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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모저모/마음 성격 성향 및

[스크랩] 번뇌와 마음의비교 & 인간의 본질, 생활의 본질에 대하여

by 현상아 2011. 5. 31.

 

마음 3 (번뇌와 마음의비교)

(인간의 본질, 생활의 본질에 대하여)

2001. 9. 1

 

: 객체이긴 하지만 감정은 있다. 하지만 영혼의 감정은 失益을 정확히 따져 묻는 이미 계산된 감정으로 객관성을 띤다.

 

마음 : 이득을 따지지 않는 삶의 주체로서 본질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것으로 주관성을 띤다.

 

 

번뇌와 마음의 비교

 

번뇌는 영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한 생에는 하나의 번뇌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치적으로 가장 뛰어난 사람은 108생이면 인간의 모든 번뇌를 넘어설 수 있으며 삶을 마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한 번뇌를 해결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한 번뇌를 완성한다는 것은 그것을 버릴 수 있을 때이다.

 

한 번뇌를 한 생에 완성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 학습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마음이다. 한번으로 안되니까 삼생 동안 한 번뇌의 산을 3가지의 단계로 굴러가는 것이다. 하나는 아주 편하게 올라가 보고, 하나는 중간으로, 또 하나는 아주 힘들게 올라가 보는 것이다. 즉 등산로가 3개인 셈이다. 3개의 산을 올라 보면서 “이 산이 아무 것도 아니구나” 하고 느끼게 되면 그 다음 번뇌의 산으로 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다.

 

이번 생의 번뇌가 모르는게 번뇌라면 모르는 것을 포기하는 방법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인정하는 것을 배우려면 공부를 많이 해서 해도해도 모른다 면 손에서 놓게 되고 그 순간 없어지는 것이 번뇌이다.

 

 

사람들은 흔히 번뇌 = 산으로 많이 비유하여 표현한다.

 

만다라라는 영화로 예를 들어 설명해 보면 만다라에 나오는 주인공 스님이 끝없이 산을 오르내리다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만다.

 

사실 그 스님이 오르내렸던 산은 마음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그 스님은 번뇌와 마음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스님이 이러한 말을 한다.“한 산을 올랐더니 앞에 또 다른 산이 보이더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다 어느 날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올라가서 보니 너무 많은 산들이 보이더라 이제는 도저히 더 이상 오를 수 없어서 포기했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스님이 산을 보았다 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고 진실로 오르려고 했던 산은 번뇌이다.

 

 

번뇌란 인간이 한 지점에서 출발해서 계속 번뇌의 산을 올라 마지막 108번뇌의 산까지 오르는 경과를 말한다. 다시 말해 번뇌는 산의 집합체이고, 한 개의 산을 넘어가기 위한 목표가 마음이다.

 

예를 들어 출발지점이 서울이라 하고 도착지점이 부산이라고 했을 때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총체적인 지도가 번뇌라면 거쳐가는 대전까지 가는 거리에서 생겨나는 일은 마음이다.

 

인간이 한 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목표가 있으며, 그것이 살아가는 목적이다. 바로 그 목적이 마음이다. 그래서 한 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이 主 이냐가 가장 중요하다.

 

만약 지금 내가 이 생에서 美의 번뇌를 넘고 있는 것이라면 생의 목적은 美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美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식보다 나를 위해 살고 나의 美룰 위해 살게 되는 것이다. 美(번뇌 중 낮은 단계)를 추구하는 것에도 개인적인 것, 사회적인 것, 대중적인 것, 3가지를 총괄하게 된다. 지금의 번뇌인 美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설계도(걸어가든, 뛰어가든)를 마음이라 한다. 그러다가 美가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 번뇌를 넘어선 것이고 다음 번뇌의 산으로 건너 갈 때는 마음(삶의 목적)이 다시 변하게 되어 다른 설계도를 만든다.

