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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다큐멘터리 및

선택의 인과응보?

by 현상아 2008. 1. 31.

동부전선 한 독일의 기술자가 자신의 가족을 스스로 총을 쏴 죽인 모습이다. 어떻게 가족을 죽일 수 있는가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아내로 보이는 여자의 자위에 누워 있는 두 아이는 하나는 이제 채 열 살이나 되었을까 싶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도 더 어리다. 하나같이 귀엽게만 보이는 저런 아이들을 두고 아버지가 되어 어찌 무참히 총으로 죽일 수 있었는지...

 

 



그러나 당시 독일의 동프로이센으로 진격해 들어온 소련군은 그동안 자신들의 영토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자까지 쳐서 철저히 갚아주고 있었다. 강간과 살인과 약탈과... 다섯 살 넘은 여성은 70넘은 노파까지 하나같이 소련군에 의해 강간당하고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의 부인도 그때 강간당한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끝내 자살했다던가? 어떤 사람들은 문에 못박혀 천천히 고통 속에 죽어가야 했고, 어떤 사람들은 나무에 목이 매달려야 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무참히 총격을 가했고, 심지어 장난삼아 탱크로 깔아 죽이는 일들마저 있었다. 소련군 당국의 묵인 아래 복수심과 전장의 광기에 휩싸인 소련군에 의해 수십 만의 여성들이 강간당하고 그보다 더 많은 민간인들이 처참하게 죽어갔다. 살아남은 여성들도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으니, 겨우 살아남은 여성들 또한 원치 않는 임신으로 많은 사생아들을 낳았으니 그렇게 태어난 이들 또한 당시의 처참함을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소련땅까지 끌려가 강제노역에 집단강간에 시달리다 하나둘 죽어갔고. 과연 그러한 상황에 저 아버지는 자신의 자식을, 자신의 아내를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지켜줄 수 없는 무기력한 가장으로서 그는 과연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렇게까지 해야겠느냐면서도 한 편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아마도 나 역시 다를 바 없는 남자인 때문일 것이다.

원래 동프로이센은 튜튼 기사단이 개척한 영지로서 독일제국을 통일한 프로이센 왕가가 대대로 대관식을 올리던 쾨니히스베르크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쾨니히스베르크는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칸트가 살았던 도시다. 그런데 유서깊은 독일의 영토였던 이 동프로이센에 1945년이 지나고 나면 400만이 넘었던 독일인들은 고작 13만 정도만이 겨우 남게 된다. 나머지는 죽거나 아니면 소련군을 피해 도망치거나 아니면 새로운 점령군에 의해 쫓겨났다. 쾨니히시베르크 역시 지금은 카리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북해에 면한 러시아의 유일한 영토로 남아 있다. 유서깊은 독일의 도시가 이제는 독일인이 오히려 소수인 완전한 러시아의 도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비극은 동프로이센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베를린을 점령했을 때도 소련군은 똑같이 강간과 약탈과 학살을 자행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미 전쟁이 끝난 상황이라 장차 미국을 위시한 서방진영과의 대결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독일인의 반감을 자극해봐야 좋을 것이 없으니 그래도 베를린에서는 소련 정부의 지휘 아래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봐야 역시 10만 명이 넘는 독일 여성들이 강간당하고 또 다시 수십 만의 독일인들이 학살당했지만.

물론 소련군만이 독일인을 증오한 것은 아니었다. 수 년 간 독일군의 점령 아래 많은 것을 파괴당하고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폴란드인의 복수심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자국 영토 안에 대대로 살고 있던 독일인은 물론 새로이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된 동프로이센에 거주하고 있던 독일인들도 가차없이 추방했다. 독일을 침공하기 전 독일에 병합되었던 체코의 주테덴란트에서도 수만 명의 독일인이 학살당하며 다시 수백 만의 독일인들이 독일의 영토로 추방되었다. 덴마크에서도, 네덜란드에서도 전란을 피해 몰려든 심지어 어린아이들에 대해서까지 현지인들은 증오심을 감추지 않았고 추위와 굶주림속에 또다시 수십만이 죽어가야 했다.

