이라기보다는 아주 친한 며느리와 시어머니로 지내야죠”
친구도 너무 친해지면 서로 예의를 차리지 않아서 상처받고 싸우곤 하잖아요. 시어머니와도 너무 가까워지면 그렇게 되어서 오히려 안 좋을 것 같아요. 시어머니께 예의도 지켜야 하고, 자존심 세워드리는 연기도 좀 해야 하고, 고부관계는 그렇게 해야 잘 유지될 것 같습니다.
여성조선
글_박혜전 기자 사진_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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