 

즉 108가지의 번뇌가 모인 것이 마음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영을 밝게 하는 모든 것을 가리켜서 번뇌라 하고

그것을 번뇌 속에서 거쳐가는 과정이 마음이다.

“내 마음 나도 몰라” 의 뜻은 생각으로는 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생각이라는 것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각적인 효과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교육받으며 살았지만 실제로 모든 생활이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그 사람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틀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무엇인가에 집착하지만 모두 누구에 대한 것이냐, 집착대상의 어떠한 부분이냐, 집착을 하는 방법이 다르다.

 

예를 들어 부모는 자식에 대해 모두 집착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식이 권력욕을 추구하는 사람,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사람, 결혼을 잘해서 잘 살기만을 바라는 사람, 못살아도 좋으니 사람만 되었으면 ,부자로 살기를 바라는 사람 등 한 대상을 놓고도 이렇게 집착하는 부분이 다르고 방법 또한 다른 것이다. 그 여러 가지의 집착 하나 하나가 마음이고 그것을 넘어가는 다른 마음이 버티고 있으며 그 두 개의 마음을 가리켜 번뇌라 한다.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생각과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고 108가지 중 각각의 종류의 번뇌를 가진 사람이 있고, 그 번뇌에 따라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법과 가치관이 다 다르다.가치관들 하나하나를 마음이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들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라고 했을 때 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은 마음이다

 

왜냐하면 만약 잘 살지 못하는 동네에서 살아가면서 어떠한 공통된 가치관을 돌출해 낸다면 잘살아보세 라는 가치관이다. 이것은 육신에 대한 가치관이다. 육신을 편하게 하면서 마음의 어둠에서 해방되어 보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번뇌는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똑같이 성립되는 어떠한 마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어려운 것이다. 분명히 마음은 이렇게 분파되는데 우리가 실제적으로 현실에서 접하는 마음은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보여진다.

 

 

길을 가다 오늘 마음이 이상해서 항상 왼쪽 길로 가는 사람이 오른쪽 길로 갔다가 누군가를 만났다면 그것은 운명이라고 해야하나, 내 마음이 가져다주는 인연이라고 생각해야하나? 그것은 마음이 가져다주는 인연이다. 인연은 모두 다 포함되어있지만 특히 마음에 많이 속해있다.

운명은 혼에 해당하는 부분이며 객관적인 부분이고 마음은 주관적이다.

 

 

부부가 만난다는 것은 객관적인 부분일까 주관적인 부분일까?

“우리 부부의 만남은 운명이다”. “마음이 통해서이다” 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부부 중에 행복한 부부는 운명적인 만남의 사람들이 아니다. 전대에 너무나 사랑하여 다음 생에 꼭 만나기를 간절히 원한 사이인데 이렇게 만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전대에 사랑했던 사람은 이대에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만나게 되면 번뇌의 산을 오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현재에 만족하며 마음속에서 안주하며 사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아이러니이다. 과연 어떠한 것이 행복한 것일까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가 아니면 고통을 겪으며 번뇌의 산을 오르내리며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한 것인가?

 

우리가 가지고온 인본주의적 사고 방식은 다 마음에서 나온 것들이다.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번뇌에서 나온 것이다.

 

고통을 겪어가며 108번뇌에 도착해야 행복하지만

 

부부의 인연이라는 것은 운명이고 그 운명은 행복하기가 어렵다 물론 잠깐동안이지만 한동안은 행복함을 맛보기도 하는데 그 행복했었던 기억에 미련이 남아서 서로 싸우는 것이다.

처음에 연애할 때는 남편이 멋있어 보이다가 (어떠한 습관이나 담배 피는 모습등)결혼생활을 한참 하다보니 오히려 그 부분이 싫은 경우가 있다.

