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으로 가득차고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의 여름밤은 더위와 일상에 찌든 심신을 더욱 지치게 한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들리는 물소리, 바람소리,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등등의 자연에서 나는 소리는 지친 우리를 위로한다. 그 중에서도 들이나 산에서, 때로는 도시에서도 들리는 벌레소리는 가을이 문턱에 와 있음을 알리며 우리를 자연 속 깊숙이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자연 속에서 생물이 내는 소리는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어 무의미한 불규칙적인 소리와 구별된다. 또 소리를 내는 많은 곤충들은 소리를 상호 통신에 적극 이용한다. 대표적인 곤충으로 매미와 메뚜기 무리를 꼽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소리를 내는 무리는 메뚜기다. 가을을 맞아 메뚜기목을 중심으로 우는 곤충(鳴蟲)의 세계에 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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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소리일까?
벌레소리는 직접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소리를 활자로 바꿔, 즉 청각의 세계를 시각의 세계로 전환해 이렇게 지면에 나타내는 것은 무척이나 무모하고 부정확한 일이다. 차라리 악보로 옮긴다면 그럴듯한 시도가 될 법한데, 음악에 조예가 깊지 못한 관계로 이를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실제로 벌레소리를 악보화한 낭만적인 옛날 사람들도 있었다.
먼저 자연 속에서 들리는 많은 소리들 중에 무엇이 벌레소리인지 감을 잡아야 한다. 무의미한 소리는 불규칙적이지만, 보통 생물이 내는 소리는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 그 중에 벌레소리가 물론 가장 많으며 개구리 소리, 새소리 등이 섞여 들리기도 한다. 개구리 소리는 볼륨이 높고 주로 밤에 논이나 물가에서 들리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다. 새 중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답지 않고 벌레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는 종류도 있다.
<아래그림:왕귀뚜라미 암컷>
봄에 숲을 한 참 살피던 중, 덤불과 나무 위에서 요상한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무슨 벌레소리와 같은데, 이 시기에 나무 위에서 우는 곤충이 도대체 무엇일까?’ 몇 년이나 그 정체를 알지 못하고 의문만 품고 있다가 나중에 우리나라의 새소리 CD가 나온 다음에야 그것이 ‘숲새’라고 하는 새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현암사 새소리 CD 참조).
본론으로 들어가 과연 어떤 곤충들이 언제 어떻게 우는 것인지 알아보자. 많은 곤충들이 소리를 내지만 다른 목적을 가진 행동의 부산물로 내는 소리가 아니라, 상호 통신에 소리를 적극 이용하는 대표적인 곤충은 매미와 메뚜기 무리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매미목 매미과 약 15종이 제각각 독특한 울음소리를 낸다. 하지만 가장 많은 소리를 내는 무리는 역시 메뚜기다. 한국의 메뚜기 약 140종 가운데 울지 않는 40종을 제외한 약 100종이 가각 다른 소리를 낸다. 여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귀뚜라미를 비롯해 방울벌레, 여치, 베짱이, 매부리, 쌕새기, 땅강아지, 삽사리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매미 울음소리에 비해 메뚜기들의 울음소리는 매우 단순한 음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편이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다.
왜 울까?
곤충이 소리를 내는 목적은 주로 이성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흔히 벌레소리를 사랑의 세레나데라고 말한다. 반딧불이가 불빛으로 유인하는 것은 시각, 나방이 페로몬으로 유인하는 것을 후각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하면, 당연히 소리 내는 곤충은 청각을 이용해 짝을 유인하는 것이다. 소리를 이용한 통신의 장점은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상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까다로운 암컷들은 소리의 질만으로도 수컷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어서 잘 우는 수컷에게는 많은 암컷들이 모이고 그렇지 못한 수컷은 찬밥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잘 우는 수컷이 있는 반면, 울지 않고 근처를 배회하다가 그 수컷에게로 가는 암컷을 가로채 짝짓기를 하는 종류도 있다는 것이다. 생물 진화의 입장에서 참으로 많은 전략이 구상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많은 부분이 탐구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목적은 방어용으로 내는 소리다. 어리여치 같은 종류의 배마디 옆에 두 줄로 된 마찰판이 있는데, 이것을 뒷다리 안쪽으로 비비면 위협적인 소리가 난다. 날개를 펼치고 뒷다리를 들어 올리며 소리를 내면 강한 방어 의지를 보이는 동작이다. 매미를 손으로 잡으면 비명 소리를 지르고, 하늘소 종류를 손으로 잡으면 머리를 끄덕 끄덕거리며 가슴 쪽을 비벼 ‘끽끽’ 소리를 내는데, 이것과 비슷한 유형의 위협음인 셈이다.
이처럼 곤충의 소리는 송신자와 수신자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데, 이것을 중간에 흉내 내거나 가로채어 이용하는 천적도 있다. 호주에 사는 쏙독새는 야간에 마치 땅강아지 같은 소리로 울어서 같은 종인 줄 알고 다가온 땅강아지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또 열대의 많은 박쥐들이 나뭇잎 위에서 우는 여치류를 소리를 듣고 날아와 잡아먹으며, 고양이도 철써기와 같은 큰 여치류 소리를 듣고 찾아가 잡아먹는 일이 있다. 기생파리류는 특정한 주파수의 귀뚜라미 소리를 정확히 듣고 그 위치를 찾아가 자신의 알을 낳고(기생 시키고) 가기도 한다.
수컷만이 울까?
보통 곤충의 울음소리는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는 수컷들이 내는 소리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메뚜기무리의 암컷들도 조금씩 울 수 있다. 특히 실베짱이류 암컷의 뚜렷한 울음소리가 알려진 바 있다. 예전에 큰실베짱이 애벌레를 채집해 사육한 적이 있었는데, 허물을 벗고 날개를 갖춘 뒤 보니 암컷이었다. 그러던 얼마 후 조용한 밤에 사육통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기르고 있는 것은 큰실베짱이 암컷 한 마리뿐이었는데, 울음소리가 나니 신기했다. 나중에서야 실베짱이 무리에서는 암컷도 약하게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았다.