다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그 어린 아이들이, 그 힘없는 노인들이, 그 가엾은 소녀며 여인들이 무슨 죄가 있어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해야 했느냐고. 실제 독일인 가운데서도 2차세계대전의 만행을 반성하면서도 끝내는 모든 책임을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에게 돌리는 사람들을 적잖이 보게 된다. 심지어 제 3제국의 요직을 거쳤던 군장성 가운데서도 자신의 책임마저도 모조리 히틀러와 그 추종자들의 악덕으로 돌리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독일인의 전후처리에 대해 감탄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면 그 히틀러는 누가 그 자리에 올렸는데?

그러면 또 그러는 사람이 있다. 모든 독일인이 히틀러를 지지한 것은 아니라고. 그러나 민주주의란 원래 다수의 선택에 따라 그 선택에 동의하지 않는 더 많은 소수까지도 함께 책임을 지는 제도다. 군대에서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연대책임이라고. 국가라는 게 누구를 지지한 사람 따로, 다른 누구를 지지한 사람 따로인 게 아니다.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있기에, 하나의 정부의 아래 있기에, 결국은 어떠한 결과를 선택하든 그 결과에 모두가 같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아니라면 그러한 선택을 한 다수를 몰아내고 결과를 뒤집을 밖에. 아니면 아예 따로 분리해 독립을 하던가. 그렇지 않은 한에는 결국 그 나라에 함께 살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도 책임이 돌아간다.

민주주의 아래에서 기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기권한다고 자신의 책임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다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권이란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그에 승복하겠다는 선언이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그에 반대하지 않으며 기꺼이 승복하고 따르겠다는 잠정적인 지지의 선언이다. 왜?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나머지는 그 결과를 따라야 하는데, 기권자들은 그 결과에 대한 어떠한 의사표시도 하지 않았으므로.

당시 독일인들에게는 여러가지 선택이 있었다. 첫번째는 히틀러같은 또라이를 권력의 자리에 올리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히틀러가 미친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미친 전쟁을 일으키고서도 더 미친 짓을 벌이지 않도록 스스로 견제하고 궁극적으로는 권력의 자리에서 내몰았어야 했다. 실제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히틀러에 반대해서 지하운동을 벌이고 심지어는 히틀러를 암살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그들은 독일인으로서 독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에 죽을 것을 각오하고서 히틀러와 그 추종자, 나아가 미쳐 돌아가는 독일을 상대로 싸웠었다. 물론 그 대부분은 목숨을 잃거나 수용소에 보내저 강제노역을 당해야 했다. 그런 이들이 있는 반면 나머지는 설사 히틀러를 반대했다 하더라도 침묵하거나 혹은 동조했다. 유대인을 밀고하고, 유대인에 테러를 가하고, 전장에 나간 이들은 그들이 나중에 당하게 될 살인과 강간과 약탈을 적의 민간인을 상대로 자행했다. 그 결과가 전쟁 막바지 더 이상 그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사라졌을 때 당하게 된 그 끔찍한 비극들이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러나 아이들에게도 죄가 있다. 바로 당시 히틀러와 그 추종자, 그들을 지지하여 권력의 자리에 올린 이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었다는 죄였다. 그들이 살던 시대에 태어나 그 비극적인 시대에 그것을 어찌 할 힘이 없어 막지 못했다고 하는 죄였다. 아이들의 죄가 아니라 그런 선택을 하고 그런 선택을 막지 못한 어른들의 죄였다. 그 어른들의 죄를 단지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른들이 치러야 할 죄의 댓가를 죄없는 아이들까지 치러야 했던 것이다.