그것은 우리들 영혼이 스스로 예약해놓은 함정이다. 스스로 눈 가리고 스스로 눈 풀고 덧에 결려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누구 탓할게 아니다. 그 덧은 스스로 풀어야 한다. 마음 한번 잘 먹으면 인생이 편해지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너 그렇게 살아라 하고 그 사람에 대한 끈을 놓는다면 번뇌가 바뀌게 될테니깐 그 사람이 바뀐다.

 

 

자식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그 자식에 대한 집착이 나에게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었구나하고 깨닫게 되면 집착하던 것이 없어지게 된다.(거의 마지막에 깨닫게 되지만)

집착도 삶을 살아가는데 많이 필요하다. 집착=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집착은 사랑한다고 따라 다니는 사람이 항상 하는 말은 “왜 내 마음을 몰라주니?” 이다. 그 마음이라는 것은 어떤 이야기일까 그 사람을 보면서 짝사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마음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실제적으로 우리가 배워야 하는 마음은 몇 개 안 된다. 우리는 언어의 혼란 속에서 마음이라는 글자를 알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선물을 하나주면서도 “내 마음이야”. “널 보니깐 내 마음이 아프다.” “오늘 마음도 그런데 술이나 하러갈까”하고 모두 마음이라는 단어를 쓴다. 과연 그게 마음일까

 

운명은 혼에 대한 이야기로 객관적이다

우리의 운명은 어디까지인가

내가 다리를 띠었을 때 이것까지 예견한 것이 운명이냐 아니면 내 다리가 띠는 것은 내 자유의지이고 내가 살아가면서 만들어진 것이 운명이냐 라고 분류하는 사람등 여러 사람이 있다.

 

오늘 마음도 그런데 술이나 한잔 하러갈까 라고 하는 것은 정말 그것이 마음일까?

오늘 마음이 꿀꿀해서 술 먹으로 간다고 하는 것에 생각해 봐야하는 것은 그 사람 마음이 왜 꿀꿀할까이다. 오늘 기분이 나쁘면 분명히 그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를 만든 것은 운명이다. 마음은 아니다.

상황 속에서 전개되는 삶의 일부일 뿐이다.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술을 먹은 것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즐기기 위해서 술을 먹은, 일회용적이며 일관성 없는 행위적인 주체에 해당하는 이것을 마음이라 표현하기 어렵다.

 

마음이 아니라 기분이라는 말을 써야한다. 기분이 좋지 않아 술을 먹고 싶다는 것은 내 영혼의 상태가 뭔지 모르지만 엇 박자가 걸려서 오늘은 영혼의 모든 것을 놓고 싶다는 것이다. 마음과는 거리가 있다.

 

애인과 헤어지고 술 먹으러 가면서 마음 아프다라고 표현하는 이것은 마음일까?

이것마저도 헤어져서 마음이 아프다라고 표현한 것은 마음이 아니다.

그 사람과는 어차피 헤어지게 되어있는 운명이다. 객관적 요소이다.

우리들이 말하는 마음이란 내가 한 생을 살았을 때 총체적인 목표를 마음이라 한다. 힘들지만 내가 살아있는 이유 이것이 마음이다.

모두 마음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이 마음이냐 하고 물으면 마음이 아닌 것이다.

 

불가의 마음은 감정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불가에도 잘못된 이야기가 많다. 번뇌도 감정(분노 등)이라고 알고 있다.

 

불가의 내용 중 부모님의 은덕을 다하려면 이대에도 효도를 다하고 다음 대에도 효도를 다하라고 하는 것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게 빛을 갚는 것 은혜를 갚기 위한 것이 이 생에서의 최대의 목표라면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는 것도 목표로 가기 위한 상황이자 방법이며 어떠한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는 이유는 삼 생 동안 최선을 다한다는 목적의식이 마음이다.

 

마음은 하나뿐이다. 일편단심으로 이 생에서 사는 목적은 하나이다. 절대로 둘일 수 없다. 목적이 하나뿐이므로 그 길로 가는 것이다. 난 그렇게 살지 않을거야 하고 마음을 바꾼다면 인생 전체가 바뀐다.