<사진설명:큰실베짱이 수컷>
북한에 사는 민충이도 암수가 서로 주고받는 장단음을 낸다고 하며 이외에 외국종에서는 암컷 울음소리와 울음기관에 대한 관련 자료를 더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암컷의 소리는 수컷만큼 뚜렷하거나 적극적이지도 않은데다가, 홀로 떨어져 있는 경우, 또는 멀리서 수컷의 소리에 대응하여 짧은 소리를 내는 정도에 그친다. 아직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애메뚜기류의 뒷다리 안쪽 마찰기관도 수컷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암컷들에게 약간씩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는 것이 수컷만의 전유물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사진설명:큰실베짱이 암컷>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진동이 파장으로 번지며 전달되는데, 이 진동을 일으키는 원리는 종류마다 다르다. 사람이나 새는 목에 있는 성대의 근육을 조절해 몸속을 드나드는 공기의 흐름을 변화시킴으로써 소리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입 모양과 혀의 위치도 소리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메뚜기들의 울음소리는 거의 대부분 마찰작용(stridulation)에 의한다. 빨래판을 무엇인가로 긁으면 소리가 나듯 빨래판처럼 우툴두툴한 마찰기구가 메뚜기의 몸 어딘가에 존재한다. 메뚜기무리(Orthoptera)를 크게 메뚜기(메뚜기아목: Caelifera)와 여치(여치아목: Ensifera) 두 무리로 나누는 것도 이 마찰기구의 차이 때문이다.
메뚜기아목은 보통 앞날개와 뒷다리를 서로 비벼서 소리를 낸다. 이를 다시 자세히 살펴보면 빨래판 같은 구조가 뒷다리 안쪽에 있는 것과 앞날개에 있는 것으로 구별할 수 있다. 낮에 흔히 우는 삽사리가 뒷다리 안쪽에 소리를 일으키는 마찰돌기를 가진 대표적인 종류다. 한편 뒷다리에 마찰돌기가 없고 대신 앞날개 중실의 삽입맥에 거친 마찰판이 있는 것도 있는데, 풀무치가 대표적이다. 앞날개와 뒷다리를 비비는 동작은 비슷하지만, 마찰기구가 어느 쪽에 위치하느냐에 차이가 있다.
<사진설명:뚱보 주름 메뚜기 애벌레>
한편, 여치아목의 여치와 귀뚜라미는 앞날개 두 장을 살짝 쳐들어 서로 비비는데, 여치는 왼쪽 앞날개 아래쪽에 있는 마찰판에 오른쪽 앞날개 가장자리를 긁고, 귀뚜라미는 오른쪽 앞날개 아래쪽에 있는 마찰판에 왼쪽 앞날개 가장자리를 긁어 소리를 낸다. 이들은 날개를 겹치는 방식이 서로 달라 구별된다. 또 이들 날개의 한쪽에는 보통 투명하고 얇은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경판’이라고 부른다. 비벼서 일으킨 소리를 더욱 증폭할 수 있도록 날개 시맥의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난 부분이다. 우리가 풀피리를 불 때 얇은 이파리를 빠르게 진동시키면 소리가 더 커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사진설명:긴날개여치 암컷>
여치아목에서 양쪽 앞날개를 비비는 방식은 바퀴의 짝짓기 방식으로부터 진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바퀴의 짝짓기 과정을 보면 수컷이 앞날개를 위로 들어 올리면 뒷가슴샘이 노출되고 여기에서 암컷을 유인하는 분비물이 나오는데, 암컷이 이것을 핥는 과정에서 짝짓기가 이루어진다. 이 때 바퀴 수컷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들어 올린 날개를 떠는 동작을 취하는데, 이런 짝짓기 자세가 여치, 귀뚜라미류에서도 나타난다. 귀뚜라미류 역시 울음소리를 듣고 다가온 암컷에게 날개를 들어 올려 뒷가슴샘의 분비액을 암컷이 핥는 동안 정자를 건네며, 여치 무리는 그런 구조는 없지만 대신 정자주머니를 크게 발달시켜 암컷에게 먹을거리로 제공한다.
그 외에도 다른 울음 방식이 있는데, 방아깨비 수컷은 날 때 뒷날개와 앞날개를 부딪쳐 ‘따다다다닥’ 소리를 내며, 뚱보주름메뚜기는 배 첫 번째 마디 고막 옆에 주름진 판 모양의 크라우스 기관(Krauss's organ)이 있는데, 이 기관이 빨래판 역할을 하고 가운뎃다리의 무릎 근처에 있는 까끌까끌한 부분을 서로 비벼 소리를 낸다. 매미는 텅 비어 있는 수컷의 뱃속이 공명실 역할을 하며 여기에 붙어 있는 근육이 빠르게 수축이완을 반복함으로써 뱃속의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를 낸다. 이 원리는 깡통 캔을 손으로 누르면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과 같다.
<사진설명:방아깨비>
한편 특별한 기관이 없어도 소리를 내는 종류도 있는데, 이것을 ‘떠는 소리(vibration)’라고 한다. 낙엽 층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메뚜기는 낙엽을 붙잡고 있는 다리를 흔들어 사람 귀에는 잘 들리지 않지만 분명한 신호음을 낸다고 한다. 또한 날개가 퇴화한 비늘귀뚜라미는 날개 대신 자신의 배를 바닥에 두드려 타악기 같은 소리를 낸다. 이런 행동은 흰개미나 다듬이벌레들이 특별한 기관이 없지만 머리나 배를 벽이나 바닥에 두드려 소리를 내는 방식과 비슷하다.
쌕새기 울음소리
알락방울벌레 울음소리
좀방울벌레 울음소리
한가지 소리만 낼까?
