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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생활리듬 및

유언장 작성요령 과 유언장 3편

by 현상아 2008. 12. 9.
 
갑작스런 죽음에서 오는 혼란을 막고 인생을 더 의미있게 살 수 있는다며
유언장을 미리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 
 
 

사회를 감동시킨 유언장



- 용기 있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

 
 
 
                                              
 
 
 
 
 두번째 이야기
 
 
 
 
 
                » 책으로 가득 찬 흙집 방. 한 사람 누우면 딱 맞는 방이어서 권정생은 손님 맞는 것도 어려워했다.(오른쪽) 아동문학가 이오덕(왼쪽)과 권정생. 열두 살 위였던 이오덕은 권정생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깍듯이 존대했고, 권정생의 글을 세상에 알리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73년 처음 만나 30년 동안 두 사람은 변함없는 벗으로 지냈다.(왼쪽)〈권정생의 삶과 문학〉원종찬 엮음/창비·2만원
〈권정생-동화나라에 사는 종지기 아저씨〉이원준 지음/작은씨앗·1만원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산문집〉권정생 지음/녹색평론사·1만원
〈랑랑별 때때롱-권정생 장편 동화〉권정생 글·정승희 그림/보리·1만2000원
 
 
 이름 그대로 ‘정생’(正生)이었다. ‘바른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름값을 다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바른 삶’을 ‘사랑하는 삶’이라고 고쳐 부를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자신이 닿을 수 없는 아득한 높이에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는 알고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도 바울이 말한 대 너무 어려워 도저히 사람을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특히 나와 같은 인간은 생전에 아무도 사랑해보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단호한 겸손 때문에 그는 ‘사랑이라는 진리에 가장 가까이 간 정신’이었다.
 오는 17일은 바로 그 정신이 하늘로 간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 타계 1주기에 즈음해 그를 기리는 책들이 한꺼번에 나왔다.
아동문학 평론가 원종찬 인하대 교수가 엮은 <권정생의 삶과 문학>은 ‘기림’의 뜻에 가장 충실한 책이다.
고인을 추억하는 시들을 앞세운 이 책은 권정생 연구를 위해 참고가 될 만한 평론과 회고글들을 가려 뽑았다.
 그런가 하면 <권정생-동화나라에 사는 종지기 아저씨>는 어린이들이 읽기 좋게 쓴 전기다.
 가난과 고난의 참담한 생애를 보낸 뒤 아름다운 작품만 남기고 병고의 몸을 벗어버리기까지 70년 삶이 단출하게 담겼다.
 <우리들의 하느님>은 1996년에 나왔던 고인의 첫 산문집에 그 뒤 쓴 두 편의 글을 보태 펴낸 개정증보판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이제 우리는 더는 저 조탑리의 작고 어두운 골방으로부터 나오는 유례없이 부드럽고 간곡한,
그러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목소리를 듣는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며
그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려 이 증보판을 낸다고 책머리에 밝혔다.
<랑랑별 때때롱>은 타계하기 넉 달 전에 연재를 마친 고인의 유작이다.
<강아지 똥>에서부터 <몽실 언니>를 거쳐 40년 동안 이어진 권정생의 문학적 삶의 마침표에 해당하는 작품인 셈이다.
 과학문명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생명에 대한 사랑임을 거듭 일깨우는 동화다.

 
〈권정생의 삶과 문학〉〈권정생-동화나라에 사는 종지기 아저씨〉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산문집〉〈랑랑별 때때롱-권정생 장편 동화〉
 