마음은 정해가지고 왔지만 바꿔야 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혼이 3개이다. 3번은 겪어야 벗어날 수 있다.

 

내가 한 생을 살아있는 이유가 마음이다

 

번뇌를 실행할 때 한 번뇌의 산을 올라가는 방법이나 목적은 다 틀리다(번뇌는 다 똑같지만). 마음이 다 틀리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목적은 오직 딱 하나 효도이지만 살면서 그 부모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안에서 힘들어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다만 여러 상황의 전개인 운명일 뿐이지 마음이 아니다. 그래서 머리가 있는 것이다.

만약 머리가 없다면 오직 마음만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데, 마음의 목적만 달성하기 위해서 원수를 갚아야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상대를 옥상으로 유인하여 밀어 버려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가족 등 주위 상황들이 떠올라 그렇게 할 수가 없다. 함부로 살생도 못하고 복수할 수도 없다. 하지만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은 똑같이 존재하고 있다.

 

부부도 마찬가지이다. 부부는 전생에 원수지간이던 사람들이 인연을 맺어 서로가 살면서 고통을 극복하면서 업을 갚아야 하는 관계인데, 전생에 원수였으니 그 사람이 아무리 예쁜 짓을 해도 예쁘지 않다. 이것이 마음과 생각의 차이이다. 생각 상으로는 내 부인이 나한테 잘하면 예뻐야 한다. 남편이 집에 가서 잘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집에 갔지만 아내를 보자마자 비위가 상한다. 머리모양부터 마음에 안 드는게 한 두 개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 때문이다. 머리로는 안 되는 것이다. 생각과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워하지 말아야한다.

 

 

우리는 무조건 마음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데 단어를 잘 선택하여 사용해야 한다.

 

번뇌: 산의 총체적인 목표(1-108)(어디에서 어디까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고 마지막에 도달해야할 지점이며 장기적인 목표이다. 전략

마음: 한 산의 지도이며 단기적 목표이다. 전술

 

 

영어의 표현

mind-생각의 주최. 인간의 마음으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soul : 영혼 spirit : 영

mind control은 우리의 생각을 합리적 사고 방식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서양적 체계는 이분법적 체계이므로 신과 인간을 구분지어 생각한다.

신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은 이미 모든 번뇌를 완전히 마무리한 상태가 신이기 때문에 그들은 생각이 곧 마음이다. 그래서 신의 마인드를 마음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인간은 생각과 마음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마인드라고는 할 수 없다.

 

 

서양철학에서도 신과 인간에 차이를 보인다.

서양이 발전해온 상황 자체가 신을 배제하고 인간의 사고가 어떻게 지향될 것인가 와 그 사고가 공공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마저도 버리려고 한다.

인간은 신의 종속물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독립된 체재이며, 그러므로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유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자유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니 방종으로 흘러가게 된다. 무서울 게 없어진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상황은 어떤 삶의 의무감이나, 삶의 목적의식이 완전히 사라지고 있는 추세에 몰려있다.

그래서 칸트나 이성적 철학적들이 항상 고만 했던 부분이 인간은 과연 도덕적 일 수 있을까 이었고, 그들이 내린 결론은 도덕적일 수 없다 였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칸트도 ‘신의 의지’라는 말을 했다. ‘신의 의지’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도덕성 이야기를 할 때 신은 반드시 개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인간 보다 항상 높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동양적 사고 방식은 일원적 사고방식으로 서양과는 다르다.

 

신과 인간은 같이 공유하며 산다. 공유하며 살지만 신은 신이 해야 할 일이 있으며 인간은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고의 차이 때문에 서양에서 과학이 훨씬 발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양은 신, 자연을 믿기보다는 우리 인간들 스스로 노력해서 개척하겠다는 생각이 집결해 있었기 때문에 과학이 더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동양은 냉장고를 발명할 생각을 안하고 자연적으로 서빙고와 같은 자연을 이용한 곳에 저장하여 먹겠다는 생각을 했지 서양처럼 어떻게 하면 얼릴 수 없을까 하는 사고로 발전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팔만 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곳에 가면 습기를 제거하기 위한 시설이 잘 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전혀 그러한 시설이 없다. 그저 숯 정도만 있을 뿐이다. 그래도 습기가 없다.