소리가 평소와 달리 좀 이상하다고 여겨질 때 그 상황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옆에 짝짓기 할 암컷이 있거나 또는 경쟁 상대인 수컷이 있을 때가 많다. 평소에 내는 소리를 유인음(calling song), 옆에 배우자가 있을 때는 구애음(courtship song), 또 다른 수컷이 있을 경우에는 경쟁음(aggressive song)이라고 할 수 있다. 유인음은 자기 공간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원거리에 있는 암컷의 주목을 끌기 위한 음으로 종의 가장 보편타당한 대표음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애음과 경쟁음은 단편적이기 때문에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나 사육하며 가까이에서 살피면 구별할 수 있다. 바로 옆에 암컷이 있어서 짝짓기 과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들리는 구애음은 약간 부드러우면서 달래는 듯한 특색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경쟁음은 수컷들끼리 맞닿아 싸우는 소리로 평소보다 날카롭고 크기 때문에 구별된다.
한편 울음소리는 온도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는데, 같은 종의 울음소리가 낮에 들을 때와 밤에 들을 때 다르게 느껴진다. 이는 변온동물인 곤충의 특성상 낮은 온도에서는 조금 천천히 울고 높은 온도에서는 빠르게 우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며 또한 낮과 밤은 습도의 차이 때문에 마찰음에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리가 울 때와 여러 마리가 울 때에는 다른 소리 패턴을 보이기도 하는데, 보통 여러 마리가 울면 자신의 소리가 파묻히지 않고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서로 간에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번갈아 우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맹꽁이 두 마리가 서로 가까이 울면서 ‘맹’ 과 ‘꽁’을 교대로 반복해 자신의 소리를 돋보이게 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또 매우 가까운 종간에 소리까지 유사할 경우 만약 같은 지역에 있다면 다른 지역에서보다 소리를 더욱 다르게 내려는 경향이 있다. 따로 들으면 얼핏 소리가 비슷하게 들리는 중베짱이와 긴날개중베짱이가 있는데, 이들이 매우 가까운 지역에서 함께 울고 있는 것을 들어보니 쉽게 구별이 가능했다.
<먹이를 먹고 있는 중베짱이(왼쪽),긴날개중베짱이의 짝짓기(오른쪽)>
소리는 내면 당연히 들을 수도 있어야 한다. 한번은 담벼락 모퉁이에서 수컷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데, 숨어 있어서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녹음기를 꺼내 그 소리를 그대로 녹음하였다가 수컷이 숨어 있을 만한 입구에 대고 다시 틀어 준 일이 있다. 그랬더니 울음소리의 주인공 수컷 귀뚜라미가 재빠르게 튀어나와 어디서 경쟁자의 소리가 나는지 두리번거리며 찾는 것을 보았다. 이처럼 같은 종의 소리에 더욱 민감하다.
<알락귀뚜라미 암컷>
소리를 듣는 기관은 사람의 귀처럼 소리를 모아주는 귓바퀴와 그 안의 얇은 고막, 청신경 등으로 이루어진다. 여치와 귀뚜라미 무리는 양쪽 앞다리 무릎에 고막이 있는데, 보통 무릎 안쪽과 바깥쪽 두 군데에 고막이 있어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또 앞가슴등판 양옆으로 크게 뚫린 숨구멍이 보이는 종류도 있는데, 이것이 단지 숨구멍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청각 기능을 보조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알락귀뚜라미 수컷>
고막 모양은 종류를 구별할 때 중요한 특징이 되는데, 보통 둥글게 열려 드러난 형태와 가늘게 찢어진 형태, 귓바퀴 같은 것이 발달해 얇은 고막을 보호하는 형태로 나눌 수 있다. 메뚜기 무리의 귀는 첫 번째 배마디 양 옆에 있다. 날개가 없는 종류는 귀가 선명하게 노출되어 있어 잘 보이지만, 날개가 긴 종류는 날개가 고막을 일부 가리고 있어서 날개를 들거나 벌려야 고막이 보인다. 얇은 고막 안쪽으로는 청신경이 연결되어 있다.
<참어리 삽사리>
그런데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곤충이 있다. 소리를 듣는 것은 같은 종의 소리를 수신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뿐만 아니라, 천적의 소리를 듣고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생존에 도움이 되는 능력이다. 메뚜기 중에서도 소리를 내지 않지만 뚜렷한 고막이 있는 경우가 많고, 밤나방 무리도 소리를 내지 않지만 야간 활동 시에 자신을 노리는 박쥐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박쥐의 초음파를 들을 수 있는 고막이 있다.
<철써기 수컷>
어디에서 울까?
벌레소리가 어디에서 들리느냐를 파악하면 대충 무슨 종류가 우는지 알 수 있다. 종류에 따라 선호하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인데, 크게 식물에 붙어 생활하는 종류와 바닥을 돌아다니는 종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가장 높이, 나무 위에서 우는 종류는 매미가 있다. 중베짱이류 역시 나무를 타는 습성이 있어 나무 위에서 잘 운다. 나무보다 낮은 덤불속이나 가지, 풀밭에서 우는 것은 여치, 철써기, 베짱이, 풀종다리 종류가 대표적이다. 긴꼬리는 가는 풀에 매달려 우는 습성이 있는데, 풀잎 두 장이 겹친 곳에서 머리를 내밀고 울거나 칡잎 같은 넓은 잎에 구멍을 뚫어 머리에 내밀고 운다. 이런 행동은 날개에서 만들어진 소리가 잎을 진동시켜 마이크를 갖다 댄 것처럼 더 크게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방울벌레는 주로 늘어진 풀 밑에 숨어서 운다.
<긴꼬리 수컷>
소리가 땅 바닥에서 들리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보통 돌 밑에 숨어서 울기 때문이다. 흔히 귀뚜라미류 수컷은 돌 밑에 작은 굴을 파고 들어가 우는 습성이 있으며 땅강아지는 아예 깊은 땅굴 집 속에서 운다. 굴의 모양을 잘 다듬으면 소리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울림통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멀리 있는 암컷도 유인할 수 있다. 밤에 전등을 켜고 숲을 걷다보면 많은 귀뚜라미를 만날 수 있는데, 암컷이 대부분이다. 수컷은 대개 자신의 영토에서 멀리 떠나지 않고 울며, 이 소리를 들은 암컷들이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방황하는 것이다.
