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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History

중국, 한국전 개입(1950) 외 10월25일 속의 역사- 동영상

by 현상아 2007. 10. 25.
▶ 중국, 한국전 개입(1950)

1950년 우리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해 북진을 계속하던 오늘 중국군 한 명이 생포됨으로써 그동안 소문으로 떠돌던 중국의 한국전 개입이 사실로 확인됐다.

포로를 신문한 결과 1차로 중국군 2만 여명이 전선에 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우리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유역까지 진격하자 인해전술을 동반한 중국군의 개입이 본격화됐다.

그 해 12월 유엔총회는 전쟁의 확대를 막기 위해 중국과 정전협상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이를 거부하고 북한군과 함께 대규모 공세를 시작했다.

한때 85만 명까지 달했던 중국군의 대규모 개입으로 전세는 역전되고 다음 해 1월 4일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내주게 됐다.

병력과 장비를 재정비한 우리 국군과 유엔군은 3월 서울을 되찾으나 이후 7월까지 소모전이 계속됐다.

중국군의 개입으로 전쟁이 38선을 중심으로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미국과 소련은 7월 10일부터 2년여에 걸쳐 휴전협정을 시작했다.

▶ 북, 先핵포기 공식거부. 미국에 불가침조약 제의(2002)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002년 오늘 담화에서 한·미·일 3국의 선 핵개발 포기 요구에 대해 거부입장을 밝히고 미국에 북·미 간의 불가침조약 체결을 제의했다.

담화에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북·미간의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면 핵개발 문제를 해소할 용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의 가중되는 핵압살 위협에 대처해 북한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핵무기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고 강변했다.

이 날 담화는 8일전 한·미 양국 정부가 북한이 비밀 핵개발 프로그램을 시인했다는 발표를 한 이후 처음 나온 북한의 공식 반응이었다.

▶ 중국 UN 가입, 타이완 축출(1971)

1971년 오늘 제26차 유엔 총회에서 중국의 유엔 가입과 타이완의 UN 축출을 골자로 하는 결의안이 알바니아 대표에 의해 제기됐다.

이 결의안은 총회 표결에서 찬성 76, 반대 35로 가결됐다.

이로써 중국은 국제연합에 가입하면서 국제적 공인을 받게 됐으나 타이완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수모를 겪게 됐다.

▶ 한강 유람선 운항 개시(1986)

1986년 오늘 오전 9시 한강 유람선 무궁화호가 첫손님 3백 여 명을 태우고 여의도 선착장에서 잠실 선착장까지 1시간 30분에 걸쳐 운항됐다.

한강종합개발사업이 완료됨에 따라 내·외국 관광객들에게 한강과 서울의 모습을 널리 알리고 휴식공간을 제공할 목적으로 도입된 한강유람선은 그 후 4군데 선착장으로 확대돼 서울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 미국, 그레나다 침공(1983)

1983년 오늘 미 해병대 병력 2천 여 명은 카리브해 작은 섬나라 그레나다를 기습 공격했다.

미국의 침공이 있기 직전 그레나다에서는 소련과 쿠바의 지원을 받는 군부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나 보리셔프츠 총리와 세 명의 각료가 처형됐다.

미국은 그레나다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기습공격을 단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 등 동맹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을 비난했고 언론보도까지도 제한돼 세계 언론사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미국은 군사목표를 달성한 뒤 그레나다에 1985년 6월까지 미군을 주둔 시켰다.

[1945] 대만, 일본으로부터 독립

[1950] 춘원 이광수 사망

[1961] 한국경제인협회 발족

[2001]헌재, 국회의원 선거구 헌법 불합치 결정
10월 25일 역사 속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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