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결혼을 했거나 성경험이 많을수록 자궁 질환도 많다고 생각한다. 처녀가 산부인과에 들락거리는 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자궁경부암이나 자궁근종, 질염 등과 같은 자궁질환은 결혼하지 않은 미혼여성에게도 많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말하는 '처녀도 산부인과에 가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취재를 위해 서울소재 대학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11명에게 ▲성경험이 없는 30세 미혼여성 ▲성경험이 있는 30세 미혼여성 ▲3년 전 결혼해 아이가 있는 30세 기혼여성 중에서 누구에게 자궁질환이 가장 많을 것인지를 물었다. 통념에 따라 '기혼여성→성경험 있는 미혼여성→성경험 없는 미혼여성' 순으로 자궁질환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렇게 응답한 의사는 1명에 불과했다. 11명 중 7명은 "두 명의 미혼여성은 비슷하고, 기혼여성이 가장 적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나머지 3명은 "뭐라고 말하기 힘들다"고 응답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의사들은 성경험 없는 미혼여성은 자궁질환을 생리통으로 생각하고 진통제로 참는 경우가 많고, 성경험 있는 미혼여성은 성병에 걸렸을까 부끄러워 병원에 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자궁질환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기혼여성은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산부인과 진료를 1년 이상 받았기 때문에 병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그만큼 적다는 것.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이정노 교수는 "미혼여성이 더 잘 걸리는 질병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성생활을 하는 미혼여성, 혼전(婚前)·산전(産前)인 여성은 질병 확인과 건강한 임신을 위해 검진이 꼭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생리불순, 생리통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겨 문제가 커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혼여성, 심지어 사춘기 소녀도 자궁질환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삼성서울병원 '사춘기·미혼여성클리닉'을 방문한 2070명에 대한 검진에서 비정상 자궁출혈(425명), 무(無)월경(393명), 월경곤란증(281명)과 같은 자궁 관련 질환이 53%(1099명)에서 발견됐다.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가 20대 미혼여성에게 가장 많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화여대 의대 산부인과학교실 이사라 교수가 성경험이 있는 여성 1446명을 상대로 자궁 검사를 실시한 결과, 8.1%인 117명에서 자궁경부암 위험이 있는 '고위험 HPV'가 검출됐다. 고위험 HPV가 발견된 비율은 20대가 15%로 30대(12.2%)와 40대(8.5%)보다 높았다. 또 미혼여성의 9.8%에게 고위험군 HPV가 발견돼 8.1%인 기혼여성보다 오히려 높았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조시현 교수는 "산부인과를 찾는 미혼여성 중 이미 자궁근종, 자궁내막증, 다낭성(多囊性) 난소증후군 같은 자궁질환이 많이 진행된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미혼여성의 자궁질환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성석주 교수는 "비만, 당뇨, 스트레스, 심한 다이어트, 술·담배, 약물남용 증가와 더불어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예전보다 결혼이 늦어지고 첫 성관계 연령은 더 빨라진 것도 원인"이라고 말했다.
나이 많은 미혼여성과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에게 늘고 있는 자궁근종은 성관계 여부와 상관 없이 나타나며, 여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할수록 근종 발생도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HPV는 성관계를 통한 감염이 원인이다. 난소에 '성숙난자'가 아닌 '미성숙난자'가 많아 배란이 되지 않는 '다낭성 난소증후군'은 비만이 가장 큰 원인인데, 인슐린 과다 분비로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과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분비되면서 생긴다. 질염은 나일론 소재 속옷이나 꽉 끼는 청바지가 질을 습하게 만드는데다, '탐폰(삽입식 생리대)'이나 '루프(피임용 자궁 내 장치)' 같은 용품을 많이 사용하면서 각종 나쁜 균이 침투하기 때문에 발병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산부인과 검진을 받는 미혼여성은 10명 중 3명도 안 되며, 이로 인해 병을 키우고 있다고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주장한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최두석 교수는 "미혼여성에게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런 질환을 방치하면 결혼 후 불임, 유산, 부인암 등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 정시욱 헬스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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