땅강아지 울음소리
언제 울까?
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벌레 울음소리는 보통 장마가 끝난 뒤 여름과 가을 사이에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어른벌레로 겨울을 나는 꼬마여치베짱이와 좀매부리 같은 종류는 봄이면 벌써 울기 시작하고, 애벌레로 겨울을 나는 일부 귀뚜라미들도 봄에 날개돋이를 하고 늦봄부터 울음소리를 낸다.
하루 중에는 낮에 우는 종류와 밤에 우는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삽사리, 극동애메뚜기 등 메뚜기 무리는 거의 대부분 낮에 운다. 더듬이가 짧고 시각이 발달한 주행성으로 진화한 그룹이다. 밤에 우는 것은 거의 대부분 더듬이가 길고 야행성인 베짱이, 귀뚜라미 종류들이다. 그런데 그 시간대를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한낮이나 한밤은 또 아니다. 낮에 우는 종류는 해가 떠서 서서히 온도가 올라갈 무렵인 8~10시 사이에 가장 잘 우는 편이고, 밤에 우는 것들도 해가 진 뒤 으스름해질 때부터 깊은 밤으로 접어드는 사이, 즉 8~10시 무렵에 많이 운다. 해 뜰 무렵이나 해질 무렵을 선호하는 종류도 있는데, 환경의 변화가 울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듯하다. 사람들도 한낮이나 한밤보다는 아침 해가 뜰 무렵 새로운 기분이 샘솟거나 또는 석양이 뉘엿뉘엿 질 무렵에 어떤 낭만적인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과 비슷하다.
이외에 굳이 시간대와 상관없이 아무 때나 우는 종류도 있다. 어른벌레가 되자마자 울기 시작하는 것들은 무척 조심성이 많아 작은 인기척에도 울음소리를 멈추는 반면, 전성기가 지난 녀석들은 안전 수칙을 무시하고 사람의 접근에도 별로 놀라지 않은 채 마지막까지 울다가 죽어가는 삶에 대한 집착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곤충이 우는 이유에 대해 곤충시인 파브르는 삶의 환희를 표현하는 것이라 말했는지도 모른다.
소리의 범위
벌레소리는 알락방울벌레의 작고 낮은 소리에서부터 매우 시끄러운 말매미나 철써기 소리까지 다양하다. 보통 생김새에 맞게 크기가 작은 곤충은 작은 소리를 내고 크기가 큰 곤충은 큰 소리를 낸다. 그런데 이 중에는 사람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사람의 가청 주파수범위는 대략 20~20,000Hz여서 그 영역을 벗어난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진동수가 낮은 20Hz 미만의 초저주파는 코끼리와 같은 동물의 통신수단으로 쓰이고, 진동수가 높은 2만Hz 이상의 초음파는 박쥐 같은 동물의 통신수단으로 쓰인다. 메뚜기 중에서도 이런 가청주파수 바깥의 초음파를 내는 종류가 있어서 이런 종류를 탐색하기 위해서 박쥐의 초음파를 감지하는 기계를 이용하기도 한다. 한편 같은 소리도 잘 듣는 사람이 있고 잘 못 듣는 사람도 있다. 보통 노화로 인해 가청주파수대가 떨어지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 높은 주파수대의 울음소리는 잘 듣지 못할 수도 있다.
소리의 진화
겉으로 보아 매우 비슷한 종이지만 울음소리가 다르기 때문에 구별되는 것들도 있다. 우리나라에 사는 알락귀뚜라미와 야산알락귀뚜라미는 매우 가까운 종이어서 형태적으로는 구별이 어렵지만, 울음소리를 들으면 오히려 쉽게 구별된다. 이러 종류에서는 형태적 차이보다 행동의 차이가 종을 구별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행동 차이는 종의 짝짓기 과정에서 중요한 시발인자(始發因子)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형태적인 진화보다 먼저 변화할 수 있는 부분이다. 외국에서는 여러 종류의 우는 곤충들 울음소리를 토대로 진화연구를 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시도된 바가 없다. 이영준 박사의 『한국의 매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매미 중에서 매우 현란한 울음소리를 자랑하는 애매미 울음소리가 일본으로 건너가면 레퍼토리가 거의 똑같다가 마지막 끝나는 종결부분에서 마무리하는 소절부분의 음 처리가 달라진다고 한다. 이것은 곤충의 울음소리에도 사람의 사투리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증거인 셈이다.
<야산 알락귀뚜라미 수컷>
곤충 소리를 들으려면
이제 곤충 소리를 들으러 직접 야외로 나가 보자. 먼저 조용히 침묵한다. 작은 소리를 듣는 일은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고양이처럼 가능한 살금살금 걷는다. 우리가 무심코 바스락거린 소리조차 벌레들에게는 아주 크게 들릴 수 있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감지해 조심스레 귀 기울이며 다가간다.
사실 소리가 나는 곳을 정확히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소리가 한 곳에서 퍼지면 주변 환경에 의해 반사와 굴절이 일어나 전혀 다른 쪽에서 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귀에 손바닥을 갖다 대어 집음 효과를 높이고 양쪽을 교대로 번갈아 들어보아 방향을 찾는다. 만약 아주 가까이 갔을 때 울음소리가 딱 멈추면 가만히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벌레가 낌새를 채지 못하고 원래 상태로 진정하면 다시 울기 시작한다. 우는 곤충을 찾았으면 사육하거나 소리를 녹음해 보자. 곤충과의 직접적인 경험만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으며 벌레소리에 대한 정취도 한껏 가까이 느낄 수 있다.
▶곤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이트
한국의 곤충자원:농업과학기술원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멀티미디어관에서 각종 곤충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제 5편 생명에서 일부 우는 곤충의 모습과 소리를 동영상으로 불 수 있다.