역사란, 역사의 그 엄정한 법칙은 이처럼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결코 피해가지 않는다. 채 말도 배우지 못한 아이라도, 갓 태어난 어린아이라도, 아직 태어나지 못한 테아에 불과하다 해도, 아무 죄도 없는 그 아이들에게까지도 책임이 돌아간다. 일은 어른들이 벌렸어도 연좌의 책임은 결국 아이들에게까지 돌아가 함께 나누어 지게 된다. 나누어 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치의 무서움이다. 그것이 역사의 무서움이다. 그것이 내가 지금 행사하는 작은 권리의 무서움이다.

가끔 자신이 투표하는 후보자의 공약조차 살피지 않고 표를 던지는 사람들을 본다. 공약이 뭔지도 모르고,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도 모르고, 그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살피지 않은 채 무작정 표를 던지고 보는 사람들을 본다. 심지어 공약을 알아도, 그래서 그 공약에는 반대해도 그래도 사람이 좋으니 투표한다는 그런 사람마저 있다. 그 한표가 자신만이 아닌 이 사회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리라는 무거운 책임감 없이 그저 충동에 맡긴 채 값어치 없이 표를 말 그대로 던져버리는 사람들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장 루돌프 헤스 - 회스가 더 정확하려나? - 의 회고록을 보면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은 유대인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독일인 병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유대인 수용소라면 나치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친위대가 주로 배치되던 곳이다. 과연 그 독일병사는 친위대에 자원하면서 자신의 아내가 유대인이기에 죽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외치는 히틀러와 나치를 추종하여 친위대에 자원하면서 그 증오가 자신의 아내를 죽일 것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을까?

아마 당시 독일인 전부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심지어 사회주의에 대항해 히틀러를 앞잡이로 내세우려 했던 독일의 기득권들 역시도 히틀러가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지, 그로 인해 독일이 장차 어떻게 되어 갈지, 전혀 진지하게 깊이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충동에 못 이겨, 그저 눈 앞의 증오에 떠밀려, 자신을 비롯 모든 독일인을 나락으로 밀어넣을 한 표를 절대 주어서는 안 되는 괴물에게 주어 그를 권력의 자리에 올렸을 것이다. 그 표의 무게를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물론 지금도 그들은 그 표의 무게를 제대로 아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지금도 말한다. 히틀러가 아니었다면. 히틀러와 나치가 아니었다면. 히틀러와 나치가 그런 짓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을 선택한 것이 자신들이며,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지지하거나 최소한 방조한 것이 자신들이었던 것을 잊고 있는 소치다. 과연 우리는 어떠할까? 직선제를 쟁취한 지 벌써 20년, 우리들은 우리가 행사하는 그 작은 한 표의 무게를, 그것이 가져올 결과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문득 드는 의문이다.











http://manadeva.tistory.com 좋은현상으로...


참고로 소련군이 점차 동프로이센으로 다가오면서 끔찍한 비극이 예견되자 일선의 지휘관이나 실무자들은 히틀러에게 동프로이센의 민간인들을 소개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소련이 유서깊은 독일의 영토인 동프로이센으로 직격해 올 일이 없을 것이라며 그것을 거부했다. 그들이 선택한 히틀러가 그들을 구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과연 당시 히틀러가 그 끝간 데 없는 망상과 근거없는 자존심을 버리고 동프로이센의 독일인들을 소개했어도 그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평성 잊을 수 없는 치욕과 고통을 당해야 했을까? 자신이 선택이 자신을 죽이게 된 그 앞에서 독일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자신이 일으킨 전쟁으로 죽어가는 독일인들을 보며 그런 비참한 처지가 되기는 싫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그 이기심을 보며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도대체 그들은 히틀러에게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꿈? 희망? 영광? 인간이 어리석다는 건 헛된 것을 보고도 헛되다 여길 줄 모른다는 것일 게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나.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는 그 무엇도 아닌 바로 그러한 인간 자신에 대한 회의인 것이다

출처 :  야후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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