권정생의 일생은 20세기의 모든 고통이 한데 집결한 것과도 같은 일생이었다.
부모는 먹고살려고 식민지를 떠나 제국의 수도 도쿄에서 밑바닥 삶을 살았다. 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재일
조선인 2세가 어린 권정생에게 할당된 첫 번째 삶이었다. 1946년 귀국선을 타고 아버지의 고향 경북 안동으로 돌아왔으나,
 해방된 조국이 안겨준 건 헐벗음과 굶주림뿐이었다. 하루 세끼 끼니를 때울 수 없었던 가족은 말 그대로 먹을 것을 찾아
 안개처럼 이리저리 흘러다녔다. 한국전쟁 중에 가까스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권정생은 중학교에
갈 학비를 마련하려고 피란지 부산에서 점원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5년의 극빈 생활이 그에게 남겨준 것은 늑막염에 폐결핵뿐이었다. 스무 살 청년의 생기를 파먹고 들어앉은
 결핵은 평생토록 숙주의 몸을 떠나지 않고 창궐했다.
집으로 돌아왔으나, 가난의 냄새가 코를 찌르는 집은 결핵 환자에게 힘이 되기는커녕 남은 기운마저 빼앗았다.
 슬픔과 눈물이 꼬막만한 오두막을 넘쳐 흘렀다. 결핵균이 폐를 뚫고 신장과 방광까지 덮쳤다.
병에 곯은 청년에게 유일한 위안은 교회에서 듣는 말씀이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고통의 나날 속에 살아 있는 주검 같은 몸을 지탱해준 것이 교회였다.
 64년, 겪은 것이라곤 오직 굶주림과 막노동뿐이었던 어머니가 68년의 삶을 등졌다. 동생이라도 장가를 보내야 하는데
병든 형이 지키고 있으면 누가 시집오겠느냐는 아버지의 한숨에 권정생은 이듬해 집을 떠났다.
 석 달 동안 풍찬노숙보다도 못한 유랑걸식을 했다. 밥을 빌어먹고 거적때기를 덮고 자는 병자-거지에게
그 석 달은 “가장 혹독한 밑바닥 생활”이었다. 그러나 정신은 여기서 더 푸르게 살아났으니,
그는 뒷날 이때를 돌이켜보며 “일생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인생 체험”이었다고 썼다.
“예수님의 40일간 금식 기도만큼 나에게 산 교훈을 일깨워준 기간이기도 했다.”(권정생,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
 
 
 
» 흙집 마당에 빨래를 너는 생전의 권정생. 그는 전신결핵을 안고 평생 혼자 살았다.
아픈 몸으로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몸져누웠다. 그해 겨울 아버지마저 영영 어머니 곁으로 떠났다.
 결핵균이 홀로 남은 그 몸에 결정적 일격을 가했다. 신장 하나를 잘라내고 방광을 드러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남은 목숨이 2년이라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2년이 지나고도 살아남았다.
죽음의 두려움을 잊으려고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 책 읽기와 글쓰기였다.
그 무렵 그는 이웃 일직교회 문간방에 종지기로 들어갔다. 새벽마다 종을 치고, 힘이 남으면 글을 썼다.
1969년 그의 첫 작품 <강아지 똥>이 제1회 기독교아동문학상 현상공모에 뽑혔다.
모두들 더럽다고 피하는 강아지 똥이 스스로 거름이 되어 민들레꽃을 피운다는 내용은 권정생 자신의 삶의 투영이었다.
 “‘돌이네 흰둥이가 누고 간 똥입니다’로 시작하는 이 짧은 동화는 한국 아동문학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선을 그어놓았다
.”(이현주, ‘동화작가 권정생과 강아지똥’)
 
82년 권정생은 16년 동안 살았던 교회 문간방을 떠나 작은 흙집으로 이사했다.
아픈 몸에서 활활 타오르는 창작열도 함께 흙집으로 이사했다. 84년 불후의 명작 <몽실 언니>가 태어났다
 “절뚝거리며 걸을 때마다 몽실은 온몸이 기우뚱기우뚱했다. 그렇게 위태로운 걸음으로 몽실은 여태까지 걸어온 것이다.
 불쌍한 동생들을 등에 업고 가파르고 메마른 고갯길을 넘고 또 넘어온 몽실이었다.
”(권정생, <몽실 언니>) 다리를 절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동생을 돌보는 몽실 언니는 둘로 나뉘어 불구가 된,
 그러나 희망을 놓을 수 없는 한반도의 은유였다.
어린 것들, 아픈 것들을 언제나 애틋한 마음으로 감싸안았던 권정생은 이런 말을 남겼다.
 “역사는 잔인하지만 생명은 아름답다.” 그의 작품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의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 무소유라는 말이 외려 사치스러울 정도로
 완전한 가난 속에 산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치 생활비 외에 넘치게 쓰는 것은 모두 부당한 것입니다.
내 몫 이상을 쓰는 것은 벌써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니까요.” 그는 생전에 인세로 들어온 돈을 꼬박꼬박 모아
모두 뒷세대에게 돌려주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평생 모은 5000만원으로 옥수수를 사서 북한 어린이들에게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권정생은 타계하기 2년 전, 그를 따르던 지인 정호경 신부의 권유로 유언장을 작성했다.
피고름 오줌을 쏟고 정신이 혼몽한 중에도 그는 자기 삶을 정리하는 글을 쓰면서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그의 따뜻하고 겸허한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유언장 전문을 싣는다.
 
