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모즈 출생. 나부와 소녀들을 풍만하고 매력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화가이다. 1854년 도기공방에 첨화직공으로 들어가 일하면서, 밤에는 데생을 공부하였다. 몇년 후, 공방의 일자리를 잃자 화가가 될 것을 결심, C.글레르의 화실로 들어갔다.
퐁텐블로 숲에서 만난 G.쿠르베, 또는 F.들라투르아의 영향을 받았다. 글레르의 화실에서 알게 된 C.모네,A.시슬레,F.J.마질과, 그들을 통해 알게 된 C.피사로,P.세잔 등과 함께 <카페 게르부아의 모임>에 참가하였고, E.마네와 모네의 영향하에 점차 인상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모네 등과 같이 화가를 세운 파리 근교의 센강 주변, 특히 아르장퇴이에서의 작품은 74년,76년의 인상파전에 출품되었다. 1876년 무렵은 그의 독자적 화풍이 형성되던 시기였고, 76년의 제 2 회 인상파전에는 15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77년의 제 3회전에는《볕을 쬐는 나부》등을 출품, 그의 인상파시대를 대표하는 작품군을 발표했다. 그는 동료화가들과는 달리 인물상에 집착했으며, 옥외나 실내의 광선이 인물에 비치는 효과를 추구하였다. 그는 샤르팡티에가의 후원을 받았기 때문에,《샤르팡티에 부인과 그 자식들》등 매혹적인 초상, 실내상을 많이 그리게 되었다.
81년 무렵 그는 그 자신이 말하는<벽>과 맞부딪쳤다. 구도,형태의 견고성과 명확성 및 질감을 찾는 모색이 대략 10년간이나 이어졌다. 새로운 탐구를 위하여 81년에 알제리와 이탈리아를 여행한 그는 S.V.라파엘로와 폼페이의 벽화에서 큰 영향을 받고, 엷게 칠한 옻칠의 색면,구도성을 《대수욕》에서 시험하였다. 후기에 이른 그의 특징적인 주제인 나부도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90년 무렵부터 엷게 옻칠한 색채를 중층시키는 수법인 이른바<무지개빛의 시기>가 시작되었고, 인상주의와 고전적 구조라든지 질감 표현의 조화가 그만의 독특한 수법으로 완성되었다.《잠자는 욕녀,1897,라인하르트 컬렉션》등 많은 걸작도 이 시기에 속한다. 1903년 남프랑스의 카뉘쉬르메르로 이주한 이후의 노년에는 빨강,주홍색 등의 강도와 휘도를 한층 늘려, 욕녀,어린이,풍경 등을 그렸으며, 그 같은 대상은 세속적인 매력을 유지하면서 상징적,시적인 세계에 도달하였다. 조각,리소그래프류도 이 시기에 가서야 취급하였다.《파리스의 심판》등 몇 개의 대작은 있으나, 손의 신경통 때문에 유채류는 소품이 많다. 그는 1881년 40세 때 알리안과 결혼,장남 피에르(배우),차남 장(영화감독),삼남 클로드를 두었다. 1900년에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도뇌르를 받았다. 그는 1919년 12월 카뉴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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