아마도 팔만대장경이 서양에 있었다면 습기를 제거하기 위한 훌륭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연을 믿지 않고 스스로 무언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서양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불가에서 선 공부를 시킬 때 “너는 마음을 아느냐”라는 것을 물어본다.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받게되면 가족에 대한 감정이나, 지치고 어려운 생활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스님이 물었던 것은 실은 그러한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무엇이냐의 참 뜻

“너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지금 이 삶의 목적은)라는 뜻이다.

사람에 인연으로부터 피해서 숨어 있으려는 것이냐, 자식에게 빛을 갚기 위함이냐, 도를 닦아서 하늘로 오르는 것이냐, 나를 발전시키기 위함이냐, 부모에게 효도하여 전대의 업보를 갚는 것이냐 라는 것을 함축하여 묻는 것이다. 스님들이 하는 선문답의 내용이 모두 이러한 것인데 문제는 물어보는 사람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마음 수련이라면 마인드콘트롤이나 단전호흡이라고 생각한다.

마인드 콘트롤은 호흡을 밑으로 내리려고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고 자꾸 생각하면 실제로 호흡이 내려간다. 머리는 모든 것을 콘트롤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생각과 마음이 달라 생각은 내려가라하고, 마음에서는 아직 호흡을 내 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애 올라가라 한다. 그래서 마음과 생각이 충돌하게 되면 호흡이 가빠지게 되고 심하면 장이 튀어나오거나 꼬이게 된다. (주화입마)

사회 전반적으로 갖고있는 모든 것이 이 마인드 컨트롤에 해당되는 내용이므로 마음공부 하기가 힘들다.

무속인은 마음이 마인드 콘트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속인은 마음이 2개인 사람이다.

 

그렇다고 마음을 heart라고 쓰기에도 적당하지 않다. heart 와 마음은 다르다

마인드는 머리에 해당하는 것이고, heart는 심장 (몸)에 관련된 것이다

 

가슴이 아퍼라고 표현하는 가슴이 아픈 이유는 누군가 나의 감정을 자극해 심장이 빨리 뛰니깐 위가 자극받게 되고 간에서는 갑자기 화학물을 많이 정화시켜야 되고, 그러다 보니 심장이 빨리 뛰게 되고 온몸이 모두 빨리 움직이게 되어 가슴이 답답하고 나중에 허파가 아파오고 허파가 아프니깐 신경이 가슴으로 전달되어 가슴이 아파온다. 모든 것을 유기적 관계로 보는 서양식 사고의 전체적 부분을 가리킨 것이다. 우리같이 마음을 독립적인 체제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하나만 보더라도 마음, 영혼, 생각, 귀신, 신, 어머니의 마음, 등이 함께 있다.

 

 

우리말은 복잡하다. 한자보다 더 복잡하다 사용방식이 다양하며 마음이라고 불리는 것만 해도 생각, 감정, 기분을 통틀어 마음이라고 한다. 우리말이 많이 어렵다 가장 합리적이지만 뭔가를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자세히 들어가면 굉장히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대신 영어나 라틴어는 자세한 설명보다는 현상적인 것, 겉껍데기를 설명하기는 좋은 데 깊숙이 들어가 설명하기는 어렵다.

 

한국- 가장 비합리적 사고 방식(난 되고 남은 안되고의 사고방식)

독일 - 가장 합리적 사고 방식

이것은 언어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 도 닦기에 가장 좋은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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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귀천도향 (歸天道鄕)
글쓴이 : 나비현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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