 
유언장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주민등록번호 370818-*******
주소 :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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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놓은 대로 부탁 드립니다. 제 시체는 아랫마을 이태희 군에게 맡겨 주십시오.
화장해서 해찬이와 함께 뒷 산에 뿌려 달라고 해 주십시오. 지금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3월 12일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퉁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습니다
. 지난 날에도 가끔 피고름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재작년 어린이날 몇 자 적어 놓은 글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2007년 3월 31일 오후 6시 10분
권정생
 
 
세번째 이야기
 
 
이 땅에 '아무개'라는 이름을 달고 산 지 쉰 한 해 되는 봄. 예수의 도에 입문한 지 스물여덟 번째 되는 해에 유서를 쓰노라.
나는 스물 셋 되던 해에 예수의 도에 입문하여 늦은 나이에 학문을 접하며
좋은 스승들을 만났고 좋은 길벗들을 만나 여기까지 살게 된 것에 감사하노라.

나는 오늘까지 주변인으로 살게 된 것을 감사하고 모아 놓은 재산 하나 없는 것을 감사하고
목회를 하면서 호의호식하지 않으면서도 모자라지 않게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이 땅에서 무슨 배경 하나 없이 살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앞으로도 더 얻을 것도 없고
더 누릴 것도 없다는 것에 또한 감사하노라.

사람들의 탐욕은 하늘 높은 줄 모르며 치솟고 사람들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르고 내달리며,
세상의 마음은 흉흉하기 그지없는 때에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음에 참으로 감사하노라.

이에 남은 이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노니,
 
 첫째, 나는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지 않을 것인즉,
 병원에 입원하기를 권하지 말라.

둘째, 나는 병에 걸려 회복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어떤 음식이든 먹지 않을 것인즉 억지로 권하지 말라.
또한 내가 의식이 있는 동안에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나누기를 꺼려하지 말라.

셋째, 내가 죽으면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알려 장례를 번거롭게 하지 말라.

넷째, 내가 죽으면 내 몸의 쓸모 있는 것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지는 내가 예배를 집례할 때 입던 옷을 입혀 화장을 하고, 현행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고향 마을에 뿌려 주기를 바란다.

다섯째, 내가 죽은 뒤에는 나에 대한 어떠한 흔적도 땅 위에 남기지 말라.
(푯말이나 비석 따위조차도) 와서 산만큼 신세를 졌는데 더 무슨 폐를 끼칠 까닭이 없도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나는 목회자로 살면서 목회를 위한 목회, 교회를 위한 목회를 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그리고 우리 가운데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목회를 하였으니
 여러분들이 앞으로도 계속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가 영원한 생명 안에서 
 안에서 어우러질 수 있으리라 확신하노라.

예수의 도에 입문한지 스물여덟 번째 되는 해 봄 2004년 2월 25일 사순절 첫 날에
虛耳(만득이)   전생수 씀
 
 
 
유언장 작성요령
 
Ⅰ. 기본 사항
1. 유언방식 (5가지 방법만 법적 효력있음)
①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② 녹음에 의한 유언
③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④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
⑤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
*대리인에 의한 유언은 효력 없음.
 