INSECT SOUND WORLD: 우리나라와 같은 종이 많은 일본 사이트. 울음소리를 비교해 들을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생물이 내는 소리는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어 무의미한 불규칙적인 소리와 구별된다. 또 소리를 내는 많은 곤충들은 소리를 상호 통신에 적극 이용한다. 대표적인 곤충으로 매미와 메뚜기 무리를 꼽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소리를 내는 무리는 메뚜기다. 가을을 맞아 메뚜기목을 중심으로 우는 곤충(鳴蟲)의 세계에 관해 알아보자.
곤충소리 들을 수 있는곳은 맨 아래 사이트로 들어가셔서....
누구의 소리일까?
벌레소리는 직접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소리를 활자로 바꿔, 즉 청각의 세계를 시각의 세계로 전환해 이렇게 지면에 나타내는 것은 무척이나 무모하고 부정확한 일이다. 차라리 악보로 옮긴다면 그럴듯한 시도가 될 법한데, 음악에 조예가 깊지 못한 관계로 이를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실제로 벌레소리를 악보화한 낭만적인 옛날 사람들도 있었다.
먼저 자연 속에서 들리는 많은 소리들 중에 무엇이 벌레소리인지 감을 잡아야 한다. 무의미한 소리는 불규칙적이지만, 보통 생물이 내는 소리는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 그 중에 벌레소리가 물론 가장 많으며 개구리 소리, 새소리 등이 섞여 들리기도 한다. 개구리 소리는 볼륨이 높고 주로 밤에 논이나 물가에서 들리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다. 새 중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답지 않고 벌레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는 종류도 있다.
<아래그림:왕귀뚜라미 암컷>
봄에 숲을 한 참 살피던 중, 덤불과 나무 위에서 요상한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무슨 벌레소리와 같은데, 이 시기에 나무 위에서 우는 곤충이 도대체 무엇일까?’ 몇 년이나 그 정체를 알지 못하고 의문만 품고 있다가 나중에 우리나라의 새소리 CD가 나온 다음에야 그것이 ‘숲새’라고 하는 새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현암사 새소리 CD 참조).
본론으로 들어가 과연 어떤 곤충들이 언제 어떻게 우는 것인지 알아보자. 많은 곤충들이 소리를 내지만 다른 목적을 가진 행동의 부산물로 내는 소리가 아니라, 상호 통신에 소리를 적극 이용하는 대표적인 곤충은 매미와 메뚜기 무리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매미목 매미과 약 15종이 제각각 독특한 울음소리를 낸다. 하지만 가장 많은 소리를 내는 무리는 역시 메뚜기다. 한국의 메뚜기 약 140종 가운데 울지 않는 40종을 제외한 약 100종이 가각 다른 소리를 낸다. 여기에는 우리가 잘 아는 귀뚜라미를 비롯해 방울벌레, 여치, 베짱이, 매부리, 쌕새기, 땅강아지, 삽사리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매미 울음소리에 비해 메뚜기들의 울음소리는 매우 단순한 음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편이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다.
왜 울까?
곤충이 소리를 내는 목적은 주로 이성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흔히 벌레소리를 사랑의 세레나데라고 말한다. 반딧불이가 불빛으로 유인하는 것은 시각, 나방이 페로몬으로 유인하는 것을 후각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하면, 당연히 소리 내는 곤충은 청각을 이용해 짝을 유인하는 것이다. 소리를 이용한 통신의 장점은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상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까다로운 암컷들은 소리의 질만으로도 수컷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어서 잘 우는 수컷에게는 많은 암컷들이 모이고 그렇지 못한 수컷은 찬밥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잘 우는 수컷이 있는 반면, 울지 않고 근처를 배회하다가 그 수컷에게로 가는 암컷을 가로채 짝짓기를 하는 종류도 있다는 것이다. 생물 진화의 입장에서 참으로 많은 전략이 구상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많은 부분이 탐구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목적은 방어용으로 내는 소리다. 어리여치 같은 종류의 배마디 옆에 두 줄로 된 마찰판이 있는데, 이것을 뒷다리 안쪽으로 비비면 위협적인 소리가 난다. 날개를 펼치고 뒷다리를 들어 올리며 소리를 내면 강한 방어 의지를 보이는 동작이다. 매미를 손으로 잡으면 비명 소리를 지르고, 하늘소 종류를 손으로 잡으면 머리를 끄덕 끄덕거리며 가슴 쪽을 비벼 ‘끽끽’ 소리를 내는데, 이것과 비슷한 유형의 위협음인 셈이다.
이처럼 곤충의 소리는 송신자와 수신자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데, 이것을 중간에 흉내 내거나 가로채어 이용하는 천적도 있다. 호주에 사는 쏙독새는 야간에 마치 땅강아지 같은 소리로 울어서 같은 종인 줄 알고 다가온 땅강아지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또 열대의 많은 박쥐들이 나뭇잎 위에서 우는 여치류를 소리를 듣고 날아와 잡아먹으며, 고양이도 철써기와 같은 큰 여치류 소리를 듣고 찾아가 잡아먹는 일이 있다. 기생파리류는 특정한 주파수의 귀뚜라미 소리를 정확히 듣고 그 위치를 찾아가 자신의 알을 낳고(기생 시키고) 가기도 한다.
수컷만이 울까?
보통 곤충의 울음소리는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는 수컷들이 내는 소리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메뚜기무리의 암컷들도 조금씩 울 수 있다. 특히 실베짱이류 암컷의 뚜렷한 울음소리가 알려진 바 있다. 예전에 큰실베짱이 애벌레를 채집해 사육한 적이 있었는데, 허물을 벗고 날개를 갖춘 뒤 보니 암컷이었다. 그러던 얼마 후 조용한 밤에 사육통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기르고 있는 것은 큰실베짱이 암컷 한 마리뿐이었는데, 울음소리가 나니 신기했다. 나중에서야 실베짱이 무리에서는 암컷도 약하게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았다.