2. 유언내용 (아래 순서대로 하면 됨.)
① 유언장에 넣을 내용은 원칙적으로 제한 없음.
그러나 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래 ②~⑦에 적은 신분관계, 상속, 재산에 관한 사항뿐임.
② 신분관계에 관한 사항
.친생부인(내 자식이 아니라고 하는 것)
.인지(혼인외자를 자신의 자녀라고 인정하는 것임),
.후견인지정 (상속인이 미성년자, 금치산자, 한정치산자일 경우 돌 봐줄 사람),
.친족회 회원의 지정 (친족회는 미성년자, 금치산자, 한정치산자가 법적인 행위시 일정한 경우에 필요함)
*유언에 의한 양자는 불가능함.
③ 상속재산분할방법의 지정 또는 위탁
모두 사전증여를 하고 남은 재산이 없다면 쓰지 않아도 됨. 재산분할방법 결정을 제3자에게 맡겨도 됨.
④ 상속재산분할금지사항
상속되어야 할 재산이 남아 있을 경우만.
상속재산분할금지는 5년간만 효력이 있음. (이후에는 상속인들의 협의에 의해 분할 가능)
유언집행자의 지정 또는 위탁
유언집행자 지정 자체를 제3자에게 위탁할 수 있음. 유언자가 정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상속인이 유언집행자가 됨. 그러므로 상속인이 없거나 상속인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에 해당,
⑥ 유언내용에 그 효력발생 조건이나 기한을 붙여도 됨.
 
⑦ 기타 재산에 관한 사항
.유언에 의한 재단법인의 설립,
.유증(유언자의 사망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증여),
.신탁의 설정.
⑧ 후손이나 배우자에게 당부하거나 특별히 남기고 싶은 말씀.
위의 ①~에 해당 사항 없으면 상속인에게 당부말씀 정도.
(보통 이런 내용을 유언이라고 하는데 이런 내용은 법적인 의미는 없음. 그러므로 유언장에 남기지 않아도 상관은 없음) 
3. 유언자 사후 유언집행
유언집행자가 유언서 내용대로 이행하면 됨.
 
Ⅱ. 유언방식별 유언요령
A. 자필증서로 유언을 남길 경우
1. 기본사항
① 자필로 하는 경우가 가장 바람직함.
② 증인은 없어도 됨.
③ 공증받지 않아도 됨.
 
2.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서 작성시 유의사항
*아래 내용을 반드시 기재해야 하고 한 가지라도 빠지면 유언서 효력없음.
*기재는 반드시 유언자 자필로 해야 함.
*유언자가 자필로 작성하지 않으면 효력 없음.
 
아래 내용을 순서대로 작성하면 됨.
① 유언내용 (반드시 자필로 작성)
첨가,삭제,변경시에도 반드시 자필로 해야하고 첨삭변경된 곳에 날인(지장 무방)해야 함.
② 유언서작성연월일 (반드시 자필로 작성, 연월일 없으면 무효)
③ 성명 (반드시 자필로 작성, 한글 한자 상관없음)
④ 날인(도장이 아니고 지장이라도 무방함)
⑤ 주소(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님)
 
B. 녹음으로 유언을 남길 경우
아래 사항이 녹음에 반드시 들어가야 함 (한 가지라도 빠지면 유언효력 없음)
① 유언내용(유언자가 유언내용을 녹음기에 대고 직접 구술하면 됨)
② 유언자 성명(유언자가 직접 녹음기에 대고 구술해야 함)
④ 유언 연월일(유언자가 직접 녹음기에 대고 구술해야 함)
⑤ 증인의 녹음
증인이 유언자의 녹음에 이어서 곧바로 유언자의 유언이 정확하다는 점과 증인의 성명을 직접 녹음함. (증인의 녹음 빠지면 효력없음. 증인은 한 명이라도 괜찮음)
* 참고: 증인이 될 수 없는 사람
ⓐ 미성년자,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 상속인
ⓒ 유언에 의해 이익을 받을 자와 그 배우자 및 직계혈족(존비속 모두)
ⓓ 위의 자가 증인으로 참여한 유언은 유언 전체가 무효.
ⓔ 위의 자가 아닌 유언집행자는 증인가능.
 