<사진설명:큰실베짱이 수컷>
북한에 사는 민충이도 암수가 서로 주고받는 장단음을 낸다고 하며 이외에 외국종에서는 암컷 울음소리와 울음기관에 대한 관련 자료를 더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암컷의 소리는 수컷만큼 뚜렷하거나 적극적이지도 않은데다가, 홀로 떨어져 있는 경우, 또는 멀리서 수컷의 소리에 대응하여 짧은 소리를 내는 정도에 그친다. 아직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애메뚜기류의 뒷다리 안쪽 마찰기관도 수컷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암컷들에게 약간씩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는 것이 수컷만의 전유물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사진설명:큰실베짱이 암컷>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진동이 파장으로 번지며 전달되는데, 이 진동을 일으키는 원리는 종류마다 다르다. 사람이나 새는 목에 있는 성대의 근육을 조절해 몸속을 드나드는 공기의 흐름을 변화시킴으로써 소리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입 모양과 혀의 위치도 소리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메뚜기들의 울음소리는 거의 대부분 마찰작용(stridulation)에 의한다. 빨래판을 무엇인가로 긁으면 소리가 나듯 빨래판처럼 우툴두툴한 마찰기구가 메뚜기의 몸 어딘가에 존재한다. 메뚜기무리(Orthoptera)를 크게 메뚜기(메뚜기아목: Caelifera)와 여치(여치아목: Ensifera) 두 무리로 나누는 것도 이 마찰기구의 차이 때문이다.
메뚜기아목은 보통 앞날개와 뒷다리를 서로 비벼서 소리를 낸다. 이를 다시 자세히 살펴보면 빨래판 같은 구조가 뒷다리 안쪽에 있는 것과 앞날개에 있는 것으로 구별할 수 있다. 낮에 흔히 우는 삽사리가 뒷다리 안쪽에 소리를 일으키는 마찰돌기를 가진 대표적인 종류다. 한편 뒷다리에 마찰돌기가 없고 대신 앞날개 중실의 삽입맥에 거친 마찰판이 있는 것도 있는데, 풀무치가 대표적이다. 앞날개와 뒷다리를 비비는 동작은 비슷하지만, 마찰기구가 어느 쪽에 위치하느냐에 차이가 있다.
<사진설명:뚱보 주름 메뚜기 애벌레>
한편, 여치아목의 여치와 귀뚜라미는 앞날개 두 장을 살짝 쳐들어 서로 비비는데, 여치는 왼쪽 앞날개 아래쪽에 있는 마찰판에 오른쪽 앞날개 가장자리를 긁고, 귀뚜라미는 오른쪽 앞날개 아래쪽에 있는 마찰판에 왼쪽 앞날개 가장자리를 긁어 소리를 낸다. 이들은 날개를 겹치는 방식이 서로 달라 구별된다. 또 이들 날개의 한쪽에는 보통 투명하고 얇은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경판’이라고 부른다. 비벼서 일으킨 소리를 더욱 증폭할 수 있도록 날개 시맥의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난 부분이다. 우리가 풀피리를 불 때 얇은 이파리를 빠르게 진동시키면 소리가 더 커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사진설명:긴날개여치 암컷>
여치아목에서 양쪽 앞날개를 비비는 방식은 바퀴의 짝짓기 방식으로부터 진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바퀴의 짝짓기 과정을 보면 수컷이 앞날개를 위로 들어 올리면 뒷가슴샘이 노출되고 여기에서 암컷을 유인하는 분비물이 나오는데, 암컷이 이것을 핥는 과정에서 짝짓기가 이루어진다. 이 때 바퀴 수컷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들어 올린 날개를 떠는 동작을 취하는데, 이런 짝짓기 자세가 여치, 귀뚜라미류에서도 나타난다. 귀뚜라미류 역시 울음소리를 듣고 다가온 암컷에게 날개를 들어 올려 뒷가슴샘의 분비액을 암컷이 핥는 동안 정자를 건네며, 여치 무리는 그런 구조는 없지만 대신 정자주머니를 크게 발달시켜 암컷에게 먹을거리로 제공한다.
그 외에도 다른 울음 방식이 있는데, 방아깨비 수컷은 날 때 뒷날개와 앞날개를 부딪쳐 ‘따다다다닥’ 소리를 내며, 뚱보주름메뚜기는 배 첫 번째 마디 고막 옆에 주름진 판 모양의 크라우스 기관(Krauss's organ)이 있는데, 이 기관이 빨래판 역할을 하고 가운뎃다리의 무릎 근처에 있는 까끌까끌한 부분을 서로 비벼 소리를 낸다. 매미는 텅 비어 있는 수컷의 뱃속이 공명실 역할을 하며 여기에 붙어 있는 근육이 빠르게 수축이완을 반복함으로써 뱃속의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를 낸다. 이 원리는 깡통 캔을 손으로 누르면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과 같다.
<사진설명:방아깨비>
한편 특별한 기관이 없어도 소리를 내는 종류도 있는데, 이것을 ‘떠는 소리(vibration)’라고 한다. 낙엽 층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메뚜기는 낙엽을 붙잡고 있는 다리를 흔들어 사람 귀에는 잘 들리지 않지만 분명한 신호음을 낸다고 한다. 또한 날개가 퇴화한 비늘귀뚜라미는 날개 대신 자신의 배를 바닥에 두드려 타악기 같은 소리를 낸다. 이런 행동은 흰개미나 다듬이벌레들이 특별한 기관이 없지만 머리나 배를 벽이나 바닥에 두드려 소리를 내는 방식과 비슷하다.
쌕새기 울음소리
알락방울벌레 울음소리
좀방울벌레 울음소리
한가지 소리만 낼까?