C. 공정증서로 유언을 남길 경우
① 공정증서로 할 경우에는 유언증서를 유언자가 직접 작성하지 않아도 됨.
② 증인 2인이 반드시 필요함.
③ 유언자가 공증인 앞에서 유언내용을 구두로 해야 함. (유언자가 미리 내용을 써 가지고 가서 공증인에게 구두로 읽어도 됨)
④ 공증인(또는 공증인이 지시한 자)이 유언자의 유언내용을 앞에서 받아 적어야 함
⑤ 공증인이 받아 적은 내용을 유언자와 증인 앞에서 낭독해 줘야 함.
⑥ 유언자와 증인은 공증인이 필기한 내용이 정확함을 승인한 후 유언자와 증인 각자가 기명날인 또는 서명하여야 함.
⑦ 공증인이 공증인사무소가 아닌 곳으로 출장하여 유언을 받아도 됨.
 
* 참고: 증인이 될 수 없는 사람
ⓐ 미성년자,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 상속인
ⓒ 유언에 의해 이익을 받을 자와 그 배우자 및 직계혈족(존비속 모두)
ⓓ 위의 자가 증인으로 참여한 유언은 유언 전체가 무효.
ⓔ 위의 자가 아닌 유언집행자는 증인가능.
 
D. 구수증서로 유언을 남길 경우
① 질병 기타 긴박한 사유로 인하여 다른 방식으로 유언이 불가능 한 긴박한 경우에만 할 수 있는 유언방식임.
②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 이외의 다른 방식의 유언이 가능할 경우에는 구수증서로 남긴 유언은 효력 없음.
③ 2인 이상의 증인이 반드시 참여한 가운데 유언하여 함.
④ 참여한 증인 중 1인이 유언자의 유언내용을 받아 적어야 함.
⑤ 유언내용을 받아 적은 증인은 다른 증인과 유언자에게 낭독하여 주어야 함.
⑥ 그 다른 증인과 유언자는 위의 낭독한 내용이 정확함을 승인하고,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여야 함.
⑦ 증인이나 상속인은 유언자의 급박한 사유가 종료한 날로부터 7일이내에 법원에 그 검인을 신청하여야 함.  (7일 이내에 검인이 없으면 유언서는 무효임)
* 참고: 증인이 될 수 없는 사람
ⓐ 미성년자,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 상속인
ⓒ 유언에 의해 이익을 받을 자와 그 배우자 및 직계혈족(존비속 모두)
ⓓ 위의 자가 증인으로 참여한 유언은 유언 전체가 무효.
ⓔ 위의 자가 아닌 유언집행자는 증인가능.
 
E. 비밀증서로 유언을 남길 경우
① 작성시 2인 이상의 증인이 필요하고, 작성 후에는 공증인에게 확정일자를 받아야 함.
② 유언자가 유언내용과 자신의 성명, 작성연월일, 서명또는기명날인, 주소를 자필로 직접 기재함.
③ 유언자가 유언서를 봉투에 넣어 밀봉함.
④ 밀봉한 봉투표면에 유언자가 기명날인함.
⑤ 유언자는 유언서를 밀봉 후 기명날인한 증서를 2인이상의 증인의 면전에 제시하여 자기의 유언서임을 표시하여야 함.
⑥ 유언자는 밀봉서 표면에 유언서의 작성및제출 연월일을 기재함.
⑦ 유언자가 밀봉서 표면에 연월일을 기재한 후에는 유언자와 증인이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여야 함.
⑧ 밀봉서 표면에 기재된 연월일로부터 5일 내에 공증인에게 제출하여 그 봉인상에 확정일자인을 받아야 함.
* 참고: 증인이 될 수 없는 사람
ⓐ 미성년자,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 상속인
ⓒ 유언에 의해 이익을 받을 자와 그 배우자 및 직계혈족(존비속 모두)
ⓓ 위의 자가 증인으로 참여한 유언은 유언 전체가 무효.
ⓔ 위의 자가 아닌 유언집행자는 증인가능.
 
 
 
  베토벤 교향곡 4번 B flat Major O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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