소리가 평소와 달리 좀 이상하다고 여겨질 때 그 상황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옆에 짝짓기 할 암컷이 있거나 또는 경쟁 상대인 수컷이 있을 때가 많다. 평소에 내는 소리를 유인음(calling song), 옆에 배우자가 있을 때는 구애음(courtship song), 또 다른 수컷이 있을 경우에는 경쟁음(aggressive song)이라고 할 수 있다. 유인음은 자기 공간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원거리에 있는 암컷의 주목을 끌기 위한 음으로 종의 가장 보편타당한 대표음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애음과 경쟁음은 단편적이기 때문에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나 사육하며 가까이에서 살피면 구별할 수 있다. 바로 옆에 암컷이 있어서 짝짓기 과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들리는 구애음은 약간 부드러우면서 달래는 듯한 특색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경쟁음은 수컷들끼리 맞닿아 싸우는 소리로 평소보다 날카롭고 크기 때문에 구별된다.
한편 울음소리는 온도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는데, 같은 종의 울음소리가 낮에 들을 때와 밤에 들을 때 다르게 느껴진다. 이는 변온동물인 곤충의 특성상 낮은 온도에서는 조금 천천히 울고 높은 온도에서는 빠르게 우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며 또한 낮과 밤은 습도의 차이 때문에 마찰음에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리가 울 때와 여러 마리가 울 때에는 다른 소리 패턴을 보이기도 하는데, 보통 여러 마리가 울면 자신의 소리가 파묻히지 않고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서로 간에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번갈아 우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맹꽁이 두 마리가 서로 가까이 울면서 ‘맹’ 과 ‘꽁’을 교대로 반복해 자신의 소리를 돋보이게 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또 매우 가까운 종간에 소리까지 유사할 경우 만약 같은 지역에 있다면 다른 지역에서보다 소리를 더욱 다르게 내려는 경향이 있다. 따로 들으면 얼핏 소리가 비슷하게 들리는 중베짱이와 긴날개중베짱이가 있는데, 이들이 매우 가까운 지역에서 함께 울고 있는 것을 들어보니 쉽게 구별이 가능했다.
<먹이를 먹고 있는 중베짱이(왼쪽),긴날개중베짱이의 짝짓기(오른쪽)>
소리는 내면 당연히 들을 수도 있어야 한다. 한번은 담벼락 모퉁이에서 수컷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데, 숨어 있어서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녹음기를 꺼내 그 소리를 그대로 녹음하였다가 수컷이 숨어 있을 만한 입구에 대고 다시 틀어 준 일이 있다. 그랬더니 울음소리의 주인공 수컷 귀뚜라미가 재빠르게 튀어나와 어디서 경쟁자의 소리가 나는지 두리번거리며 찾는 것을 보았다. 이처럼 같은 종의 소리에 더욱 민감하다.
<알락귀뚜라미 암컷>
소리를 듣는 기관은 사람의 귀처럼 소리를 모아주는 귓바퀴와 그 안의 얇은 고막, 청신경 등으로 이루어진다. 여치와 귀뚜라미 무리는 양쪽 앞다리 무릎에 고막이 있는데, 보통 무릎 안쪽과 바깥쪽 두 군데에 고막이 있어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또 앞가슴등판 양옆으로 크게 뚫린 숨구멍이 보이는 종류도 있는데, 이것이 단지 숨구멍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청각 기능을 보조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알락귀뚜라미 수컷>
고막 모양은 종류를 구별할 때 중요한 특징이 되는데, 보통 둥글게 열려 드러난 형태와 가늘게 찢어진 형태, 귓바퀴 같은 것이 발달해 얇은 고막을 보호하는 형태로 나눌 수 있다. 메뚜기 무리의 귀는 첫 번째 배마디 양 옆에 있다. 날개가 없는 종류는 귀가 선명하게 노출되어 있어 잘 보이지만, 날개가 긴 종류는 날개가 고막을 일부 가리고 있어서 날개를 들거나 벌려야 고막이 보인다. 얇은 고막 안쪽으로는 청신경이 연결되어 있다.
<참어리 삽사리>
그런데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곤충이 있다. 소리를 듣는 것은 같은 종의 소리를 수신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뿐만 아니라, 천적의 소리를 듣고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생존에 도움이 되는 능력이다. 메뚜기 중에서도 소리를 내지 않지만 뚜렷한 고막이 있는 경우가 많고, 밤나방 무리도 소리를 내지 않지만 야간 활동 시에 자신을 노리는 박쥐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박쥐의 초음파를 들을 수 있는 고막이 있다.
<철써기 수컷>
어디에서 울까?
벌레소리가 어디에서 들리느냐를 파악하면 대충 무슨 종류가 우는지 알 수 있다. 종류에 따라 선호하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인데, 크게 식물에 붙어 생활하는 종류와 바닥을 돌아다니는 종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가장 높이, 나무 위에서 우는 종류는 매미가 있다. 중베짱이류 역시 나무를 타는 습성이 있어 나무 위에서 잘 운다. 나무보다 낮은 덤불속이나 가지, 풀밭에서 우는 것은 여치, 철써기, 베짱이, 풀종다리 종류가 대표적이다. 긴꼬리는 가는 풀에 매달려 우는 습성이 있는데, 풀잎 두 장이 겹친 곳에서 머리를 내밀고 울거나 칡잎 같은 넓은 잎에 구멍을 뚫어 머리에 내밀고 운다. 이런 행동은 날개에서 만들어진 소리가 잎을 진동시켜 마이크를 갖다 댄 것처럼 더 크게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방울벌레는 주로 늘어진 풀 밑에 숨어서 운다.
<긴꼬리 수컷>
소리가 땅 바닥에서 들리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보통 돌 밑에 숨어서 울기 때문이다. 흔히 귀뚜라미류 수컷은 돌 밑에 작은 굴을 파고 들어가 우는 습성이 있으며 땅강아지는 아예 깊은 땅굴 집 속에서 운다. 굴의 모양을 잘 다듬으면 소리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울림통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멀리 있는 암컷도 유인할 수 있다. 밤에 전등을 켜고 숲을 걷다보면 많은 귀뚜라미를 만날 수 있는데, 암컷이 대부분이다. 수컷은 대개 자신의 영토에서 멀리 떠나지 않고 울며, 이 소리를 들은 암컷들이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방황하는 것이다.
땅강아지 울음소리
언제 울까?
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벌레 울음소리는 보통 장마가 끝난 뒤 여름과 가을 사이에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어른벌레로 겨울을 나는 꼬마여치베짱이와 좀매부리 같은 종류는 봄이면 벌써 울기 시작하고, 애벌레로 겨울을 나는 일부 귀뚜라미들도 봄에 날개돋이를 하고 늦봄부터 울음소리를 낸다.
하루 중에는 낮에 우는 종류와 밤에 우는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삽사리, 극동애메뚜기 등 메뚜기 무리는 거의 대부분 낮에 운다. 더듬이가 짧고 시각이 발달한 주행성으로 진화한 그룹이다. 밤에 우는 것은 거의 대부분 더듬이가 길고 야행성인 베짱이, 귀뚜라미 종류들이다. 그런데 그 시간대를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한낮이나 한밤은 또 아니다. 낮에 우는 종류는 해가 떠서 서서히 온도가 올라갈 무렵인 8~10시 사이에 가장 잘 우는 편이고, 밤에 우는 것들도 해가 진 뒤 으스름해질 때부터 깊은 밤으로 접어드는 사이, 즉 8~10시 무렵에 많이 운다. 해 뜰 무렵이나 해질 무렵을 선호하는 종류도 있는데, 환경의 변화가 울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듯하다. 사람들도 한낮이나 한밤보다는 아침 해가 뜰 무렵 새로운 기분이 샘솟거나 또는 석양이 뉘엿뉘엿 질 무렵에 어떤 낭만적인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과 비슷하다.
이외에 굳이 시간대와 상관없이 아무 때나 우는 종류도 있다. 어른벌레가 되자마자 울기 시작하는 것들은 무척 조심성이 많아 작은 인기척에도 울음소리를 멈추는 반면, 전성기가 지난 녀석들은 안전 수칙을 무시하고 사람의 접근에도 별로 놀라지 않은 채 마지막까지 울다가 죽어가는 삶에 대한 집착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곤충이 우는 이유에 대해 곤충시인 파브르는 삶의 환희를 표현하는 것이라 말했는지도 모른다.
소리의 범위
벌레소리는 알락방울벌레의 작고 낮은 소리에서부터 매우 시끄러운 말매미나 철써기 소리까지 다양하다. 보통 생김새에 맞게 크기가 작은 곤충은 작은 소리를 내고 크기가 큰 곤충은 큰 소리를 낸다. 그런데 이 중에는 사람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사람의 가청 주파수범위는 대략 20~20,000Hz여서 그 영역을 벗어난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진동수가 낮은 20Hz 미만의 초저주파는 코끼리와 같은 동물의 통신수단으로 쓰이고, 진동수가 높은 2만Hz 이상의 초음파는 박쥐 같은 동물의 통신수단으로 쓰인다. 메뚜기 중에서도 이런 가청주파수 바깥의 초음파를 내는 종류가 있어서 이런 종류를 탐색하기 위해서 박쥐의 초음파를 감지하는 기계를 이용하기도 한다. 한편 같은 소리도 잘 듣는 사람이 있고 잘 못 듣는 사람도 있다. 보통 노화로 인해 가청주파수대가 떨어지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 높은 주파수대의 울음소리는 잘 듣지 못할 수도 있다.
소리의 진화
겉으로 보아 매우 비슷한 종이지만 울음소리가 다르기 때문에 구별되는 것들도 있다. 우리나라에 사는 알락귀뚜라미와 야산알락귀뚜라미는 매우 가까운 종이어서 형태적으로는 구별이 어렵지만, 울음소리를 들으면 오히려 쉽게 구별된다. 이러 종류에서는 형태적 차이보다 행동의 차이가 종을 구별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행동 차이는 종의 짝짓기 과정에서 중요한 시발인자(始發因子)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형태적인 진화보다 먼저 변화할 수 있는 부분이다. 외국에서는 여러 종류의 우는 곤충들 울음소리를 토대로 진화연구를 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시도된 바가 없다. 이영준 박사의 『한국의 매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매미 중에서 매우 현란한 울음소리를 자랑하는 애매미 울음소리가 일본으로 건너가면 레퍼토리가 거의 똑같다가 마지막 끝나는 종결부분에서 마무리하는 소절부분의 음 처리가 달라진다고 한다. 이것은 곤충의 울음소리에도 사람의 사투리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증거인 셈이다.
<야산 알락귀뚜라미 수컷>
곤충 소리를 들으려면
이제 곤충 소리를 들으러 직접 야외로 나가 보자. 먼저 조용히 침묵한다. 작은 소리를 듣는 일은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고양이처럼 가능한 살금살금 걷는다. 우리가 무심코 바스락거린 소리조차 벌레들에게는 아주 크게 들릴 수 있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감지해 조심스레 귀 기울이며 다가간다.
사실 소리가 나는 곳을 정확히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소리가 한 곳에서 퍼지면 주변 환경에 의해 반사와 굴절이 일어나 전혀 다른 쪽에서 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귀에 손바닥을 갖다 대어 집음 효과를 높이고 양쪽을 교대로 번갈아 들어보아 방향을 찾는다. 만약 아주 가까이 갔을 때 울음소리가 딱 멈추면 가만히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벌레가 낌새를 채지 못하고 원래 상태로 진정하면 다시 울기 시작한다. 우는 곤충을 찾았으면 사육하거나 소리를 녹음해 보자. 곤충과의 직접적인 경험만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으며 벌레소리에 대한 정취도 한껏 가까이 느낄 수 있다.
▶곤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이트
한국의 곤충자원:농업과학기술원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멀티미디어관에서 각종 곤충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제 5편 생명에서 일부 우는 곤충의 모습과 소리를 동영상으로 불 수 있다.
INSECT SOUND WORLD: 우리나라와 같은 종이 많은 일본 사이트. 울음소리를 비교해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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